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내 조카는 오랜 노력 끝에 비교적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게 됐다. 두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평범한 결론은 가능할 것 같다. 영어는 ‘제2의 언어’인 만큼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늦게 시작해도 정복이 가능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바탕을 갖추고 있다. 정확성과 유창성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문법 구문 상의 잘못이 발견될 수 있으나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지웅이는 오랫동안 토익 공부에 몰두해서 점수를 조금씩 높여온 게 아니다. 지웅이의 현재 점수는 처음 토익 시험을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 지웅이는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에서 주최하는 영어경시대회에 학교대표로 선발되면서 토익 점수를 처음 얻게 되었다. 그때 받은 점수가 725점이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높아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지웅이는 ‘커뮤니케이션과의 상관관계’에 쓰여 있는 평가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것은 지웅이가 종합적인 언어능력을 중심에 두고 꾸준히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지웅이는 문법과 단어를 따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지웅이가 영어경시대회에 갔다오더니 어떤 문장들을 분사구문으로 바꿔 쓰라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는데, 분사가 뭔지 몰라서 못 썼다고 했다. 그리고 지웅이는 학교 영어시험에서도 어떤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바꿔 쓰라는 문제가 나오면 쩔쩔 맸다. 나는 지웅이가 중2 수준의 어떤 문제를 풀지 못하는지 궁금해서 영어 시험문제를 가져오라고 한 적이 있다.
‘I’d like to be a astronaut.’를 ‘I ( ) ( ) be a astronaut.’로 바꾸라는 괄호넣기 문제였는데 두 개의 괄호에 ‘want to’ 라는 단어를 써넣으면 정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웅이는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지웅이는 두 문장의 어감에 상당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고, 왜 그걸 바꿔 써야만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도 영어공부에 관심을 가졌다. 15년 이상을 쉬다가 재개한 영어공부다. 지웅이는 알파벳과 apple, banana 수준의 실력에서 시작했고,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라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하면서 영어와는 등을 지고 살았다. 더구나 반미청년회라는 지하조직의 의장을 맡다보니 미국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해졌고, 그러다보니 영어와는 등을 지고 살았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신동아’ 독자들을 위해 내 영어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지웅이를 평가하기 위해 구입한 모의 토익시험을 쳐보니 정답률이 75% 이상이었다.
지웅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비장한 각오로 영어훈련을 시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영어’가 아닌 ‘영어공부’를 잘해서 학교시험에서는 100점을 받아오는 학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CNN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테러와의 전쟁(Terror On War)’ 뉴스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웅이가 빠져 있는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원문으로 읽지 못했을 것이고, 영어 사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영어로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웅이 또래 아이들이 우스갯소리를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듯이 지웅이가 어떻게 하면 영어로 농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면서 애면글면 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한 계기는 내가 우연히 TV에서 제주도에 사는 오신석이란 13세 소년이 아버지의 지도로 비디오 테이프와 위성방송을 통해 영어와 일본어를 배워서 유창한 수준에 이르렀고, 중국어는 초급과정을 벗어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화제성 보도를 접하면서다.
오신석군이 유명해지면서 오군의 아버지는 자신이 교육했던 방법을 책으로 엮어서 ‘신돌이 학습법’이란 책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오군의 아버지는 영어교육을 3단계로 나누었는데 1단계 듣기, 2단계 말하기, 3단계 쓰기로 하고 각각 1년 정도의 시간을 할당했다고 한다. 듣기 과정에서는 비디오를 자막 없이 100편 정도 아들에게 보여주었고 정규적으로 위성방송을 시청하게 했다. 말하기 과정에서는 테이프에서 나오는 영어성경을 동시 따라하기(shadow reading) 훈련과 외국인 선교사가 진행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쓰기 과정에서는 일기로 시작해서 논설문으로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단순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영어 수업시간 외에는 일상적으로 영어를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위성방송은 간접적일지라도 영어에 장시간 노출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와 매형을 설득해서 지웅이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비디오를 매일 한 편씩 빌려서 자막을 가리고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자막이 없는 비디오를 구입하기도 했다. 위성안테나도 설치해 영어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돌이와는 달리 지웅이는 TV를 좋아하지 않았다. 영어방송만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평소 한국방송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우상으로 삼는 가수와 배우의 이름을 겨우 알까말까한 정도였다. 비디오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오군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신돌이처럼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푹 빠져서 봐주면 좋겠는데 지웅이는 마지못해서 겨우 보는 정도였다.
