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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통일한국의 大洋해군 전략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21세기 통일한국의 大洋해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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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국립대 국제관계학 교수인 앤드류 맥은 동북아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날 위험성이 높은 지역으로 독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위험순위로 따지면 일본과 중국, 대만 사이에 분쟁이 되고 있는 조어대(센카구 열도) 다음이다. 앤드류 맥은 “독도 분쟁으로 한국의 광범위한 민족주의자들과 일본의 소수 우익단체가 또다시 분노할 수 있다”며 “만약 앞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구역 내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을 일본이 납치하려 들고 한국이 자국 어선을 물리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이는 쉽게 한·일간 해양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태국 SEAPOL 연구실장인 프랜시스 라이도 동아시아 해양에서 영토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독도를 꼽고 있다. 라이는 “한국인들에게 독도 문제는 극도의 감정적인 사안”이라며 특히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및 어로권 확보문제가 독도분쟁에 씨앗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배진수씨에 따르면 일본의 독도 무력침탈 개연성은 매우 높다. ‘STRATEGY 21’(한국해양전략연구소 간) 제2호에 실린 배씨의 논문 ‘독도의 군사위기 가능성 분석’은 독도 위기론의 실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배씨는 논문에서 6단계로 진행되는 일본의 독도침공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단계별 상황을 분석하는 한편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무력포기 헌법조항 개정, 러시아와 북방도서 문제 정리 등 ‘사전정지작업’을 한 뒤 독도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독도 영유권 분쟁은 일본의 의도대로 유엔총회에 상정되는 데 이어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간다. 그런데 한·일 두 나라 모두 자국이 패소할 경우 재판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군사대결 상황으로 직결된다. 배씨는 결론을 통해 “독도 문제는 이미 분쟁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독도 경비 책임을 경찰에서 군으로 바꿀 것과 해·공군력의 증강 등 대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상 시나리오에서 상정한 대로 동해에서 한일 해군간 전투가 벌어질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한국 해군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 곧 대양해군화의 당위성을 검토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도분쟁 시나리오는 ‘해군력이 왜 증강돼야 하는가’라는 케케묵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암시하고 있다. 그 답변은 해군의 전형적 임무를 설명하는 데 적절해 보인다. 그렇지만 해군력 증강이 단순히 바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만은 아니다.



‘바다를 통해 야기되는 북한 및 외부의 위협세력으로부터 전쟁을 억제한다는 일차적 임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해양에서의 국가이익을 수호하며, 국가정책을 지원하고 국위를 선양한다’.

해군본부가 1997년 발행한 기관지 ‘해군’에 나오는 해군의 임무다. 이 짧은 문구는 한국 해군의 지향점과 발전방향을 잘 요약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대양해군을 주장해왔다. 1995년 4월 제20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한 안병태 제독은 취임사에서 ‘대양해군 건설’을 주장해 국방부 정책결정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21대 총장으로 취임한 유삼남 제독도 대양해군의 표어를 내걸었다. 이후 대양해군은 한국 해군의 목표가 됐다. 대양해군의 이미지가 풍기는 매력은 해군의 건배 구호에도 영향을 끼쳤다. 해군 술자리에선 건배 제의를 하는 사람이 ‘바다로’를 외치면 좌중은 ‘세계로’라고 받는다.

바다 분할의 시대

그러나 대양해군의 꿈이 펼쳐지기엔 수십 년의 전통을 지닌 육군 위주의 국방정책이 너무 단단하다. 해군교육사령관을 역임한 강영오 예비역 제독에 따르면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 안팎에서 공감대를 얻는 듯 싶었던 대양해군 논리는 육군을 중시하는 대륙학파들의 강력한 반론에 움츠러들었고 1997년 국가환란의 위기를 맞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이라는 비판이 일자 더 이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STRATEGY21 제2호’-‘한국의 균형해군전략’).

한국 해군이 그토록 꿈꾸는 대양해군이란 무엇인가. 세계 각국의 해군은 그 규모에 따라 연안해군, 지역해군, 대양해군, 세계해군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 해군은 그중 가장 소규모인 연안해군으로 분류된다. 연안해군은 영해로 인정되는 해역에서 극히 제한된 임무만 맡는 해군이다. 이에 반해 대양해군은 연안으로부터 1000해리 이상 떨어진 넓은 해역에서 작전이 가능한 해군을 일컫는다. 영해 방어라는 소극적 임무를 수행하는 연안해군과 달리 해양자원 확보와 해상교통로 보호 등 국가의 해양권익을 자주적으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해군이다. 말하자면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이 된다는 것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던 ‘우물안 개구리’의 전략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대양해군의 상징은 항공모함이다. 대양해군 비판론자들의 주논리는 중국 일본 및 러시아로 둘러싸인 한반도 주변의 좁은 바다에 무슨 항공모함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영오 예비역 해군제독의 반론은 귀기울일 만하다.

