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혼다|‘움직이는 모든 것’ 창조하는 기술지상주의 대명사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09-23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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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11월, 키 120cm 무게 52kg의 로봇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로봇의 이름은 ‘아시모(ASIMO).’
    • 세계 최초의 이족(二足) 직립보행 로봇이었다. 이 로봇의 주인은 ‘혼다.’ 모터사이클에서 자동차, 소형 제트기 그리고 로봇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해내는 ‘글로벌 모빌리티 컴퍼니’가 바로 혼다다.
    혼다|‘움직이는 모든 것’ 창조하는 기술지상주의 대명사

    ①일본 도쿄의 혼다 본사 건물. ②지난해 12월 시험비행에 성공한 ‘혼다제트’. ③연료전지차 FCX. ④혼다의 대표모델인 어코드. ⑤혼다는 레이싱을 통해 자동차 기술을 한층 발전시켰다.

    ‘The Power of Dreams(꿈의 힘).’일본 도쿄 미나토(港)구 아오야마(靑山) 거리의 한 모퉁이. 이곳에 자리잡은 은빛 감도는 16층짜리 빌딩 내부 곳곳엔 이런 영문 슬로건이 붙어 있다. 창업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내려온 ‘꿈’의 싹을 무럭무럭 틔워가며 ‘현실’로 창조해내는 이곳은 바로 세계적인 자동차기업 혼다(HONDA)의 본사다.

    올해로 창업 56돌을 맞은 혼다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혼다의 ‘꿈’은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결코 만만하지도 않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1906~91) 전 회장이 세운 기업경영의 기본이념인 세 가지 기쁨(사는 기쁨, 파는 기쁨, 만드는 기쁨)을 철저히 실천에 옮김으로써 고객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만족을 실현해 ‘(고객들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런 혼다의 바람을 한마디로 집약한 용어가 기술과 창조, 글로벌리즘을 강조하는 이른바 ‘혼다이즘’이다. 이는 곧 15만여명에 이르는 혼다 직원 모두에게 각인된 혼다정신을 뜻한다.

    왜 혼다이즘인가. 그 해답은 혼다의 역사와 기업문화를 들춰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객만족에 ‘올인’하는 ‘혼다이즘’



    한국엔 혼다를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혼다의 일면만 부각시킨 케케묵은 고정관념이다. 모터사이클 생산으로 기업활동을 시작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오늘날 혼다는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는 물론 전력용 발전기, 항공기 엔진, 로봇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품생산 및 연구개발을 아우르는 ‘글로벌 모빌리티 컴퍼니(Global Mobility Company)’다.

    혼다의 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인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신화적인 기업인이다. 일본 시즈오카(靜岡)현의 작은 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때부터 자동차 정비공장 견습공으로 일한 그는 1948년 혼다기술연구소를 설립해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맨 먼저 만든 제품은 자전거에 장착하는 보조엔진이다.

    당시 일본 메이커들은 외국회사와 합작해 모터사이클이나 자동차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소이치로는 독자기술을 고집했다. 또 그는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 꿈을 이루려 포드엔진을 활용한 독창적인 레이싱카를 직접 제작해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모터사이클 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혼다는 2003년 한 해 동안만 911만7000여대의 모터사이클을 전세계에 판매하는 등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축적한 다양한 기술은 자연스레 자동차 개발에 접목됐다.

    혼다|‘움직이는 모든 것’ 창조하는 기술지상주의 대명사

    혼다가 개발한 로봇 ‘아시모’.

    혼다는 1963년 자동차산업에 진출한다. 혼다자동차의 첫 모델은 소형 스포츠카인 S500과 경트럭 T360. 이후 S시리즈는 배기량을 높여 S600과 S800으로 발전했고, 1999년엔 한층 성능을 강화한 신세대 스포츠카 S2000을 출시했다. 1966년엔 첫 승용차 모델인 N360을 선보여 20개월 동안 무려 20만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혼다는 1972년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형 승용차 시빅(Civic)을 내놓아 본격적인 자동차메이커로 인정받는다. 이 차는 미국에서 특히 인기를 끌어 1995년 판매대수 1000만대를 돌파했다. 초대 시빅은 1979년까지 생산됐고, 현재 시판중인 시빅은 6세대 모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혼다자동차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것은 1976년 내놓은 어코드.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중형 세단인 어코드(Accord, ‘조화’ ‘일치’라는 뜻으로 인간과 자동차의 조화를 의미)는 주행성능과 안전성, 내구성이 뛰어나 1989~91년 세 차례나 미국 베스트셀링 카에 뽑혔다. 지금까지 140개국에서 1300만대 이상 팔려 혼다자동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혼다는 지난 5월 한국 현지법인인 혼다코리아(대표 정우영)를 통해 한국시장에도 미국형 어코드를 선보였다. 첫 출시 이후 여섯 차례 풀모델 체인지된 7세대 모델로, 2004년 신형이다. 한국에 시판되는 기종은 3.0 V6 VTEC(3000cc, 3890만원)와 2.4 i-VTEC(2400cc, 3390만원) 두 가지다.

