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우리는 가부장제와 전면전으로 간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현주소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5-05-06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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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부 신설에 맞춰 진단한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실태와 전망. 여성 차별 철폐운동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페미니스트들은 이제 ‘가부장제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궁지에 몰린 남자들의 선택은?
    자고 일어나면 성폭력·성희롱 사건이다. 지난 1월8일 육군 전방부대의 사단장이 여성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역 장성이 이런 일로 목이 날아간 것은 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사건은 여성계의 숙원인 성범죄 추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수위에 이르렀는지, 또 얼마만큼의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가장 ‘남성적’인 집단인 군조차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공인된 셈이다. 이로써 성 문제에 관한 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남성들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자고 일어나면 성범죄

    한 일간지 홈페이지에 수록된,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성범죄 관련 기사 목록을 살펴보자.

    ● 부하 여장교 성추행 혐의 육군사단장 보직해임…01/08 18:31

    ● 경총, 성희롱 예방 비디오 2편 제작…01/07 11:12



    ● 인터넷으로 만난 여자 감금 성폭행…01/04 09:29

    ● 장애여성 성폭행 1명 체포…01/04 08:30

    ● 식당 여성 종업원 성희롱·폭행에 시달려…12/30 12:01

    ● 민노총, 성폭력 진상조사 나서…12/30 10:37

    ● 주병진씨, 보석 석방…12/29 13:53

    ● 이웃집 모녀 상습 성폭행 50대 체포…12/28 10:51

    ● ‘제자 성추행 교사’ 교단 추방 촉구…12/26 16:55

    ● 부산경찰청장 여성 비하 발언, 여성단체 반발…12/20 16:09

    ● 구인광고 보고 찾아온 여대생 등 성폭행…12/19 09:36

    ● 주병진씨 성폭행 혐의 기소…12/15 09:11

    ● 성추행 물의 고교장 사표…12/14 11:28

    ● 진보진영 성폭력 사례 인터넷 공개, 실명 거론 논란…12/14 07:02

    ● 친딸 성폭행 징역 10년 선고…12/13 19:18

    ● 여자 어린이 성추행한 학습지 교사 구속…12/11 11:18

    ● 초등생 여아 성추행, 60대 피아노학원장 영장…12/11 08:51

    ● ‘교장이 여교사 성추행’ 경북교육청 감사…12/08 15:35

    갑자기 성범죄 사건의 봇물이 터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범죄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전엔 쉬쉬하고 감췄던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뿐이다. 범죄로 여겨지지 않거나 단죄되지 않던 일들이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남자들은 이제 여성과 성 문제에 관한 한 공석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말조심해야 한다.

    남성들이 여성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망신 퍼레이드는 한동안 계속 펼쳐질 것이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가슴 크기를 언급했다가 국회에서 사퇴압력을 받은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 김명자 환경부장관에 대해 ‘아키코상’ 어쩌구 하며 “안경 쓴 여자는 매력이 떨어진다”는 ‘소신’을 밝혔다가 사표 쓴 환경부 고위 간부, “여자가 똑똑하면 피곤하다. 좀 얼빵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공식발표’했다가 여성계의 반발로 공식사과해야 했던 부산경찰청장 등이 망신행렬의 맨 앞줄을 차지한다. 이들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남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죽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마디로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남성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로 불린다. 국지전이 시작된 지는 오래다. 여자들은 곳곳에서 수류탄을 터뜨리며 남자들이 구축해놓은 진지를 파괴해왔다. 그 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한편 남자들의 폭력에 짓눌렸던 여자들은 정당방위에서 한걸음 나아가 반격의 고삐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남성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의 보루였던 금녀의 영역은 이제 한 뼘도 채 남지 않았다.

    1월8일 오전 공군사관학교 212비행대대. 국내 첫 여성 전투조종사의 꿈을 안고 입학한 49기 여생도 7명이 전투기 앞에서 언론사 사진 촬영에 응했다. 홍보성이 강하다. ‘우리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이런 ‘생색내기’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집단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을 얼마나 받아들이는가’가 그 집단의 개방성과 선진성을 재는 잣대가 된 것이다.

