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투기자본의 대명사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으로 12년 만에 한국을 떠난다. 국내 투자를 통해 무려 6조원 이상을 벌어들인 론스타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를 남겼다. 론스타의 ‘뼈아픈 교훈’을 거울삼아, 한국의 금융산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2008년 폐쇄한 론스타코리아 사무실.
7년 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할 당시 지급한 대금이 약 1조3834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중간에 회수된 배당이익 등을 제외하더라도 론스타는 순수 매각대금으로만 약 3조3000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이처럼 론스타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면서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과거 언급된 감독당국의 승인과정상 문제점과 론스타의 불법적, 탈법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건전성 침해 vs 정상화 기여
외환은행 매각이 결정된 이 시점에서 론스타가 한국 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의 ‘뼈아픈 교훈’은 향후 우리금융, 산은금융의 민영화는 물론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참고가 될 것이다.
미국 댈라스에 본사를 둔 론스타는 파산법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부실기업의 유가증권과 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의 일종인 벌처펀드(Vulture Fund)다.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S·L) 부실로 형성된 부실채권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1989년 설립됐다. 론스타 펀드는 1995년 출범한 브라조스펀드(Brazos Fund)를 시작으로 1998년 론스타 6호 펀드까지 총 232억달러를 투자했다. 그중 80% 정도를 아시아지역, 특히 한국과 일본에 집중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 초기에는 기업 및 금융회사의 부실자산 인수업무에 주력했다. 이후 금융회사 인수를 적극 추진해 여신전문회사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쇼와은행, 대만 제일상업은행 등 일반은행으로 그 투자범위를 확대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초기에는 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했고 스타타워 등 부동산으로 투자대상을 확대했으며 마침내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론스타가 국내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은 외환은행 매각분을 포함해 6조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론스타가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이 알려지자 그동안 잠잠했던 론스타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먼저 론스타에 비판적인 시각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의 불법성을 거론한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유·지배 자체가 불법이며, 불법소유를 바탕으로 고배당을 통해 은행자산에 손실을 입힌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여타 국내은행과 비교해도 외환은행의 배당률은 상대적으로 과도해 이미 배당만으로도 론스타는 투자 원금을 회수했고 이러한 행위가 은행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국세청의 2007년 외환은행 매각대금에 대한 세금추징에 대해 조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과세를 회피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인 행위 자체도 국민감정상 용납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이들은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해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인정되는 경우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 자체가 무효이므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편 론스타를 일방적인 투기자본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당시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이 투입된 여타 금융회사와 달리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3500억원 유치를 선택한 외환은행은 이후 코메르츠 방크의 몇 차례에 걸친 추가출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부족 상태였다.
정부로서는 부실금융회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공적자금을 조성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컸다. 따라서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것은 감독당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외환위기에 이은 기업의 추가부실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내 금융회사의 신용경색이 해소된 점, 구조조정에 대한 기여, 경영에 대한 감시강화에 따른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대외신인도를 높인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배당, 자산매각 등 론스타의 이익추구 행위에 대해서도 단기간에 투자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총자산순이익률(ROA)은 2003년 -0.36%에서 2009년 0.88%로, 당기순이익은 2003년 -2138억원에서 2009년 8917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를 고려하면 외환은행의 정상화에 기여한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직무유기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11월25일 외환은행 지분 인수 계약서에 최종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각추진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수출입은행 및 한국은행의 지분 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실질적으로 대주주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외환은행 은행장이 대주주 및 이사회를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매각을 추진하는 데 대한 검증과 확인 노력을 게을리해 외환은행의 자본 확충 및 매각이 비정상적으로 추진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둘째, 금융전업가가 아닌 론스타가 은행을 경영할 수 없음에도 은행법 시행령 제8조 제2항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의 특별한 사유로 인정해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셋째, 이 과정에서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거나 적시 시정조치를 받지 않아 이 조항을 적용하기 곤란했는데도, 외환은행의 2003년 비관적인 자기자본비율(BIS) 전망치(6.16%)를 근거로 론스타의 주식 취득을 승인했다.
