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2일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이하 나사)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가 진정되고 나면 문제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후 나사의 발표가 허점투성이라는 과학자들의 반박이 쏟아지고 있다. 나사의 발견은 생명체에 대한 인식을 바꿀 만한 것인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주는 단서인가? 나아가 지구 생명체가 외계에서 적응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한 쇼인가?
미항공우주국(NASA)이 모노 호수 침전물에서 분리했다는 비소 세균 ‘GFAJ-1’.
비소는 본래 생물에게 독이다. 비소는 세포의 에너지 생성 과정에 관여하는 한 효소에 끼워져 효소의 모양을 바꾼다. 즉 자물쇠의 형태를 뒤틀리게 해 열쇠가 못 끼워지게 하는 식이다. 그러면 세포는 에너지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죽을 수 있다.
그런데 비소를 인 대신에 쓸 수 있다니? 인과 비소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하지만 인은 필수 영양소인 반면 비소는 극독이다. 우리가 만드는 물건 중에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한 원소로 재료를 바꿔도 별문제가 없는 것이 많지만 생물의 몸은 그렇지 않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 중에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물질들이 서로 정확히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 많다.
자물쇠에 제 짝인 열쇠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열쇠를 꽂으면 열리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아예 맞지 않는 열쇠는 들어가지도 않으니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생체 내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화학적 특성이나 구조가 아예 딴판인 물질은 반응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특성이 아주 비슷한 물질은 잘못 끼워져 빠지지 않는 열쇠처럼 반응 자체를 막아버린다. 인체에 작용하는 수많은 독극물은 바로 이런 열쇠와 같다. 정상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끼워질 자리에 대신 끼워짐으로써 신경 신호의 전달을 차단해 죽음을 가져오는 신경독이 그렇다. 이 원리는 항암제 등 의학에 여러모로 이용된다. 그런데 나사는 비소는 다를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NASA 발표의 ‘위대한 함의’
나사가 발표한 GFAJ-1이라는 세균은 염도가 높은 환경에 사는 호염균의 일종이다. 우리가 아는 보통 환경이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극한생물이다. 극한생물 중에는 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종류도 여럿 있다. 하지만 뜨거운 사막이 좋다는 말과 뜨거운 사막을 참을 수 있다는 말이 다르듯이, 비소를 견딜 수 있다는 말과 비소를 이용해 살아간다는 말은 다르다. 울프사이먼은 인을 주지 않고 비소를 주면서 이 세균을 키워보니, 이 세균이 몸의 각종 대사물질에 인 대신 비소를 쓰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핵산을 분리해보니 그 안에 비소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핵산의 원소들을 직접 분석한 것은 아니었다. 방사성을 띤 비소를 넣은 뒤 핵산 같은 물질을 분리해 방사성을 측정하는 방식을 썼다. 분리한 핵산이 방사성을 띠면 비소가 핵산의 구성 성분이 된 것이라는 논리다.
이 발견이 사실이면 지구 생명이 다른 식으로 탄생했을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즉 원시 지구라는 극한 환경에서 생명은 처음에 인이 아니라 비소를 이용했을 수 있다. 나아가 우주의 다른 행성에 인이 아니라 비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원리는 인과 비소에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흔히 언급되는 규소, 즉 ‘실리콘 생물’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탄소와 규소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예전부터 탄소 대신 규소를 토대로 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있어왔다. 탄소는 지구 생명체의 기반이다. 탄소처럼 복잡하고 긴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원소는 규소뿐이다. 탄소 대신에 규소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체내의 탄소 분자 중 일부를 규소로 대체할 수 있는 생명체도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실.
여태껏 없던 새로운 생물을 만들고자 하는 합성생물학 분야도 활기를 띨 수 있다. 합성생물학은 현 생물의 DNA를 이루는 4염기 외에 다른 염기도 DNA에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DNA의 당, 인산이라는 뼈대 자체를 바꾼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사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가능성 차원이 아니라 실물로 제시한 것이다.
과학으론 ‘함량미달’
문제는 나사의 발표가 허점투성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연구진은 DNA 자체를 분석해 실제 DNA 속에 비소가 인 대신에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인은 DNA의 뼈대를 이룬다. DNA의 곁사슬에 해당하는 염기가 교체되는 일은 흔하지만 뼈대 자체가 바뀐다는 것은 획기적이다. 그런 일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을까? 비소가 인만큼 뼈대를 잘 유지할 수 있을까? 합성생물학자인 스티브 베너에 따르면 ‘비소 뼈대’는 이론적으로도 존재하기 어렵다. 비소 뼈대는 물속에서 10분이면 녹아 분해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사 연구진은 그런 분해를 막는 생물학적 장치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미국 하버드 대학의 미생물학자인 알렉스 브래들리가 반박했다. 즉 그런 DNA가 존재한다면 그 DNA를 추출해 직접 물에 넣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정상 DNA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한다. 물에 녹는다면 액체로 가득 찬 세포 내에서 평생을 버티며 유전정보를 간직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의 비소라면 금세 녹아 조각나고 만다. 브래들리의 제안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자 가장 확실한 검증방법이기도 하다.
더욱이 펠리사 울프사이먼의 연구진은 사실상 그 실험을 해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세균을 터뜨려 DNA를 분리해 방사성을 띠는지 확인할 때 말이다. 또한 나사의 세균에 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브래들리는 “인 함량이 나사의 세균의 300분의 1에 불과한 버뮤다 해역 내 사르가소해에 사는 미생물들도 정상적인 DNA 인 뼈대를 지닌다”고 말한다. 나사의 세균에 든 미량의 인이 결코 인 뼈대를 만들지 못할 적은 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세균이 원래 살던 모노 호수의 인 농도는 사르가소해의 10만 배나 된다. 그러니 모노 호수의 비소 농도가 높다고 해서 굳이 그 세균이 인 대신 비소를 쓸 이유가 없다. 그냥 고농도의 비소를 견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사 연구진의 실험 결과에선 이처럼 많은 허점이 발견된다.