지웅이는 영어성경의 내용도 잘 모르기 때문에 한글성경을 먼저 읽고 영어성경을 들으면서 따라하게 했다. NIV는 따라하기 어려워했지만 신돌이연구원 버전의 느린 성경은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지웅이가 성우의 발음을 열심히 따라하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하면 발음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계속했다. 마침내 NIV마저도 어느 정도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웅이의 발음은 성우의 발음이나 억양과 거리가 있었다.
나는 지웅이가 영어내용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궁금했다. 영어가 들린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뭐가 들리는지, 얼마나 내용을 이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성경은 한글성경을 통해서 내용을 확인하고 듣는 것이기 때문에 지웅이가 영어를 통해서 이해한 것인지, 한글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영화는 줄거리와 눈치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인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내용을 파악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발음이었는데 훈련을 안한 것보다는 낫지만 테이프의 성우나 비디오의 배우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영어와 친해지는 방법
참다못해 하루는 지웅이 영어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쉬운 단어로 개작한 셰익스피어 단편을 읽어보게 했지만 그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한 페이지에 하루의 여유를 주고 외워보게 했는데 한 문장도 완벽하게 외우지 못했다. 그러자 지웅이는 엉엉 울면서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와 누나는 실망이 컸고 신돌이 학습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웅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소설을 컴퓨터 CD를 통해서 외우게 했다. ‘로빈훗’과 ‘톰소여의 모험’을 골라주었다. 처음에는 하루 한 페이지 분량, 다음에 두 페이지, 그 다음에 네 페이지 식으로 차차 늘려서 ‘톰소여의 모험’을 마칠 때쯤에는 하루에 15페이지 정도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지웅이는 단어 수준과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성우의 발음을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처럼 보였다.
두 권의 소설을 끝내고 다시 영화에 도전했다. ‘피노키오’와 ‘에이미’. 두 개의 CD타이틀로 제작된 영화다. 지웅이는 비디오나 테이프보다 컴퓨터를 이용한 훈련을 훨씬 좋아했다. 지웅이에게 영화를 외우게 할 때 배우들을 그대로 흉내내도록 단단히 여러 번 다짐을 받았다. 처음엔 이것도 힘겨워 했지만, 한 달에 영화 1편을 끝내는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대사에 실려있지 않은 배우의 중얼거리는 소리나 대사집의 잘못된 대사까지 집어냈다.
지웅이는 날마다 영어를 공부했다. 이것은 지웅이가 영어 이외에 다른 학습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웅이는 몸이 약한 편인 데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서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영어와 수학과목은 학습지를 받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학습지를 먼저 끊고, 나중에는 태권도학원도 그만 다니게 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도 가족들은 감독하지 않았다. 지웅이는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에 누나는 불안해했다. 수학에서 학습 결손이 생기면 나중에 애를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수학 학습지는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영어훈련 프로그램이 정연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와 누나가 시행착오를 범하면 한바탕 소동을 치러야 했다. 영어 CD소설을 외우라고 하자 지웅이는 볼멘소리로 나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봤는지 ‘어린이헌장’을 들먹이며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기 때문에 못하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지웅이는 우리 생각을 받아들였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자유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 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학원을 다니고 몇 개의 학습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만 따지면 지웅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없었다.
무조건 따라하라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부모 세대들은 사회정책에 대해서 사회민주주의적인 지향이 강하지만, 자식교육에 대해서는 억압적인 교육환경에서 자란 불만과 교육내용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에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나도 지웅이 문제로 교육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을 때는 그랬다. 그러나 교육이 말 그대로 ‘가르치고 길러내는 과정’이라면 아이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가능할까?
지웅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컴퓨터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경쟁이 붙으면 기를 쓰고 이기려고 들었다. 컴퓨터게임은 지웅이 영어훈련의 가장 큰 장애였다. 지웅이의 거의 유일한 취미이기 때문에 막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웅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골라서 사다주기로 했다. 나는 지웅이가 가상도시 건설게임인 심시티를 하기를 원했지만, 지웅이는 전쟁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더 좋아했다. 지웅이는 자기 반에서 최초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되었다.