    금녀의 영역은 없어지는가

    해군이 여군을 받아들인 것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다. 미신과 함정 근무의 특수성 탓에 해군은 대표적인 금녀의 세계였다. 그러나 지금 진해 옥포 등지에 있는 해군 정비창에선 함정 개조작업이 한창이다. 올해부터 여군이 승선할 것에 대비해 화장실과 세면장, 침실 등을 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1998년 21명으로 출발한 여사관생도는 현재 61명에 이른다. 해군은 턱을 더욱 낮춰 올해엔 여학사장교, 2003년엔 여하사관까지 임용할 예정이다. 잠수함을 제외한 모든 함정에 여군을 배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 영역의 대부분을 ‘침범’함으로써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성 역할 구분은 그 의미를 잃고 있다. 여권론자들은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주도권을 쥐게 된 남성들이 생물학적 성 차이를 악용해 사회적 성을 조작했다고 생각한다. 여성학에서는 생물학적 성을 섹스(sex)로, 사회적 성은 젠더(gender)로 구분한다. 여성계에서 주로 문제 삼는 것은 젠더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사회적으로 구조화하는 젠더가 남성 지배/여성 억압 구도를 합리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feminism)의 기본이다.

    국어사전에 정의된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사회·정치·법률상의 권리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다. 남녀 동권주의로도 해석되는데, 여성학계에선 여성해방주의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서구에서 발전한 페미니즘 이론은 시대나 지역 또는 이념이나 운동방식에 따라 몇 갈래로 나뉜다.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포스트모던, 생태주의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성차별을 철폐하고 남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여성의 권익을 추구하고 남녀평등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데선 차이가 없다.

    그간 한국 여성운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근간을 이루는 가운데,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과 경제력 확보를 여성해방의 절대조건으로 삼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뒤섞인 양상을 보여왔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여성 차별 철폐와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를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들어 여성을 보호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가정폭력 성폭력 등 남성의 폭력을 견제하고 응징하는 법을 강화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익을 증진시켜 왔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것은 이제 죄가 아니다.

    최근 여성운동이 거둔 결실은 여성단체협의회,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의 눈부신 활약과 김대중 정부의 의욕적인 여성정책에 힘입은 것이다. 1999년 7월에 시행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법과 정책집행에서의 여성 차별을 제도적으로 막고 성희롱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는 법률이다. 그해 2월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내 성희롱 방지 및 간접차별에 관한 금지조항을 담고 있다. 정부는 또 여성의 경제활동을 권장하는 법제를 신설하고 관련 행사도 열고 있다.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여성가장채용 장려금제도’ ‘여성창업·여성기업박람회’ 등이 그것이다.

    또한 ‘여성채용목표제’를 확대,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성채용비율을 20%로 높였다. 청와대 여성특별위원회 정책담당관실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는 여성채용과 관련해 일종의 할당제가 적용되고 있다. 목표치는 25%. 이 관계자는 “여성 참여 확대 차원에서 각 기관에 목표율을 정해준 것”이라며 “목표 미달 기관은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도 강화됐다. 1998년 1월부터 시행된 개정 성폭력특별법은 비록 친고죄 규정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 성폭력에 대해 가중처벌하고 친고죄 규정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등 법규를 강화했다. 1999년 7월1일부터는 가정폭력특례법이 시행돼 여성 인권보장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는 가정폭력을 ‘가정의 문제’로 치부해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제3자 신고 의무, 경찰관의 즉시 출동 및 검사의 즉시 조사 의무 등을 규정했다.

    법제 측면으로만 보면 의미 있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해 UNDP (유엔개발회의)가 발표한 각국의 여성권한척도(GEM)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70개국 중 63위로 나타나 여성의 인권이 여전히 낙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여성계는 2월 중 신설될 여성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투쟁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차별을 개선하는 데는 상당한 공을 세웠지만 남녀 불평등의 근본 원인에 대해선 눈감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성이 만든 모든 제도와 사회질서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이 가진 권력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공유하려 한다”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이런 시각을 가진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억압의 뿌리를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임신 출산 등)과 가부장제에서 찾는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철폐될 때 여성해방이 이뤄진다고 믿는 이들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부르짖는다.

    이에 비해 포스트모던 여성해방론자들은 일종의 문화운동을 펼친다. 여성적 글쓰기, 여성성 드러내기, 전통적 여성성 해체, 여성의 다양성 등을 중시하는 그들은 여성의 참된 욕망을 표출하고 새로운 여성문화를 창조하는 데서 여성해방을 꿈꾼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여성운동은 급진적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 호주제 폐지 운동,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안티미스코리아 축제, 월경 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인 이슈다.

