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대통령은 자질에 문제, 비서진은 ‘무능한 좌파’”

  • 대담: 유영을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장 youngeul@donga.com 정리: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7-2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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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은 ‘개혁 찬스’ 모두 놓쳤다
    • 경제 좋아지면 ‘대통령 불인정’ 발언 수정하겠다
    • ’노무현 신당’은 뿌리 없는 정당될 것
    • 당을 바꾼다는 것은 사람을 바꾼다는 것
    • 전국 지역구마다 총선 후보 ‘국민참여경선’ 고려
    • 국회의원 수 300명까지 늘려야
    • 한나라당 진로는 안정된 변화 추구하는 ‘개혁적 보수’
    • 비례대표 여성비율 50% 보장 소선거구제 양보 못한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7월8일 대구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분열, 경제난, 안보위협 가중 등을 이유로 들었다. ‘조선일보’ 출신 한 정치인은 “신문기자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 것 같다”고 최대표를 평가한다.

    2003년 2월 초 고건 총리후보 인준여부를 놓고 한나라당에 부정적 기류가 우세했을 때였다. 의원회관에서 만난 최병렬 의원에게 “어떻게 투표할 거냐”고 질문했다. 그는 “찬성표 낼 겁니다”라고 딱 부러지게 밝혔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때 고건 당시 국민회의 후보와 최병렬 한나라당 후보는 정말 세게 붙은 적이 있다. 감정의 앙금도 생길 법했다. “그 때는 그 때고 행정달인, 청렴성은 인정해주어야지요.”

    “국정을 결딴냈다”

    “최병렬 대표는 단호하다. 동시에 뒤끝은 없다.” 최대표 측근들의 말이다. 원내1당 대표의 역할에 필요한 결단력과 유연성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최대표는 “최딩크가 되어달라”는 덕담을 들었다. ‘최틀러’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이는 별명이다. 그러나 ‘최병렬체제의 한나라당’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여권의 신당 창당 및 정계개편 소용돌이는 한나라당에도 직간접적 파장을 미치고 있다. 개혁성향 의원 5명은 보란 듯이 탈당했다. 당 개혁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중진 보수성향 의원들도 제 목소리를 낸다. 특검법 처리 등 각종 현안을 두고 한나라당과 현 정권의 대립도 첨예해지고 있다. 7월10일 오후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최병렬 대표를 만났다.



    -대표경선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우선 노무현씨 덕이 큽니다. 나라가 불안하고 많이 흔들리니 국민들 사이에선 야당이라도 역할을 잘해서 나라를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이는 당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 정부가 잘하는 것은 화끈하게 도와주고, 비판할 것은 확실하게 비판하고 제동을 걸겠다는 내 말이 국민들의 기대나 심정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정치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나와 라이벌 관계였던 후보가 여러 장점이 많았던 반면 명분에 결정적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승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대표는 인터뷰 첫머리부터 노무현대통령을 거론한다. 지난 7월8일의 대구 발언은 일과성이 아닌 듯했다.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5개월여의 국정운영에 대해 평가해 주시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나라의 메인스트림이 우에서 좌로 바뀐 결과입니다. 나중에 역사는 그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은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널리 확산되어 있었고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층의 구조적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을 잘 활용했으면 상당히 민심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개혁을 해나가는 데도 탄력이 붙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반대로 국정을 완전히 결딴내놓고 말았어요.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모든 것이 함께 주저앉는 형국이에요”

    “한가한 ‘네덜란드식’ 얘기만 한다”

    -경제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침체에는 경제 외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동대문의류상가는 텅텅 비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업은 투자의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신용불량자는 300만이 넘고 실업자도 늘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으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매 걷고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경제위기 때 대통령이 총력전을 펼치며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모습을 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는데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 많은 신당이 노대통령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신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건 대통령의 책임 아닌가요?”