    독자기술에 대한 유난스런 집착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혼다는 도요타와 닛산에 이은 후발주자다. 그럼에도 N360을 비롯해 시빅, 어코드 등 참신한 모델을 잇따라 선보임으로써 소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현재 혼다는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도요타에 이어 2위.

    세계적으로는 연간 300만대에 육박하는 자동차를 생산·판매(2003년도의 경우 291만대 판매)해 매출면에서 8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도의 자동차 목표 판매대수는 전년도에 비해 10% 증가한 320만대. 혼다가 창업 이후 지금까지 판매한 자동차의 누계는 무려 5200만대에 달한다.

    혼다는 일찍이 승용차 위주의 단조로운 생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차를 개발해왔다. 1994년엔 독자적으로 개발한 7인승 미니밴 오디세이(Odyssey)로 선풍을 일으켰고, 1997년엔 CR-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으로 10월경 한국 출시 예정)를 선보여 북미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2001년 출시한 소형차 피트(Fit)는 이듬해 일본 소형차 부문 최다판매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혼다의 눈부신 성장은 모터스포츠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혼다 소이치로는 1962년 “레이싱이 없으면 자동차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다”고 선언, 같은해 국제규격에 맞는 일본 최초의 레이싱 코스 ‘스즈카 서킷’을 만들었다. 이어 혼다는 1964년에 독일 그랑프리 포뮬러 원(F1)에 데뷔했고, 이듬해엔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이후 혼다가 개발한 자동차 엔진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주용 차들에 탑재돼 1970∼80년대 레이싱을 독주하며 정상을 구가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혼다를 이끄는 주된 동력(動力)은 독자기술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다. 신기술을 향한 ‘갈증’이야말로 혼다의 추진력이다.

    1972년 개발에 성공한 저공해 엔진 CVCC는 미국 대기환경보전법을 통과한 세계 최초의 엔진이다. 또 현재 사용되고 있는 VTEC는 밸브 조절로 연료소모를 절감하는, 엔진출력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만든 엔진이다. 일본에서 비상시 안전성을 높이는 ABS(미끄럼 방지 제동장치) 시스템 개발 및 승객의 치명적 부상을 막기 위한 SRC 에어백 시스템 개발을 주도한 자동차업체도 혼다였다.

    혼다는 매년 연구개발비로 매출액의 5% 가량을 투자한다. 지난해의 경우 약 4000억엔을 썼고, 올해는 총 4700억엔(약 4조7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세계 자동차메이커 가운데 최대 규모다. 기술연구소도 20개(해외 포함)를 보유하고 있고 연구인력만도 1만3000여명에 이른다. 현재 혼다가 보유한 각종 특허는 2만4000여건. ‘기술의 혼다’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님을 시사하는 징표다.

    모터사이클에서 제트기까지

    2000년 11월에 전격 공개한 ‘아시모(ASIMO : Advanced Step in Innova tive Mobility)’는 1986년부터 로봇 관련 연구개발을 해온 혼다 기술력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아시모는 사람처럼 자율적으로 이족(二足)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물체를 인식하는 최초의 휴먼로봇으로 전세계적인 관심대상이 됐다. 모터사이클과 자동차가 2차원의 모빌리티(Mobility)를 구현한다면 항공기는 3차원, 인간의 분신기능을 일부 갖춘 아시모는 4차원의 모빌리티를 추구하는 셈이다. 혼다는 또 2002년 12월 몸 동작과 제스처를 이해하고 독자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형 로봇을 발표하기도 했다.

    혼다 본사 홍보부의 이케다 데쓰야(池田哲也·44) 과장은 “과거에 로봇의 ‘자율 이족 보행’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연구논문도 있었지만, 혼다의 기술진은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꿈을 실현했다”며 “아시모의 개발은 ‘모빌리티’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나가려는 혼다의 도전정신을 대변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모에 적용한 화상(畵像)·음성 인식기술이 지능형 자동차 개발에도 적극 응용되고 있다는 점. 사람이 인식하는 만큼의 화상인식능력을 자동차에 부여하는 데 있어 아시모 개발과정에서 나온 기술들이 매우 긴요하게 쓰인다. 이를테면 보행자나 상대 자동차를 인식해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운전자의 음성으로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 등이 그것이다.

