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장에 건설된 대한제국관.
파리 시내에 경복궁 근정전을 본뜬 2층 한옥 ‘대한제국관’을 지었다. 전시품은 고종황제가 직접 골랐다. 황실의 생활용구와 도자기, 무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예품이던 국악기들이 파리로 옮겨졌다. 참가 대가로 프랑스에 광산채굴권과 철도부설권 일부를 또 양도해야 했지만, 괜찮은 거래인 듯 보였다. 세계 40개국이 참여해 파리 센 강변 110ha에 각국 전시관이 늘어선 이 박람회에서 우리 전시는 꽤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잡지 ‘르 프티 주르날’은 한 면을 할애해 ‘대한제국관’을 소개했다. 대한제국은 일본과 다르고 중국과도 다른, 고유의 문화·역사를 지닌 별도의 국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박람회가 끝난 뒤 우리 전시품은 다시는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한다. 막대한 수송비를 마련할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이후 프랑스에 기증된 물건은 곳곳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1904년 일본에 치안권을, 1905년에는 외교권마저 빼앗긴 끝에 1910년 ‘경술국치’로 영영 사라지고 만다.
112년 만에 한국 땅에 돌아온 대한제국 악기들을 공개한 ‘1900년 파리, 그곳에 국악’ 전 전경.
무당이 점을 보거나 굿을 할 때 손에 들고 흔들던 무속방울. 방울 수 7개의 ‘칠성방울’인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방울 세 개만 남아 있다.
함께 전시되는 현재의 국악기와 비교해보면 이 전시의 가치가 분명히 드러난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19세기 말의 해금은 오늘날의 해금보다 훨씬 짧고 목 부분이 크게 휘어져 있다. 대가 곧게 선 지금의 해금이 내는 것과 다른 음색을 냈을 것이 분명하다. 19세기 단소의 맨 아래 뚫려 있는 칠성공(七星孔)도 눈길을 끈다. 지금의 단소는 뒷면에 지공 한 개, 앞면에 지공 네 개만 있을 뿐, 칠성공은 따로 없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부슬(아래 끈)도 현대와 매듭지은 방식이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 우리 음악의 원형과 국악기의 변천사를 연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인 셈이다.
안타까운 건 모든 전시품에 ‘프랑스음악박물관 소장’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는 점. 프랑스가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 악기들은 ‘대여’ 형식을 통해 잠시 대한민국에 돌아왔을 뿐, 내년 2월이면 돌아가야 하는 처지다. 성현경 국립국악원 홍보담당관은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잊혀 있던 해외 소재 고악기를 다시금 조망하는 첫 번째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외에도 수많은 악기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외국에 반출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이들 악기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장기적으로 우리 국악기 연구가 한 단계 발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볼거리보다 생각할 거리가 더 많은 전시다.
● 일시 | ~10월 7일까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 장소 | 서울 국악박물관 특별전시실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580-3130
국악박물관 전시실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