“펠리사에게 일자리를”
과학계 일각에선 “펠리사 울프사이먼의 연구진이 원하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됐다”는 조롱도 나오고 있다. 즉 이들이 발표한 세균인 GFAJ-1이 ‘Give Felisa A Job’, 즉 ‘펠리사에게 일자리를 주세요’라는 뜻이며 전세계적인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함으로써 후속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를 듬뿍 받을 테니 일자리 목적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비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나사의 발표 직후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을 연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흥분한 우주생물학 분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 인이 부족하거나 없는 환경에 놓인다면 생물은 전멸하거나 인을 다른 원소로 대체할지 모른다. 자연에서 부족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대체한 사례는 간혹 나온다. 최근 건강보조식품으로 인기를 끄는 셀레늄이 그것이다. 셀레늄은 강력한 항산화제로 바닷물에 녹아 있다. 그래서 해양생물의 몸에도 셀레늄이 많다. 육지에는 셀레늄이 적다. 생물이 맨 처음 바다를 떠나 육지로 올라왔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들은 효소에서 셀레늄이 하던 역할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해야 했다. 동물은 이 원소를 대체하지 못해 그 기능을 거의 잃었다. 식물은 폴리페놀 같은 대체 항산화물을 개발했다. 즉 생물은 특정한 원소를 거의 이용할 수 없게 되자 항상은 아니지만 대체 수단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나사 연구진의 연구가 전부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이들은 향후 DNA의 뼈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염기의 조성이 바뀐 생물은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수십 년 전 생물학자들은 모든 생물이 같은 유전암호를 쓴다고 생각했다. 이후 예외 사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바 있다. 유전암호는 DNA와 아미노산을 대응시키는 규칙인데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별도의 유전암호를 쓴다. 몇몇 세균과 고세균에서도 예외 사례들이 발견되었다.
나사의 발표가 생물이 극한 환경에 적응한 예외적인 사례라고 해도 우주에 비소를 이용하는 생물이 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 그대로 우주는 광활하니까 말이다. 비소 세포는 우주생명체, 나아가 외계인의 존재가능성을 높인다.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계획의 주창자인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우주에 고도의 지성체가 살 만한 행성이 몇 개나 되는지 추정하는 방정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지구가 속한 우리 은하계에만 약 1만개의 고도 문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생명체들이 사는 행성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드레이크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이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생겼을 수도 있고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삶 자체는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바깥에 누가 살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할 때, 먼 행성의 누군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계인에 열광하는 이유
영화 ‘ET’의 한 장면.
지구에 우리가 모르는 세계와 생물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구의 심연에도 들어가보았고 세계 곳곳에 발을 디뎠지만 과학자의 세심한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은 곳은 아직 많다.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생물이 새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서도 이따금 새로운 생물이 발견되고 있다.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어느 한 지역을 샅샅이 훑으면 전혀 알지 못했거나 모르고 지나쳤을 새로운 생물을 발견할 수 있다. 80개국의 과학자 2000명은 2000년부터 해양 생물을 조사해 6000종이 넘는 새로운 생물을 발견했다. 이중에는 석유를 먹고 사는 생물도 있고 고래 뼈를 먹고 사는 생물도 있다. 상식을 벗어나는 기기묘묘한 온갖 모습의 생물들이 가득했다. 더 깊이, 더 넓게, 더 상세히 훑을수록 상상도 못한 생물이 발견되는 것이다. 영국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이 목록에 외계인까지 집어넣는다. 그는 지구 내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눈에 잘 보이는 식물, 동물, 균류가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고 세균, 효모, 짚신벌레 같은 미생물이 그 틈새를 채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계에서는 그런 분류법 자체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이 분류한 진화도에 따르면 고세균과 세균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식물, 동물, 균류를 다 합친 것과 맞먹는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미생물 세계에선 새로운 생명체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과학자들은 심연에도, 지하 10㎞ 바위 속에도, 밀림의 나무꼭대기에도, 공기조차 희박한 높은 상공에도 우리가 모르던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속속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이를 그림자 세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는 지구라는 생물권 전체에서 인류는 그저 지표면의 얇은 층에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
사실 ‘나사의 발표내용 자체’보다는 ‘나사가 발표에 앞서 한껏 뜸을 들일 때 국내외에서 벌어진 사회적 현상’이 더 흥미로웠다. ‘나사가 외계 생명체와 관련해 놀라운 발표를 할 것’이라는 뉴스가 앞 다퉈 보도되기 시작했다. ‘나사가 외계인의 증거를 내놓을 것이다’ ‘다른 기관도 아닌 달 착륙에도 성공한 나사가 발표하는 것이니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물증을 보고 싶어 안달을 해온 것처럼 보였다. 이런 추세로 판단컨대 만약 나사가 발표를 일주일쯤 더 미뤘다면 전세계적으로 외계인 열풍이 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정작 미국보다 나사의 발표 소식에 더 호들갑을 떤다는 뉴스도 나왔다. 송재룡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이 외계인 뉴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외계인이 발견되면 현재의 사회가 크게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나사는 대다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심리에 편승해 자신의 권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치기 소년’ 식 발표를 한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