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고 있는 경제개발 방식은 일종의 자력 갱생형이 될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북한은 ‘조선식 혹은 우리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같은 모델을 생각할 것이다” 》
지난 5월 말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은둔의 왕국’ 최고 지도자의 17년 만의 나라밖 외출이었다.
베이징의 한 관측통에 의하면, 당시 장쩌민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면서 시종 종이 위에 뭔가를 메모했다고 한다. 장주석이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손수 메모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무슨 얘기를 했기에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열심히 메모까지 했을까?
● 호기심 2
6월13일 오전,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은 거대한 쇼를 펼쳐보였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가 맞이한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이벤트였다. 심지어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늦춘 것도 이날 영접행사의 효과 극대화를 노린 ‘연출’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환영 인파가 양 정상의 이름과 ‘만세’를 연호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북한군을 사열하고 외교의전상 극히 이례적인 군의장대의 분열의식까지 치렀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그 뒤에 나왔다. 양 정상이 한 승용차에 나란히 동승하고 순안비행장을 떠난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전상의 파격이었다.
평양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는 그 한 시간, 남북 정상은 세상 어느 누구도 엿듣지 못하는 가운데 은밀한 시간을 가졌다. 과연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장쩌민 중국 주석의 메모
서양 속담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s the cat)”는 말이 있다. 지나친 호기심은 화(禍)를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두 가지 호기심은 한반도 주변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당사자들이 ‘당연히’ 가질 법한 호기심이다. 그중 상당수는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지금도 무진 애를 쓰고 있을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호기심이 지나쳐 고양이가 죽을 수도 있지만, 호기심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라는 무대에서 미미한 배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이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과 북한이 있다.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시종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고수해오던 북한은 왜 갑자기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중국을 방문했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반도문제는 한민족 내부문제로 남북한 쌍방이 해결해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이는 6월14일 밤 늦게 남북 정상이 서명한 ‘6·15 공동선언’ 첫 번째 항목으로 현실화됐다. 김위원장은 또 장쩌민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은 이제 막 고난의 행군을 끝마쳤으며 앞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발전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원은 북한의 현 상황으로 볼 때 밖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올해 내내 11월 대선 캠페인으로 어수선한 형국이고, 일본과의 수교협상과 그 과실인 청구권자금 역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북한에 당장 도움이 돼줄 수 있는 상대는 한국뿐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그랜드 디자인’의 시발점일 수 있다. 김위원장의 말마따나 (97년까지) ‘고난의 행군’을 지나 (98년부터) 강성대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북한이 다음 차례에 내보일 논리적 수순은 본격적인 경제재건이라는 것.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본격화될 북한의 경제재건 노력에서 한국은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물적 차원의 기반을 제공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중국도 북한의 주요 지원국이다. 일부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사실이지만,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에 향후 2년간 1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올해 지원분인 5억 달러 중 2억 달러는 식량으로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으로선 적어도 올해와 내년치 식량 걱정은 덜 수 있는 물량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에 가서 북한의 향후 진로와 전략을 설명하고 이런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혹은 북한이 구상중인 향후 한반도 주변의 정치적 세력구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협력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이는 미·일의 전역미사일방어(TMD) 구축문제 등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중국으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혹시 장쩌민 주석이 메모한 게 그런 내용, 이른바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아니었을까?
준비된 변화
북한은 이미 본격적인 변화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올해 1월 이탈리아와 전격 수교를 시발로 프랑스,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필리핀, 태국 등과 적극적인 외교교섭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초에는 비동맹 각료회의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지금 ‘은둔 사회주의 왕국’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이른바 전방위 외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주변 4강에 대한 외교도 전례없이 활발하다. ▲ 중국과는 3월5일 김위원장의 전격적인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방문에 이은 5월 말 방중(訪中) ▲ 러시아와는 지난 2월 러시아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조·러 신조약에 서명한 데 이어 푸틴 신임 대통령의 7월 평양방문 발표 ▲ 일본과는 작년 12월 무라야마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초당파 의원단의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수교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그 과정에 세계식량계획(WFP)를 통해 북한에 쌀 10만t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90년대 중반 이래 주된 ‘협상 파트너‘였던 미국과는 최근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문제와 대북 경제제재 추가완화,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를 터놓은 상태.