    -얼마전 최대표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말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그런 표현을 한 겁니다.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 중에는 기본적인 자질문제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청와대 팀의 문제가 주원인인 것 같습니다. 인사의 잘못 역시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왔다갔다 하고, 국정경험은 없고 운동권 경험밖에 없는, 코드 맞는 사람만 청와대에 갖다 놨으니….”

    -최근의 국정 혼란에 대해 청와대 비서진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입니까.

    “현 정부를 끌고가는 엔진이 청와대 아닙니까. 노사분규 해결 누가 했습니까. 청와대가 했습니다. 현재의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기준으로 보면 좌파도 한참 좌파입니다. 나는 옛날 사람들처럼 색깔론 차원에서 빨갱이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좌우 이념스펙트럼으로 평가했을 때 한참 좌파라는 것입니다.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네덜란드 방식 운운하며 우리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한가한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의 미국, 일본, 중국 방문 성과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안 한 것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미국 가서는 상당히 잘했다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대통령의 노력에 걸맞은 실질적인 효과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일본방문의 경우엔 애초부터 현충일 방일 논란이 제기됐고 일본에 가서도 국민들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가서도 대통령이 말을 좀 신중히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혼선이 생긴 것 같더군요.”

    -아직 임기 초반인데 대통령 불인정 발언이나 비관적 평가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내 얘기는 수정하겠습니다.”

    “공천틀 잘 만들어 기득권층 견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최병렬 대표는 “국정을 결딴냈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최대표는 ‘청와대 비서진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무능력하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대통령에 이어 청와대 비서진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가한 셈이다. 이번엔 한나라당 내부로 방향을 바꿔봤다.

    -대표 경선 때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을 확 바꾸겠다고 했는데 당 개혁과 관련된 복안은 무엇입니까.

    “당을 바꾼다는 것은 흔히 사람을 바꾼다는 것으로 얘기합니다. 이와 관련해 물갈이, 인적 청산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됩니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는 총재 1인이 공천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바뀌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상향식 공천을 하기로 당헌 당규에 못박았습니다. 상향식 공천과정에선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지역구 주민들도 상당수 합세하게 될 것입니다.

    상향식 공천의 틀을 잘 만들어 기득권층이 신인의 정계진출을 막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할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역 국회의원들도 지역주민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경선의 틀을 공정하게 만들어 사람을 바꾸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표는 ‘경선’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년 총선 전 지역구 주민이나 당원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는 듯했다. 최대표는 한나라당을 바꾸는 일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는 잠깐 말을 끊은 뒤 답변을 이어갔다.

    “한나라당이 달라지기 위해선 정책정당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정책정당을 해 볼 여건이 제대로 안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를 바꾸어야 합니다. 정책은 본래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데올로기를 만들면 이념정당으로서의 성격도 생기고 거기서 정책정당의 가능성이 나오게 됩니다. 나는 한나라당이 지향해야할 이념을 개혁적 보수로 봅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수구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해 나아가야 보수입니다.

    과거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엄격히 주장하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보수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과거 보수의 바탕 위에 투명성, 공정성, 사회정의에 부합하도록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수구가 됩니다.

    한나라당은 통일에 반대하고, 재벌을 옹호하며, 서민의 아픔을 모르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를 추구함으로써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켜나가야 합니다.”

    “대표경선 결과 승복이 전환점 됐다”

    -하지만 20, 30대들이 한나라당을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은 오랫동안 보수적 성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전체 유권자의 47~48%를 차지하는 20대, 30대 유권자들과 단절돼 있었습니다. 20, 30대와 단절되면 죽은 정당이 됩니다. 앞으로 한나라당은 디지털정당으로 탈바꿈해 사이버세계로 집중해 나갈 것입니다. 우선 인터넷이나 모바일폰을 집중공략할 예정입니다.

    당내에 디지털기획단을 만들어 활동할 것입니다. 몇 달 후엔 팩스가 한나라당에선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이메일, 핸드폰을 통해 당의 활동 내용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의사, 약사, 전교조 등 직능별 웹사이트와 이메일을 파악해 이들과 정보를 교류할 것이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쯤엔 컴퓨터 키를 누르면 광화문네거리에 10만, 20만명이 모이는 청년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 대표는 “디지털기획단을 만들어 젊은 유권자들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겠다”고 말했다.