마지막으로 매각가격 결정 및 협상에 서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이 부실규모를 과장해 외환은행의 순자산가치를 낮춰 매각을 추진했음에도 재정경제부 등은 자산·부채 실사 및 가치평가에 대한 지도, 감독을 소홀히 했다. 그뿐만 아니라 콜옵션을 부여해 론스타가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사모펀드가 국내은행에 투자한 사례는 뉴브리지 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에 대한 투자 등 론스타 이전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뉴브리지 캐피탈은 5000억원에 제일은행 지분 51%를 인수해 5년 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함으로써 1조1511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약 4888억원을 들여 한미은행 지분의 36.7%를 인수한 칼라일그룹도 씨티은행에 매각해 3년4개월 만에 6839억원의 평가차익을 포함, 약 7000억원의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 사모펀드와 달리 론스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감독당국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먼저 뉴브리지 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는 금감위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에 의거해 제일은행을 명확히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 지분인수도 칼라일그룹과 JP모건이 50대 50으로 참여한 컨소시엄(SPC)이 이를 인수한 형태를 취한 만큼, 금융회사가 그 지분을 취득한 것이 인정돼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금감위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외환은행이 명백히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당국이 향후 예상을 근거로 무리하게 추진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정책당국의 비리행위 유무와는 별개로 인수 자격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를 시정할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은행법 제16조제4항에 따라 감독당국은 론스타처럼 대주주의 인수자격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 적격성을 심사해 6개월 이내에 이를 시정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론스타가 몇 차례에 걸쳐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은 현재까지 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감독당국이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직무유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후 정부가 은행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모펀드가 은행지분의 10%를 초과해 출자할 경우 ‘한도 초과보유 주주’로서 자격요건을 심사받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향후 은행의 민영화 과정에서 감독당국이 사모펀드에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경우는 사라질 전망이다. 경영권에 대한 행사도 제한돼 현재와 같이 고배당을 통한 이익추구행위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호황기에 추가적으로 완충자본을 적립토록 한 바젤Ⅲ가 시행되면 은행의 고배당 논쟁도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은행 민영화를 위한 제언
마지막으로 외국 사모펀드 논란을 교훈 삼아 우리은행 등 향후 예정된 국유은행의 민영화는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과거 금융위기 이후 은행 민영화의 목표는 대형화와 글로벌화를 통한 국내 금융 산업의 발전이었다. 즉 우리나라 은행 규모가 글로벌시장의 참여자들에 비해 너무 작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경영기법 또한 낙후돼 외국금융회사의 선진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국내 금융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국내은행들에 인수·합병되거나, 해외 선진기법의 전수라는 명목하에 외국계 자본에 매각됐다.
그러나 국내 은행에 매각해 대형화를 추진하는 것은 최근 서울 G20정상회의에서 논의되었듯, 시스템리스크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은행산업의 과점화를 불러와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사회적 이익보다 커질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대형화가 은행 간 출혈경쟁을 유발했을 뿐 아니라 가계대출 등이 일부시장에 쏠리는 현상을 초래하며 시스템리스크를 증가시킨 것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해외금융회사를 포함한 외국계 자본에 국내은행을 매각하는 것은 법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부(國富) 유출’이라는 국민적 반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이를 추진하는 데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경영 참여가 제한돼 있고 은행의 매각규모가 커 단일 투자자가 이를 인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당장의 이익보다는 금융 산업 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 및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그 지분을 매각해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다만 이 경우 일부 은행에서 나타난 경영진의 독단적인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효율적인 견제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경영진의 사적 이익 추구로 은행경영 전체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져 결국 금융시스템 자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투자자에게 분산해 정부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 확보가 곤란해 매각수익 극대화라는 민영화의 목표 중 한 가지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부가 은행경영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효율과 불공정 경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가 약속한 민영화의 시한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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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개방됐다. 이 과정에서 주주 중심의 경영 확립 등 사모펀드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한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사모펀드를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 순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국내 투자자를 육성해 국내 자본의 기업인수 능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 금융시장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론스타가 한국에 대한 12년간의 투자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이 수업료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액수를 론스타를 비롯한 해외 투기자본에 제공했다. 이를 생각하면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옛말만은 아닌 것 같다.
● 감사원 ‘한국외환은행 매각추진실태’(2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