    1월2일 오후 2시30분.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8층에 있는 계간지 ‘if’ 사무실. ‘if’는 제호 앞에 붙은 ‘페미니스트 저널’이라는 말 그대로 여성해방을 꿈꾸는 잡지다. ‘웃자 뒤집자 놀자!’라는 표어에서 이 잡지가 여성문화운동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f’ 2000년 겨울호의 머리기사는 ‘가부장제와의 전면전’. 편집장인 황오금희씨(33)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영 페미니스트의 기수로 불리는 ‘if’ 창간호가 나온 것은 1997년 여름. 창간호 으뜸 기사는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이었다. 이후 ‘오르가즘을 찾아서’ ‘solo가 좋다’ 등 도발적 제목을 표지에 내걸며 눈길을 끌었다. 황오씨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영 페미니스트들이 출현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다. 이전까지의 여성운동이 가족법 개정이나 노동환경 개선, 정치 참여 확대 등 제도권 안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신여성운동은 일상 삶에서 여성 개인의 억압에 눈을 돌린다.

    이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슬로건을 내걸었고,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남성 폭력을 공적인 이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여성을 억누르는 남성 중심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1999년 5월 ‘if’가 주관하는 제1회 안티미스코리아 축제가 열렸다. 행사 취지는 ‘미의 획일화’를 강요하고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대한다는 것. 이 행사엔 팔순의 할머니, 뚱뚱한 주부, 심지어 남자 대학생까지 출전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열린 2회 대회는 ‘If You Are Free Size’라는 표어를 내세워 우리 사회의 몸매 차별을 문제 삼았다. 황오씨는 이와 관련, “(안티미스코리아) 당선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당당함”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1999년 9월엔 제1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렸다. 고려대를 비롯한 4개 대학 연합 여성문화기획팀인 ‘불턱’이 주최한 행사다. 연극과 월경 축하파티로 구성된 이 행사의 주축은 대학생들이었지만 초경을 맞은 초등학생에서부터 폐경기의 중년 여성도 참가할 수 있도록 파티장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영 페미니스트들의 ‘반란’은 지난해 9월29일 마침내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유림과 정면충돌했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인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에 대해 ‘전주 이씨 종친회’ 등 유림 세력이 방해하고 나선 것. ‘아방궁’이란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의 약자. ‘입김’ 회원들은 이날 ‘다리 벌리고 앉지 마라’ 등 각종 금기 언어로 만들어진 ‘∼마라 풍선’을 만들어 터뜨리고, 질과 자궁 모양을 본뜬 ‘탄생 터널’을 통과하는 의식을 통해 여성 몸의 사회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계획이었다. 이들이 행사장으로 종묘를 선택한 이유는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주 이씨 종친회를 비롯한 유림 세력 200여 명은 이날 행사장에 몰려가 욕설을 퍼부으며 ‘입김’ 회원들의 그림 그리기를 방해함으로써 행사를 무산시켰다.

    황오씨에 따르면 ‘if’ 사무실엔 유림 세력 또는 남성우월주의자로 여겨지는 남자들의 항의·협박 전화나 이메일 공세가 끊이지 않는다. 황오씨는 문화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 지배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생활습관, 관습까지 문제 삼는 것”이라며 “여자가 콘돔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풍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f’가 여성문화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여성신문은 전통적인 여성문제, 곧 정치·사회적 여성 차별 문제를 꾸준히 환기시키며 여성의 권익과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 1월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에 있는 여성신문 편집국을 찾았다. 정희경 차장(35)은 “페미니즘 문제는 휴머니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며 여성운동에 대한 일반 언론의 논조를 비판했다.

    “여성운동을 남성계와 여성계의 대립 차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런데 언론이 자꾸 싸움으로 몰고 간다. 남녀 모두의 의식 변환이 중요하다. 역차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여성 문제를 인권 문제로 보지 않고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하는 무지 탓이다. 민법에 규정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은지 실생활에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살아간다.”

    여성신문이 선정한 ‘2000년 여성계 10대 뉴스’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여성 관련 주요 사건을 알 수 있다. ▲군 가산점제와 사이버테러 ▲장애여성 성폭력 수면 위로 ▲여성 국회의원 최다 등원 ▲‘정선호 사건’ 가정폭력 이슈화 ▲지도층 성희롱 사건 잇따라 ▲호주제 위헌소송 돌입 ▲여성부 신설 현실화 ▲군산 윤락가 화재사건 ▲비정규직 여성 노동권 확보 ▲국제여성법정 성공리에.