“항공모함은 대양작전만을 위해 만든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항공모함은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바다로부터 육지에 대해 항공전력을 투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한반도와 같이 동서양해로 길게 뻗은, 폭이 좁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가장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한편 지역해군은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현재 한국 해군은 연안해군에서 지역해군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있다. 세계적 해군은 말 그대로 전세계 어느 해역에서나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활동이 가능한 해군으로 구소련이 쇠퇴한 지금 미해군만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해군의 대양해군화는 왜 필요한가. 대양해군 논리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선 먼저 한반도 주변을 비롯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는 바야흐로 바다 분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의 국경은 매우 유동적이다. 해군력이 강한 나라에는 5대양이 잠재적 영토다. 드넓은 바다 속에 숨어 있는 갖가지 천연자원을 마음껏 확보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해군력이 약한 나라는 자국 연안을 지키는 데 급급할 뿐이다. 이는 그 나라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바다로, 세계로!’

냉전이 끝난 후 바다와 해군의 중대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다. 경제수역을 보호하고 해상수송로를 확보하는 데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 존망이 걸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걸프전에서 드러났듯 해상수송로가 봉쇄되면 경제력은 순식간에 무기력해진다. 최근 한국 어민들에게 고통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한·일어업협정은 21세기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겪을 거대한 ‘바다 전쟁’의 서곡이다.

해양은 육지면적의 2.5배, 11배에 이르는 부피, 300배의 생활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육지자원 고갈에 따라 각국이 펼치는 바다자원 확보 경쟁은 분쟁의 강력한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육지에서 망간 니켈 코발트 구리 등 세계 4대 전략금속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41∼112년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바다에는 188∼1만1904년 동안 사용 가능한 양이 남아 있다. 이미 세계 총 석유생산량의 30%는 해양유전에 의존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19일 해군 2함대사령부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 앞바다에서 열린 제8회 함상토론회에 참석, 한국 해군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토론회는 평택 기지에 정박중인 한국 해군 최대의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에서 이뤄졌다. 숭실대 김문경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한·중·일 3국의 해양학자 10명이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로 나선 가운데 이수용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전·현직 해군 장성 및 영관장교들과 해군 유관단체·언론계·학계 인사 등 200여명이 객석 토론자로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장보고 대사의 해양경영과 21세기 한국 해군의 해양안보’라는 주제를 놓고 약 5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통일신라 때 사람인 장보고가 해군 함상토론회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 해양 개척사의 선구자이기 때문. 그는 약 1200년 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 동북아 역사상 처음으로 해상권을 장악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통제하던 완도 주변 바다는 당시 한·중·일 3각 교역의 주요 통로였다. 기록에 따르면 청해진 설치 후 해적들이 자취를 감췄으며 그 일대를 지나가는 배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장보고의 허락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그의 해상통제권은 확고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신라 상인들은 마음놓고 바다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장보고의 해양경영은 한국 해군의 대양해군화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 강영오 전제독은 ‘해양력이 국가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역사에 나타나는 해양력의 번성기는 9세기 초엽 신라의 장보고에 의한 해양경영의 시대와 196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두 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해양경영과 해양안보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다. 해양경영에는 반드시 해양안보가 뒷받침돼야 하고 해양경영이 따르지 않는 해양안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해양경영과 해양안보 두 측면에서 대양해군화의 당위성을 검토하기로 한다.

해양경영의 핵심 요소는 해상교통로(해상수송로) 보호와 해양자원 확보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시대의 월터 롤리 경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나아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또 18세기 미국의 해양전략가 알프레드 마한은 해군력을 “국가의 부와 안정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해군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국가 경제에 직결되는 요소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이춘근 박사의 ‘국가경제와 해군력의 규모’라는 논문에 따르면 과거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했던 국가들은 모두 해군력이 강한 나라들이었다. 동시에 이들 강대국들은 해군력의 쇠퇴와 더불어 국운도 쇠퇴했다. 이박사는 또 ‘미국의 동아시아 해군력 변동현황과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지난 500년 동안 세계를 주도한 패권국은 항상 해양국가였으며, 이들에 대한 도전자는 18세기 이후부터는 대륙에서 나왔는데 패권을 결정하는 전쟁에서 해양국가들이 궁극적인 승자가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쉽게 입증된다. 15세기 무렵 국제 상권을 손아귀에 넣었던 나라는 막강한 해군력과 상선대를 보유했던 포르투갈이다. 이어 16세기엔 무적함대를 앞세운 스페인이 번영의 꽃을 피웠다. 네덜란드가 17세기에 세계무역을 지배한 배경에도 강력한 해군력이 있었다. 18세기 이후 20세기초까지 세계의 패권국으로 군림한 영국의 해군력은 당시 세계 해군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독일의 당시 해군력은 영국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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