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한나라 內戰’ 막전막후

‘외로운’ 박근혜, 저격수 3인방 ‘분리 견인’ 시동 거나

  • 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입력2004-09-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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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과거사 규명,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퇴진 요구 등 열린우리당의 파상 공세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 박 대표가 지금 위기를 느끼고 있다.
    • 정작 그를 위협하는 존재는 내부에 있다. ‘나바론 특공대’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비주류 3선그룹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3인방이 그들이다. 박 대표가 장고 끝에 이들에 대한 분리-포섭 전략을 수립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 內戰’ 막전막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외롭다’고 했다 카더라.”“전전반측(輾轉反側·이리저리 뒤척인다는 뜻),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카더라.”

    한나라당 인사들은 ‘뉴스 포커스’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근황을 ‘외롭다’는 말로 전한다. 자타 공인 ‘바른생활 소녀’ 박 대표가 “외롭다”는 고백을 당내 누군가에게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는 박 대표의 속내를 미뤄 짐작해 대변하는 말로 통한다.

    열린우리당의 공격에 날이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 대표 몰아세우는 게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다. 박 대표를 뒤척이게 하는 이유의 8할은 정작 당내 비주류에게 있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이재오(李在五)·김문수(金文洙)·홍준표(洪準杓) 의원 3인방을 필두로 한 비주류와 고독한 싸움을 벌이면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한나라당 연찬회를 복기해보자.

    8월29일 일요일 아침, 한나라당 의원 90여명이 전남 구례에 있는 농협연수원 대강당에 모였다. 전날 섬진강 답사와 연극공연 등의 일정을 마친 의원들은 이날 연찬회(硏鑽會)의 하이라이트인 토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방에서 자고 나온 이재오·김문수 의원은 강당 맨 뒤편에 나란히 앉았다. 3인방의 또 다른 한 명, 홍준표 의원은 미 공화당 전당대회 참관차 외유중이어서 이날 연찬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현안 관련 발제가 끝나고 토론 순서가 됐다. 맨 처음 김문수 의원이 연단 위로 올라갔다. 강당 맨 앞자리엔 박 대표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한나라 內戰’ 막전막후

    위로부터 한나라당 이재오·홍준표·김문수 의원.

    “…박 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지만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면 당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빨리 바로잡는 게 대표에게도, 당에도 좋다. 신속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정중히 요구한다.”

    소극장만한 강당 안의 분위기가 이내 무거워졌다. 과거 사과,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강력한 행정수도 이전 대책 마련 등을 메뉴로 삼은 비주류의 박 대표 압박은 연찬회 이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다만 당사자를 면전에 뒀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계동(朴啓東), 고진화(高鎭和)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사회자가 “오후 일정이 빡빡하니 토론은 가급적 짧게 하자”고 제안하자 이재오 의원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일정은 무슨 일정!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해야지, 연찬회에 놀러온 줄 알아?”

    이 의원은 사회를 보던 유기준(兪奇濬) 의원에게 “말미쯤에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10여명 의원이 발언한 뒤 연단에 올라 유신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비주류의 공세를 최종 정리라도 하듯 박 대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공격이 거듭됐으니 이제 수비가 따라야 할 차례다. 한선교(韓善敎) 진영(陳永) 전여옥(田麗玉) 의원 등 이른바 박 대표 측근들의 엄호 발언이 나왔다. “이재오 의원이 박 대표를 공격하는 것은 서울시장을 하고 싶어서라더라”(한선교 의원), “내가 아는 박 대표는 과거사 규명에 절대로 소극적이지 않다”(진영 의원), “총선 당시 박 대표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여러 의원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전여옥 의원).

    ‘떠날 때는 말없이’라도 부를까

    아침 먹고 시작한 토론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일진일퇴(一進一退)했으니 끝내도 될만하다’며 시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박 대표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여러 의원의 고언을 명심하겠다’는 식의 정리 발언으로 회의는 대충 마무리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몇 차례 사과했는데 또 사과하라니 무슨 곡절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는 순수한 뜻이 아니고 대표 흔들기다.”

    박 대표의 말에 토론장엔 일순 서릿발이 섰다. 졸던 의원들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찬물을 뒤집어쓴 표정이었다. 박 대표가 마음에 묻어뒀던 말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저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한 분은 박근혜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다. 그러나 탈당 안 했다. 자기가 한 말은 정정당당하게 지키고 남을 비판해야 한다.”