    -상향식 공천 등 최대표께서 추진하려는 개혁작업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 저항 움직임은 없습니까.

    “정당 조직의 핵심은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당이 바뀌어야 내년 총선에서 당선이 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없습니다.

    -대표 경선 후 일부 후보와 갈등이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대표 경선 후유증은 없습니까.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선출된 뒤 경선에 출마한 6명의 후보들이 서로 끌어안으며 축하해주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상당한 감동을 줬다고 자평합니다. 대선 패배 이후 낙담하고 있던 한나라당 당원들에게도 자긍심을 줬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수구꼴통, 경상도 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에도 찬스가 있다’는 자신감을 당원들이 느꼈을 겁니다. 현재는 한나라당이 뜻만 모아서 밀고 나가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최대표의 답변 중에 나온 ‘개혁적 보수’라는 말이 주목을 끈다. 개혁세력과 보수세력 모두를 끌어안겠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었다. 그동안 정치권은 개혁이면 개혁, 보수면 보수로 입지를 분명히 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따뜻한 보수론’을 주창했다. 보수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중도, 진보주의 세력을 포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여기엔 ‘변화’에 대한 적극성보다는 ‘지지기반의 확장’ 의지가 훨씬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정치개혁’을 내세웠다. 지지기반과 지향점을 한정시킨 대신 자신이 변화를 이끌 개혁세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혁적 보수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잘못된 현상이 있습니다. 개혁과 보수를 대립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일입니다. 이는 맞지 않습니다. 보수와 대립되는 개념은 개혁이 아니라 진보입니다. ‘개혁적 보수’란 안정을 담보하는 보수적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을 개혁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진보만이 개혁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지지를 계속 얻어가면서 당 안팎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 최대표는 ‘개혁적 보수’라는 어젠더를 들고 나온 듯했다. 그러나 최대표에게 첫 시련은 바로 그 ‘개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온 한나라당소속 의원 5인의 탈당이었다. 최대표는 이들과 만나 탈당을 적극 만류했으나 실패하자 “성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5명의 탈당 의원들은 ‘지역주의정당 극복’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에선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가 불가능해 탈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지역주의당, 수구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탈당 의원들의 주장이 힘을 받으면 한나라당은 인위적 정계개편 또는 선거를 통해 축소,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대한 최대표의 생각을 들어봤다.

    “자민련은 실체 있는 정당”

    -개혁성향 의원 5인의 탈당은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상처를 안겨준 것 같습니다. 탈당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당대회가 끝난 뒤에도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의 논리는 ‘정치가 3김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원수 같은 지역정당의 벽을 허물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걸 하려면 전국 정당을 목표로 몸을 던져봐야겠다’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은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가면 바위에 박치기를 하는 것이다. 그건 안 된다’며 말렸습니다.

    나는 그분들에게 ‘선진국처럼 이념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벽이 허물어진다. 지금 나가서 하루아침에 지역의 벽을 어떻게 허물겠느냐. 그걸 하려면 이 당 안에서 나와 함께 정책정당을 만들자. 그 틀 위에서 서서히 이념정당으로 가는 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벽이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이 16대 국회인데 18대, 19대쯤 가면 이념정당의 성격을 가진 정당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분들도 내 얘기에 이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좀 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굳어 있는 것 같아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5인의 탈당 이후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좀 막연하긴 합니다만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해 예측해주시죠.

    “어디까지나 가정으로 하는 얘기입니다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민주당 구주류를 중심으로 광주·전남을 근거지로 한 정당이 하나 나올 것 같습니다. 자민련도 실체가 있겠지요. 그 다음 우리 당이 있고 우리 당에서 나간 사람들과 현 민주당의 일부 사람들 등을 묶어서 당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은 뿌리 없는 당이 될 것 같습니다.”

