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인터넷 전쟁’서 민주당이 앞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동수의 투시경] 다시금 불붙은 커뮤니티 정치 논쟁

  •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입력2025-10-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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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뮤니티 정치 ‘원조’ 민주당…盧‧文 모두 힘입어

    • 얼리어답터의 공간 인터넷, 진보 지지세 강할 수밖에

    • 진보 일색 커뮤니티 판도에 균열 낸 ‘여옥대첩’

    • ‘과열 심화’ 민주당, ‘눈 귀 닫은’ 국민의힘 모두 우려

    정치권에서 느닷없이 ‘커뮤니티 정치’ 논쟁이 벌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9월 19일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이 대통령은 청년세대의 남녀 갈등을 언급하며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미워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불을 붙였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법한 여적여 프레임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국격의 추락”이라며 “커뮤니티 사이트를 끊으라”고 촉구했다.

    여권 인사들은 반발했다. 요컨대 커뮤니티를 끊어야 할 건 이 대표라는 이야기였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커뮤니티 담론’에 기대 갈등을 조작하고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는 무책임한 태도, 그것이 바로 젠더 갈등 일등 공신 이준석 정치의 민낯”이라고 논평했다. 민주당 성향 방송 패널들도 이 대표와 2030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펨코)’와의 연관성을 물고 늘어졌다. 이에 이 대표는 “정작 펨코에 인증 글 남기고, 과거 일베였다고 하고,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에 문안 인사 한 분은 대통령”이라고 반박했다.

    커뮤니티 정치 ‘원조’ 민주당…盧‧文 모두 힘입어

    온라인 커뮤니티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노무현 전 대통령. 동아DB

    온라인 커뮤니티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노무현 전 대통령. 동아DB

    여권 인사들과 이 대표 모두 온라인 커뮤니티(이하 커뮤니티)와는 일정 부분 선을 그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보고 정치한다”라는 비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와 커뮤니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아가 민주당이 ‘커뮤니티 정치’를 공격 지점으로 삼은 것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커뮤니티를 활용해 조직을 구축하고 선거를 치른 ‘원조’는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구 커뮤니티 ‘MLB파크’에 “동네 야구 4번 타자 문재인 인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마니아들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런 곳에 대선 주자가 와 지지를 호소했으니, 파급력이 컸다. 그는 19대 대선을 앞두고도 친민주당 성향의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클리앙’, ‘루리웹’ 등에 동영상을 업로드며 인사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어쩌면 이 같은 선제적 실험이 있었기에 ‘문빠’로 불리는 막강한 팬덤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민주당이 커뮤니티를 통한 조직 구축과 여론 형성을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이는 한국 인터넷 문화의 태동, 확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태초의 인터넷은 진보적 색채가 매우 짙은 공간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가정에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젊은 층의 전유물과 다름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 안에서도 비주류 영역에 속했다. 소위 ‘얼리어답터’들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의 진보 지지세가 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커뮤니티는 단순한 인터넷 게시판에 머물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때때로 선거에 적극 참여해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대표 사례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투표부대’다. 발단은 탄핵 사태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인터넷에선 엄청난 성토가 쏟아졌다. 탄핵소추안 가결에 분개한 사람들은 그해 4월 15일 열릴 17대 총선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들을 심판하자”라며 이들이 집결한 곳은 디시인사이드의 ‘정치, 사회갤러리(정사갤)’였다. 디시인사이드는 우리나라 최초 온라인 커뮤니티로 평가받는 곳으로, 당시에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이용자들은 그곳에서 노래와 각종 ‘짤방(이미지 합성물)’을 생성·공유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스스로를 투표부대라 부른 이들이 생성한 콘텐츠는 인터넷 곳곳에 퍼졌다. 덕분에 열린우리당은 그간 민주당계 정당에서 전례 없었던 과반 승리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인터넷 여론에서 민주당이 절대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원외 인사의 노력도 적잖이 작용했다. 신문·방송 등 전통 매체에서 열세에 놓였다고 판단한 진보 진영은 인터넷에서 돌파구를 모색했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성장한 것도 이 시기다. 그는 대기업 해외영업부에서 근무하다 돌연 회사를 그만둔 후 배낭여행에 나섰다. 이후 배낭여행과 인터넷을 결합한 여행상품을 팔아 상당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사업이 망한 차에 ‘딴지일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차렸다. 제도권을 향한 풍자와 패러디는 초창기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었고, ‘딴지일보’는 2000년대 인터넷 매체로 성장했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0년대 들어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도 시작했다. 팟캐스트는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맞물려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줬다.

