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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저효율 덫에 걸린 ‘슈퍼공룡’

  • 이나리 byeme@donga.com

한국통신 저효율 덫에 걸린 ‘슈퍼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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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뿌리깊은 파벌주의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 한통의 ‘실세’는 옛 체신부 관료와 전자통신연구소 출신이었다. 그 중에서도 ‘성골’은 체신고 출신. 체신고는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1기를 모집한 이래 1964년 9기 졸업을 끝으로 폐교한 국립 각종학교다. 총 졸업생 수는 2196명. 상당수가 대학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전공한 후 체신부와 관련업계로 진출, 막강한 인맥을 형성했다. 한통 역시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사장직을 제외하고는 자회사 사장·부사장급을 포함해 체신고 출신이 거치지 않은 요직이 거의 없을 정도다.

1990년대 들어서는 기술고등고시 출신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핵심 인사로는 우승술 전 전략사업본부장, 안승춘 정보시스템본부장, 성인수 네트워크본부장 등을 들 수 있다. 체신고를 졸업한 이정욱 전 부사장과 조완행 부산본부장도 기술고시 출신이다.

이렇게 체신고-기술고시 출신이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아 오던 구도에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82년 입사한 4급 공채 1기 출신들이 급부상한 것. 리더 격이 최안용 기획조정실장(전무이사)이다.

이들의 세 확장은 한통 내 호남인맥 부상과도 관련이 있다. 한통은 공기업답게 정치적 외풍을 많이 타는 조직.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얼굴 격인 사장에서부터 주요 임원진이 물갈이되곤 했다. 하지만 영남지역 출신 일색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핵심 요직을 호남 출신 아니면 ‘중립지역’인 서울 출신들이 장악하게 된 것. 신호탄은 최근 물러난 성영소 전 부사장의 취임이었다. 성 전부사장은 전주고 38회 출신으로 진념 경제부총리의 3년 후배. 최안용 전무는 1998년 성 전부사장이 진두지휘를 맡았던 경영합리화추진단장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전무는 3년 만에 국장에서 이사, 상무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올 1월, 마침내 전무이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난 1월 1일, 이상철 사장 취임과 더불어 단행된 임원진 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체신고 약화-호남 인맥 부상’의 흐름이 한눈에 잡힌다. 전무 이상 임원 중 체신고 출신은 박학성 부사장뿐이다. 그러나 37명에 달하는 임원진 전체를 두고 보면 체신고 출신이 6명으로 여전히 수적으로는 가장 많다.

지역본부장을 제외한 사장, 부사장, 감사, 5실5본부장(IMT사업추진본부장은 공석) 중 호남 출신은 4명. 그외 서울 출신이 7명, 충청지역 출신이 2명이다. 영남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임원 평균 연령이 전임 이계철 사장 시절 55.3세에서 50.8세로 낮아졌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철밥통’ 인사, 몸에 밴 관료주의

대규모 인사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몸에 밴 인맥제일주의가 단시일내 사라지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10여년 전 한통에 스카우트된 공학박사 B씨. 얼마 전 그는 “인맥을 타지 않으면 이도 저도 되지 않는 분위기”가 싫어 사표를 던졌다.

B씨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병폐는 조직의 배타성과 경직성이다.

“중간에 끼여 들어온 이들을 못마땅해한다. 스카우트해 온 인력의 경우,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승진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해외공채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뽑은 우수인력 중 많은 수가 일선 전화국에서 수납 담당으로 일했다더라.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특정 요건을 갖춘 이들을 특수한 목적으로 뽑았으면 적재적소에 배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기술직 종사자들도 인력 배치에 불만이 많다.

“한통 직군은 크게 일반직과 연구직으로 나뉜다. 일반직 안에 서무·행정·기술 분야가 있다. 같은 대학을 나왔어도 기술직이 부장 이상으로 승진할 기회는 거의 없다. 서무·행정 쪽에서 독점하기 때문이다. 한통은 기술 기반 회사다. 최근 들어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림없다. 근본적으로 기술직도 경영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서울의 한 전화국에 근무하는 C씨의 말이다.

그렇더라도 한통 직원들의 애사심이 유별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한통에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한 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몇몇 한통 직원들이 전화폭력과 사이버테러를 가한 것. 그 중 특히 모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통 분할론’을 언급한 민주당 곽치영 의원은 경쟁사인 데이콤 사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통 관련 기사를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오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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