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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선 향기가 난다

  • 김현미 khmzip@donga.com 이형삼 hans@donga.com 김영신·자유기고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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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분쟁지역 찾아 인술 펴는 한국판 국경 없는 의사회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서 ‘광명내과’를 운영하는 박용준(朴容準·46) 원장은 걸핏하면 몇 주씩 원장실을 비우고 사라지는 불성실한(?) 의사다. 동네 환자들도 그런 사정을 잘 안다. 하지만 원장이 땡땡이 친다고 화내는 환자는 없다. “선생님 또 떠났수?” 하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고개만 끄덕끄덕할 뿐이다. 원장이 없으면 부원장 혼자 환자를 볼 테니 좀 오래 기다리긴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 하러 간 사람 원망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박원장은 세계의 분쟁지역과 재난지역을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글로벌케어(Global Care)를 이끌고 있다.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지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는다. 의료인력 지원이 절실한 곳을 발견하면 유엔 산하기구 등과 접촉해 현지 사정을 파악한 후 글로벌케어에 소속된 의료인력 가운데서 팀을 꾸려 떠난다. 글로벌케어는 잔혹한 전쟁이 할퀴고 간 코소보 지역, 대지진이 강타한 터키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펼쳤고, 국내에서도 무의탁 노인이나 불우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건강관리사업을 벌여왔다.



르완다의 충격



박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나와 연세암센터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1990년 광명내과를 열었다. 그러나 개업을 하고 병원에 들어앉긴 했지만 마음은 자꾸만 밖을 향했다. 그의 관심은 내 이웃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쏠렸고, 특히 나라 바깥의 ‘내 이웃’을 자주 떠올렸다. 이듬해인 91년, 의료선교단의 일원으로 마침내 네팔 땅을 밟았다.

“1990년은 한국이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돌아서는 전환점이었어요. 의료봉사도 그 전에는 주로 국내 무의촌을 찾아다녔는데, 90년 이후로는 밖으로도 눈을 돌렸습니다. 국가의 위상이 웬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면 그에 걸맞은 의무가 따른다고 본 것이죠.”

당시 네팔의 인구는 2500만 명. 그러나 전국에 이비인후과 의사와 치과의사가 40명씩에 불과할 만큼 의료기반이 낙후했다. 천막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난생 처음 서양의학으로 치료를 받아보는 이들이었다. 산악지대가 많은 나라다 보니 며칠씩 험한 산길을 걸어 치료를 받으러 오기도 했다. 의료진이 활동을 마치고 철수하던 길에 한 부자(父子)를 만났는데, 사흘 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치료를 받으러 왔던 소년이었다. 사흘 밤낮을 걸어서도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한 노인은 귓속에 귀지며 죽은 벌레, 고름 말라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깨끗이 파냈더니 깜짝 놀라면서 ‘들린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자기는 그때껏 귀가 먹은 줄 알고 살았다는 겁니다. 우리에겐 아주 간단하고 쉽게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겐 일생일대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94년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내전이 벌어져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는 주저없이 짐을 싸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도움을 얻어 르완다로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를 비롯한 수많은 NGO가 열악한 여건에서도 헌신적으로 난민들을 돌보는 장면을 보고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그런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꺼이 몸을 던지는 자세야말로 한 국가의 세계적 리더십을 좌우하는 요건이라고 생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한 국가 안의 지도층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선진국에도 부과되는 의무라고 봐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국력만큼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구호현장에 가보면 일본 NGO들이 간간이 눈에 띄긴 하지만 국력에 비해 아주 소규모거든요. 한국은 인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앞장서기만 하면 이 분야에서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르완다에서 돌아온 박원장은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3년간의 준비를 거쳐 97년, 한국판 국경없는 의사회라 할 ‘글로벌케어’를 설립했다. 마침 국경없는 의사회가 96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회장단이 상을 받으러 방한했는데, 박원장은 이들에게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글로벌케어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인력과 일반 자원봉사자 등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다채로운 ‘실전경험’