    따져보면 노 전 대통령 팬클럽 ‘노사모’도 정치 커뮤니티 시조의 한 갈래로 봐도 무방하다. 노사모는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노무현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됐다. 재벌 대기업의 후원도, 중앙당의 관리도 받지 않은 이들을 한데 묶은 건 인터넷이었다. 전국의 노사모 회원들은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조직을 구축했다. 진보 논객들은 ‘서프라이즈’ 같은 웹사이트에서 무기가 될 만한 논리를 제공했다. 이때 활발하게 활동해 존재감을 알린 인물 중 한명이 정청래 민주당 대표다. 온라인에서의 후방지원을 등에 업은 덕분에 노 전 대통령은 조직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런 그에게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진보 일색 커뮤니티 판도에 균열 낸 ‘여옥대첩’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12년 3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동아DB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12년 3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동아DB 

    사람의 생각이 다양한 만큼,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성격도 한 방향일 수만은 없었다. 진보 일변도의 커뮤니티 여론에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했고, 이를 만들어낸 인물은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때는 2004년 11월, 전여옥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서울 강남의 한 호프집에서 네티즌 수십 명과 토론을 벌였다. 행사를 주최한 건 디시인사이드 정사갤 이용자들. 이들은 제17대 총선 이후 정치인 초청 간담회를 열어왔는데, 김근태·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에 이어 세 번째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 의원을 부른 것이다. 참석자들은 “전여옥을 논리로 압살하겠다”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일반 시민과 기자·정당 대변인으로서 훈련된 정치인 사이 차이는 무시 못 했다. 전 의원은 차떼기 논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고, 뒤풀이 자리에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토론을 이어나가는 여유도 보였다. 훗날 이 사건은 ‘여옥대첩’으로 불렸다. ‘인터넷에선 잘 싸우지만, 현실에선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인 ‘키보드 워리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여옥대첩 이후 정사갤은 급격히 보수화했다. 전 전 의원에게 패배한 네티즌들이 현실을 자각하고 보수로 전향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위축됐던 보수 성향 이용자들의 주장이 힘을 받아 커뮤니티 내 주류로 올라서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여옥대첩 이후 진보 일색이었던 커뮤니티 여론에 보수 성향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수년 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진보 우위의 여론 지형이 바뀐 건 아니었다. 한때 일베가 엄청나게 세를 확장했던 건 사실이지만, 특유의 극단성과 ‘막장성’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얻긴 어려웠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극우 성향의 일베와 진보 성향의 나머지 커뮤니티가 대립하는 구도가 계속됐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 청년층에서 남녀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베 대 나머지’ 구도였던 커뮤니티 여론이 ‘남성 대 여성’으로 재편됐다. 2030 남성 중심의 에펨코리아가 보수화한 것도 이 시기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는 그보다 연령대가 조금 높은 세대의 커뮤니티인 MLB파크도 보수로 돌아섰다.

    ‘과열 심화’ 민주당, ‘눈 귀 닫은’ 국민의힘 모두 우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이들이 보여주는 이념적 성향은 매우 다양하지만, 과거엔 대체로 진보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진보 정권의 퍼포먼스에 따라서 지지를 강화하거나 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커뮤니티의 이념적 성격을 바꾸는 데 있어서 보수 정권이 변수가 된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보수 정당의 전통적 지지자 중 고령층이 많아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데다, 같은 이유로 보수 정당 역시 커뮤니티보다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여론 형성에 좀 더 집중한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피고, 이용자들의 협조를 구하는 건 불필요한 일일까. 온라인 커뮤니티는 별도의 세계가 아니며, 오프라인의 확장판이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이것이 모이면 여론이 된다. 지금도 많은 논쟁이 커뮤니티에서 비롯된다. 언론도 ‘커뮤니티를 살피는 정치인’을 비판하면서도, 커뮤니티 발 기사를 쏟아내지 않나. 더욱이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만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때 온라인 커뮤니티는 대강의 여론을 알려주는 중요한 창구로서 기능한다. 특정 커뮤니티 여론만 참고해 확증 편향에 갇히는 건 문제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의견 수렴 창구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권장될 일이다.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이 태동하던 시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지자와 소통하고 이를 기반으로 여론을 형성해 왔다. 개인 홈페이지에 불과했던 ‘딴지일보’의 김어준 씨가 여느 당대표보다 힘센 스피커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지자들과 어울리며 쌓아온 역사가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이다. 그 단단한 결속이 민주당 의원 개개인들의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여론 형성을 놓고 벌어지는 ‘인터넷 전쟁’에서 민주당이 앞서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걱정해야 할 건 ‘커뮤니티 보고 정치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다. 한쪽은 과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이런 데에 적극적인 데 반해, 다른 한쪽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 눈과 귀를 닫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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