‘신동아’에 정인석 원장에 대한 기사가 나면서 나는 그 학원에서 기획한 3박4일간의 영어캠프에 지웅이를 데려갔고, 그 학원에서 제작한 테이프와 비디오를 이용해서 발음연습도 했다. 지웅이는 열심히 했다. 거기에서 나온 교재 중에 뉴스 부분이 있는데 지웅이는 그 내용을 완전히 외워서 실제 뉴스보다도 빠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숨에 영어를 뱉어 낼 수 있었고 발음이 안정돼서 듣기가 좋았다.
지웅이는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빨리 발음하는 게 영어 실력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서 발음이 날아가는 듯했다. 원어민으로부터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얼버무린다(tricky)는 소리를 들어서 성우가 감정을 듬뿍 넣어서 읽어주는 명연설 모음집 CD를 사다가 또박또박 발음하도록 교정해야만 했다.
지웅이는 발음이 좋아지고 영어 소리에도 익숙해져서 어지간한 것을 들으면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단어 수준도 높아져서 쉬운 일상대화는 곧바로 이해했고 단어 수준이 쉬운 소설은 눈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말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다닐 만한 학원이나 원어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사는 곳이 그다지 번화한 곳이 아니라 주변에 외국어학원도 없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은 지웅이의 수준에 맞지 않았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만 1년 내내 가르치고 있다고 원어민 선생님이 실토할 정도로 일상적인 회화학원만 많았다.
나는 영자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전화영어를 선택해서 지웅이에게 추천했다. 지웅이는 레벨 테스트를 받을 때 원어민 선생님의 말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자기 말을 하는 데 익숙지 않아서 더듬거리거나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지웅이는 언제부터인가 영자신문을 가지고 선생님과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지웅이가 좋아하는 만화, ‘Dear Landers’라는 상담 칼럼, 사설 등을 활용했다. 그런데 사설은 단어 수준도 수준이지만 사회적인 내용이라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서 내가 사설에 대해서는 몇 번 독해를 해주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인지 이해시켜 주었다.
지웅이의 영어 글쓰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으레 초등학교에서는 숙제로 일기를 써오라고 하기 마련인데, 지웅이는 영어로 일기를 써나갔다. 지웅이 선생님이 그것을 인정해 주셨다. 처음에 지웅이 일기는 가관이었다. 한국어 어순대로 쓰는가 하면 어떤 문장은 내가 뜻을 파악할 수 없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그런 문장은 영화에서 본 문장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네이티브(Native)의 구어체 문장이다. 스펠링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체 손대지 않았다. 손대는 데 자신도 없었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지웅이의 작문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인터넷 작문강의를 듣게 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아니고, 문장 패턴을 읽히기 위한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반 정도의 정답률을 기록했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단순한 실수는 해도 문법적 오류는 줄어들었다.
지웅이가 문장 패턴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틈틈이 글쓰기를 한다. 영어 에세이도 영어로 썼다는 것만 다를 뿐 같은 수준의 내용이다. 지웅이는 요즘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못 심각한 제목의 글을 쓴다. 최근의 작문의 제목은 ‘What a war means?’와 ‘Bombing Osama Bin Laden’s head?’다.
최근 들어서는 홈스테이를 하는 호주인이 지웅이에게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시키고 있다. CNN기사를 한국어로 옮기게 한 다음, 그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보게 한다. 그의 의도는 지웅이가 쓰는 문장과 Native가 쓰는 문장을 비교해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 호주인은 지웅이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싶었는지 체스의 경기규칙을 한글로 옮기게 한 다음 영어로 다시 옮기는 것도 시켰다. 지웅이는 영어작문도 교정받고 체스의 경기규칙도 배웠지만 체스는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지웅이는 영어를 위해서 3명의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다. 전화영어는 매일 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시간이 10분밖에 안돼 미진한 느낌이 들어서 처음 전화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요청했다. 시간당 수업료는 3만원으로 정했는데 차도 없이 너무 멀리서 다니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누나는 시간당 4만원을 주었다.
