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트리플 트러블”…기업 ‘엑소더스’ 시작되나

[재계 인사이드]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중대재해처벌법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입력2025-09-1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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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단체, 최소한의 방어 요구…일각에선 ‘脫한국’

    • 유럽은 ‘백서’ 만들고 미국은 애로 사항 ‘청취’

    •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자금’ 운용안 재검토까지

    • 상법 3차 개정·법인세 인상 남아…화해의 제스처는?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트리플 트러블(Triple trouble).”

    우리나라에 진출해 사업하고 있는 모 유럽 유명 기업의 인사는 최근 우리 재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세 가지 고민’ 또는 ‘세 가지 골칫거리’다. 그가 지목한 건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외국 기업들의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7~8월 상법 1, 2차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연이어 국회 본회의와 국무회의의 문턱을 넘자, 외국 기업들은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중에서도 그간 우리나라에서 공장, 법인을 운영해 온 외국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중대재해처벌법이었다. 공사 현장 등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진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그 법이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후 이 법은 외국 기업에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모국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내용이어서 더욱 그랬다. “어쩌면 중국보다 한국이 기업 규제는 더 심한 것 같다”는 인식도 팽배해졌다. 외국 기업은 여전히 3년 넘게 이 법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중대재해 사고에 대해 엄벌하겠단 기조를 보이면서 새 국면에 접어들 조짐도 보인다. 이런 와중에 상법이 개정되고 노란봉투법이 등장했으니, 외국 기업 입장에선 그야말로 ‘트리플 트러블’을 맞닥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 법들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우리 기업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 특히 올해 입법 절차를 밟은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은 국내외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 또는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또는 근로자)의 권리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과 경제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다. 



    경제 단체, 최소한의 방어 요구…일각에선 脫한국

    상법은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면서 주주들의 이사회 개입 또는 진입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한 내용, △기업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3% 룰’,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시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한 ‘집중투표제’ 등이 빚어낼 풍경들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해,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자가 장기 파업했을 때 기업이 볼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선 해당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내용도 담겼다. 모두 기업 처지에선 험난해 보이기만 한 변화다. 

    경제 단체들과 기업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장하는 보완 입법도 요구한다. 일각에선 이 목소리를 접고 ‘탈(脫) 한국’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보이는 동향도 엿보여 재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우리나라에 있는 공장을 철수하거나 국내외 시장에서 자본 비율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 나온다. 어느 시점이 되면 기업들이 우리나라를 줄지어 빠져나가는 ‘엑소더스’가 시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외국 기업들의 반발은 노란봉투법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에 대해선 직접 입장도 발표하며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유럽상의)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미국상의)가 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국면에서 반대의 뜻을 피력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극한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를 가정해서 밝힌 것이었긴 했지만, 유럽상의가 “(유럽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한 지점은 이들이 해당 법에 대해 얼마나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유럽과 미국은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운 세계시장 상황과 그에 따라 변동성이 커진 우리나라 시장 상황 때문에 더욱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외국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을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생산 거점으로 우리나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가 변수로 등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우리나라에 상호 관세 15%를 매겼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 대해선 관세 25%를 부과했다. 7월 30일 한미 간 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세는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이를 이행하기 위한 행정명령은 나오지 않았다.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대다수의 유럽, 미국 기업은 자동차기업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엔 한마디로 날벼락이 떨어진 셈인데, 여기에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노조의 집단행동까지 더해지면서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업계에서 힘이 실리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한국지사의 철수설은 이를 기반으로 나왔다.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 등 경영 위기를 겪던 2018년, 공적자금 8100억 원을 긴급 수혈하는 조건으로 향후 10년간 한국 사업장을 유지하기로 한국산업은행과 맺은 잔류 약속이 2027년 말이 되면 끝난다. 이후에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GM은 관세 부과로 인한 직격탄을 맞게 됐고, 노란봉투법 통과 후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 노조는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하며 9월 1일부터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이 설상가상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만한 여력이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유럽과 미국은 앞으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 행보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상의는 9월 25일 한국의 기업 경영 환경 등을 세세하게 분석한 ‘백서’를 내고 관련 간담회도 열 예정이다. 백서엔 노란봉투법 등 근래 법제화된 우리나라의 기업 규제 사항이 대부분 담길 것이 유력하다. 간담회에선 필립 반 후프 유럽상의 위원장 등 임원들이 우리나라 규제 법안의 문제점을 역설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선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장 격인 앤드루 퍼거슨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방한해서 우리 재계 관계자들은 물론 미국 기업 관계자들과 비공개 회동했다. 미국 FTC 위원장이 방한하는 것은 2014년 이디스 라미레스 당시 위원장이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공정거래위와 한미 양자협의회를 연 이후 11년 만이다. 특히 퍼거슨 위원장은 방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9월 4일 제임스 김 미국상의 대표이사와 회동하는 자리에 “한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미국 기업 인사들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을 직접 만나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데 있을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수집하려 했다는 후문이 나온다. 

