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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⑭

소쩍새 소리 그늘에서 유유자적 쉬어가는 나그네

충남 공주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소쩍새 소리 그늘에서 유유자적 쉬어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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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샛길 있는 데서 조금 더 진행하면, 오른편 야산 바위벽에 뻥 뚫려 있는 동굴 하나를 볼 수 있다. 공암(孔巖)이라 부르는 이 바위굴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서기(徐起)의 출생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서기는 토정 이지함과 함께 화담 서경덕 문하에서 공부했다. 도로 왼편의 공암마을이 서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이곳 부잣집의 종이었다. 처녀 시절, 그녀가 논에 새를 쫓으러 갔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비를 피하려고 이 동굴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길 가던 소금장수 사내 하나도 이곳으로 뛰어들어왔다. 다음은 뻔하잖은가.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서기였으니 서기는 평생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천출(賤出)이지만 그는 학덕이 높아 많은 저서와 제자들을 남겼다. 인근에는 그를 배향하는 사당도 있다.

터널을 통과하면 곧 청벽에 닿는다. 이쯤에서 4차선의 새 도로를 벗어나면 예전 도로를 만날 수 있다. 요기라도 하고 싶다면 이 길로 나가 청벽 어귀의 식당가를 찾으면 좋다. 참게탕이며 새우탕, 장어구이 등 민물고기로 만든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대교를 타넘어 북쪽 강안 도로를 달리면 머지않아 ‘석장리박물관’ 진입로가 나타나는데 무조건 차를 빼서 들러볼 만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석기 유물 전시관’이란 간판을 붙이고 있었던 점에서도 보듯이 이곳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구석기 유물이 출토된 뜻 깊은 곳이다. 잠깐의 공부도 공부지만 참하게 지어놓은 전시관 잔디밭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강과 산의 멋진 경치를 놓칠 수 없다. 그 아득한 과거의 사람들이 왜 이쯤에다 주거지를 차렸는지도 절로 알 만하다. 명창 박동진 선생이 생전부터 마련한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도 여기서 가깝다.

공산성(公山城) 소쩍새 소리

강 건너편 나지막한 산에 성벽이 걸려 있고 정자가 있는 풍광이 눈에 잡히면 공주에 다 온 셈이다. 번드레한 건물이 줄지어 있는 강 이편 신시가지는 봐서 뭣하겠는가. 공주대교만 넘으면 이내 운치 있는 공산성을 만나고 무령왕릉이 있는 둔덕에 오를 수 있는데 말이다.



술의 그늘

돈의 그늘

여자의 그늘에서도 끝내

쉬지 못하는 사내들의 넋들아

깊은 잠 이루지 못하는 숙맥들아

여기 와 잠시 쉬었다 갈지어다

희뿌연 밤안개의 잡목림 속

여리기에 더욱 또렷한

소쩍새 소리의 그늘에 와 잠시

지친 눈 지친 다리 쉬었다 갈지어다.

- 나태주 시 ‘공주 금학동’ 부분

토박이 공주 시인은 벌써 ‘쉬지 못하는 사내들’이며 ‘잠 못 이루는 숙맥’들을 초대하고 있다. 도시라고 해도 공주 일락산 기슭에서는 밤마다 소쩍새가 운다면서 하는 유혹이다. 금학동은 물론 시인이 사는 동리이기도 하지만 전통 깊은 공주교육대와 공주여고 등이 있는, 아직도 공주다운 맛을 그대로 지닌 마을이다. 나도 어느 땐가 지금은 작고한 신정식 시인을 좇아가 공주의 또 다른 시인 조재훈 선생과 함께 이 동리의 소문난 동동주를 마신 일이 있는데 글쎄, 그때도 공주교육대 뒷산에서는 소쩍새가 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편뿐인가. 무수한 송덕비가 늘어선 상수리나무 숲길로 해서 공산성에 오르면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보다 더 청량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산성 정자에 앉아 성벽을 내려다보고 성벽 아래의 강물에 눈을 빠뜨리고 있노라면 문득 그동안 내가 끌고 다녔던 지친 걸음과 정처 없던 넋마저 안쓰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여 웅진에 와서 이 고요 속에 한때나마 쉴 수 있음이 무한 고맙고 복스러운 것이다.

공산성은 백제의 웅진 천도 때부터 수도의 본거지였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자 왕좌를 물려받은 문주왕은 눈물을 머금고 천도를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475년). 100년도 못 되지만 웅진 백제의 역사는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시작됐다. 당시 백제의 왕궁도 이 성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멸망 때에는 의자왕이 태자와 함께 이곳에 피신했다가 항복했다.

무덤 속의 시간

공산성을 나와 큰길을 건너면 곧 송산리 고분군이 있는 언덕바지를 오를 수 있다.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 세상의 이목을 모았던 이곳 고분군에 서면 동쪽으로 공산성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금강이 아늑히 감싸 돈다. 동남쪽으로는 계룡산이 전면에 펼쳐 있어 풍광 또한 뛰어나다. 편의상 고분은 제1호, 제2호, 제3호 식으로 호칭하는데 그중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굴된 제6호분은 무령왕릉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이곳을 대표하는 백제 왕릉이었다. 유일한 벽돌무덤 인데다 사신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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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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