    토론이 진행되는 2층 대강당으로 기자들이 부리나케 몰려들었다. 또박또박 말하는 박 대표의 냉랭한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번 선거 때 제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안 받아들였어야 했다… 치사스럽고 비겁하다고 생각 안 하나…. ‘박근혜는 안 된다’ ‘필히 대선에서 망한다’고 하는데 언제 대선 후보 뽑았나. 대표 뽑은 것 아니냐. 무슨 소리하는 것이냐.”

    장장 30분. 뭘 해도 신중하다는 박 대표다. ‘항상 하던 말만 되풀이한다’고 기자들의 핀잔을 듣던 그다. 그런 박 대표가 30분 동안, 그것도 한마디 한마디에 칼을 꽂아 쏟아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제가 일을 할 수 없다.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을 당에서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당의 지지율도 안 올라간다.”

    길게만 느껴지던 박 대표의 발언이 마침내 끝났다.

    토론 이후 일정은 저녁식사, 그리고 술과 노래를 곁들인 여흥 시간이었다. 의원들, 그 중에서도 이재오 김문수 의원은 충격이 컸던 듯 강당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평소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들이켰다. 이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노래 요청에 “‘떠날 때는 말 없이’를 불러야겠지”라고 애써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게냐마는…”

    불그레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김문수 의원은 “이건 제2의 유신이야” 하고 목청을 높였다. 다음날 여러 매체에 보도되어 관심을 끈 ‘제2 유신’ 발언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洪, “약점이 많아. 검증도 안 됐고”

    그 시각 박 대표가 묵고 있는 방으로 임태희(任太熙)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몰려들었다. “대표님, 좀 지나쳤다는 반응입니다.”

    박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초봄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주류-비주류 갈등이 여름을 지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늦은 밤 몇몇 의원은 삼삼오오 구례읍내로 몰려 나가 술자리를 벌였다. 일부는 “당이 어떻게 되는 거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 드디어 둑이 터진 것이다. 숨가빴던 하루가 저물고 구례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사실 둑이 터지기까지 물은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차 올랐다. 17대 총선 공천 작업에 들어갈 채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당시 최병렬 대표 체제의 실세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의 당사 2층방은 늘 기자들로 붐볐다. 말을 에두르지 않는 홍 의원에게 “박근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이 된다면서요?” 하고 한 기자가 물었다.

    “박 의원이 간판이 될 수 있겠나?”

    홍 의원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중 지지도가 박 의원만큼 높은 정치인이 한나라당에 어디 있나요?”

    “약점이 너무 많아. 검증도 안 됐고….”

    총선 전 ‘간판’을 찾던 당시 최병렬 대표는 공천심사위원장에 박근혜 의원과 외부인사를 나란히 세운 뒤 박 의원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당의 실세인 이재오 사무총장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이 안을 극구 반대했다. 결국 ‘박근혜 카드’는 버려졌고 공천심사위원장은 김문수 의원에게 돌아갔다.

    그 직후 최병렬 대표의 조기 퇴진과 탄핵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나왔다. 총선 정국의 그림을 새 도화지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한나라당은 응급처방을 찾아야 했고, 대중성에 영남 지지기반을 갖춘 ‘박근혜 카드’가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3인방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면 당을 나가겠다”는 이재오 의원의 발언은 이맘때 나왔다.

    이런 3인방의 뜻과 무관하게 박근혜 의원은 선거대책위원장이 아닌 당 대표로서 한나라당의 17대 총선을 책임지게 됐다. 총선 기간 내내 박 대표는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선거구를 종횡무진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박 대표는 투표일이 임박하도록 3인방의 지역구는 찾지 않았다. 먼 곳도 아닌 서울 경기 지역이었다(이재오 의원은 은평 을, 홍준표 의원은 동대문 을, 김문수 의원은 부천 소사).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고, “그래도 한 번은 가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 투표일이 임박해 박 대표가 3인방의 지역구를 차례로 찾았다. 의례적이나마 박 대표와 3인방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환호하는 유권자들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4월20일. 흙바람이 날리는 여의도 한나라당 천막당사 앞에서 17대 총선 당선자대회가 열렸다. 지옥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당선자들은 박 대표를 ‘구세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켠에 선 3인방의 눈매는 달랐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세 의원은 짜 맞춘 듯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거론했다.