    혼다는 로봇뿐 아니라 제트기도 개발중이다. 본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꿈은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혼다는 1990년대 후반 항공기엔진을 생산하는 사업부를 창설했고, 이곳에서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인 ‘혼다제트(Honda Jet)’를 자체 개발, 지난해 12월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혼다는 무게, 연료효율, 출력, 배기가스 면에서 탁월한 차세대 피스톤 항공기엔진 개발을 완료하고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지난 2월 세계 최대 제트엔진 메이커인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와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혼다가 이처럼 당장 돈벌이가 되지 않는 로봇이나 제트기 개발에 힘을 쏟는 까닭은 자동차 외에도 ‘모빌리티’를 다각도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에 있다. 여기엔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함으로써 개인의 이동성을 확장시켜 궁극적으론 사회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혼다는 세계 각국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각 지역마다 자사 판매망을 구축하고,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또 일본의 (주)혼다 R&D(Research & Develop- ment)를 중심으로 신기술 및 제품개발 업무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면서도 지속적인 세계화를 위해 영국·독일·이탈리아 등지에 연구기능을 구축했다. 남미와 동남아 등지에선 현지사정에 적합한 자동차 모델을 개발, 해당지역 소비자의 요구도 충족시키고 있다. 혼다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생산거점은 일본을 포함해 30개국에 130개가 넘는다. 해외생산 비중은 전체의 55% 정도다.

    혼다|‘움직이는 모든 것’ 창조하는 기술지상주의 대명사

    보행자 장해 저감 기술을 활용한 충돌실험 장면. 충돌시 보닛이 10㎝ 가량 들려 보행자의 머리 부분이 엔진에 부딪히는 것을 막는다.

    혼다의 2004년도(2004년 4월∼2005년 3월) 매출목표는 8조5600억엔(약 85조6000억원), 순이익은 4170억엔(약 4조1700억원)에 달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혼다는 창업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내본 일이 없다.

    이에 대해 혼다 본사 홍보담당 요시다 마키코(吉田眞紀子·28)는 “‘버블경제’ 시절 다른 기업들이 떼돈을 벌어 증권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사업영역을 확장할 때도 혼다는 ‘물건 만드는 일’ 이외의 다른 것에 전혀 눈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두 가지 핵심 키워드, 안전과 환경

    혼다가 주력상품인 자동차 개발에서 중요시하는 핵심 키워드는 ‘안전’과 ‘환경’이다. 우선 안전. 혼다 차는 탑승자 보호뿐만 아니라 충돌시 보행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차체를 설계하는 등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출시한 신차 ‘인스파이어(Inspire)’의 경우 레이더 장치로 앞차의 위치를 감지해 사고를 방지하고, 졸음운전을 하면 안전벨트를 조여 잠을 깨우는 기능까지 갖췄다. 이처럼 기존의 방어적인 안전성을 뛰어넘어 적극적 개념의 안전성을 추구하는 게 혼다의 특징이다.

    혼다는 또 환경친화적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카(hybrid car : 전기·가솔린 등 두 종류 이상의 동력을 함께 사용하는 저공해 자동차) 및 연료전지차와 같은 대체에너지 자동차도 개발하고 있다. 1999년과 2001년 하이브리드카를 선보였고, 2002년엔 가솔린 대신 수소연료를 사용하는 연료전지차 FCX를 출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혼다의 생산공장 역시 친환경적인 그린 공장(Green Factory)들이다. 혼다의 일본내 5개 생산공장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스즈카제작소 역시 예외가 아니다.

    8월31일, 일본 도쿄에서 300여km 떨어진 미에(三重)현 북부 스즈카(鈴鹿)시에 위치한 혼다 스즈카제작소. 89만㎡(27만평)의 공장부지 주위에 10만그루의 나무를 심어 인공숲을 조성해 밖에서 보면 좀체 공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한국 기자의 방문을 의식해선지 공장 사무실 정문엔 태극기가 일본 국기와 나란히 걸려 있다.

