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세적 먼로주의 추진…세력권 질서로 이행
미국의 상황 인식 변화로 미-러 밀착
그린란드 사태와 대서양 동맹의 적전(敵前) 분열
불확실성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 자강과 동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2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 연설에서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재차 드러내며 유럽을 자극해 논란이 됐다. 신화/뉴시스
이 같은 기조는 서반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경제·군사 안보의 이익을 명분으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덴마크령(領) 그린란드 병합 구상까지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군의 무력 동원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부에서는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동맹 조약 제5조(한곳의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적용 여부가 논의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美 공세적 먼로주의 추진…세력권 질서로 이행
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은 이런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현장이었다. 1월 21일(현지 시간) 기조연설자로 나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끝나가고 있으며, 통상과 공급망을 통한 경제적 통합은 이제 강대국의 무기이자 종속 수단으로 전환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관세와 공급망 지배력을 앞세워 동맹국까지 압박하는 현실에서, 과거의 달콤한 환상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중견국(middle power)의 각성과 연대를 촉구했다.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존재한다”며 불만을 드러냈고, 캐나다 정상을 ‘카니 주지사’로 지칭하며 영토 병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아가 캐나다가 중국과 무역협정을 추진할 경우 모든 수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며, 동맹을 향한 미국의 권력 행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문명사적 사건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대리전(proxy war)이자 평화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만약 미-러 협상을 통해 전쟁이 종식될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배타적 세력권을 국제적으로 승인받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과 이란을 향한 군사적 압박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으나, 말과 실제 행보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대만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추진하고 있고, 푸틴 대통령은 군사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한 상황이다.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가깝다. 러시아의 침략전쟁이 장기화하는 국제 안보 구조에 트럼프 2기 변수가 결합하면서, 기존 질서는 강대국 간 ‘미필적고의’가 용인되는 ‘세력권 질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맹 복원’과 ‘가치 연대’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집권 1년 만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해 온 미국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중대 분수령이자 국제질서의 향배를 가르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침공을 전략적 실패로 귀결시키기 위해 외교·군사·경제 수단을 총동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2023년 2월 키이우 전격 방문은 미군이 주둔하지 않은 분쟁지역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찾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이 장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민주주의 진영의 연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맞서 대서양 동맹이 비용과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월 22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지난 한 해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충분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신화/뉴시스
미국의 상황 인식 변화 미-러로 밀착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Kiel Institute for the World Economy·IfW Kiel)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2024년까지 G7과 EU 회원국을 포함한 민주주의 진영 약 40개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약 1200억 유로(약 177조 원)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미국은 약 640억 유로를 부담해 전체의 약 51%를 차지했다. 여기에 인도적·재정적 지원과 동맹 결속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사실상 대서양 동맹을 규합해 러시아와 대리전을 수행한 셈이다.그러나 2025년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동결하며 노선을 급선회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러 강경 기조를 사실상 폐기하고, 특사 외교를 전면에 내세워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장 상황,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과 국내 정치 여건, 러시아의 능력과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푸틴 대통령을 알래스카로 불러들이는 강대국 정치에 착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015년 이후 약 10년 만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종전 구상을 논의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이른바 ‘평화 프레임워크’에는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는 물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통제 중인 전 지역을 ‘러시아령’으로 간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대선 실시와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철수를 압박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쟁 내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첨예하게 맞서온 국경선 문제와 안전보장 등 핵심 쟁점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제시해 온 ‘최대주의적 종전안’으로 기울었다. 이는 단순한 중재를 넘어, 전후 유라시아 세력권 질서를 재편하려는 러시아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유럽 핵심 국가들이 종전 협상에서 배제되거나 형식적 참여에 그치면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대서양 동맹의 정책 공조는 사실상 와해 수순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과 국방전략(NDS)은 △서반구 우선주의, △선택적 개입, △거래적 동맹이라는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기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국제사회에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던 ‘세계 경찰국가’의 사명을 내려놓고, 멕시코 국경과 카리브해, 중남미 등 미국 본토 안보와 직결된 서반구를 배타적 세력권으로 관리하는 한편, 그 밖의 지역은 거래 중심의 제한적 개입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아울러 러시아 억제의 1차 책임은 유럽이 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우크라이나 문제 역시 유럽의 책임과 부담을 강조하는 불개입 기조를 못 박았다.