두번째 선생님은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교포대학생이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같이 양식을 먹으면서 밥 먹는 예절을 가르치거나,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그 학생이 학업으로 바빠서 지웅이가 서울로 나가 4주간 3시간씩 돌아다녔다. 영어도 늘었지만 그 선생님이 영어타자를 엄청나게 빠르게 치는 것이 부러웠던지 지웅이는 영어타자를 연습해서 1분에 수백 타를 치게 되었다.
지웅이가 마지막으로 개인교습을 받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로 통역대 학생에게서 배웠다. 짧은 토픽을 모아놓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맡겼는데 선생님이 지웅이가 문법적인 기초가 약하다고 지적해서 문법교습으로 학습의 내용을 바꾸었다. 그러나 지웅이가 문법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아서 바로 그만두었다.
투자를 아끼지 말라
이제 누나네의 지웅이에 대한 영어교육비는 줄어들고 있다. 전화영어도 끊었고 개인교습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내가 보던 영자신문을 지웅이가 보면서 그 비용을 누나네가 부담하는 것과 토익과 토플, 인터넷 교습비 정도가 전부다. 인터넷 강의라 강의비가 실제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적게 들 뿐만 아니라 교통비와 용돈을 줘서 보내야 할 필요가 없고 이동하느라고 드는 시간도 없으니 시간과 돈이 많이 절약되는 셈이다. 9과목 168강좌 교재 포함해서 3개월을 듣는데 30만원을 내니 한 달에 10만원이 들어가는 꼴이다.
지웅이의 영어공부는 이제 정규적으로 영어방송을 1시간 보는 것, 인터넷 강의를 틈틈이 듣는 것, 신문 보는 것 등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 말고 또 있는데 그것은 지웅이가 공부라고 여기지 않은 것들이다. 팝송을 몇 시간씩 듣는 것이다. 비틀스 광인 지웅이에게 물으니 비틀스의 100곡 정도 가사를 알고 10여 곡은 완전한 가사로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비틀스 외에도 자기 맘에 맞는 곡이 있으면 그 곡을 수도 없이 들어서 가사를 외운다.
지웅이가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누나네 가계에 부담이 될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영어공부에 대한 정형이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길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무기로 지웅이의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지웅이의 영어공부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힘들다. 많은 것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항간에 떠도는 좋다는 방법은 모두 실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지웅이의 실력이 향상되었는지를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개월 동안 진행한 영어성경 테이프 듣기와 따라하기, 백 편 이상의 비디오 보기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무익한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문제는 효율이다. 적절한 소설과 영화를 골라 외우게 하는 것이 당초부터 좋았던 것인지 수많은 비디오와 영어소리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모든 대사를 외울 수 있었던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지웅이의 경우를 통해서 느끼는 외국어 학습방법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은 짧은 시간에 네이티브처럼 될 수 없다는 거다. 그것은 영어가 제2언어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국어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이가 옹알이에서 출발해서 음마로 그리고 음마에서 엄마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짧지 않다.
2400시간 훈련이 필요조건
사회적 거리감을 빨리 좁힐 수 있는 어린아이들이 영어권으로 이주해서 완전히 영어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루에 8시간씩만 치더라도 2400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영어 한마디 듣기 힘들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란 더더욱 적은 한국의 언어현실에서 특별한 학습법에 의해서 몇 개월만 하면 원어민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환경적 악조건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영어에 사전 노출되어 있지 않은 초보자가 2400시간을 채우려면 하루에 영어훈련을 3시간씩 하더라도 800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도 체계적인 영어 교습법이 준비돼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니 불가피한 시행착오를 더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일인지는 자명해진다.
흔히 우리 세대가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배웠는데도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많은 시간 같지만 연간 150시간을 배웠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90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많은 학생들 속에서 자신이 실제로 영어를 듣고 말하는 훈련시간은 50분 수업시간에서 단 몇 분도 되지 않는다. 일대일로 하는 전화영어 10분보다도 질적으로 뒤진다고 할 수 있다. 학원교육은 그 보다는 형편이 좋다고 하지만 정도 차이지 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가르치려면 상당한 교육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또 의사소통에 중심을 둔 영어교육을 하려면 작은 규모로 개인들을 충분히 배려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학습단위가 실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단위로 구성되어야 한다.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것은 학원측에 엄청난 인건비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교육비가 되어서 학부모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이것은 이미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영어로 교육하는 유치원의 1년 교육비가 1000만원 내외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이 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와 아울러, 랭귀지 디바이드(language divide) 가 나타날 것이다. 지난 시대 빈곤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낮은 교육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지식정보를 습득하는 유력한 수단인 영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의 하층에 놓일 것은 자명하다.