    홍준표 의원은 말했다.

    “이회창 총재만 바라보다 한나라당이 실패하지 않았나. 여러 명의 대권후보를 키워야 한다. 그런 면에선 우리 당도 이제 단일지도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기자들로선 “박근혜 견제책이 아니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꼭 그렇게 볼 필요가 있느냐”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재오 의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때부터 박 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는 구체적 상황을 가정하며 ‘신중론’을 설파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면 당시 개봉을 앞뒀던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예로 들곤 했다. “영화나 드라마로 유신시절의 암울했던 상황을 찍어서 틀어대면 끝장이다. 그러면 또다시 집권이 어려워진다.” ‘박근혜 대권 불가론’의 초기 논리다. 3인방이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와 가깝다는 점을 들어 이들과 모종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후 4월29일 열린 한나라당 당선자 연찬회에 나란히 앉은 3인방은 평소 공언한 대로 지도부를 향해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거듭 촉구했다. 그리고 박계동·고진화·공성진 의원 등을 끌어들여 국가발전전략연구회라는 당내 모임을 만들고 조직적 저항의 시동을 걸었다. 이후 ‘상생의 정치’와 여권의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 대한 신중 대처 등 ‘박근혜식’ 정국 해법이 3인방의 거센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비판의 수위도 조금씩 상승했다.

    그러던 7월 중순. 박 대표가 임시 대표직을 내놓고 6월 전당대회 대표경선 준비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이재오 의원이 그간 사석에서 주장해오던 박 대표의 과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탤런트처럼 등장한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개인은 영광이겠지만 한나라당은 망한다…박 대표가 대권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은 100전 200패다.”(7월16일 ‘일간스포츠’ 인터뷰)

    활자화된 ‘독재자의 딸’은 수면 아래 갈등을 폭발시키는 구실을 했다. ‘박근혜 불가론’ ‘박근혜 필패론’이 공개 석상에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박근혜 2기 체제를 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오픈게임은 끝나고, 본게임이 시작됐다. 이재오 의원은 공식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4월 총선을 치른 대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비판을 자제했지만 이제 전당대회에서 정식 대표가 되면 본격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 노선 투쟁을 벌이겠다.”

    박 대표로서도 3인방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박 대표는 7월19일 전당대회에서 대표 최고위원에 재신임 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비주류 3인방에 대해 일차 경고했다.

    기자 : “당내 비주류를 어떻게 감쌀 것인가.”

    박 대표 : “지난번 대표직을 수행하면서도 당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떤 경우든 국민의 복된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국익 우선으로 일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할 것이지만 나라를 위해 옳은 명분인데도 같이하지 않겠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이재오에게 상처 준 ‘안동댐 사건’

    마침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정식 주인이 된 박 대표를 향해 박 전 대통령 문제를 걸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 상징으로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다. 싸움에 불이 붙었다.

    이재오 의원은 유신체제 시절 재야활동으로 수차례 투옥된 적이 있다. 그 중엔 박 대표와 직접 관련된 일도 있다. 이른바 ‘안동댐 사건’이다. 이재오 의원이 전하는 요지는 이렇다.

    “1979년 당시 정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오원춘 납치사건’과 관련한 진상보고대회 참석차 안동에 갔지. 안동댐을 둘러보는데 댐 건설로 희생된 사람의 위령탑이 한구석에 서 있었어. 그런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 대표가 그 댐에 물고기를 방생했다는 내용이 새겨진 비석이 좋은 위치에 세워져 있는 거야. 강연회에서 ‘이런 게 유신독재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가 며칠 뒤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 긴급조치 위반이라나.”

    그는 중앙정보부에서 급성 맹장염을 앓았다고 한다. 꾀병이라며 인정해주지 않았다. 맹장염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복막염으로 발전했다. 겨우 수술을 받았지만 배 안에 거즈를 넣고 봉합하는 바람에 여러 번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배엔 흉터가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표와 이 의원이 갈등 관계에 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2002년, 이재오 의원과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들이켜던 한 기자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그래도 잘한 것이 많다”는 말실수(?)를 했다. 그 기자는 “그때 비 오는 거리로 쫓겨날 뻔했다”며 “요즘 이 의원은 그나마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의원의 박 대표 비판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가까워서” “서울시장을 노리고서”란 해석은 사태의 일면일 뿐,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박근혜 비판’은 그의 청년기 삶이 고스란히 응축된 신념에 가까워 보인다.

