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여성성 회복이 남성을 구원한다”

인터뷰 : 여성학 선봉 조한혜정 교수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5-05-06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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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한교수의 실천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하나의 문화’라는 모임이다. 그녀가 이끄는 이 모임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정력적인 저술활동을 펼쳐 왔다. ‘열린 사회 자율적 여성’ ‘여성 해방의 문학’ ‘지배 문화 남성 문화’ ‘새로 쓰는 성 이야기’ ‘주부, 그 막힘과 트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등 여성 관련 책 외에도 ‘누르는 교육 자라는 아이들’ ‘새로 쓰는 청소년 이야기’ 등의 책을 통해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탐구해 왔다.

    소프트웨어의 빈곤

    조한교수는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자신이 페미니즘운동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세 차례 요청 끝에 성사된 인터뷰는 1월11일 오후 8시 서울 홍은동 조한교수의 집에서 진행됐다.

    ―한국 사회의 여권이 상당히 향상됐다고 하지만 지난해 UNDP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권한척도 순위가 세계 70개국 중 63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 여성운동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어느 사회나 근대화가 진행되면 그에 걸맞은 지표가 나타나죠. 여자들이 사회에 얼마나 진출했는가도 그중 하나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근대화 수준은 아주 낮아요. 일상 삶에서 남녀 간 상호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외형은 발전했지만 내공을 쌓지 못한 결과예요. 하드웨어는 만들었는데 그 속을 채울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겁니다. 자생적으로 근대화가 진행된 서양은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와 조직문화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조직문화만 만들었던 거죠. 남자들이 일하다가 필요할 때만 여자들을 차출했어요. 여자와 더불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 거죠. 또 같이 일을 해도 동료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니 성희롱을 하게 돼요. 게다가 여자가 그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엄청난 무지…. 여성운동의 핵심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성폭력 문제입니다. 강간에서부터 언어 폭력까지.”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여성들이 사회에 많이 진출했다는 것을 반증하지 않습니까.

    “진출하기는 했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동원됐어요. 즉 서로 소통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동원되니까 부작용이 일어났죠. 남자들이 기대하는 여자 상에 맞춰야 하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이성 관계를 맺고 싶으면 다른 형태로 만나든가 해야 하는데 남자들은 그걸 구분을 못해요. 그들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자들을 맞은 거예요. 요즘 보면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이 왜 가해자인지도 모르잖아요.

    서로 소통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하다 보니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 남자가 지배하는 사회, 여자가 지배하는 가정, 이렇게 두 군데서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직장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복수라는 말이 우습지만, 가정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을 못살게 구니까 여자한테 질린다는 얘기가 나오고요.”

    ―복수의 뜻을 좀 더 설명하신다면?

    “예를 들어 가정에서 소외된 남자는 직장에서 지나치게 권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어요. 반대로 가정에서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은 밖에서도 소통이 잘 되죠. 그게 안 되면 욕구불만이 쌓여 밖에 나가 성적 욕구를 풀기도 하고….”

    조한교수는 소통의 부조화를 여성 문제의 중요한 원인으로 설명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 들어보셨죠? 남자들은 항상 도구적 합리적으로 소통하려 해요. 고민을 얘기하면 남자는 ‘말해봐. 들어줄게’ 하면서 해결사가 되려고 해요. 반면 여자는 상담하는 사람의 동료가 돼 ‘나도 그런 문제가 있었어’ 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서로 감정으로 통한 후 문제를 풀어 가죠. 이건 굉장히 다른 소통법이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부부도 굉장히 도구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요. 같이 놀고 같이 풀 수 있는 영역이 없어요.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는 사회, 관계가 없는 사회, 배려가 없는 사회예요. 이런 극도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 이 점이 페미니스트의 과제죠.”

    그녀는 “소통이란 끊임없이 무엇을 만들어 가는 행위다. 소통이 없는 사람 관계라는 것은 끊임없는 소외의 재생산”이라며 소통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페미니즘의 배경은 산업화

    ―페미니즘 이론의 출발점이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것 아닙니까.