    -향후 정치권 세력들의 이념적 구도는 어떠할 것 같습니까.

    “정당이 네 개가 된다면 노무현당과 신당이 우리보다 왼쪽에 위치할 것입니다. 우리는 중도우파나 중도파가 될 것이며 민주당은 중도파 정도에 자리매김을 할 것입니다. 자민련은 우파가 되겠지요.”

    -여권의 신당창당 움직임에 노무현 대통령도 관여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이 원내 과반의석이 안 되면 반쪽 대통령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신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도 장악하겠다는 저의가 드러나는 발언 아닙니까.

    얼마 전 유인태 정무수석이 한나라당을 방문했습니다. 나는 유 수석에게 ‘대통령과 청와대는 신당에서 손 떼고 경제살리기에 나서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수석은 ‘손 댄 게 없으니 손 뗄 게 없다’고 답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유수석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현재의 민주당도 대권과 당권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굳이 원내 다수의석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한 칸 위에 올라서서 여야를 컨트롤했으면 합니다. 대통령이 경제 살리고 사회질서 바로잡겠다면 한나라당은 전폭적으로 도와줄 겁니다.”

    “총선 후 국무총리 지명권 사양”

    -한나라당 대표경선 과정에서 서청원 후보는 총선 후 국정분담론을 주장했습니다. 대통령도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총선 후 다수당에게 총리지명권을 주겠다는 언급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를 수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책임지도록 되어 있는 대통령책임제 헌법 아래에서 야당이 국무총리를 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야당에서 보낸 국무총리가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하면 국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는 프랑스처럼 행정권이 대통령과 총리 양쪽으로 확실하게 나눠져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최대표께서 4년중임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해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중임제 개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내각제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답변하는 차원에서 한 말입니다.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내각제 개헌을 위해선 내각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각제 지지율이 35% 넘는 것을 못 봤습니다. 그리고 2005년 쯤엔 당내의 유력 후보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입김이 커지는데 내각제가 되겠습니까. 나는 절대로 안된다고 봅니다.

    다만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 공히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거가 엇박자가 되어 매년 선거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비경제적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같은 해 실시되는 2008년부터는 현재 5년인 대통령 임기를 국회의원과 같은 4년으로 1년 줄이는 대신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하자는 것입니다.”

    올해 초부터 정치권에선 내각제를 매개로 한 여야 정치세력의 연대가능성이 심심찮게 거론됐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규택 전 원내총무에 이어 홍사덕 신임 원내총무도 내각제 필요성을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최병렬 신임 한나라당 대표의 ‘내각제 불가’ 언급은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에 상당한 제동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 일각에서는 영남권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폭적인 물갈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말씀하시긴 어렵겠지만 그런 복안을 갖고 있는지요.

    “제도의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은 주민과 당원들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공천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틀에 대해선 지금부터 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처럼 총재가 공천을 좌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권-당권 분리는 내가 처음 주장해서 우리당으로 확산됐고 민주당에도 영향을 미친 사안입니다. 내가 상당히 개혁적인 사람입니다.(웃음)”

    -그러나 일부에선 최대표가 보수적 이미지가 강해 개혁적 보수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내가 노동부 장관과 공보처 장관을 역임할 때의 잔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노동부 장관을 하던 시절엔 지금의 노사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책상 위에 불법파업 보고서가 300~400건씩 올라와 있었습니다. 경찰도 안 도와주고 기업주만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부천의 한 사업장에선 직원들이 사장을 드럼통에 가둬 마당에 굴리기도 했습니다. 장관 취임 후 나는 법대로 노사문제를 다뤘습니다. 전쟁을 선포한 셈이었지요. KBS 노사분규도 진압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거의 매일 나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신문 보도에 대해 일절 불평하지 않고 장관직 수행에만 전념했습니다. 6개월이 지난 뒤 질서가 잡히고 ‘무노동 무임금’ 제도화에 성공하자 그 다음부터 그 신문은 나에 대한 비판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뇌리에 내가 ‘보수의 수괴’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생긴 대로 살 뿐입니다.”

