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산업혁명’ 실체는 석탄·석유 ‘에너지혁명’이었다

[‘돈’으로 본 세계사]

  • 강승준 서울과기대 부총장·경제학 박사·前 한국은행 감사

    입력2026-02-09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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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가 도구로 사용한 대표 물질, 돌·금속·나무

    • 산업혁명 본질? 석탄·기계·자본 ‘3요소’ 상호 연결

    • 2차 산업혁명 = 석유와 전기 위주 에너지 개편

    • 석유와 전기,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시키다

    • 현대문명 일등공신 ‘화석연료’, 기후위기 주범 되다

    • AI·로봇 등 신산업, 에너지 수요 폭발적으로 증가

    1762년 스코틀랜드 조선업자의 아들인 제임스 와트는 효율적이고 범용적인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한다. Gettyimage

    1762년 스코틀랜드 조선업자의 아들인 제임스 와트는 효율적이고 범용적인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한다. Gettyimage

    인류 문명을 바꾼 대표적 물질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도구’로 쓰인 물질과 ‘에너지’로 쓰인 물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도구를 이용할 줄 알았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돌과 금속, 나무는 인류가 도구로 사용한 대표적 물질이다. 돌과 나무로 주택과 사원, 궁궐을 지었고, 청동·철 같은 금속으로 농기구와 무기를 제작해 사용했으며, 금과 은 등 귀금속은 장식품과 화폐로 썼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연철(軟鐵)이 대량생산되면서 철이 돌과 나무를 압도하는 물질의 대변혁이 일어난다.

    그러면 에너지로 쓰인 물질은 무엇일까. 사람과 가축의 힘을 제외하고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사용한 주된 에너지원은 나무(장작)였다. 인류는 나무로 불을 피워 난방과 조리를 하고 포식자를 방어했다. 더 높은 열이 필요한 금속 제련, 유리 제조, 도자기 제작 등에는 장작을 저산소 상태에서 열분해해 만든 목탄(木炭·숯)을 사용했다. 산림이 부족한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석탄의 초기 형태인 토탄(土炭)을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 제철 등으로 목재 수요가 급증한 16세기 이후에는 유럽에 산림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류는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해 줄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타나기를 절실히 바랐다. 이때 인간을 사로잡은 물질이 화석연료인 석탄(石炭)이다. 목탄에 비해 엄청난 열을 발산하는 석탄은 18세기 중반 증기기관과 결합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산업혁명은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19세기 중후반에는 석탄에 이어 석유와 전기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등장하면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이렇게 20세기 전까지 인류의 주 에너지원으로 쓰인 물질은 나무에서 나온 장작과 목탄, 그리고 화석연료인 토탄, 석탄 그리고 석유였다.

    이번에 다루려는 주제는 에너지 전환이 불러온 산업혁명이다.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은 18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한 에너지와 도구의 혁명,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사회 구조 변화를 말한다. 산업혁명의 본질은 석탄, 기계, 그리고 자본, 이 세 가지 요소의 상호 연결이다. 지금부터 산업혁명과 산업자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대변혁의 전조, 노동력과 자본의 축적

    15세기 말 신대륙의 발견, 동인도 항로의 개발로 16세기 이후 세상은 연결되고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6세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시대였다. 신대륙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 이로 인한 가격혁명으로 유럽에는 상업 자본주의가 번성했다. 하지만 무리한 전쟁, 국내 산업의 부진 등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전성기였다. 이를 뒷받침한 에너지는 풍차를 돌린 수력과 토탄이었다. 토탄은 석탄의 전 단계로 식물의 잔해가 고인 물에서 분해되고 썩어 바닥에 축적된 것으로, 운하와 항구를 건설하고 도랑을 파는 과정에서 채취됐다. 토탄은 장작과 열량은 비슷하나 토탄에서 나오는 재에는 인 성분이 함유돼 있어 비료로 사용됐다. 네덜란드는 운하와 바지선을 통해 토탄을 도시로 실어 날랐다. 이 값싼 연료 덕분에 네덜란드는 세계 설탕 정제의 중심지가 됐고, 도자기와 유리·소금·벽돌 공장이 번성했다.