    애로 사항엔 노란봉투법 등 우리 법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내용을 확인한 퍼거슨 위원장은 미국으로 돌아가 트럼프 행정부에 직보할 수도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취임했다. 미국 워싱턴DC 정가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대변하는 사실상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9월 4일 서울 여의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에서 열린 국민의힘-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9월 4일 서울 여의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에서 열린 국민의힘-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자금’ 운용안 재검토까지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통과로 우리 기업이 받는 영향은 외국 기업보다 더 즉각적이고 광범위하다. 노란봉투법의 여파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임금협상 시즌과 맞물려 통과된 탓에 여러 기업이 노사관계에서 매일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표적인 ‘강성 노조’로 평가받는 현대자동차는 임금 및 단체교섭이 난항을 겪으면서 9월 3일부터 부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노란봉투법의 후폭풍이 불어닥친 대표 사례로 꼽힌다. HD현대그룹은 8월 27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합병한다고 발표했는데, 노조는 이에 따른 전환 배치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이 저해될 것을 우려해 사측에 관련 협약서 작성을 요구하고 추가 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엔 기업의 인수·합병(M&A)과 투자에 대해서도 노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관련 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한 노란봉투법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외에도 포스코는 8월 20일 제17차 노사 간 본교섭 이후 교섭이 중단됐다가 9월 5일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노사가 합의하며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현대제철은 비정규직지회가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며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영향력은 내년 3월 여러 기업의 주주총회가 잇달아 열리는 이른바 ‘주총 시즌’에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기업들의 주주 연대가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동향은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연대 단체를 꾸려 성명서나 입장문을 내며 기업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부 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현지에서 증시 상장, 투자 등에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국내외 자금을 운용하는 전략을 세워서 움직이는데 이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확보한 자본을 국내 본사로 들여오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기 일보 직전이다. 상법 개정 등으로 국내에선 투자 등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가 어려워져 생각해 낸 자구책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에 이어 법인세 인상까지 논의되면서 본사로 배당을 환원할 유인이 낮아졌다”며 “해외 수익을 현지에 두고 투자나 운용에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회사 입장에선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법이 1, 2차로 개정된 후 이사회는 경영진의 판단대로만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사회는 기업의 예산을 결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등 기업이 미래가치를 생각해서 추진하고자 하는 M&A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라 밖은 이런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기업들은 해외 현지에서 나온 수익 자본을 국내로 끌어들여 이사회, 주주총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겠단 결심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9월 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TF-경제 8단체 간담회’에서 오기형(앞줄 왼쪽 다섯 번째) 특위 위원장, 권칠승(앞줄 왼쪽 네 번째) TF 단장, 박일준(앞줄 왼쪽 여섯 번째)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9월 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TF-경제 8단체 간담회’에서 오기형(앞줄 왼쪽 다섯 번째) 특위 위원장, 권칠승(앞줄 왼쪽 네 번째) TF 단장, 박일준(앞줄 왼쪽 여섯 번째)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상법 3차 개정·법인세 인상 남아…화해의 제스처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으로 인식되는 상법 개정은 3차까지 이어진다. 정부와 여당은 경영진 등 최대주주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사주 소각 역시 기업들의 경영권을 흔들 우려가 있어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회사의 주식을 시장에서 아예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유한 주식 수는 기업에 대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비례하고, 없어지는 주식 수만큼 최대주주의 입지는 줄어든다. 여기에 정부가 세법도 개정하면서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기로 해, 기업들의 비명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많은 관계자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기업들도 법안의 방향성에 대해선 일부 공감한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밑바탕에 ‘반기업 정서’가 깔려 있다고 느껴 그로 비롯된 아쉬움이 더 큰 눈치다. 기업의 건전한 경영이 오해를 받아 범죄화되고 있다는 아우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와 여당이 보완 입법에 나서준다면 이를 기업들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을 것이라 생각된다. 재계는 각종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는 과정에서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경영진이 적법한 입지와 권한이 침해받을 위기에 몰렸을 때 일종의 ‘경보’처럼 발동시켜 자신의 경영권을 사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수단을 입법화해 주기를 요구해 왔다.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하고 무분별한 배임죄의 합리적 개선 등도 있다. 과연 이 내용도 현실화될까. 일단 민주당은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앞세워 이 내용들을 살펴보고 있다. 구체적 결과물이 나올지 재계는 간절히 이들의 행보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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