북한 내부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만 보면 작년 말 기업경영의 효율화를 위해 연합기업소를 해체하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경제사업에서 부쩍 실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북한판 실용주의’의 본격 대두다. 그런가 하면 올 신년사에서는 사상 중시, 총대(군사) 중시와 함께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내세워 경제건설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웬만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 성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당창건 55돌(올 10월10일)을 기점으로 정상적인 계획경제체제로 복귀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는 게 여러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
그러면 이런 북한의 변화는 단순히 최근 경제회복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보아야 할까? 다시 말해 98∼99년 어느 시점에 바닥을 치고 최악의 시기는 넘겼다고 평가되는 북한 경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 지도부는 경제난이 극에 달했던 97년에 이미 2010년을 목표 연도로 국가경제를 일정 궤도에 올려놓는다는 장기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주민들을 굶겨죽이는 그 와중에도 북한 지도부는 나름의 장기적 전략구도에 따라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구체적인 증거도 여럿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북한 당국이 97년 당시 농민시장 활성화 조치를 취했다가 다시 억제한 타이밍의 절묘함이나, 아사자가 속출하던 그 상황에도 통신망 정비와 도로공사를 벌인 예 등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북한이 단순히 생존에만 급급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의 와중에도 나름대로 중장기 국가발전 마스터플랜을 준비해오고 있었으며, 지금 그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도 이와 같은 구상이 한 가지 배경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른바 ‘2010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북한판 국가발전계획’에 따라 북한은 그동안 지역개발계획, 산업개발전략, 인재육성책 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시행해왔다고 말했다.
‘박정희 모델’ 혹은 중국식 개혁개방?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형태의 국가발전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일까? 한 나라의 총체적인 발전계획은 자신이 보유한 모든 자원과 가능성을 검토해 수립해야 하고,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 발전계획의 내용을 알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하지만 현재로선 지금까지 공개된 북한의 정책방향과 행태 등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다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활로에 대해 중국식 개혁·개방이나 박정희식 개발전략을 거론해왔다. 고작해야 6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금의 북한 경제가 기사회생해서 발전의 터빈을 돌릴 수 있는 방안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면 과연 북한은 이 두 가지 개발전략을 자신의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60∼70년대 한국식 개발모형, 일명 ‘박정희식 개발전략’의 요체는 ▲ 강력한 정부주도형 개발 ▲수출지향 경제 ▲ 소수 전략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로 요약되는 불균형 성장전략이었다. 말하자면 제한된 자원을 특정 산업에 집중 지원해 수출경쟁력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정부는 이를 집중 지원하는 전략이다.
제3세계 국가의 성장전략으로는 흔히 수출주도 공업화전략(EOI·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과 수입대체전략(ISI·Import Substitution Industry) 두 가지를 꼽는다. 박정희식 개발모델은 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역사적 결과로 본다면, 60년대 당시 수입대체전략을 채택했던 남미 여러 국가들은 결국 실패했고 한국은 신흥공업국으로 부상, 지금까지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모델이다.
많은 학자들은 박정희식 개발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서 당시의 전반적인 자유무역 분위기, 대내적 정치안정,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 외에도 ▲ 정부의 일관된 정책(지도자의 일관된 철학) ▲ 유능한 관료집단 ▲ 정부의 정책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에도 시장에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 등 몇 가지를 꼽는다.
그러면 지금의 북한은 60, 70년대의 한국이 갖고 있던 이러한 조건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일까? 연세대 정갑영 교수의 진단은 일단 부정적이다.