    홍준표 의원도 “이회창 총재 시절 사석에서 유신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당시 박근혜 의원의 문제 제기로 이 총재에게 혼쭐이 난 적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박 대표를 비판하는 근저에는 ‘개인적 악연(惡緣)’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비주류와 박 대표의 갈등이 쉽게 풀릴 성질의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변곡점(變曲點)은 곡선의 오목한 모양이 바뀌는 지점이다. 초봄부터 가파르게 상승해온 비주류와의 갈등 곡선을 의식하고 박 대표도 “더는 안 되겠다”는 모종의 결심을 한 듯하다. 구례 연찬회 정면충돌은 3인방 문제에 있어 박 대표의 전략적 변곡점으로 해석된다. 박 대표측에서 구체적 대응 프로그램의 실행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조만간 분리-견인 시나리오의 실행에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도 파다하다.

    분리-견인 시나리오. 이는 “이·홍·김 3인방이 끝까지 함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정황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 의원과 강력 검사 출신 홍준표 의원은 15대 국회에 함께 들어와 ‘따로 또 같이’ 행동해왔다. 한 묶음으로 ‘저격수’라고도 불렸지만 살아온 이력에서 정치 지향까지 한데 묶이기엔 바탕색이 너무도 다르다. 선수(選數)가 쌓이면서 세 사람의 빛깔 차는 점차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최병렬 대표를 몰아낸 ‘쿠데타’ 와중에 세 사람의 행동은 서로 달랐다. 홍준표 의원은 끝까지 최 대표 옆에서 그를 지켰고, 이재오 의원은 그 반대편에 섰다. 김문수 의원은 중간자적 입장이었다. 그때 갈라섰던 3인방이 박 대표 체제 이후 다시 뭉쳤다. 이는 세 사람이 언제든 다시 갈라설 수도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재선의원 A씨는 세 사람의 관계를 “서로 필요에 의한 연합관계”라고 말한다. “김·이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 약점일 수밖에 없는 민중당 출신 이력을 홍 의원과 함께 묶이는 것으로 보완했을 것이고, 홍 의원은 김·이 의원과의 어깨동무로 이단아 이미지를 희석했을 것이다.”

    “집단적으로 그러면 안 되죠”

    ‘박근혜 불가론’에서도 그 농도가 김문수 홍준표 이재오 순으로 약하다. 그런 까닭에 김문수 의원을 향한 박 대표측의 견인 시도는 계속돼왔다. 김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패배 직후 원내 수석부대표직을 제의받았고, 최근에는 박 대표와 독대한 뒤 당개혁특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때 사무총장 기용설도 나돌았다. 연찬회 정면충돌 다음날 박 대표측에선 “전날 발언은 이재오 의원을 향한 것이지 김문수 의원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는 부연 설명이 나왔다. 여전히 박 대표가 김 의원에 대해서만큼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정황이다.

    김 의원과 박 대표는 그날 아침 복도에서 만났다.

    김 의원 : “시원하십니까?”

    박 대표 : “집단적으로 그러면 안 되죠.”

    전날의 격앙된 감정이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김 의원은 연찬회 이후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이재오 의원은 (박 대표를) ‘쓰면 안 된다’지만 나는 ‘고쳐 쓰면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등 김 의원이 요구해온 가시적 조치를 취할 경우 김 의원이 박 대표와 손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 박 대표측은 지난 6월 대표 경선 재출마를 전후해 선친 박 전 대통령의 친일 관련 등 과거사 문제를 자체적으로 스크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장학회 문제도 포함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스크린 결과, 자신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원외 보좌진의 귀띔이다.

    홍준표 의원은 어떨까. 당 일각에선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박 대표가 홍 의원을 끌어올 요긴한 매개로 본다. 홍준표·이재오 의원은 최근 시장 경선전에 나서기 위해 각각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홍 의원은 “시장선거에 대비해 이미지 변신에 들어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터다. 이런 와중에 “홍 의원은 박 대표 쪽에 붙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당내에 나돌고 있다.