    17세기 중반이 되면 영국이 식민지 개척과 무역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설탕, 커피 등 식민지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행하면서 영국의 상인들은 상품과 노예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18세기 초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앤 여왕 때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병합돼 영국은 그레이트브리튼이 된다. 강력한 해군을 지닌 통일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지브롤터 같은 군사요충지까지 얻어 국격이 한 단계 도약할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

    영국은 헨리 7세 이후 1~2세기에 걸쳐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동체의 농지가 사유지로 바뀌면서 대규모 농장주이면서 상업과 모직물 산업에 투자한 젠트리(gentry) 계층이 형성됐다. 젠트리는 후일 의회에 진출해 명예혁명의 주역이 되고, 부르주아 계층이 된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내몰렸다. 농민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공장을 돌릴 노동력이 필요했던 부르주아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시의 확장과 식민지의 확대 그리고 경제성장으로 인한 중산층의 형성은 상품에 대한 폭발적 수요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대량생산을 위한 필수 요건인 노동력과 자본이 충분한 수준으로 축적됐다. 이제 세상은 자본을 생산수단으로 만들어줄 기술혁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업혁명 가능케 한 석탄과 증기기관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의 아이콘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제니의 방적기, 헨리 코트의 코크스 제철 용광로다. 석탄은 증기기관을 돌렸고 증기기관은 새로 발명된 기계와 운송수단의 동력원이 됐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바로 석탄에서 증기기관, 증기기관에서 기계로 이어지는 동력 체계였다.

    석탄은 증기기관을 돌렸고, 증기기관은 새로 발명된 기계와 운송수단의 동력원이 됐다. 그림은 휴대용 증기기관. Gettyimage

    석탄은 증기기관을 돌렸고, 증기기관은 새로 발명된 기계와 운송수단의 동력원이 됐다. 그림은 휴대용 증기기관. Gettyimage

    최초의 증기기관은 17세기 후반 에드워드 서머싯 우스터 후작에 의해 발명됐다. 하지만 1712년 침례교 목사 토머스 뉴커먼이 물을 채운 보일러에서 석탄을 연소시켜 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무용지물이던 증기기관을 개량했다. 하지만 이 증기기관도 탄광 외에서 사용하기에는 효율성이 너무 낮았다. 1762년 스코틀랜드 조선업자의 아들인 제임스 와트가 효율적이고 범용적인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한다. 와트는 처음 에든버러대에 실험실을 만들었는데,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와트의 연구 자금 마련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한때 자금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됐다. 이때 증기기관의 잠재적 가치를 알아본 사업가 매슈 볼턴이 와트에게 자금을 대면서 증기기관 프로젝트는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오래지 않아 증기기관은 산업의 범용 동력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제철산업에서 일어난 혁신은 18세기 초 에이브러햄 다비 1세가 목탄 대신에 석탄을 정제한 코크스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코크스는 목탄보다 고온을 내면서 장시간 연소해 선철(銑鐵)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선철이 연철(軟鐵)이 되기 위해서는 탄소를 제거하는 교련(攪鍊) 과정(puddling)을 다시 거쳐야 했다. 18세기 후반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헨리 코트다. 그는 용광로에서 녹은 철을 산소에 노출해 탄소를 제거하고 다시 판 형태로 가공하는 압연 기술을 개발해 연철의 대량생산에 성공한다.

    이렇게 석탄과 철이 결합하면서 ‘기계를 만드는 기계’가 등장했고, 공장 기계와 설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석탄은 단지 동력원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진정한 기반이었다. 석탄은 철강과 기계산업의 전후방 연관을 통해 산업 전체가 문제없이 굴러가게 했다. 

    “석탄이 없었다면, 영국의 모든 나무를 고갈시켰어도 산업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865년 제번스는 이렇게 말했다. 

    “석탄은 다른 모든 상품의 위에 놓여 있다. 석탄은 국가의 물질 에너지이자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연관된 요소다. 석탄이 있으면 거의 모든 위업이 가능하거나 손쉬워진다. 반면 석탄이 없으면 우리는 고달픈 빈곤으로 떨어진다.”