“북한에 한국식 모형이 성공적으로 도입되려면 적어도 몇 가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전면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경제부문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시장경제적인 유인을 과감하게 도입해야만 한다. 모든 업종에서 민간의 실리추구를 용인하고, 국영부문에 의한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며, 시장에서 자유로운 이윤추구 행위를 보장해야만 한다.(…)
또한 전면적인 체제 개방도 이뤄져야 한다. 체제개방과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외국인 투자도 이뤄지고, 기술도입도 가능하고, 외국으로 수출도 가능해진다.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한국적 개발전략의 북한 적용 가능성 진단’)
그러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종래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해 성과를 축하하고, 짧은 체류일정에도 짬을 내 컴퓨터 생산공장을 시찰한 사실 등을 놓고 북한도 중국과 비슷한 경로를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당장 중국식 모델을 적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의 요체는 정경분리다. 즉 정치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경제는 자본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인데, 북한이 자본주의를 도입해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함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통해서 국제사회에 북한도 유망한 투자지역이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결국 여기서도 개혁·개방의 폭과 심도가 하나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정희식 개발전략이 됐든,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이 됐든 대전제는 북한이 전면적인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인데, 북한으로서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이 전면적인 체제위협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외부 수혈로 근근이 연명하는 현 상태를 마냥 유지해갈 수도 없다. 외부 원조가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엄청난 수의 아사자를 속출해가면서 ‘고난의 행군’을 거쳐온 북한 지도부도 이제는 나름의 미래 청사진을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
한 전문가의 말이다.
“북한은 2000년 상반기를 본격적인 경제재건에 시동을 거는 시기로 보고 있는 듯하다. 예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적극 외교, 외국인투자 관련법규 개정과 과학기술 개발 등 제도 정비와 전 부문에 걸친 실용주의 노선 강조 등 대내외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들의 대전제는 ‘통제 가능한 범위 내’라는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활기를 띨 경제교류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6·15 공동선언으로 인해 한국에는 본격적인 대북진출 물꼬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그들이 원하는 분야와 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로 대남 접촉면을 제한하리라는 것이다. 예컨대 당장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될 남한의 유휴석탄 1천만t은 환영하겠지만, 무슨무슨 대규모 SOC 건설공사를 위해서 남한측 인력이 대거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사양하는 식이다.
아무튼 지금으로서 분명한 것은 북한의 향후 행보가 박정희식 개발모델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개혁·개방과 체제안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 극단 사이의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방식, 정치적 부담이 덜한 분야에서는 최대한 실리주의를 추구하되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경제 사안, 이른바 ‘독이 든 사과’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 내부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고 있는 경제개발 방식은 일종의 자력갱생형이 될 것이다. 물론 대외 원조를 받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북한 내부에 잠재하는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 그럼으로써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북한은 ‘조선식(혹은 ‘우리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같은 모델을 창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수레바퀴는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다시 멈추기도 어렵고, 종국에는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속성을 갖는다. 아무튼 북한은 이제 변화의 시동키를 돌렸다.
개방지역 선정
그러면 북한은 지난 몇 년간 경제회생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왔으며, 97년부터 2010년을 목표 연도로 삼아 구상해왔다는 ‘계획’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북한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판 국가발전계획의 한 가지 예로 거론될 수 있는 게 일종의 국토개발 전략, 그중에서도 경제특구 입지선정 문제다. 전통적으로 도농(都農) 균형개발을 국토개발 기본 정책으로 삼아온 북한은 90년대 이후 잠재적 전략지역 육성에 신경을 쏟아왔다.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정한 나진·선봉지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일반론으로 보면 북한의 전략지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신의주 만포 두만강 혜산 회령 등 북중 국경지대와, 원산 남포 청진 해주 흥남 등 동·서해 연안지역이 그것이다. 북중 국경지대는 대륙으로 향하는 전진기지로서, 동·서해안 지역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전략지역 선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①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여타 지역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지역 ② 대외협력 및 투자유치의 잠재력이 높은 지역 ③ 기존 개방지역 및 향후 개방이 가능한 지역 ④ 해양과 대륙의 연결이 용이한 물류 거점 ⑤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중국·러시아 국경지역 등이다. 북한이 이미 개방 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 나진·선봉 지역과 신의주 남포 해주 원산 등이 그런 예들이다.