트럼프 2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를 차단하고, 질서 있는 종전을 통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군사원조를 동결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조절하고, 러시아와 사전 교감을 통해 ‘평화 프레임워크’의 핵심 쟁점을 단순화하며 협상 참여 주체를 제한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그 결과 미국은 러시아의 유라시아 세력권을 용인하고, 러시아는 서반구에서 미국의 배타적 영향권을 인정하는 ‘세력권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린란드 사태와 대서양 동맹의 적전 분열
우크라이나 종전 방식을 둘러싸고 표면화된 대서양 동맹의 분열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으로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초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군사력 사용 가능성과 고율 관세 부과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미국-유럽 간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대서양 동맹 회원국들은 이를 명백한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외교적 규탄과 연합 훈련 등 집단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80년간 유지돼 온 대서양 동맹의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그린란드 병합 의도를 밝힌 바 있으나 당시에는 ‘부동산 사업가 특유의 과장’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재선 이후 미국 본토 방어와 대중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그린란드를 발판 삼아 북극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그린란드는 북극과 북대서양을 잇는 ‘GIUK 갭(Greenland-Iceland-United Kingdom Gap)’의 핵심 축으로, 러시아 북양함대 전략 자산의 움직임을 감시·차단할 수 있는 최전방 군사요충지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 지역에서 군사기지 확충과 항로 개척 등을 병행하며 우위를 선점했고, 중국은 ‘빙산 실크로드(Polar Silk Road)’를 통해 북극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극 군사화와 우주 경쟁이 동시에 심화되는 흐름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후발 주자에 가깝다. 이런 배경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강대국 간 핵·미사일 군비 확충과 우주 패권 다툼에 대응해 ‘골든돔(Golden Dome)’의 작전 범위를 북극으로 확장하고 있다. 피투피크(Pituffik) 우주기지가 배치된 그린란드는 미 본토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미국이 중·러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작전 즉응성과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활적 이익’ 차원에서 장기적·영구적으로 확보해야 할 세력권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 그린란드는 남부 크바네피엘드 일대를 중심으로 희토류 산화물 약 1100만t(TREO), 우라늄 약 26만 9000t(U3O8)이 매장된 전략 자원 보고다. 미국은 금융·민간 투자를 축으로 광산 개발과 공급망 선점에 나서는 동시에 이미 일부 지분을 확보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그린란드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 구상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을 상대로 모든 수출품에 추가 10% 관세를 예고하고, 6월 1일 25% 추가 인상 계획까지 제시했다. 이미 10~15% 기본관세율이 적용되는 품목에 더해지는 구조로, 실질 관세장벽이 최대 40%에 달할 수 있다. EU가 무역협정 비준 중단과 역보복 관세로 맞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그린란드 프레임워크 합의에 근접했다”며 관세 발동을 유보했다. 그러나 동맹을 겨냥한 관세 위협은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관철하기 위한 핵심 압박 수단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에 대해 유럽과 나토는 외교·군사 수단을 병행해 ‘주권 수호’ 입장을 분명히 하고, 군사동맹의 결속을 재정비하고 있다. 덴마크와 EU 주요 국가는 공동성명을 통해 영토 보전과 자결권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EU는 북극 안보를 유럽 안보의 일부로 규정하고, 그린란드 인프라 투자와 감시·정찰 능력 강화를 공식화했다. 덴마크는 ‘북극 인내(Arctic Endurance)’ 작전을 통해 그린란드와 인근 해역에 해·공군 전력을 전개했고, 독일·프랑스·노르웨이 등 나토 주요국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북극 일대에서 연합 해상·공중 훈련을 실시하며, 그린란드가 나토의 집단방위 권역에 속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있다. 나토는 북극 임무를 전담할 작전사령부 창설을 검토하는 한편, 스웨덴과 핀란드 가입으로 강화된 북극 전력을 그린란드 위기관리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그린란드 사태 여파로 대서양 동맹의 분열이 심화하면서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얻을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EU 간 긴장이 구조화될수록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역량은 분산되고, 내부 결속도 약화된다. 이는 종전 협상 국면에서 러시아의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환경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미국의 북극 진출은 러시아에 해양 안보 강화를 정당화할 명분을 제공해, 북극 지역 군비 확충을 촉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린란드 사태는 미국과 나토의 부담은 키우는 한편, 러시아의 비용은 최소화하는 비대칭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국면과 그린란드 사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러시아라는 잠재적 적을 앞에 둔 대서양 동맹의 ‘적전(敵前) 분열’이 현실화하고 있다.

2월 4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2차 종전 회담이 열렸다. 신화/뉴시스
불확실성 시대에 대비한 한국의 생존 전략
미국의 패권이 약화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전히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기축통화, 글로벌 공급망, 첨단 기술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보유한 미국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패권국이다. 한반도 안보가 구조적으로 한미연합 방위체계 위에서 작동해 온 만큼, 미국은 한국에 숙명적이면서 결정적인 상수로 남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적 동맹 기조에서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북 억제력에 대한 1차 책임은 더는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점차 한국군의 몫으로 이동하고 있다. 평택·오산·군산 등 서해 인근 주한미군 기지는 중국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까지 직선거리 400~600㎞에 불과해 미중 패권 경쟁의 전진기지로 기능한다.미국 NDS는 중국의 군사 팽창 저지를 위해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을 핵심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 선상에 ‘거부적 억제망’을 구축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전략 구상에서 중국과 근접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한국은 미국의 세력권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첨단 거점이다. 이 때문에 대북 억제의 1차 책임이 한국으로 전환되더라도 한미연합 방위 태세가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은 미국의 한반도 관여를 견인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확대하고, 주변국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총체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정학적 대전환과 한미동맹의 급변 속에서 자강과 동맹, 국익 중심의 실용적 외교·안보 수단을 결합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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