    이중 호주제 폐지와 군 가산점제에 대한 논쟁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 폐지를 올해 추진할 4대 핵심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여성단체협의회가 밝힌 10대 주요 사업계획에서도 이 문제는 맨 앞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일반 시민단체 및 시민들로 구성된 호주제폐지시민연대는 지난해 11월 서울가정법원에 위헌법률소송을 제기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행 호주법에 따르면 이혼한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경우 그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계속 써야 하므로 어머니의 호적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이혼한 여자가 전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할 경우에도 자녀의 성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바꿀 수 없다. 그 밖에도 여성차별적인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주제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제가 우리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오늘날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호주제를)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을 우선 개정하는 것이 순서다. 여성부가 들어서면 이 문제부터 손댈 것이지만 일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법적 문제이므로 완전히 폐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청와대 여성특별위원회 정책담당관실 관계자의 조심스러운 설명이다. 이에 비해 지난해 격렬한 논쟁 속에 폐지 여부가 보류됐던 군 가산점제는 올해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게 여성특별위원회 관계자의 전망이다.

    군 가산점제는 공무원 채용시험시 군필자에게 총점의 5%를 보태주는 제도로 그동안 여성계의 반발을 사왔다. 군 가산점제 폐지의 대안은 두 가지. 첫째, 공무원 시험에서 응시제한연령을 군입대 기간만큼 늘려주는 방안. 둘째는 임금과 호봉 계산시 군복무기간을 근무경력으로 인정해 산입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많은 기업체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다만 그 동안 기업 자율에 맡겼던 것을 앞으론 법적 의무로 만들어 강제 시행한다는 것이다.

    1월4일 오후 7시. 서울 청담동에 있는 여성 인터넷 사이트 ‘여자와닷컴(www. yeozawa.com)’ 사무실을 방문했다. 컨텐츠 3팀장인 박미라씨(37)는 “영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백래시(backlash: 반격)가 시작됐다”고 입을 열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젊은 남자나 늙은 남자 할 것 없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여자와닷컴’은 여성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여성운동을 대중화한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호주제 폐지와 같은 여성계의 이슈를 알리는 것 외에 사랑과 성, 재테크, 건강 미용, 패션, 인테리어 등에 대한 최신 정보를 사이트에 날마다 올린다. 여성신문 기자를 거쳐 ‘if’ 편집장을 역임한 박씨는 “여성지 독자층은 한정돼 있지만 ‘여자와닷컴’의 독자층은 무한하다”며 “인터넷을 통해 여성운동의 질적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여자와닷컴’ 회원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박씨는 영 페미니스트 운동의 기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여성운동엔 내가 희생해 사회개혁을 이룬다는, 학생운동 방식의 개념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먼저 나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하는 개개인이 행복해야 여성운동도 성공할 수 있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로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예전엔 드러내지 않던 은밀하고 사적인 문제를 이슈화한다.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여성의 성욕은 참아야 하는 것으로만 얘기돼 왔다. 그렇지만 우리도 성적 욕구가 있고 가꾸고 싶어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박씨는 영 페미니스트답게 여성운동의 주요 이슈에 대해 진보적 견해를 나타냈다. 일부일처제에 대해선 “전적으로 여성에 불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반대해온 간통죄 폐지에 대해선 “성인 남녀의 사랑이나 성을 법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군 가산점제에 대해선 “육아에 대한 부담만 덜어준다면 여자도 군대 갈 수 있다”고 되받았다.

    페미니스트도 성욕 있다

    포르노에 대한 생각도 기자의 선입관을 벗어난 것이었다. 박씨는 “무조건 억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포르노에 대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성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여자들이 포르노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은 결국 여성을 미성숙한 존재로 본다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부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용 포르노 영화의 가치를 인정한다. 포르노가 오히려 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며 포르노 ‘부분 긍정론’을 펼쳤다. 포르노에 흔히 등장하는 변태 성행위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선 “어떤 행태의 성행위든 남녀가 합의하고 상대방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면 변태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박씨는 페미니즘 운동의 전망을 밝게 내다봤다.