일년에 1000만원을 들여서 유치원을 다니고 방학을 이용해서 수백만원의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개인교습에 가까운 다양한 영어과외를 받는 아이와 질 낮은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교육을 받는 아이가 같은 선상에서 경쟁이 가능할까?
늦어도 정복할 수 있다
지웅이가 영어훈련을 시작한 것보다 약간 뒤늦게 나도 영어공부에 돌입했다. 나는 북한인권운동단체의 대표와 ‘시대정신’이란 격월간지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창간호(1998.11-12)에서 ‘영어공용화론’을 제기한 바 있다. 복거일씨의 ‘영어공용화론’ 제기로 촉발된 논쟁에 대하여 시대정신은 복씨의 문제제기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논쟁의 한 주체가 되었다.
1999년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NKNET)란 단체가 결성되어 대표를 맡게 되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로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고, 외국의 인권단체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 국제회의에 참가해서 통역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불편한 문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했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국제회의의 토론에 참가하면 한국어가 공용어가 아닌 관계로 동시통역을 이용하는 것이 우선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통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인사말 정도가 아니라 순발력이 필요한 토론에서 통역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토론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회의가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외국인과 만나는 일도 통역과 늘 동행한다는 게 어렵고 또 유능한 통역자라 할지라도 본인이 아닌 이상 말의 취지는 전달할 수 있을지라도 내 절실한 감정을 전달하기가 어렵거니와 완곡하게 의사를 전달할 경우에도 통역이 내 감정을 살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말해 놓고 통역자가 내 말을 전달해 주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인데도 저걸 못해서 통역을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한 말을 통역자가 영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짧고 명쾌하게, 내가 실제 한 말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면 통쾌하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내가 한 말의 어감과 차이가 나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능력범위를 벗어난다면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다. 결국 사회활동 속에서의 절실한 필요가 오랜 세월 접어두었던 영어를 다시 붙들게 했다.
나의 영어실력은 대학입시 시험문제를 고3 초에 50문제 중 40개 정도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독일어로 시험을 봤다. 내 영어실력은 고3 때의 실력보다도 많은 부분 퇴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우선 원상복구라도 한다는 기분으로 학원에 등록해서 중급 수준의 독해 강의를 들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직독직해를 가르친다고 해서 영어문장의 뒤로 가서 앞으로 더듬어오는 식의 해석 방법을 지양하고 의미단위로 끊어 읽게 했고, 영어가 가진 고유한 리듬을 살린다고 해서 영어단어에 스트레스(액센트)를 넣어서 박자 맞춰 읽는 연습을 많이 시켰다. 1분에 단어 150개를 소화할 수 있어야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서 속독연습도 병행했다. 3개월 정도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공부에 재미가 붙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실력 정도는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영어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CNN도 보고 영화도 자막 없이 보았지만 아주 쉬운 일상적 인사 말고는 들리지 알았다. 하지만 독해와 속독 능력은 향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공부를 위해서 ‘Korea Herald’를 가판에서 사서 보다가 정기구독했다. 한국신문을 보면 너무나 편한 것을…. 신문기사 몇 개를 보다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처음에는 신문을 다 읽으려고 욕심을 내다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신문보는 데 할애하는 것 같아서 읽기 쉬운 ‘Dear Landers’ 칼럼과 사설, 그리고 중요기사 정도만 보고 나머지 기사는 제목만 대충 훑어보았다.