    “보통 젠더는 ‘사회적 성’으로, 섹스는 ‘생물학적 성’으로 부르는데, 여성운동 초기 슬로건은 ‘남녀는 같다’는 것이었어요. 조선시대부터 남녀유별 교육을 받았던 우리는,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히 비교할 생각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산업사회가 되자 남녀가 같은 일을 하고 교육도 같이 받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여자들도 다 잘하거든요. 페미니즘 이론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거예요. 여자들이 ‘이젠 차별하지 마라’ ‘남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르게 길러졌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한 거죠. 기회를 균등하게 달라. 그것이 바로 1기 페미니즘의 핵심이에요.

    2단계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데서 출발해요. 여자가 의사가 된다? 그러면 어느새 의사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져요. 교사가 너무 좋아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돼보니 교사 가치가 떨어지고. 어느 직업이든 여자가 60∼70%를 차지하면 사회적 가치가 떨어져요. 이게 뭐냐. 이게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구나. 여성운동이 권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여자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라고 주장하게 됐죠. 예컨대 가사는 사회적으로 워낙 중요한 일이니 개인 노동이 아니라는 거죠.”

    ―게임을 통해 여자들의 한계를 인정했다는 뜻인가요.

    “게임 자체만 바라보고 남자들과 똑같이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재생산하고 보살피고 소통하는 여자들의 기술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자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 평등해지자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소통을 알고, 보살필 줄 아는 남자를 만들 거냐, 그런 문제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남자를 개조하겠다고요?

    “선택의 문제이긴 한데… 여성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남자들 중에서도 그 일이 좋아 선택하는 사람이 생길 테죠.”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라는 요구는 물질적인 요구인가요?

    “이탈리아에서는 정부에서 가정주부에게 돈을 지불하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어요. 남편으로부터 받으면 노예화되니까.”

    ―2단계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의 주류입니까?

    “서로 보완을 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도 지금 여성 할당제를 시행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의식의 전환이 중요하죠. 여자들이 그 게임 룰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피해를 입는 거예요. 장관 하다가 금방 옷을 벗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여자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남자 공무원이 자신의 상관인 여자 장관을 ‘아키꼬’라고 부르질 않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룰이 아직 남아 있는 거예요.”

    ―한국 사회를 보면 남자들 마음 한 구석에 견고한 성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이 남성우월주의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런 의식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듯싶어요.

    “한참 논리적으로 얘기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그래도 다르다’고 하거든요. 논리의 문제예요. 다른 점도 있겠죠, 물론. 그런데 그 차이가 여성 차별 관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인지 따져 봐야죠.”

    ―페미니즘이 이혼 조장, 가정 붕괴 등 공동체 가치를 파괴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이에요. 그런 현상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사회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육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지 페미니즘 탓이 아니에요. 페미니즘은 그 문제를 푸는 하나의 방안을 내놓았을 뿐이에요. 그 안을 합리적으로 따지면서 다른 양육 방식도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색 과정에 남자들도 적극 참여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가정도 살려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입니다.

    그 전까지는 잘 살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다들 ‘아파트 평수나 늘리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요. 열심히 산다고 아파트 평수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서울대 보내겠다고 해서 다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삶이 뭐냐, 이런 얘기를 하게 됐죠. 결론적으로 말해 파탄은 페미니스트 탓이 아닙니다.”

    조한교수는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비판론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 따르면 ‘파탄’의 원인은 하드웨어 중심의 압축적 경제성장과 그것이 낳은 불균형, 거대 권력 국가주도적인 경제발전의 후유증이다. 그녀는 “파탄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이 사회의 문제를 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못박았다.

    남녀관계는 권력관계

    ―여자가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일부 공산주의국가에서는 여자들에게 남자들과 똑같이 일거리를 주는 대신 국가가 아이들을 맡는 제도를 운영했잖아요. 그런데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죠?

    “위에서 주도한 개혁의 한계죠. 가정까지 국가가 통제해 ‘애를 탁아소에 보내라’고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요.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키부츠를 떠나는 부부들은 아이를 자기 손으로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잘 기르는 것, 이것이 대다수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죠. 또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그런데 남자는 밥벌이만 하는 생계 부양자로 전락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에서 소외되고. 남녀 두 사람이 같이 아이를 돌보면서 질 높은 탁아소에도 보낼 수 있는 캐어링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해요. 페미니즘의 목적은 가정파괴가 아니라 참 가정을 만들자는 거예요.”

