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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퇴진 정몽헌’의 現代장악 시나리오

  • 문주용 이데일리 산업부 기자

추적! ‘퇴진 정몽헌’의 現代장악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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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시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자가 계속되고 있는 현대의 대북사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현대건설(19.8%) 등 관련 계열사들은 대북사업을 위해 설립한 현대아산에 4500억 원의 자본금을 출자했다.

투자현황을 살펴보면 금강산 관광사업에 3월말 현재 1억2200만 달러(1340억 원)가 투입됐고, 토지 이용 및 관광사업권에 대한 대가로 북한측에 2억4600만 달러(2700억 원)을 지급했다. 벌써 4000억 원이 넘게 투자됐지만 흑자를 내기는 요원해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북사업을 현대 위기의 시발점으로 볼 정도였다.

더욱이 현대건설은 걸프전이 터지면서 이라크로부터 8억4965만달러(9400억원)의 공사 대금을 받아내지 못하는 등 부실 규모가 2조 원에 달해 일찌감치 ‘빨간불’이 켜진 형편이었다. 3월부터 1700억 원에 달하는 CP를 상환했고 6870억 원에 대해 만기를 연장했지만, 5∼6월에 다시 5350억 원의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었다. 특히 회사채는 차환 발행이 중단되다시피 하는 등 자금 경색에 휘말렸다. 마침내 5월19일, 국내 최대 건설회사이자 국내 최대 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은 사실상 1차 부도를 냈다.

그런데도 MH는 5월22일 북한 장전항 접안시설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출입기자 수십 명을 이끌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유를 보였다. 앞으로는 대북사업에만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MH는 5월25일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봉래호 선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몇가지 주목할 만한 발언을 쏟아냈다.

첫째는 현대투신 사태와 관련한 그의 진퇴 문제. “현대투신이 경영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본인이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했다. 현대 사태를 배수의 진을 치고 수습하겠다는 각오를 공개석상에서 보여준 것.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앞으로 모든 기업은 오너와 상관없이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진(CEO)이 스스로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어떤 기업도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구현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 마치 3부자 동반 사퇴를 예측한 듯했다. MH는 이때 벌써 퇴진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던 것일까.

MH는 바로 아래 동생인 정몽준 의원(현대중공업 고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의원은 어릴 때부터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잔 사이인만큼 가장 친하다. 그는 형제들 중에서 제일 똑똑했고, 어렵던 시절에도 외국에 나가 꿋꿋하게 공부할 만큼 진지하고 성실하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제 할 일은 다 잘 해냈다. 정 의원은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두 사람은 이전부터 형제들 가운데 특히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MH의 이날 발언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것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오후 4시 김재수 위원장이 밝힌 자동차 부문 계열분리 작업의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주영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현대자동차 지분 6.8%와 장내 주식 2.1% 등 총 9.0%를 매입, 현대차의 최대주주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분 정리 과정에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 지분 11.1%를 인수, 총 11.6%의 지분으로 최대주주가 되는 예상 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MH계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7.9%까지 합칠 경우 중공업의 지분을 19.5%나 장악, 정몽준 의원 몫으로 돼 있던 현대중공업을 사실상 ‘접수’한 셈이 된 것이다.

김재수 위원장은 이와 같은 변동이 일시적인 것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분간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계속 갖고 있겠지만 경영권을 행사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정몽준 의원의 한 측근은 “사전에 협의가 있었으며, 정몽헌 회장측이 현대중공업의 경영권을 노린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서 계열사에 대한 지분 정리를 한 결과 최대의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MH였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됐을 뿐 아니라 정 명예회장 지분을 통해 현대자동차 경영권에도 손을 뻗칠 수 있게 됐다. 그룹 안팎에는 이익치 회장이 이같은 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했고 김재수 위원장이 이를 실행하는 역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은 일본에서 MH의 작전참모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의도적인 위기증폭 의혹