    1960년 4월 모터사이클 생산공장으로 설립된 후 1967년부터 자동차를 양산해온 스즈카제작소는 현재 신형 경차인 라이프(Life)를 비롯해 피트, 시빅등과 스포츠카인 S2000, NSX 등 15종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8000여명의 종업원이 2개 생산라인에서 하루에 쏟아내는 차는 2200대. 연간 50만대를 생산해 세계 최상위의 생산효율성을 자랑한다.

    스즈카제작소 사업관리부의 모리 히데토모(森英友) 과장은 “스즈카제작소는 자동차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페인트 찌꺼기 등 최종 폐기물을 매립처리하지 않고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배출물 제로(Zero Emission)’를 일본에서 맨 먼저(1999년) 실천한 공장”이라며 “지금은 혼다의 일본내 모든 제작소에 이런 친환경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역대 사장, 모두 이공계 출신

    혼다의 기업문화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조직 분위기가 자유롭다. 사장실이 따로 없는 것이 단적인 예다. 사장 전용 엘리베이터도 없다. 사장의 호칭도 ‘미스터 후쿠이’ 또는 ‘후쿠이 상(さん)’일 뿐이다. 본사의 중역실도 모든 직원이 업무상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건물 중앙에 배치돼 있다.

    이런 기업문화의 이면엔 소박하고 실질적인 것을 중시한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품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혼다는 또한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원칙하에 직원들의 숨은 창조력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이는 ‘인간존중’을 기업경영철학으로 삼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혼다도 한때 여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노사갈등으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창업 초기인 1950년대가 그랬다. 그러나 이후 노조는 회사 경영상태에 대해 쓴소리를 던지고 경영진은 노조의 의견을 존중해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는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혼다에 노사대립은 더 이상 없었다고 한다.

    혁신적인 인사시스템 또한 돋보인다. 혼다는 신입사원이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권한을 부여한다. 1992년엔 일본 대기업 중 가장 먼저 미국식 연봉제를 도입했고, 직급과 직위도 분리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도 철저하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1973년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당시 소유 주식 대부분을 회사에 무상증여했다. 이후 혼다의 이사회엔 창업자 집안의 입김이 완전히 배제됐다. 혼다 임원 중 혼다라는 성(姓)을 가진 사람은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이사회에서 선출된 사장이 전권을 갖고 투자 및 신제품 개발을 결정한다. 또한 각 사업부마다 의사결정과정이 완벽히 분권화돼 독자체제를 갖춘 게 특징이다.

    혼다|‘움직이는 모든 것’ 창조하는 기술지상주의 대명사

    혼다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

    혼다의 기업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이공계 우대정책이다. 이는 특히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혼다 소이치로의 은퇴 이후 지금까지 선임된 사장 5명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다. 현 사장인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는 와세다대 응용화학과 출신이며, 전임 사장인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도 도쿄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식 회사명인 ‘本田技硏工業’에서도 기술을 중시하는 면모가 엿보인다.

    생산현장에서도 독특한 제안제도를 시행해 기술자들의 근성을 살려준다. 종업원들이 작업과정이나 품질개선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그 내용을 면밀히 평가한 뒤 우수하다고 판단되면 시상하는 제도다. 금·은·동상, 기록상, 혼다상이 있는데 최고의 영예인 혼다상을 수상한 종업원에겐 해외공장 견학 기회를 준다. 이 혜택을 받는 종업원은 스즈카제작소의 경우 1년에 5∼6명쯤 된다.

    이런 덕분일까. 혼다는 최근 수년간 일본 취업잡지들이 명문대 이공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소니와 함께 ‘취업하고 싶은 기업’ 1, 2위를 다투고 있다.

    ‘모빌리티’의 진화를 꿈꾸는 기업

    고객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고객만족을 끌어내고 인간의 안전 및 환경보전을 최우선시하는 혼다. 혼다가 ‘모빌리티’의 진화 가능성을 신봉하는 기업이라고 단언한다면 과장일까.

    한때 혼다에 몸담았던 일본의 경영평론가 기타오카 도시아키(北岡俊明)가 혼다 소이치로가 사망한 이듬해인 1992년에 펴낸 책 ‘혼다 소이치로의 경영학’(한국 번역본 제목은 ‘발상과 창조의 거인(巨人), 혼다’)에는 혼다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구절이 적지 않다. 생전의 혼다 소이치로가 강조했던 다음의 말들에선 ‘혼다다움’이란 게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어느 대기업에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회사에서는 모든 사원이 평등하게 일하고 있다는 점, 전원이 지혜를 한 곳으로 현명하게 모아내는 곳이라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행동이 전부이고, 메이커에는 제품이 전부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타인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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