여기서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에도 도로망과 통신망 정비·건설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내륙을 가로질러 동·서해안 연안도시를 연결하는 남포-원산 고속도로 건설이나 평양-원산 도로정비, 전국적인 광케이블 공사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다. 광케이블 공사는 97년까지 전국 66개 시·군에 완성됐으며 평양-신의주를 잇는 광케이블망도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동시에 전략적 개발지역의 잠재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한 재미동포의 말이다.
“나진·선봉지역이 1997년에 들어와 투자 부진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북한은 그 대안으로 원산과 신의주, 남포를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의주는 중국과 연계되는 지역으로, 원산은 일본과 연계되는 지역으로, 남포는 한국 기업들을 수용하는 단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바다를 낀 3개 지역이 개방되면서 평양은 이들 지역에 대한 통제센터로 남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구상은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서 7∼8년 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정책이면서도 그동안 외부세계로부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인재 양성정책도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공화국 천재양성소’를 만들고, 이들을 당 지도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분야에서 과거의 전형적인 최고 엘리트들은 김일성종합대나 김책공대 출신 당 일꾼으로 인민경제대학에서 재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활동한 이른바 ‘붉은 자본가’들이었다. 그런데 5년 전쯤부터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 대폭 확대·강화됨과 동시에 세분됐고, 교육대상 연령층도 한결 내려갔다. 이들이 각 전공분야의 산업에 투입되거나,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새 분야가 개발되고 있다”
엘리트 육성정책과 소프트웨어산업의 예
이렇게 해서 현재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 예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다. 북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분야의 대표기관으로 알려진 조선컴퓨터센터(KCC)에 근무하고 있는 4000여 직원 중 20∼30대의 젊은 프로그래머는 900∼1200명에 달하는데, 이중 상당수가 영재관리 프로그램으로 양성된 인력이라는 것. 관계자들은 북한의 소프트웨어 중 몇몇 분야는 우리 기술수준에 전혀 손색이 없으며 일부 분야는 한국을 능가한다고 말한다. 중국 베이징을 근거로 대북관련 사업을 하면서 작년에는 북한 컴퓨터 기술진 10여명을 베이징에 불러다 합숙교육을 했던 한 재미동포는 “북한 젊은이들의 열정이 대단하더라”고 감탄했다.
“몇년 전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프트웨어를 공부한다는 한 북한 대학생에게 도스(DOS) 언어책을 한권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는데, 일주일쯤 뒤에 보니까 그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괜찮은 컴퓨터 한 대 접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초를 워낙 탄탄하게 다져놓으니까 나중에 고차원의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가도 이해가 무척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환경에서 배운 한국의 젊은이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소프트웨어산업의 경우 제조업 분야와는 달리 도로, 항만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시설 여부와 무관하게 우수한 두뇌만으로 발전이 가능한 분야라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에서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동안 국내 일각에서는 북한의 향후 전략산업 육성과 관련, 60∼70년대의 한국처럼 중화학공업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당장 시급한 생필품을 공급할 경공업 위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러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예에서도 보이듯 북한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분야는 경공업도 중공업도 아닌 ‘북한에 필요하고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개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핵과 미사일은 안보 차원에서 먼저 논의돼야 하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핵은 북한에 대규모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 즉 에너지문제로 귀결됐고, 미사일 문제도 그런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북한은 항상 그 시점에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식의 합리적인 결정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주도형 벤처’ 모색중
근년에 들어와서는 북한 지도부가 ‘벤처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다소 ‘엉뚱한’ 소식도 들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년 사이 한국에서 일어났던 벤처붐을 면밀하게 관찰해왔고, 북한에도 이런 사업 모델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개인이 아직 본격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없는 북한이 벤처 분야에 진출한다면, 이를테면 ‘국가주도형 벤처’ 형태가 된다.