    ―페미니즘에 대해 겉으론 남녀평등을 주장하지만, 속으론 남자처럼 되고 싶다거나 남자가 가진 권력을 뺏으려는 시도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중 남녀가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나도 남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예전엔 평등을 얘기하며 억울해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세상을 망쳐 놓은 데 대한 분노가 있을 뿐이에요.”

    ―최근 페미니즘에 맞선 남성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성도 피해자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성해방운동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권리 문제만 집착하는 근시안적인 운동도 있고….”

    ―권리 차원이 아니고요. 사실 가부장제만 하더라도 지금의 남성들이 원했던 제도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잖아요?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니까요. 왜 남성들이 여성운동에 동참하지 않는지. 우리 아들은 너무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페미니즘운동 기획하고 성폭력방지운동에도 나서고.”

    그녀의 진단에 따르면 지금 한국 사회엔 신뢰의 관계가 무너졌다. 경제발전 신화가 무너지면서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녀는 가정을 신뢰의 출발지로 본다.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 신뢰의 기본이 싹튼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나빠져야 남자들이 정신을 차릴 텐가, 하는 생각도 해요. 언젠가는 남자들이 우리(여자들)를 모셔갈 때가 있을 거예요. 장관 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뭐 중요하겠어요? 그 권력 가졌다고 행복할 것도 아니잖아요? 대안적인 힘에 만족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녀는 “남자들이 언제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살려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남자들의 지배욕망이 문제일까요? 호주제 폐지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집안의 중심은 남자가 돼야 한다고들 얘기한단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권력의 문제예요. 노예와 주인의 관계라든가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서 유추해 보는 것이 타당하죠. 그걸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안 되죠.”

    매춘여성 인권 종중해야

    ―페미니즘은 남녀 관계를 지배와 권력 관계로 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그 지배욕을 생물학적인 욕망으로 간주하면 샛길로 빠지는 거죠.”

    ―어느 글에선가 남성을 ‘여성의 희생 위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표현하셨는데, 남녀를 너무 적대적인 관계로 보시는 것 아닙니까.

    “적대적인 관계잖아요,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흑인운동을 하는 것은 백인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려 하는 거잖아요?”

    조한교수는 여자에게서 인류 구원의 가능성을 엿본다고 말했다. 여자는 애를 키우면서 그 애가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기 때문이란다.

    “여자는 남자보다 제대로 된 고민을 할 위치에 있어요. 남자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고민하는데 거기선 대안이 나올 수 없죠. 반면 여자는 자식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죠. 남자들에 대해 화도 나고. 세상을 망쳐놓고 그럴 수가 있나. 아이들이 방황할 때도 애들이 왜 저렇게 불안해할까, 여자는 계속 그런 걸 고민하죠.

    제가 일하는 ‘하자센터(서울시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에서 보면 청소부 아줌마는 아이들을 완벽하게 이해해요. 그런데 청소부 아저씨는 쟤들이 왜 저러나, 그러고 말죠. 그게 참 큰 차이예요. 남자가 행복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가장 가까운 여자와 소통하는 거예요. 그게 아마도 남자가 구원받는 길이 아닐까….”

    ―소통의 페미니즘이네요.

    “달리 말하면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만드는 페미니즘이죠.”

    ―남성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겠지요?

    “의식이 바뀌지 않으니 법이나 제도 등에 의해 혼이 나는 거죠.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서는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가 엄청난 벌금을 물어요. 그래서 대학 당국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 변호사나 성폭력상담소 사람들을 초빙해요. 그들이 출석 불러가면서 교수들을 교육해요. 그런 식의 의식교육이 필요해요.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여자들도 더 이상 못 참으면 이혼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 세대에 여자들의 위치가 나아지죠. 여자가 ‘노’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 그 체제가 유지되면 세상은 더 나빠지겠죠.”

    ―매매춘 문제는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딜레마 아닙니까.

    “문제가 복잡하죠. 그런데 남성 중심적인 성 개념이 바뀌지 않으면 남자들은 계속 소외된 쾌락을 찾게 되요. 여자들도 따라서 그걸 즐기게 되고. 어쩌면 남성 매춘부를 찾겠죠. 요즘 신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절제의 민주주의, 절제의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죠. 페미니스트들이 내놓을 대안도 소외되지 않은 성을 찾는 거지, 남자가 하니까 여자도 한다, 그런 건 아니죠.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찰나적인 성을 즐기게 되겠죠.”