영어 방송뉴스는 영자신문 보도를 통해서 읽은 내용이 어느 정도 들리는 것 같다가도 모르는 사건은 알아듣지 못했다. 뉴스는 알아듣기가 힘들고 내가 먼저 알아들어야 할 내용은 일상대화가 아닐까 생각해서 영화듣기로 바꾸었다. 자형이 언제 구독했는지도 모를 세월이 한참 지난 ‘스크린 영어’라는 잡지와 거기에 딸린 영화테이프를 활용해서 영화의 일부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 들은 영화는 ‘조강지처클럽(First wives club)’으로 기억한다. 잡지에 대본이 있어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들었다. 다음엔 ‘세인트(Saint)’라는 영화대본을 확인하면서 들었기 때문에 대사를 배우들이 어떻게 발음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본에 발음해설을 달아놓아서 영어의 연음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었는데 ‘a lot of’가 ‘어라러’ 정도로 발음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영화영어에 재미가 붙자 영화 전체를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교보서점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해적판 영화대본과 영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파는 것을 보고 몇 개 구입했다. 차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서울을 오가면서 들었다. 집이 멀어서 영화 테이프 한편이 돌면 목적지에 갔고, 다시 한편이 돌면 집에 도착하는 식이었다. 그때 ‘해리가 샐리가 만났을 때’, ‘프렌치키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수없이 들었다. 대본집이 있었지만 들릴 때까지 들어보자는 심산으로 대사집을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테이프로 영어 소리를 대하면서 듣는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알아듣는 만큼 성취감도 커져서 차만 타면 테이프를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 밤늦은 시간에 자동차가 빨리 달려서 집에 일찍 도착하면 테이프가 미처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주차장에 앉아서 끝날 때까지 듣고 올라왔다.
그러다가 ‘신동아’에 정인석 원장에 대한 기사가 나면서 학원에 등록해서 발성법을 배웠다. 정말 지겹도록 몇 달 동안 ‘하’소리를 질렀는데 한국의 발성과 원어민의 발성이 다르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실제 영어가 아니라 의미없는 ‘하’소리만 몇 개월을 지르고 있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인 체험에 기초한 이야기라 실용적인 가치는 충분하지만 그의 설명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결여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유성음과 무성음, 그리고 영어 발음들의 입 모양을 정인석어학원에서 나온 비디오 테이프로 훈련했다.
한국식 발음의 문제점
얼마나 원어민의 발음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내 발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니까 기분에 따라 달라지던 영어발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발음을 빨리 붙여나가고, 연음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원어민이 빨리 발음하는 것을 빼면 일반적인 속도의 영어는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공부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영어발음에 대한 상식이 많이 바뀌었다. 영어는 혀를 많이 굴린다던가, 우리말보다 부드럽다던가 하는 따위의 생각이다. 물론 혀를 굴리는 발음이 있지만 대부분은 혀를 굴리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가 다른 위치에서 만들어지고, 우리가 이용하는 근육과는 다른 근육을 활용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비슷한 것 같아도 다른 소리가 난다는 설명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원어민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어거지로 혀를 굴리는 소리는 내 귀에 금방 표시가 나고 거부감이 생겼다. 그리고 특히 미국식 영어는 우리말보다 브레이크(glottal stop) 같은 것이 많이 걸리면서 발음된다는 것도 확연하게 느꼈다. 학원비가 비싸서 부담이 되었는데 내 발음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준 것만으로도 돈값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식 영어발음에 아주 관대하게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발음 때문에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지만 원어민들이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를 원리라도 배우고 가능한 그렇게 내려고 노력해야지 미리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예 한국식으로만 영어를 발음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지 원어민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는 것인지 몰라서 잘못된 발성법으로 흉내내는 것뿐이다.
원어민의 발성법도 알고 거기에 입각해서 훈련하면 원어민의 발음을 얼마만큼 수렴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잘못된 방법을 따라서 흉내내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발음할 수 있다. 대다수의 영어학습자들이 원어민의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발음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편의주의를 조장하는 것밖에 안된다. 발음의 원리를 알면 원어민의 소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영어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음도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에 점점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의 분위기에서 기껏 노력해서 한마디 했는데 원어민에게 “Pardon?” “Sorry?” “What?” 혹은 아예 전체 뜻이 이상해져버려서 “What do you mean?” 같은 소리를 듣고, 다시 말해달라고 해서 다시 발음했는데도 대화상대가 또 못 알아들으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당황하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셔버린다. 원어민을 접촉해본 사람들이라면 거의가 그런 충격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교과서를 처음 받았을 때 거기에는 발음을 어떻게 하라는 성대와 혀, 입을 표시한 단면도가 그려져 있고 발음기호도 역시 배웠다. 그리고 테이프를 통해서, 선생님의 발음을 통해서 영어의 음가를 따라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선생님도 정확히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원어민이 어떻게 소리를 내고 있는지 정확히 설명해줄 수 없었던 것뿐이다. 원어민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거야 상당한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원어민의 발성법을 배우는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발음도 하면 할수록 는다.