    “예전엔 남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들이 변하면 남자들이 바뀐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5년 전만 해도 명절 때 친정에 가느냐 시댁에 가느냐를 두고 다툴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명절 때 남녀가 같이 일하자든가, 제사를 지내지 말자든가 하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페니미즘 운동은 결국 삶의 습관을 바꾸자는 것이다. 신세대 여성 중엔 전업주부가 좋다는 사람도 많다. 평화의 열쇠는 여자들이 쥐고 있는 것이다.”

    1월5일 오후 2시. 홍익대 앞 카페에서 최창희씨(39)를 만났다. 여성신문 기자 출신인 최씨는 1996년 신낙균 현 민주당 최고위원을 따라 국회에 들어갔다.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이었던 신위원은 국회여성특별위원장과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다. 최씨는 보좌관으로서 여성정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가 신위원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1999년 9월 국회에서 나왔다.

    현재 최씨는 ‘에코 페미니스트 유니온’이라는 자유기고가 모임의 회원으로 방송 출연, 기고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에코 페미니즘은 생태주의 또는 환경주의 관점의 여성운동이론으로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과 자연 파괴의 원인을 가부장제 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중요한 개념인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에코 페미니즘 시각에서는 자연과 여성은 둘 다 남성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남성=문화/ 여성=자연의 등식이 에코 페미니즘의 기본 시각이다.

    따라서 에코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성 회복이 중요한 과제다. 모성 감성 직관 등 여성적 본성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힘을 가질 때 여성해방과 환경복원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최씨는 “여성 억압의 역사와 자연 또는 환경 파괴의 역사는 일치한다”고 말했다.

    “자식을 지키려는 모성 본능과 자연을 보호하려는 본능은 통한다. 물질보다 정신에 더 가치를 두고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여성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전엔 여성성이 여성 억압의 원인으로 지적됐으나 지금은 오히려 여성 해방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최씨는 이 얘기를 하며 한 가지 ‘주의사항’을 덧붙였다.

    “여성성 회복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을 성 역할 구분에 따른 여성성과 혼동해선 안 된다. 에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성은 순종성이나 소극성 같은 부정적인 여성성과 구분해야 한다.”

    또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해 “예전엔 가출소녀나 윤락녀 미혼모 등 주로 사회적 약자 위치에 있는 여성에 대한 정책이 많았는데, DJ 정부 들어선 보통 여성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씨에 따르면 그간 정부의 여성정책은 대개 형식적이고 신념이 없는 것이었다.

    “한 예로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정확한 수요를 따지지 않고 여기저기 마구 세웠다. 그 결과 설립신고만 해놓고 운영을 못 하는 보육원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보육원장 중에 자살하는 사람도 나오고 원장들에 대한 자격 시비도 일었다. 국민연금기금에서 지원했는데, 돈은 돈대로 나가고 실효도 없는 정책이었다.”

    최씨에게 몇 가지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먼저 호스트바.

    “남자들이 룸살롱에 가서 여성 접대를 받으니 여자들도 똑같이 호스트바에 가서 남성 접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룸살롱은 필요악으로 용인하면서 여성이 술집에 가 남성의 서비스를 받는 데 대해선 거부감을 갖는 불합리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법적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다시 말해 호스트바에 가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호스트바 논리는 낙태에도 적용된다.

    “60년대 유럽에서 일어난 여성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낙태에 대한 권리선언이었다. 한 여성이 군중 앞에서 ‘나 낙태했어. 불법시술 했어’라고 당당히 외쳤다. 그러자 그 동안 숨죽여 지내던 많은 여성들이 이에 동조하고 나섰고 그것이 여성운동의 불길로 번져 나갔다. 낙태의 윤리성 논쟁과는 별개로 내 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인권의 문제다.”

    최씨에 따르면 최근 페미니즘의 조류는 기계적인 남녀 평등주의에서 벗어나 남녀의 성 차이를 인정하되 여성성의 장점을 강조하는 쪽이다. 남성을 억압의 요인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감싸안자는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선 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해 12월28일 MBC ‘100분 토론’에서는 ‘여성이 말하는 2000년 한국’이라는 주제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자 5명과 방청객 모두 여자로만 구성된 이 토론회에서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질문시간에 불만을 터뜨렸다.

    “미혼여성이나 사회생활하는 여성들, 또 정치하는 분들한테 해당되는 얘기만 한다. 여성 중엔 전업주부가 많은데 전업주부가 가진 문제는 완전히 배제된 것 같아 안타깝다.”

