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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대논쟁! 페미니즘

“우리는 가부장제와 전면전으로 간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현주소

  • 조성식 mairso2@donga.com

“우리는 가부장제와 전면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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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페미니즘 투쟁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차별을 개선하는 데는 상당한 공을 세웠지만 남녀 불평등의 근본 원인에 대해선 눈감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성이 만든 모든 제도와 사회질서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이 가진 권력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공유하려 한다”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이런 시각을 가진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억압의 뿌리를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임신 출산 등)과 가부장제에서 찾는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철폐될 때 여성해방이 이뤄진다고 믿는 이들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부르짖는다.

이에 비해 포스트모던 여성해방론자들은 일종의 문화운동을 펼친다. 여성적 글쓰기, 여성성 드러내기, 전통적 여성성 해체, 여성의 다양성 등을 중시하는 그들은 여성의 참된 욕망을 표출하고 새로운 여성문화를 창조하는 데서 여성해방을 꿈꾼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여성운동은 급진적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 호주제 폐지 운동,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안티미스코리아 축제, 월경 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인 이슈다.

1월2일 오후 2시30분.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8층에 있는 계간지 ‘if’ 사무실. ‘if’는 제호 앞에 붙은 ‘페미니스트 저널’이라는 말 그대로 여성해방을 꿈꾸는 잡지다. ‘웃자 뒤집자 놀자!’라는 표어에서 이 잡지가 여성문화운동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f’ 2000년 겨울호의 머리기사는 ‘가부장제와의 전면전’. 편집장인 황오금희씨(33)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영 페미니스트의 기수로 불리는 ‘if’ 창간호가 나온 것은 1997년 여름. 창간호 으뜸 기사는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이었다. 이후 ‘오르가즘을 찾아서’ ‘solo가 좋다’ 등 도발적 제목을 표지에 내걸며 눈길을 끌었다. 황오씨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영 페미니스트들이 출현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다. 이전까지의 여성운동이 가족법 개정이나 노동환경 개선, 정치 참여 확대 등 제도권 안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신여성운동은 일상 삶에서 여성 개인의 억압에 눈을 돌린다.

이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슬로건을 내걸었고,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남성 폭력을 공적인 이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여성을 억누르는 남성 중심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1999년 5월 ‘if’가 주관하는 제1회 안티미스코리아 축제가 열렸다. 행사 취지는 ‘미의 획일화’를 강요하고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대한다는 것. 이 행사엔 팔순의 할머니, 뚱뚱한 주부, 심지어 남자 대학생까지 출전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열린 2회 대회는 ‘If You Are Free Size’라는 표어를 내세워 우리 사회의 몸매 차별을 문제 삼았다. 황오씨는 이와 관련, “(안티미스코리아) 당선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당당함”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1999년 9월엔 제1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렸다. 고려대를 비롯한 4개 대학 연합 여성문화기획팀인 ‘불턱’이 주최한 행사다. 연극과 월경 축하파티로 구성된 이 행사의 주축은 대학생들이었지만 초경을 맞은 초등학생에서부터 폐경기의 중년 여성도 참가할 수 있도록 파티장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영 페미니스트들의 ‘반란’은 지난해 9월29일 마침내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유림과 정면충돌했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인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에 대해 ‘전주 이씨 종친회’ 등 유림 세력이 방해하고 나선 것. ‘아방궁’이란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의 약자. ‘입김’ 회원들은 이날 ‘다리 벌리고 앉지 마라’ 등 각종 금기 언어로 만들어진 ‘∼마라 풍선’을 만들어 터뜨리고, 질과 자궁 모양을 본뜬 ‘탄생 터널’을 통과하는 의식을 통해 여성 몸의 사회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계획이었다. 이들이 행사장으로 종묘를 선택한 이유는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주 이씨 종친회를 비롯한 유림 세력 200여 명은 이날 행사장에 몰려가 욕설을 퍼부으며 ‘입김’ 회원들의 그림 그리기를 방해함으로써 행사를 무산시켰다.

황오씨에 따르면 ‘if’ 사무실엔 유림 세력 또는 남성우월주의자로 여겨지는 남자들의 항의·협박 전화나 이메일 공세가 끊이지 않는다. 황오씨는 문화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 지배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생활습관, 관습까지 문제 삼는 것”이라며 “여자가 콘돔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풍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f’가 여성문화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여성신문은 전통적인 여성문제, 곧 정치·사회적 여성 차별 문제를 꾸준히 환기시키며 여성의 권익과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 1월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에 있는 여성신문 편집국을 찾았다. 정희경 차장(35)은 “페미니즘 문제는 휴머니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며 여성운동에 대한 일반 언론의 논조를 비판했다.

“여성운동을 남성계와 여성계의 대립 차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런데 언론이 자꾸 싸움으로 몰고 간다. 남녀 모두의 의식 변환이 중요하다. 역차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여성 문제를 인권 문제로 보지 않고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하는 무지 탓이다. 민법에 규정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은지 실생활에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살아간다.”

여성신문이 선정한 ‘2000년 여성계 10대 뉴스’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여성 관련 주요 사건을 알 수 있다. ▲군 가산점제와 사이버테러 ▲장애여성 성폭력 수면 위로 ▲여성 국회의원 최다 등원 ▲‘정선호 사건’ 가정폭력 이슈화 ▲지도층 성희롱 사건 잇따라 ▲호주제 위헌소송 돌입 ▲여성부 신설 현실화 ▲군산 윤락가 화재사건 ▲비정규직 여성 노동권 확보 ▲국제여성법정 성공리에.

이중 호주제 폐지와 군 가산점제에 대한 논쟁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 폐지를 올해 추진할 4대 핵심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여성단체협의회가 밝힌 10대 주요 사업계획에서도 이 문제는 맨 앞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일반 시민단체 및 시민들로 구성된 호주제폐지시민연대는 지난해 11월 서울가정법원에 위헌법률소송을 제기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행 호주법에 따르면 이혼한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경우 그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계속 써야 하므로 어머니의 호적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이혼한 여자가 전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할 경우에도 자녀의 성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바꿀 수 없다. 그 밖에도 여성차별적인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호주제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제가 우리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오늘날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호주제를)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을 우선 개정하는 것이 순서다. 여성부가 들어서면 이 문제부터 손댈 것이지만 일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법적 문제이므로 완전히 폐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청와대 여성특별위원회 정책담당관실 관계자의 조심스러운 설명이다. 이에 비해 지난해 격렬한 논쟁 속에 폐지 여부가 보류됐던 군 가산점제는 올해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게 여성특별위원회 관계자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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