부딪히면서 배워라
내가 영어회화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3개월치 학원 수강증을 끊어놓고 몇 번 못 나가고 포기한 게 전부다. 계속 나가지 않은 것은 게으름이 첫째고, 다음으로는 회화책이 상황 속에서 가능한 표현들을 외게 하는 것인데 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잘 익혀지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예를 들어 전화영어라고 할 때 전화영어 특유의 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내가 상대에게 해야 할 말이다. 전화를 받다가 “Whose calling?” 해야 할 것을 내가 “Who are you?” 했다면 상대는 황당하겠지만 내가 뭘 묻는지는 알 것이다.
어법대로 말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전화를 하고 있느냐다. 그것을 전달할 수 능력이 있냐가 첫째고, 다음이 전화에 어울리는 표현을 찾는 것이 둘째인데, 첫번째 능력이 없는데 형식을 먼저 배우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영어회화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회화 선생님에게 “오랜만이네요!(Long time no see!)”라는 인사말만 확실히 배우고 그만두었다.
문장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단어를 연결해 가면서 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긴장도 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를 상대가 알아들어 주었을 때의 쾌감은, 아이가 애써 만든 발음을 엄마가 알아주었을 때 고무돼서 자꾸 말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 영국 방송국 프로듀서가 북한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을 2주일 도와주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복잡한 통역은 전문통역이 맡았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스스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스케줄러 역할을 해주면서 때로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인터뷰 대상자의 말을 대신 해주기도 하면서 의사소통에 대한 자신감이 늘어갔다.
내 영어는 심하게 뒤틀리고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도 못했다. 긴 말을 한 문장으로 연결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문장이 불가능하면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궁리했고, 거의 단문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2주간의 작업이 끝났을 때 어쨌든 내가 그 프로듀서의 말을 알아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사람이 알아들으며 내가 농담을 건넬 수도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했다.
흔히 사람들이 원어민과 같이 술을 마시거나, 연애를 하면 외국어가 금방 는다고 하는데 속설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에 대한 중요한 시사다. 술은 수치심을 이기고 말을 해야 한다는 용기를 상징하고, 연애는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절박성에 대한 상징어다.
외국에서 있었던 국제회의 참가 경험은 내 청취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발전시켜주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통해 정말 영어도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영국식 영어도 처음엔 생소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영어 액센트를 들으면서 듣는 데도 유연성,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원어민과의 접촉이 늘면서 영어공부의 목표가 확실해졌다. 듣기에서 의사소통 중심으로 초점을 옮겼다. 영화는 되도록 많이 보려고 노력했는데 잡음이 없고 비교적 슬랭이 적은 연애이야기를 주로 봤다. ‘사랑이 머무는 풍경(At first sight)’은 내가 자막을 봐야 할 욕구를 느끼지 않은 최초의 영화다.
북미인들의 일상영어는 리얼플레이어를 이용해서 인터넷 라디오로 듣는데 주로 토크프로나 뉴스를 듣는다. 라디오 진행자와 미국인들이나 캐나다인들이 전화를 걸어서 잡담하거나 상담하는 내용은 상당 부분 알아듣게 되었다.
수준 있는 영어를 듣기 위해서 미국의 강의 테이프와 ‘Contemporary topics’라는 테이프를 구해서 들어봤는데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체적인 강의와 토픽의 핵심은 대체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상 영어가 아니라 공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주제가 있는 발표문을 골라서 주제를 가지고 길게 이야기하는 것도 연습했다.
홈스테이는 효과적인 공부
그간 해온 영어공부를 한번 결산해보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 지난 여름에 참여한 4주간의 영어캠프다. 200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투자해서 4주간의 시간을 영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영어로 실컷 토론을 해보는 것이었는데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원어민이 하는 학원식 영어강의가 공식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공식 프로그램에 연연해하지 않고 한국어를 가능하면 쓰지 않고 되도록 많은 원어민들과 주제가 있는 토론을 즐겼다. 프리젠테이션 학습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는 없었지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원어민 선생님에게 제의해서 매일 저녁 프리젠테이션을 연습했다.