이에 화답하듯, 얼마 전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을 주최했던 KTB(대표 권성문)는 최근 남북합작 벤처사 설립계획을 언론에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즉 중국 베이징에 남북합작 혹은 한중합작 형식으로 벤처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KTB 네트워크가 투자한 기업들의 모임인 KTBN클럽 회원사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 권성문 사장은 “남측이 IMF 위기상황을 벤처붐으로 극복했듯이 북한에 활용 가능한 벤처 비즈니스 모델로 북쪽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 다른 소식통은 “북한은 지금 베이징 등 제3국에 수십개의 벤처기업을 세운다는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60년대의 우리나라 수준밖에 안되는 북한에 무슨 벤처사업 아이템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북한체제의 특성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찾아보면 북한만이 가진 노하우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꽤 된다. 예컨대 고(故) 김일성 주석을 상대로 완벽한 임상실험을 해온 건강, 장수(長壽) 관련분야에서만 독창적인 벤처기업이 여러 개 나올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애용했던 비법이라면 누군들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벤처분야는 북한이 처한 현실에서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사안이다. 사회간접자본도 취약하고 자본도 없는 북한 쪽에서 보면, 자신이 강점을 가진 분야의 우수 두뇌를 최대한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벤처가 매력적일 수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으로 방북했던 한 인사도 “북한의 음식이나 공연예술 분야 등은 확실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간의 벤처합작은 앞서 KTB가 밝힌 사업구상처럼 북한 체제의 특성상 주로 제3국을 끼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과 제3국의 세 지역에 각각 거점을 두고서, 자금은 한국이 대고 생산은 북한과 제3국에서 분담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북한 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보다 사업의 안정성과 세계시장 진출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는 또 평양에 외부 인력이 대거 유입되는 사태에 부담을 느끼는 북한으로서도 바람직한 사업 형태다.
그러나 벤처나 소프트웨어산업 등 북한에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라도 최소한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바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철도 도로 항만 등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확충이 ‘화두’로 대두된 배경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의선 연결 및 복선화, 남포 신의주 등 공단 조성 및 인프라 확충 비용으로 적어도 9조8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북한의 전력난을 꼽는다. 공단 조성이든 사회간접시설 확충이든 모든 경협 안건의 대전제가 되는 게 바로 전력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력난 현황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추정치가 달라 정확한 평가가 어렵지만, 상상 이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북한도 인정한다. 일례로 북한의 조창덕 내각 부총리는 지난 2월3일 조선중앙통신과 한 회견에서 “지금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산과 건설에서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자료에 의하면, 1998년 현재 북한의 전력설비는 7390MW. 이는 한국의 발전설비 4만7983MW의 15% 규모에 불과한 데, 그나마 발전량은 170억kWh로 한국의 발전량 2372억kWh의 7.2% 수준에 불과하다.
단지 발전량의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송·배전 설비 문제도 심각한 상태.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KEDO가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가 완공된다고 해도 송·배전 설비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냐” “북한의 발전설비 및 송·배전 설비를 개·보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북한의 송·배전 손실률은 최소 16%에서 50%까지로 추정되고 있다(한국의 송·배전 손실률은 1998년 기준으로 4.9%).
몇 년 전부터 흘러나왔던 원산 남포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한다는 얘기도 결국 에너지 문제 때문에 본격 추진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에너지 문제가 국가 전반의 개발전략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과 관련, 한 북한 전문가는 연형묵 자강도당 비서가 김정일 위원장의 높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배경으로 에너지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공헌을 꼽았다. 연형묵은 원래 엔지니어 출신, 그것도 “발전소 겉모양만 보고도 설계도면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천재적인 엔지니어인데, 그가 국가적인 에너지난 속에서 자체 개발한 중소형 발전터빈을 자강도에 많이 도입, 그나마 북한 내에서 자강도가 에너지 사정이 가장 낫다고 한다.