    철 기계에 이어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이 발명됐다. 기관차를 발명한 조지 스티븐슨은 탄광에서 증기 펌프를 다루던 화부(火夫)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감독하던 증기 펌프에 바퀴를 장착해 탄광에서 강까지 석탄을 운반했다. 이렇게 증기기관차가 석탄의 채취와 수송을 위해 개발된 것을 보면 그 시대 석탄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철도는 석탄·철·공산품·농산물 등 모든 상품을 낮은 비용에 대량으로 운반하면서, 국내시장을 하나로 연결했다. 또한 철도 자체가 레일용 철강, 침목, 차량, 교량 건설 등 다양한 수요를 창출해 철강, 기계, 건설 산업을 일으켰다. 해상운송에서도 석탄과 증기기관은 범선 위주의 해운 구조를 증기선으로 대체했다. 증기선은 바람과 조류의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으로 운항할 수 있어 무역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자본이 생산수단으로 분리되면서 ‘산업자본주의’ 시작

    경제학에서는 생산을 Y = F(L, K)로 표현한다. 생산(Y)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노동(L)과 자본(K)이 필요하다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수식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농업 생산은 노동과 토지의 함수였고, 수공업에서도 장인이 기술과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으니 노동과 자본을 분리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자본이 생산요소로 들어간 것은 산업자본이 형성된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었다. 이는 노동과 자본의 분리, 즉 노동과 생산수단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은 자본이 생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생산방식을 만들어냈다. 공장제 생산방식은 노동과 자본을 분리해 산업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자본주의가 성행했지만, 그것은 상업으로 형성된 자본이 선대제(先貸制) 등으로 생산을 이끌어가는 ‘상업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탄과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자본이 생산수단(기계, 공장 등)으로 전환됐고, 이로 인해 상업이 아니라 생산이 경제의 중심이 되는 ‘산업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동시에 산업혁명은 사회구조를 변화시켰다. 고용관계가 일반화하면서, 지주와 귀족 중심의 질서는 쇠퇴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기업가(부르주아)와 그렇지 못한 임금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질서가 자리를 잡아갔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1850년대에는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됐다. 새로운 경제구조는 도시의 임금노동자들을 화폐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켰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받은 임금으로 시장에서 소비재를 구매했고, 이 돈이 화폐 순환의 기반이 됐다. 1인당 임금은 낮았지만, 노동자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은행 예금과 화폐 유통량도 따라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기업 대출도 늘어났다. 화폐의 중심도 점차 금속화폐에서 은행권, 지폐, 수표 등 대표 화폐로 전환됐다. 전체 인구와 국민소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고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인간의 기대수명도 늘어났다.

    러다이트 운동은 1800년대 초 영국에서 방직기 등 기계 파괴로 자본 착취에 맞선 노동운동이었다. Gettyimage

    러다이트 운동은 1800년대 초 영국에서 방직기 등 기계 파괴로 자본 착취에 맞선 노동운동이었다. Gettyimage

    그러나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고통받는 사람도 많았다. 영국의 대표적 작가인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작품을 통해 산업화 이후 영국 사회의 어두운 면과 함께 인간성과 선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도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이 표출된 사건의 하나다. 이는 19세기 초 영국 직물공업 지역에서 발생한 기계 파괴 운동으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수공업 몰락, 장시간 노동, 나폴레옹전쟁으로 인한 경기 불황과 실업 확대 등이 원인이 돼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 파탄 원인을 기계와 이를 도입한 자본가에게서 찾았다. 러다이트 운동은 점차 노동운동으로 바뀌었고, 노동자 권익 보호를 제도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러다이트라는 말은 ‘신기술, 자동화, 디지털화에 대한 거부’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돼 지금도 4차 산업혁명과 AI의 찬반 논쟁에서 자주 소환되고 있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국가의 재정 기반이 튼튼해지면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근대 국민국가가 태동했다. 서구 열강들은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기로 다른 약소국들을 제압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는 ‘제국주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서구 열강은 면화·고무·석탄·석유 등 필수적인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했고, 자국의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품에 대한 수요처도 찾아야 했다. 그들은 그 답을 식민지에서 찾았다. 여기에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잉여자본이 더 높은 이윤을 찾아 식민지로 이동하면서 식민지의 철도, 항만, 광산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다. 서구 열강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를 탄압하고 수탈했으며 제국주의 질서를 고착화했다.

