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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周遊天下 ⑤

“인격 갖춰야 보호령保護靈이 도와줘”

영안(靈眼)으로 前生보는 수산도사 방랑기

  • 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인격 갖춰야 보호령保護靈이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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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긴장합니까?”

“방 안에 저승사자가 와 있네요.”

“저승사자가 와 있단 말입니까. 저 데리러 온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설득해서 일단 밖으로 보냈습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필자가 그동안 수집한 임상 사례에 따르면 사람이 죽기 전에는 대개 한두 달 전부터 저승사자가 그 사람 주위를 따라다닌다. 물론 보통 사람의 눈에는 이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지만 영안(靈眼)이 열린 사람에게는 보인다. 꿈에 죽은 부모나 형제, 또는 조상의 모습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는 그 부모형제가 저승사자다. 나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아 저승사자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저승사자 말을 듣고 나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에게 “미분양된 아파트가 어디 있느냐? 아는 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판단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결단을 못 내리고 어물어물하면 물 건너가는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이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사를 하면 번지수가 바뀐다. 번지수가 바뀌면 저승사자도 헛갈려 한다. 반드시 못 찾아온다는 것은 아니다. 꼭 저승사자가 아닐지라도 운이 안 좋을 때는 거주하는 주거 공간, 사무실 등을 옮기는 게 좋다. 그날 택시기사와 함께 미분양 아파트를 물색해 당일로 계약금을 치르고 얼마 후 이사했다. 새로운 장소로 거처를 옮기니 차츰 몸 상태가 호전됐다. 언론 매체에 글 쓰는 일도 줄였다. 당시는 ‘신동아’에 ‘고수기행(高手紀行)’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갑작스럽게 이 연재를 중단해버렸다. 동아일보사에는 이러한 사정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쉰다고 짤막하게 말해줬다. 이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 수도 있다. 수산도사의 ‘저승사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왔다.



수산도사와의 인연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鷲靈山) 자락에는 필자의 글방인 휴휴산방(休休山房)이 있다. ‘쉬고 또 쉬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휴휴(休休)라고 지었다. 어느 날 휴휴산방에 놀러온 수산도사가 산방의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는지 필자에게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조 선생님 뒤에 커다란 붓이 보이네요. 보통 붓이 아니라 아주 큰 붓입니다. 처음 뵈었을 때는 팔뚝 크기만한 붓이었는데, 오늘 뵈니까 그 붓이 더 커져서 작은 전봇대만한 크기입니다. 조 선생님은 큰 붓을 휘둘러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붓을 안 휘두르면 안 됩니까. 붓 휘둘러서 먹고사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드네요. 이거 이 정도에서 그만두면 안 됩니까? 좀 쉬고 싶네요.”

“조 선생님 뒤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서 계십니다. 그 흰 수염의 노인이 아마도 보호령(保護靈)일 공산이 높습니다. 그 노인이 문장을 쓰던 분이었으므로 조 선생님은 평생 붓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팔자를 내가 보아도 나는 문필(文筆)과 인연이 있다. 조상묘를 문필봉(文筆峰)이 보이는 곳에 썼고, 팔자도 목화통명(木火通明) 격(格)이라 글을 쓰는데 적합하고 문곡성(文曲星)과 학당(學堂)이 비추고 있으므로 유·불·선 3교와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글을 쓸 운명이다. 같은 별이라도 문창성(文昌星)은 법학이나 경영학처럼 살아서 빛을 보고 돈이 되는 분야의 글을 쓰지만 문곡성(文曲星)이 조림하면 별로 돈이 안 되는 음지의 분야에 대한 글을 쓰는 팔자가 된다. 어떤 판단이 정확하려면 사판(事判)과 이판(理判)이 일치해야 한다. 사판 다르게 나오고, 이판 다르게 나오면 골치 아프다. 마찬가지로 영안으로 보는 것과 사주팔자를 육십갑자로 풀어서 도달한 결론이 일치하면 그건 확실한 경우다.

“보호령이 위기 때 도와줘”

수산도사에게 물었다

“사람마다 누구나 보호령이 있는 겁니까? 아니면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겁니까?”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분야를 막론하고 보호령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령은 글자 그대로 그 사람을 보호해주는 영(靈)이죠. 보호령이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 위험한 순간에 그 사람을 도와줍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죽지 않고 운 좋게 고비를 넘기는 것은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 덕분이에요. 고려 때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이때 고려의 서희(徐熙)가 나가서 소손녕과 담판을 했어요. 국가의 명운을 건 담판이었죠. 서희와 담판을 벌인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철수시켰습니다. 서희에게 설득당한 셈이죠. 이러한 담판에는 알게 모르게 그 사람 개인의 기세(氣勢)가 작용하는 법입니다. 서희의 기세에 소손녕이 제압당했다고나 할까요. 논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기세에 눌리면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하는 법이죠. 서희에게도 강력한 기운을 지닌 어떤 보호령이 작용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세가 가장 센 기세입니까?”

“극귀(極貴)한 형태의 기세가 가장 강합니다. 아주 고귀한 형태의 기세를 극귀하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보았을 때 아주 고귀하게 느껴지면 그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적개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적개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기세가 고귀함이고, 이 고귀함은 고도의 정신 수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수양이 경지에 이르면 고귀한 기세를 자기도 모르게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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