    아줌마닷컴(www.azoomma.com). 다른 여성 인터넷 사이트들과 달리 오로지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가정과 관련한 종합정보를 제공하고 교육과 상담도 하는 토털 사이트다. ‘100분 토론’ 때 방청석에서 불만을 터뜨린 여성이 바로 ‘아줌마닷컴’의 대표인 황인영씨(34)다.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라

    1월6일 오후 2시. 서울 도곡동에 있는 ‘아줌마닷컴’ 사무실에는 10여 명의 직원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아줌마닷컴’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월. 그해 3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타원형 탁자에 황씨와 마주앉았다.

    “솔직히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에는 직장여성이나 사회활동하는 여성만 있지 가정주부는 없는 것 같다. 가정일도 직장일 못지않은 가치를 갖고 있지 않나. 그들의 권리도 찾아줘야 한다.”

    황씨는 전날 몸살 기운이 있어 입원을 했었다고 한다. 몸에 아직 열이 남아 있는지 어느 순간 팔을 걷어붙였다.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그가 결혼한 것은 32세 때인 1999년. 결혼생활은 최씨가 미혼 때 가졌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바꾸길 요구했다. 많은 주부가 자신을 죽이고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에 치여 억눌린 아줌마들의 욕망과 생각과 ‘끼’를 마음껏 쏟아붓고 승화시키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보화시대에 인터넷은 여자들에게 큰 힘이다. 전업주부들은 인터넷을 통해 사회 참여할 수 있다.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아줌마닷컴’은 지금 그 일을 해내고 있다.”

    ‘아줌마닷컴’은 현재 2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회원들은 하루 평균 1시간 반 동안 사이트에서 머문다. 회원 연령대를 보면 30대가 절반을 차지하고, 20대, 40대가 각 20%씩, 나머지는 50대 이상이다. ‘아줌마닷컴’에서 실시한 각종 설문조사 결과와 토론 내용을 보면 주부들의 의식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혼전순결에 대한 논쟁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지킬 필요 없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넘었다(56%). 호스트바 출입에 대해선 남자들이 먼저 유흥업소 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백지영씨 사건에 대해선 초기엔 백씨를 비난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나중엔 ‘인권 침해’ 관점에서 보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한편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가사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동안 남편이 설거지를 도와준 횟수를 묻는 질문에 ‘거의 없다’라고 답한 주부가 가장 많았다(44%). 이어 ‘명절 때나 특별행사 때 몇 번 도와줬다’는 응답이 23%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한 달에 한두 번 도와준다’(17%), ‘일주일에 한두 번’(13%)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는 ‘거의 매일 도와준다’고 대답했다.

    황씨에 따르면 주부들이 원하는 여성해방은 소박하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내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남편 급여의 몇 %를 차지할 것으로 보는가’ 하는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응답자의 81%가 ‘50%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아줌마닷컴’의 출판팀장 임원영씨(40)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아줌마가 즐거워야 가정이 행복하다. 아이 키우는 일도 직업이다. 참된 페미니즘이라면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서 남편들을 개조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식들부터는 고쳐나갈 수 있다. 시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아줌마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으므로 20∼30년 후엔 시어머니 문화도 바뀔 것이다.”

    꾸준한 여성운동의 결과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권익은 예전에 비해 크게 신장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법제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남녀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다.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는 ‘야만국’ 소리를 들을 만하다. 우리나라의 성폭력 발생률은 세계에서 셋째다. 가정폭력 발생비율도 내놓고 얘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1996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이혼사유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남편의 폭력(36.2%)이었다. 그 다음이 부정행위(18.5%)였다. ‘서울여성의전화’는 1999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2170건을 상담했는데, 그 유형을 분석한 결과 성폭력이 498건(22.95%)으로 가장 많았고, 가정폭력(471건·21.71%)이 그 뒤를 이었다.

    ‘아줌마닷컴’에 따르면 주부들에게 인내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닌 듯싶다. ‘참고 살아라’보다는 ‘싸워라’ 또는 ‘싸워서 바꿔라’,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라’는 의견이 대세라고 한다.

    호주제 폐지 운동,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부부재산 공동명의제 운동…. 여성들의 칼끝은 서서히 가부장제의 급소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해방은 곧 남성해방이라고 속삭인다(?). 남자들이여! 성벽 위에서 돌을 굴릴 것인가, 아니면 성문을 열고 여자들을 맞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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