    반면 이재오 의원은 ‘귀환불능점’을 넘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의 박 대표 비판은 홍·김 의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박 대표로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 이 의원은 연찬회 이후에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내엔 정통 민주세력과 함께 3·5공에 뿌리를 둔 세력이 있다” 는 논리를 새로 개발, 자신의 주장의 토대를 다지고 있다. 공격의 창 끝을 벼리고 있는 것이다. 9월 7, 8일 이회창 전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을 잇따라 찾은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박 대표의 3인방 대응 프로그램으로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은 ‘이재오는 버리되 김문수·홍준표는 적극 끌어들인다’로 요약될 것 같다. 그러나 ‘분리 견인’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표가 “각자의 갈 길을 가보자”며 3인방을 내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엔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3인방은 한나라당내에서 ‘몇 안 되는 일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특히 이재오 의원의 ‘싸움꾼 근성’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평이 나 있다.

    최병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원희룡(元喜龍) 의원은 “누구보다 이재오 의원의 반란군 가세가 엄청난 힘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3선 의원 B씨의 말도 일맥상통한다. “이회창 총재시절 누구보다 아들 병역 문제를 아프게 건드린 사람이 이재오 의원이다. 하지만 그가 창(昌)을 돕기로 맘을 고쳐먹고 두 팔을 걷어붙이자 무시무시했다. 결국 김대업을 잡은 게 이재오 아니냐.”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재오. 여기에 대표적 ‘저격수’ 김문수·홍준표마저 적으로 삼는다면 박 대표가 대권 도전은 물론이고 2년간 당을 끌고 나가는 것도 버거워질 것이란 얘기다. 당장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맞부딪칠 게 뻔하다. 다시 불거질 행정수도 이전 대응 논란에서 ‘전면 반대’로 방향을 잡은 비주류 3인방은 지도부의 온건한 대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려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규명을 필두로 한 여권의 공세에 단일 대오로 맞서기도 전에 당내 불협화음이 먼저 터져나올 것이다.

    박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당명 개정을 강행하려 하지만 비주류 3인방은 “큰 정치지형의 변화도 없는데 왜 당명을 바꾸냐”고 반대한다. 비주류는 당명 개정을 “한나라당이 ‘박근혜당’화(化)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비주류 3인방을 등지려면 적어도 몸 던져 박 대표를 보호할 원내 친위그룹이 있어야 한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 진영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등 당직자 그룹의 엄호만으로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당내 세력 분포로 보면 남경필(南景弼)·원희룡(元喜龍)·정병국(鄭柄國) 의원 등 수요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소장파가 그 역할을 맡는 걸 가정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주류로 분류될 수는 있지만 친위그룹으로 보기는 어렵다. 본인들도 그렇게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다른 비주류의 한 축인 김용갑(金容甲)·안택수(安澤秀)·박종근(朴鍾根)·이방호(李方鎬) 등 영남 보수파 의원들은 적어도 박 대표와 소원하지는 않다. 하지만 박 대표가 이들을 친위그룹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나마 당내에서 광범위한 세를 형성중인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의 지원을 받을 개연성은 높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외롭다”는 말의 의미

    무엇보다 박 대표가 스스로 친위그룹, 자기계보 만들기를 꺼린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모습은 종종 “스킨십이 없다”거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근거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박 대표가 ‘계파를 만들지 않겠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뜨리는 상황은 당분간 만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연찬회장에서 “과거에 계파정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해놓고 지금에 와선 계파 없는 것도 흠이라고 나를 비판한다”며 원칙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외롭다”는 말은 이러한 정황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으로 들린다.

    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른바 ‘양위(讓位)’ 시나리오다. 여권의 과거 공세, 여기에 당내 비주류와의 지속적인 대치에 따른 피로감은 치명적이진 않겠지만 ‘옷을 적시는 가랑비’마냥 누적될 것이다. 이를 감수해가며 박 대표가 임기 2년을 모두 채우기보다 조기에 물러서는 것이 뒷날을 봐선 더 낫다는 게 양위 시나리오의 요지다.

    박 대표가 9월9일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했을 때 당 일각에선 박 대표가 이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명분을 챙기며 물러설 길을 찾는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여옥 의원은 이 같은 해석에 대해 “박 대표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박 대표는 대권에 목을 매는 사람도 아니다. 누구보다 권력의 무상함을 잘 아는 사람이기에 언제든 사심 없이 자리를 털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대권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당권을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박 대표의 대(對)비주류 전쟁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단시간에 끝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만만찮은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내다볼 수 있다. 박 대표의 비주류 대응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2007년 대권 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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