    산업혁명이 제국주의를 낳았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산업혁명이 제공한 생산력, 군사력, 이동성의 우위가 없었다면 제국주의 체제는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구 열강이 대량생산된 화기와 군함, 철도와 증기선 등 산업혁명의 산물들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단기간에 제압하고 군사적·경제적 지배력을 확산해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식민지 확장 정책은 결국 세계대전을 불러온다.

    제2차 산업혁명 원동력, 석유와 전기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에 독일과 미국, 19세기 후반에는 일본과 러시아 등 후발국으로 확산됐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산업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일어난 석유와 전기, 내연기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을 말한다. 2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체계가 석유와 전기 위주로 개편된 것이다. 석탄 대신 석유를 연료로 사용함에 따라 자동차, 트럭, 항공기 등 운송수단이 획기적으로 발달했고, 이는 도로 체계의 정비와 대도시의 형성을 가져왔다. 전기가 도시와 공장의 새로운 범용 에너지로 등장했다. 전기의 보급으로 컨베이어 등 고도화된 공장 체제와 대량생산이 용이해졌고, 조명·가전제품 등으로 일상생활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기계를 이용해 상업적으로 석유를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림은 1870년경 출판된 ‘레 메르베유 드 라 사이언스’에서 발췌.  유니버설 히스토리 아카이브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기계를 이용해 상업적으로 석유를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림은 1870년경 출판된 ‘레 메르베유 드 라 사이언스’에서 발췌. 유니버설 히스토리 아카이브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지하의 석유를 기계를 이용해 상업적으로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석유 채굴은 조명용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 당시 조명 수요가 급증해 고래 기름이 고갈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채굴한 것이다. 하지만 석유는 조명용뿐만 아니라 섬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고, 연관 산업으로의 파급력이 엄청났다. 19세기 말이 되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사에 의해 석유산업이 독점됐고, 미국은 독점 자본주의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물질이 ‘석유’라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니다. 석탄과 달리 석유는 액체이기 때문에 채굴 시 많은 노동력이 필요치 않아 채굴 비용이 적게 발생하고, 광부의 파업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석유는 석탄과 달리 사막, 해저 등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집중돼 있어 독점화 또는 카르텔화되는 약점도 있다. 어쨌든 석유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모든 국가의 필수 자원이자 전략 자산이 됐다.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미국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 석유가 달러로만 결제되게끔 강제했을 정도로 석유는 이미 귀한 존재가 돼 있었다. 달러가 ‘페트로 달러’로도 불리게 된 이유다.

    한편 19세기 말 영국은 석탄 매장량 고갈과 생산성의 정체로 점차 국가경쟁력을 잃어갔다. 후발국이 영국을 추격하는 상황에서도 영국은 식민지 확대와 자본 수출 등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연구개발과 교육 등 장기 투자를 등한시했다. 결국 이러한 정책은 재정과 국내 투자 자금을 고갈시키고 영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켰다. 1913년 영국의 해외 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했고, 영국 제조업의 세계 점유율은 1850년 40%에서 1913년 14%로 급격히 추락했다. 길드와 노동조합, 레드 플래그(red flag) 등으로 인한 혁신의 실패도 영국의 쇠퇴에 일조했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세계 1위의 타이틀을 미국에 넘겨줘야 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 획기적 에너지혁명 기대

    강대국의 흥망성쇠는 에너지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풍차와 토탄이라는 에너지원을 통해 최고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다. 18세기 중반 석탄은 산업혁명을 일으키면서 근대의 문을 열었고,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석유의 발견과 전기의 발명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여전히 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에너지혁명은 산업혁명을 동반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에너지와 산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 산업은 국가경제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유발효과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금융시장을 창출해 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례 없는 폭염, 홍수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그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자 현대문명의 일등 공신인 화석연료는 이제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다. 전 세계가 화석연료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는 ‘에너지 전환’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AI, 휴머노이드 로봇 등 신산업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고,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산림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을 때 석탄이 등장해 세상을 구했듯 머지않아 지금의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획기적 에너지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인류는 그렇게 위기를 극복하고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강승준
    ● 1965년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美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 행정고시 제35회
    ● 前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
    ● 前 한국은행 감사
    ● 現 서울과기대 대외국제부총장
    ● 저서 : ‘역사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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