    ―매매춘 문제의 해결책이 있을까요? 여성계에서 그 방면으로 연구를 많이 할 듯싶은데요.

    “많이 연구하죠. 각 국의 여성운동가들이 연대도 하고요. 예를 들면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섹스관광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어요. 동시에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매춘여성들은 그 일을 하도록 해야죠. 그 여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죠.”

    ―직업의 자유 차원에서 인정하는 건가요? 아니면 남자들의 타고난 성충동이나 성욕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겁니까.

    “직업의 자유로 봐야겠죠.”

    조한교수는 섹스에 있어서도 ‘소통’을 강조했다.

    “지금은 섹스가 유희가 돼버렸어요. 제대로 된 섹스는 남녀간 소통의 한 형태예요. 부부관계에서 섹스가 문제가 되는 것도 남자들이 소통적인 섹스를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성기를 삽입했다 빼기만하는, 성기 중심의 섹스는 여자들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죠. 전에는 그렇게 해도 그저 그런 건가 보다 했지요. 임신하고 애 낳기 위해 섹스를 했으니까. 또 정절을 지켜야 했고. 지금은 섹스가 그런 개념이 아니고 친밀성의 표현이에요. 그렇지만 친밀성 없이 섹스하겠다는 사람은 자위기구도 사고, 성을 살 수도 팔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은 사라, 이거예요. 다만 그런 데 가서 여자를 때린다든가 이상한 짓 못하도록 시스템을 갖춰야죠. 남자든 여자든 성을 사겠다면 사는 거지만, 바람직한 섹스는 제대로 된 소통으로서의 섹스죠. 요즘은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조선시대 사고로 섹스를 생각하면 안 되겠죠.”

    화제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로 돌렸다. 페미니즘 이론의 모순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여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억압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것도 권력 문제죠. 가부장제에서 자기 아들이 권력을 가지게 마련이고, 그 권력을 나눠 갖기 위해 애써 길렀는데 며느리가 그것을 빼앗으니 얼마나 미워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지만, 모든 여자가 동지일 순 없어요. 자각을 한 여자냐, 그렇지 않은 여자냐에 따라 차이가 나죠. 가부장제의 철저한 하수인이 여자들 중에 많아요.”

    ―시어머니가 하수인이라는 말이죠?

    “자각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렇죠.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며느리를) 가까이 두려 하고,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요.”

    ―결국 권력의 문제인데, 그것을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권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가부장이 권력을 진 상황에서 여자가 살아 남으려면 자신에게 권력을 줄 수 있는 남자를 확보해야 해요. 그런데 그걸 빼앗아 가려는 사람이 나타나니 본능적으로 미워하는 거죠.”

    도구화된 모성

    시어머니의 권력에 대한 비판은 고스란히 모성으로 옮겨갔다.

    “오늘날 모성은 굉장히 도구화돼 있어요. 내가 살 길은 아들이 잘 되는 것밖에 없으니까. 여자가 당당하고 자기 할 일이 있으면 진짜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다 사랑하게 돼요. 제도로서의 모성이 아니고 체험으로서의 모성, 그게 바로 측은지심이라고 보는데 그것이 가정에서 살아나고 사회에서도 살아나면 좋은 사회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도구화된 모성이란 아이를 서울대에 넣겠다는 욕심에 아이를 잡는 거예요. 여성운동은 모성을 버리겠다는 운동이 아니에요. 이렇게 변질된 모성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거죠. 제대로 모성을 발휘하고 싶다는 얘기죠. 그리고 남자도 모성을 갖도록 해야죠. 모성이 그렇게 변질된 것도 가부장제 탓이에요. 아들을 위해 죽겠다는 모성과 딸을 위해 죽겠다는 모성이 과연 똑같을까요. 여자들이 페미니스트가 된 배경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오빠를 편애하는 걸 지켜보면서 자란 상처가 자리잡고 있어요.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 여자라면 자기 자식 대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죠.”

    인터뷰가 끝날 즈음 조한교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인도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는 딸이었다. 조한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딸과 대화했다.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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