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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는 없다, 문제는 ‘비전의 위기’

폭풍의 언덕에 선 LG

  • 이형삼 hans@donga.com

유동성 위기는 없다, 문제는 ‘비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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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2000을 놓친 LG로선 LG텔레콤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LG는 그룹 통신사업의 첨병인 LG텔레콤에 뭉칫돈을 쏟아부었지만 시장점유율의 한계 때문에 6000억 원에 가까운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LG측은 “지난해까지 설비투자가 완료돼 올해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IMT-2000이 없는 LG텔레콤은 비전이 없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2000억 원대의 LG 계열사 회사채를 갖고 있었던 한 대형 보험사의 경우 이미 지난해 LG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기 전부터 꾸준히 이들 회사채를 매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데이콤 회사채는 거의 다 정리했는데, LG텔레콤 회사채는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사겠다는 세력이 없었다고 한다.

사채시장에서조차 “LG는 IMT-2000을 먹어도 문제, 못 먹어도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LG’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의 회사채가 금리와 관계없이 거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LG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LG텔레콤의 매각설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통신으로선 LG텔레콤을 사들일 동인이 충분하다. 한국통신이 LG텔레콤(019)을 인수하면 한통프리텔(016), 한통엠닷컴(018)과 함께 PCS 3사를 모두 거느리게 되고,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에서 SK텔레콤을 바싹 추격하며 시장을 반분할 수 있기 때문. 한국통신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주식만 팔아도 수조 원을 마련할 수 있어 자금사정도 좋다.

반면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과의 합병 조건에 따라 오는 6월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에 LG텔레콤 인수에 나설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LG텔레콤을 인수할 곳은 한국통신밖에 없다. 물론 해외 매각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 경우 LG텔레콤을 사들인 외국의 대형 통신회사가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국내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정부가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LG의 한 임원은 “LG텔레콤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돼야 한다”며 “다만 그간 투자를 많이 했고 인력도 많은데다, LG텔레콤 지분을 가진 브리티시 텔레콤과의 관계도 있어 의사 결정에 변수가 많다. 지금으로선 서비스를 계속할 가능성과 접을 가능성이 반반이다”고 밝혔다.

그룹에선 한때 LG텔레콤 매각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이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매각론과 유보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보론의 논리는 “2.5세대인 지금은 동기식과 비동기식의 기술적 구분이 명확하지만, IMT-2000이 상용화에 접어든 이후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텔레콤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종적인 매각여부는 IMT-2000 제3사업자 선정과 맞물려 결정될 전망이다.

통신 시너지효과 못 거둬

한 증권사 법인영업팀장은 “LG는 ‘선택과 집중’의 대상을 통신사업으로 정하고 발을 들여놓았지만, 정작 시장에 들어온 후에는 제대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신사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것저것 손을 대보기만 했지, 일관된 사업전략을 바탕으로 효율을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LG는 지난해 데이콤을 공식 인수하고 하나로통신의 1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통신장비(LG텔레콤)와 컨텐츠(데이콤), 통신망(하나로통신)을 하나로 묶는 통신왕국으로 부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지 사업을 확대하는 데 그쳤을 뿐, 사업 내부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 회사의 시너지효과를 높이는 데는 실패했다.

데이콤은 98년 155억 원, 99년 169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3/4분기까지 33억 원에 그쳤고 연말에는 1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비율은 99년 말 82%에서 지난해 9월 말에는 170%로 치솟았다. 주가는 지난해 초 49만8000원에서 연말에는 3만450원으로 추락해 하락률이 93.9%에 이르렀다.

