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코엘료의 마술에 걸려든 사람들

  • 글: 김현미 동아일보 미디어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4-09-24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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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엘료의 마술에 걸려든 사람들

    현실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주는 코엘료의 소설에 우리는 열광한다.

    책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긴 버릇가운데 하나가 뭔가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끝내 제목을 확인하는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가려진 제목을 살피다 상대와 눈이 마주쳐 민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마지막에는 읽는 이의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책과 독자는 묘하게 닮아 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눈에 띈 남녀는 공교롭게도 같은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들 손에 쥐어진 ‘연금술사’를 보며 ‘들고 다니기 좋게 앙증맞은 책’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다음날 지하철 문에 기대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있는 여학생을 보는 순간, 곧바로 서점에 달려가 ‘연금술사’를 샀다.

    책에는 2004년 8월27일 1판28쇄라고 기록돼 있다. 2001년 12월1일 초판을 찍었으니 3년 동안 40만명 이상이 읽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내가 코엘료의 소설을 진지하게 읽은 적이 없음에 무척 놀랐다. 브라질 출신 작가 코엘료의 소설은 전세계 56개 언어로 번역돼 6000만부 이상 팔렸고, 한국에 이미 5종이 출간돼 있으며 그중 2권이 베스트셀러 톱10 안에 들어 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제 코엘료란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하는 연금술

    안달루시아 들판을 양떼와 함께 떠도는 양치기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연금술사’). 손금을 봐주고 꿈을 해석해주는 집시 노파, 처음으로 ‘자아의 신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길을 가르쳐주는 살렘의 왕, 크리스털 가게주인, 연금술에 심취한 영국인,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여인 파티마, 진짜 연금술사. 하지만 소설에서 이들은 산티아고의 여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나왔나 싶으면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한신대 설준규 교수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실린 ‘베스트셀러의 겉과 속’이라는 글에서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제시된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한 차례 ‘눈요깃감’으로 그럴싸하다고 꼬집었다. 성인독자를 겨냥하면서도 동화적·우화적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아류쯤 되고, ‘높이 나는 자만이 멀리 본다’는 경구로 기억되는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고만고만한 소품이라는 지적에도 십분 동의한다.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위세에 편승해 이 작품의 의미가 과장됐다는 것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옷 입는 것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11분밖에 안 되잖아”(‘11분’). 섹스의 시간 11분을 소설로 쓴 그 발상에 신선함을 느꼈지만, 소설 말미 ‘작가노트’에서 코엘료는 1970년대 어빙 월리스가 쓴 소설 ‘7분’(그러나 출판 금지당했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타고난 미모를 믿고 고향 브라질을 떠나 스위스에 온 마리아가 창녀라는 직업을 통해 철학자로 바뀌어간다는 ‘11분’을 읽으며 작가의 설명대로 성(性)의 성(聖)스러운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건 대단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는 사랑을 속박이라 여기며 떠나려는 마리아 앞에 연인 랄프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이 솔직하다. 그것은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멜로드라마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코엘료가 보여주는 ‘영혼의 연금술’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영혼의 연금술’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준다. 코엘료의 비범함은 답을 말해주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연금술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네.” 나도 연금술사의 말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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