전력 지원의 한 가지 예
북한의 에너지난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이런저런 지원방안이 제시되곤 했다. 일례로 99년 4월 장영식 당시 한전 사장은 정부 내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평양 인근에 10만kW급 화력발전소 건설계획에 대해 “추진 중”이라고 공개했다가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 후속 협상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유휴전력을 북쪽으로 송출한다든지, 남아도는 석탄 1000만t을 보내는 문제 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전력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에는 아직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문제는 탈냉전 이후 잠재적인 테러국가에 대한 전략물자 지원을 제한하는 ‘바세나르 체제’(구 COCOM, 즉 전략물자수출통제기구)의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 이 문제와 관련,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4월 이후 미국측에서는 “남한이 유휴전력을 북한에 제공할 경우, 북한이 이를 군수용으로 사용할 때 이를 막을 방안이 무엇이냐”는 문의가 국내 전문가들에게 많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북한 전문가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도 주요 전략물자인 전력을 제공받는 데에 제약요인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것 같은 방식이 아니라 공장단위, 마을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중소형 발전터빈, 혹은 태양열이나 풍력, 가스터빈 등 바세나르 체제의 제한품목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의 지원을 내심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공장 5개를 묶어서 이 공장들에만 독점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장비를 지원받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전력의 군수용 전환 의혹도 제기되지 않고, 낡은 송·배전설비를 전면적으로 다시 깔아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북한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계속해서 앞의 전문가 말이다.
“화력발전소 같은 대형 발전장비를 제공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안이 된다. 즉 국가 차원에서 조율을 거쳐 나올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고, 따라서 이런저런 옵션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만간 활성화될 남북경협은 북한의 향후 국가발전계획에 ‘기반’을 깔아주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남측과 다양한 경협사업을 통해 북한경제는 회생의 실마리를 찾고 나아가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남북간에 상호연계 효과는 더욱 커지고 평화정착 무드가 자리잡게 된다. 그러면 북한이 생각하는, 향후 남북경협의 바람직한 형태는 어떤 것이 될까? 몇몇 북한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그것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람직한 경협을 위하여
첫째, 사회간접시설의 경우 북한이 원하는 것은 남한의 경험과 자본이지 그걸 빌미로 대규모 인력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또 사업 내용과 완공후 운영에서 남측의 통제를 받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이 단기적으로 남측에게서 원하는 사안은 중공업처럼 시일이 오래 걸리는 분야가 아니라 당장 활용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 성과를 볼 수 있는 협력분야다. 예컨대 건설자재 지원, 봉제 신발 등 수출상품 분야, 광산 석탄 등 자원개발을 위한 장비 등이 그런 예들이다.
셋째, 자존심을 상하면서까지 받고 싶지는 않다. 예컨대 남쪽의 IMF 이후 유휴설비를 북측에 공여한다는 얘기가 나오곤 했는데, 북한 쪽에선 남쪽에서 자꾸 ‘유휴설비’라고 하니까 받기가 곤란해지는 문제가 있다. 차라리 ‘협력설비’ 등 다른 이름으로 제안했다면 훨씬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의견들과 관련, 대북사업에 오래 종사한 한 인사는 “우리는 남북경협에서 그동안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는 듯한 행태를 자주 보여왔다”고 말한다. 매사를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생각하고, 소형 프로젝트도 대형 프로젝트 속에 용해시켜버리는 발상을 견지해왔다는 것. 대형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고, 결국 정치 기류에 좌우될 위험성이 커진다.
요컨대 남북경협의 진정한 의미와 효과는 소규모 경협사례가 많이 축적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예컨대 1000만달러짜리 남북경협 프로젝트 한 건보다는, 10만달러짜리 소규모 프로젝트 100건이 북한 사회에 진정 도움이 되고, 북한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해온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요량이라면, 북이 제풀에 붕괴해버림으로써 남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다 져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면, 남은 북의 자력갱생 의지를 도울 수밖에 없다. 물론 북이 남에 총부리를 대는 상황이 재연되면 안되겠지만, 정치적 상호신뢰는 경제적 상호연계가 심화될 때 함께 깊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국가발전전략은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서두에서 거론한 ‘호기심’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2000년 6월13일 오전,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북 두 정상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55년만에 처음 만나는 사이에 서로 속깊은 얘기를 나누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음 속에는 집권 이래 줄기차게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해온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함축적인 뜻을 담아 이런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한번 잘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