통신업계 관계자 L씨는 “LG는 데이콤이 어떤 회사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고려 없이 ‘다 만들어진’ 황금알로만 여기고 덥썩 인수했다”며 “데이콤은 99년까지만 해도 외형상으론 좋은 회사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그때부터 수익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데이콤의 주요 사업인 시외전화는 한국통신의 막강한 시장지배력에 밀려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또한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한국통신에 접속료 등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벌수록 경쟁사인 한국통신을 돕는 결과가 된다. 3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국내 최대의 PC통신 서비스 천리안도 인터넷 기반의 통신서비스 업체에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데이콤의 99년 영업이익은 223억 원인데 비해 영업외수익은 1432억 원이나 됐다. 영업외이익의 대부분은 벤처 붐이 한창이던 당시 벤처기업 주식을 사고 팔아 얻은 것. 지난해에도 3/4분기까지 874억 원의 영업외수익이 발생한 데 비해 영업이익은 오히려 29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데이콤 노동조합 강효철 교육선전국장은 “한국통신은 막대한 투자를 거듭하며 광케이블망을 까는 등 네트워크를 완비했지만, 데이콤이나 하나로는 아직도 엄청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통신사업에 대한 전문적 이해와 식견이 부족한 LG가 투자를 미루는 바람에 적기(適期)를 놓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데이콤은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마다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지난해에도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계획이 마련돼 있었는데, LG가 데이콤을 인수한 후 ‘나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56%의 데이콤 지분을 가진 LG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유상증자를 하려면 막대한 증자자금을 부담해야 했는데, LG가 이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강효철 국장은 “적기에 증자를 했다면 회사채를 발행할 필요도 없었으니 부채도 늘지 않았을 것이고, 주가와 영업수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스닥 상장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물론,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데이콤의 회계정보 등이 노출돼 데이콤의 실체가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됐다고 한다. LG가 데이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시기는 데이콤의 외국인 지분율이 떨어지는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

하지만 LG측은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 무작정 돈부터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박했다.

데이콤에 거는 기대

통신업계에서는 만일 데이콤이 LG에 인수되지 않았다면 지난해 말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당초에는 무궁화위성을 보유한 한국통신이 위성체를 맡고 컨텐츠 인프라에 강점을 지닌 데이콤이 80개 위성채널의 컨텐츠를 운영하는 ‘공기업+민간기업’ 형태의 컨소시엄이 가장 유망했다고 한다. 데이콤은 3년여에 걸쳐 위성방송의 마케팅과 전산시스템, 요금책정 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업계획서를 제출, 사업설명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통신과 데이콤은 두 개의 컨소시엄으로 양립됐고, 위성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시한 심사위원들은 “언론을 재벌기업(LG)에 줄 수는 없다”는 논리에 힘을 실어 결국 데이콤을 탈락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저런 까닭에 데이콤 노조는 두 달 넘게 파업을 계속했고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노사간 갈등이 격화됐다. 노조는 LG에게 “데이콤에 서둘러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LG는 “시외전화 등 적자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

LG가 데이콤 노조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데이콤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IMT-2000 사업권을 놓친데다 상용화 연기로 장비 판매도 순탄치 못할 경우 LG의 통신부문은 데이콤의 컨텐츠 사업을 활용하는 것 말고는 활로가 없다고 봤다는 것이다. LG 관계자의 말.

“인터넷에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적자투성이다. 수익을 얻으려면 유료화가 불가피하다. 그런 면에서 대중성 있는 컨텐츠와 인적·기술적 인프라를 보유한 데이콤은 매력적이다. 특히 300만 명에 이르는 천리안 가입자들은 대개 구매력을 갖춘 30∼40대들이기 때문에 사업구조를 인터넷 기반으로 특화해 이들을 끌어들이면 사업전망도 밝다. 그래서 최근 그룹에서는 데이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계사업 정리가 불가피하므로 절대로 노조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선이동통신은 글자 그대로 무선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기지국과 기지국 사이에는 유선구간으로 연결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무선통신업체는 이런 경우 한국통신 등으로부터 유선망을 빌려쓰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LG가 하나로통신 지분 확보에 나섰던 까닭도 무선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무선망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나로통신은 설립 당시 삼성 현대 LG SK 데이콤 등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균점하면서 이들 가운데 누구도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합의체로 운영키로 했다. 지분 변동이 있을 때는 사전에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LG가 데이콤을 인수하면서 LG의 하나로통신 지분율은 약 15%로 늘어나 1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LG는 명색 1대 주주이면서도 당초 약속대로 경영권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인사에도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하나로통신이 IMT-2000 동기식 사업자로 참여하겠다고 나서면서 자사의 1대 주주인 LG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아이러니도 이런 역학관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일 LG가 경영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면 삼성 현대 SK가 연합전선을 펴 이를 견제할 것이다. 세 회사의 지분을 합하면 27%가 넘기 때문이다.

LG 관계자는 “우리는 하나로통신 대주주의 하나일 뿐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 1대 주주가 된 것도 본의가 아니었으므로 하나로통신 지분도 투자자산의 일부로 여길 따름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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