김재수 위원장은 현대건설의 위기를 그룹 전체의 위기로 증폭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량기업으로 알려진 현대상선이 건설과 마찬가지로 유동성 위기를 안고 있는 것처럼 발표했기 때문. 기업의 자금 흐름은 통상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상황이다. 특히 요즘처럼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루머 하나로 멀쩡한 기업이 휘청거릴 수 있다. 더욱이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지휘하는 위원장에게 ‘입조심’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이날 자동차 지분 정리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대상선의 자금난을 공개하는 상식 밖의 ‘실수’를 저질렀다. 상선은 5월17일 당좌대월 한도를 500억 원 증액받는 등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자금 수급상의 일시적 불일치’였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그룹 일각에서는 김위원장이 건설과 상선의 문제를 함께 드러냄으로써 건설 자금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대건설이 자금난에 빠졌다는 것을 현대건설 출신인 김위원장이 그대로 밝히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더욱 음모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위원장이 그룹의 위기를 의도적으로 과장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동시에 정부로부터도 확실한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 MH측이 정 명예회장에게 그룹이 건설뿐 아니라 상선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다고 설명, 그로 하여금 3부자 동반 퇴진을 선언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건설의 자금난을 정확하게 보고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 명예회장의 결심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김 위원장의 발표가 있자 “우리에게는 유동성 문제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임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김위원장이 왜 애꿎은 현대상선을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다”며 섭섭해 했다고 한다.

2차 왕자의 난의 구체적 목표는 자동차 소그룹에 대한 MH측의 경영권 확보였다는 게 이번 사태를 보는 MK측의 시각이다. MH측이 계열 분리를 위한 지분 정리 작업을 이용해 자동차 지분을 11.8%(정 명예회장의 지분 9.0%과 현대건설 보유 지분 2.8%)나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MK가 갖고 있는 지분 4.0%와 MK 계열의 현대정공이 보유한 7.8%를 합친 비율과 묘하게도 일치, MK측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MK측 고위 관계자는 “MH측이 왕회장을 앞세운 것 역시 정몽구 회장의 반발을 꺾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MH측은 이런 의도를 5월31일 최종 자구안 발표 직전에 드러냈다고 한다. 또한 정 명예회장은 MH측의 의도대로 현대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로 ‘오너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카드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 명예회장의 외로운 퇴진이라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버지의 퇴진 요구에도 불구하고 MK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데다, MH 역시 현대아산을 통해 그룹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 할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MK, “MH가 자동차 넘본다”

정 명예회장이 실제로 MK의 퇴진을 요구했는지도 의문이다. 시중에 알려진 것처럼 정 명예회장은 MH의 경영능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MK에게는 미더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룹 일각에서는 이와 달리 MK는 과소평가, MH는 과대평가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MH 주력 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현대건설에서 MH를 직접 모신 적이 있는데, 그는 외부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고 했다.

“MH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결코 통이 큰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잘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외국 물을 먹은 만큼 실용적이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출장 갈 때 수행원을 데려가지 않고 해외 지사에서 영접을 나오는 것조차 싫어한다. 출장을 가면 꼭 계열사 현지법인에서 업무보고를 받는 등 매우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그룹의 앞날을 염려한 정 명예회장이 그에게 그룹을 맡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꼼꼼한 성격은 오너의 덕목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MH는 말을 조리있게 하고 셈이 빨라 경영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왕회장의 가신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은 92년 현대상선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였다.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결국 손을 든 MH는 스스로 총대를 메고 박세용 당시 사장 등 임원들과 함께 구속됐다. ‘황태자’로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의연했다.

현대 직원들은 MH에게 매일 사식을 넣어 보냈다. 하지만 그는 임원들에게 사식을 돌리면서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똑같은 대우를 자처했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현대 직원들의 마음이 그에게 쏠렸고, 박세용 회장 등 정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 임원들이 그를 따르게 됐다는 것이다.

“황태자로서 어려움 없이 컸기 때문에 사람을 쓸 때도 학연, 지연을 따지지 않는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냉정한 사람이다. 자기 사람으로 불리던 박세용 회장을 하루 아침에 그렇게 내친 것을 보면 알지 않는가. 아니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아랫사람으로서는 모시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한편 정몽구 회장 쪽 사람들은 MK에 대한 외부의 과소평가가 그의 눌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MK는 환갑을 지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서 능란한 화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임원들에게 지시하는 말투며 태도가 권위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면모는 지엽적인 것이라는 게 MK측의 주장이다. MK측의 한 인사는 정몽구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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