원어민 선생님들과 몇 차례 저녁식사를 하는 등 폭넓은 대화를 통해서 내가 지식과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주제를 막론하고 서툴더라도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외국인과도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어캠프를 끝내면서 스스로에게 내린 영어숙제는 상황에 적절한 어휘의 수를 늘리고, 정연하게 조리를 세워서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전개력과 시험볼 때 필요한 문법이 아니라 말할 때 내 말이 가는 길을 정확하게 인도할 수 있는 문법 실력을 닦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 캠프는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것을 인정해 주어서 최우수상을 주었고, 호주왕복티켓을 부상으로 탔다. 나는 내년 2월 호주에 가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다는 스피치클럽에 참가해서 한 달 정도 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는 캠프의 마지막 주간은 홈스테이를 조직하면서 보냈다. 결국 두 사람의 호주인이 한국에 남았다. 한 사람은 누나네에 머물게 했고, 한 사람은 이웃집에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외국인이 여성이면 한국의 안주인이 심하게 반대하고, 외국인이 남성이면 바깥주인들이 격렬하게 반대해서 생각보다는 애를 먹었다. 수백만원씩을 쓰면서 자식들을 외국연수 보내 홈스테이를 시키면서도 정작 한국에서 원어민 홈스테이가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한 사람은 달포 가량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내 의형제가 된 호주인은 연세대 어학당에 입학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호주인은 우리 가족과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나누면서 친교를 맺어가고 있고, 기꺼이 아내와 누나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다. 딸에게는 유치원 길잡이자 영어 인도자, 지웅이에게는 작문 선생님, 나에게는 저녁시간의 더없이 임의로운 말벗이 되고 있다. 아내는 이 호주인에게 장구와 가야금을 가르쳐주고 다섯 살배기 내 딸은 한국어 선생님이다. 누나와 매형은 보호자가 되어주고 있다.
영어를 국가공용어로
나와 조카는 서로의 처지가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영어구사능력, 발음, 소리에 대한 예민함은 내가 조카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사회적 용어와 어휘 구사력에서만 내가 앞서 있다. 조카는 빠르게 나를 추월해 갈 것이다. 조카는 3년 이상 영어에 집중 투자해 왔고, 나는 1년 남짓 본격적인 영어훈련을 해온 셈이다.
두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평범한 결론을 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제2언어로서 영어를 배운다는 게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제2언어도 말이기 때문에 학습을 하는데 분명한 특성도 있지만 말이기 때문에 가지는 분명한 공통성도 있다. 제2언어도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흡사한 과정을 요구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옹알이를 통해서 한국어를 발음하는 과정, 아직 서툴지만 어린아이가 말을 알아듣고 재롱을 부리는 과정, 수없는 문법적 실수를 통해서 말이 가는 길을 깨닫는 과정, 문자를 깨치는 과정, 자기의 의사를 글로 써서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을 단계적으로, 일부는 동시적으로 밟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배운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가족 특히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또래집단과 이웃, 그리고 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제2언어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속에서 배워야 하므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메워주려는 노력이 없으면 그 습득이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세월을 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영어학습에 논쟁으로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해서 창조적인 의견과 많은 임상적인 경험들이 축적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짧은 내 영어 실력으로 영어에 통달한 사람들의 사례는 어느 것이나 일리를 담고 있다. 절대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서로 모순돼 보이는 주장도 나와 내 조카의 경험으로 보면 효율성의 장단에 관한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대치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제2언어 학습론에 대한 논쟁이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 다른 주장들이 등장하면서 보편적인 학습체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기하고 싶은 것은 천하제일의 교육방법론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그 일을 하느냐 하는 문제다. 제2언어에 대해서 누가 어머니 노릇을 해줄 것인가? 누가 또래집단의 구실을 해줄 것인가? 누가 학교와 매스컴의 기능을 해줄 것인가? 국가가 그 일을 담당할 수 없다면 사적 자율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언어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영어공용어를 국민적 의사로 이루어냈으면 하는 게 내 의견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가는 정규교육에서 한국어 독점을 없애고 영어로 교과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학교설립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대학입시에서도 영어로 시험볼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가의 정책적 투자 없이도 사적 영역의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영어교육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학교와 어머니와 또래집단, 매스컴의 역할을 수행할 부분들이 앞다투어 나와서 영어교육에 획기적인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