글로벌케어는 97년 여름 이후 해마다 수해를 입은 경기도 북부지역에 대규모 의료진을 보냈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불법체류 조선족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또한 설립되던 해부터 매년 베트남을 방문, 농촌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언청이 수술을 해주고 있다. 구호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평소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충당하며, 현장에 투입될 때는 제약회사와 대형 병원, 기저귀 회사, 대기업 등을 뛰어다니며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박원장은 99년 5월 총상전문 의료진을 조직해 무자비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던 코소보 지역으로 떠났다. 총상을 입은 난민이 부지기수인데도 이들을 치료해줄 인력이 모자란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채비를 서둘렀던 것. 박원장 일행은 유고연방과 인접한 알바니아 국경도시 쿠케스 난민수용소에서 50일 남짓 난민들을 돌봤다. 총상을 입은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참혹하기로는 고문 피해자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심하게 구타당해 온몸에 줄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손가락이 짓이겨져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글로벌케어는 비록 연륜은 짧지만 ‘실전경험’을 많이 쌓은 덕분에 빠른 시간에 전문성을 갖추면서 질적 성장을 기할 수 있었다. 99년 8월 터키 지진 때는 구호현장에 투입된 숱한 NGO 중에서도 글로벌케어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다른 나라 의료요원들은 대개 일반의였지만, 글로벌케어 의사들은 거의 전문의였다. 글로벌케어는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정신적 공황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점을 고려해 정신과 전문의까지 파견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가령 진료하는 중에 여진(餘震)이 오면 의료진은 잘 느끼지 못하는 데도 지진을 체험한 현지인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것. 그 난리통에 환자들의 정신적 안정까지 챙겨주자 터키 사람들은 물론 다른 나라 구호팀들까지 탄성을 연발했다.

박원장은 “주변에서 ‘그런 위험한 곳엘 왜 자꾸 가느냐’고 걱정하지만, 우리는 ‘구호하러 간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받는 처지가 돼선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안전지역 내에서 활동하므로 염려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지역이라 해도 현장은 결코 정상적인 곳이 아니다. 안전지역내 주민의 집을 임대해 숙소로 사용하는데, 가장 좋은 집을 고른다고 골라도 방 세 개에 화장실 한 개, 작은 부엌 하나 딸린 게 고작이다. 여기에서 15명 안팎의 의료진이 생활하는데, 방 하나에 5명이 새우잠을 자야 하고 화장실은 순번을 정해 다녀와야 한다.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에 식사도 스스로 해결한다. 식수만 공수받을 뿐 다른 식료품은 모두 현지에서 구해 직접 조리해 먹는다. 반찬투정은 호사다.

진정한 봉사는 이기적인 것

경제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개업한 의사가 구호활동을 위해 단 일주일이라도 병원문을 닫으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번 헛걸음을 친 환자는 다시 그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박원장은 이용훈 부원장(글로벌케어 실행위원)과 함께 진료하면서 구호활동에 참여할 때는 한 사람씩 번갈아 병원을 지키기 때문에 병원문을 닫지는 않는다. 하지만 광명내과는 의사가 두 명이나 있을 만큼 환자가 많은 병원이 아니다. 의사가 둘인 것은 진료에 가능한 한 지장을 덜 주면서도 글로벌케어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결국 한 사람이 벌 수 있는 수입을 두 사람이 벌어 나눠야 하니 속물스런 경제논리로는 그런 비효율이 없다.

이에 대해 박원장은 ‘신성한 봉사를 그런 세속적인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고상하게 점잔을 떨지 않았다. 그의 답은 이랬다.

“말은 ‘봉사’라고 하지만 그건 절대로 일방적인 시혜나 희생이 아닙니다. 수입도 줄고 몸도 고달프지만 현장에 가서 얻어오는 재충전과 보람이라는 소득이 훨씬 커요. 다 죽어가던 사람이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미쳐가던 사람이 평안을 찾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느껴본 사람만이 압니다. 이런 경험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죠. 다녀오면 힘이 나서 일도 더 잘하게 되니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고.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그런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해보길 권해요. 진정 헌신적인 봉사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인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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