    -선거구제 개편론도 제기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견해는….

    “우선 여야협상을 통해 비례대표를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여성의원을 더 많이 배출할 수 있습니다. 비례대표 순위를 1,3,5,7 식으로 남성과 여성을 엇갈리게 배치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는 국회의원 수를 조금 늘려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의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됩니다. 인구를 고려했을 때 300명을 넘지 않으면 국민들도 받아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70~80여 명의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면 국회는 확 달라질 겁니다.”

    -전국구 의원을 늘리면 공천권 행사 등으로 인해 제왕적 대표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 정당의 지도부가 전국구 의원 자리를 돈을 받고 팔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돈 받고 파는 짓은 죽었다 깨도 못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입니다. 판검사나 의사 중 여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정치만 늦게 바뀌고 있습니다.”

    -여권에서 주장하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정당투표제는 따로 하되 광역별로는 반대합니다.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정당투표제의 병행실시를 추진할 것입니다. 선거구제에 대해 우리는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50대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는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입니까.

    “60세를 넘지 않은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게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될 때 60세를 넘으면 노인으로 보니까. 60세에 조금 못미치는 선을 한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손학규, 김혁규씨에게도 찬스가 있습니다. 우리 당의 40, 50대 의원 중에 스타기질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포토제닉하고 언변 좋은 사람 많습니다.

    다음 대통령선거는 2007년에 하는데 그때 당선되는 대통령은 통일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또한 국민소득 2만~3만 달러로 치솟을 수 있는 민족웅비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게 한나라당의 목표입니다.”

    -당 대표를 지내다보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기 대권에 출마할 생각은 진짜 없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은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나이 70이 되어 대통령은 무리라고 봅니다. 내 경우엔 (출마해 당선된다면) 대통령이 되는 해의 나이가 69세가 됩니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논란이 분분합니다. 대표께서는 언론인 출신이라 하고 싶은 말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노대통령의 말재주가 현란합니다. 그래서인지 노대통령은 말에 대해 너무 자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과 싸우는 사람은 속된 말로 모자란 사람입니다. 언론과 왜 싸웁니까. 언론이 정치적 저의가 있어서 비난하고 비판한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언론이 있다면 그건 삼류 사류 신문입니다.”

    -대표께서는 ‘조선일보’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노대통령이 ‘조선일보’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며 비판하니 좀 섭섭하겠습니다.

    “‘조선일보’가 잘못 보도한 것이 있으면 언론중재위나 사법기관에 제소하면 됩니다. 특정 언론사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KBS 예산의 국회 심의를 추진하는 등 한나라당도 언론사인 KBS와 갈등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사전심의 문제는 한나라당이 카드로 갖고 있겠습니다. KBS노조에도 그런 취지로 얘기를 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방송사와 그 정도 일로 다툴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방송사가 무리하게 편파보도를 계속 할 경우엔 한나라당도 투쟁을 할 것입니다.”

    -최대표께서 정치에 입문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요? 그동안 정치판에서 많은 일을 겪었을텐데 ‘최병렬식 정치’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 밝혀주십시오.

    “1966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를 할 당시 국회의원들은 다 도둑놈으로 보였습니다. 당시엔 후원회 제도가 없었는데 의원들이 닥치는 대로 돈을 챙기는 것입니다. 의원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정치를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게 됐지요.

    나는 재산이 30억원 정도 되는 부자입니다. 기자 시절 회사에서 평당 1만8000원에 땅을 분양받았는데 팔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지금은 평당 1200만~130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 재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은 계보를 만드는데 계보라는 것은 결국 돈입니다. 후원회만으로는 계보정치를 못합니다. 계보정치 안하고 대표된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입니다. 돈 문제에서 나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계보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며 깨끗한 정치를 할 것입니다.

    나는 정치란 퍼블릭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통해 대중을 위한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현상을 개선하고 더 정의로운 정치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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