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말은 믿지 마라, 모든 건 서류에 담아라”

[허변의 법·알·부·보(법을 알아야 부동산이 보인다)] 부동산 계약, 모르면 당한다!

  • 허준수 변호사 nold1027@hanmail.net

    입력2025-10-16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계약서 제대로 읽지 않고 계약…패가망신

    • 말만 믿고 ‘덜컥’ 계약하면 ‘분쟁 시작’

    • 계약서는 명확하게 기재해 다의적 해석 차단해야

    • 계약금 앞서 지급한 ‘가계약금’ 논란

    • 중도금·잔금 지급했다면 ‘이행의 착수’

    • ‘착오’ ‘기망행위’로 인한 계약은 취소 가능

    Gettyimage

    Gettyimage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주거 내지 보금자리의 개념을 넘어 ‘자산 증식의 도구’ ‘부의 척도’가 돼버린 지 오래다. 필자는 부동산 관련 법을 전문으로 다루다 보니 고객들로부터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그때마다 “돈을 버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대신 잃지 않는 방법은 좀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사실 부동산과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는 필자는 법률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이지 부동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이는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자신 있게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다만, 부동산으로 큰 부를 이룬 자산가를 많이 만나면서 그 나름의 노하우를 쌓은 만큼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은 어느 정도 조언해 줄 수 있게 됐다. 아래의 네 가지를 주의한다면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어도 최소한 돈을 잃는 손해는 줄일 수 있다. 

    계약서 제대로 안 읽고 부동산 계약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부동산 계약서를 꼼꼼하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작성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 부동산 거래로 찾아오는 고객 상당수는 그렇지 않다. 수억, 수십억 원을 거래하는 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도장을 찍는 계약자가 의외로 많다. 

    건물·토지 매매, 임대차, 상가·아파트 분양 계약 등 모든 거래의 기초는 계약서 작성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약서를 대충 보거나 주변에서 조언하는 사람 말을 믿고 서명·날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이상 계약 문구 하나하나의 의미가 어떠한 법률적 효과를 갖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전반적인 계약 과정에서 상호 양해한 내용대로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호 구두로 나누었던 내용을 서면에 그대로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분쟁 원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계약서는 이른바 법률 용어로 ‘처분문서’라고 하는데, 이러한 처분문서에 기재된 내용은 계약을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처분문서에 기재돼 있지 않은 내용은 계약의 해석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무리 구두로 약속한다고 해도 그 약속한 내용이 처분문서, 즉 계약서에 기재돼 있지 않으면 그 내용을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객관적 의미가 명확한 문언을 사용해 다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부터 차단해야 한다. 구두로 상호 양해가 이루어진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계약서 조항에 글로 포함하는 게 사후 분쟁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첫걸음이라 할 것이다.

    서울 인근 지역에 공인중개사무소가 늘어서 있다.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가계약금을 주고받곤 하는데 이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뉴스1

    서울 인근 지역에 공인중개사무소가 늘어서 있다.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가계약금을 주고받곤 하는데 이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뉴스1

    계약금 앞서 지급한 ‘가계약금’ 논란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하더라도 이후 여러 사정이 생기고 마음이 바뀌면서 계약을 해지하거나 취소하고 싶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상대의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선뜻 계약서에 손을 대면 안 된다. 원칙대로 가야 한다.

    우선 부동산 계약상 계약금만 지급한 상태이고, 중도금 또는 잔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라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수인 처지에서는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 처지에서는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기존의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가계약금’으로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한 경우는 문제 될 수 있다. 실제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계약금 중 일부만을 가계약금 형식으로 교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법원 판례는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금 계약은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다73611 판결). 

    다만, 예외적으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해약금의 기준은 ‘실제 교부받은 금액’이 아닌 ‘약정 계약금 총액’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건물의 매수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으로 10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약정을 했는데, 우선 가계약금으로 500만 원만 지급한 경우를 상정해 보자. 위 판례에 따르면,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가계약금 500만 원이 아닌 실제 계약금 1000만 원을 기준으로 해 그 배액인 2000만 원을 상환해야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는 기본적인 예를 설명한 것으로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적용에서는 계약서에 기재된 문언의 해석, 계약 당시 여러 가지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계약금은 전체 대금의 10%로 지급하는 게 일반적 관행이지만 급매물이나 다른 사정으로 계약금을 20%, 30%로 지급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약정 후 계약을 해제하면 20%, 30%의 계약금을 전부 포기하거나, 그 액수에 상응하는 배액을 상환해야만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 필자가 진행한 소송 사례 중에서 법인 간의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계약금이 매매대금 전체의 30%로 책정돼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위 법인을 대리해 계약의 해제 및 계약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수행했는데, 이 때 “관행적으로 10%를 초과하는 범위의 계약금은 돌려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적이 있다. 

    중도금·잔금 지급했다면 ‘이행의 착수’

    이와 같은 판결 근거 규정이 바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이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하는 약정이 있는 경우 이는 ‘손해배상액의 예정’ 이지만, “이미 지급한 계약금이 관행적으로 전체 대금의 10%를 초과해 부당하게 과다하다거나, 계약금을 지급한 자가 처한 경제적 지위, 계약의 목적 및 내용, 손해배상액 예정의 경위 및 거래 관행 기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그와 같은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해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이 직권으로 계약금을 감액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법원의 직권으로 감액된 금액은 상대방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 이를 기억해 둔다면 소송을 통해 조금이나마 손실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계약금뿐만 아니라 중도금 내지 잔금까지 지급한 경우에는 위와 같이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중도금 내지 잔금을 지급하는 것을 법적으로는 ‘이행의 착수’라고 하는데, 이행의 착수가 있으면 계약의 구속력이 발생돼 더는 위와 같은 해약금 해제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중도금 내지 잔금을 지급할 때에는 반드시 위와 같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파트 철근 누락 조사를 하는 모습. 계약과 다른 내용으로 공사가 완료됐다면 부동산 매매계약 취소가 가능하다. 동아DB

    아파트 철근 누락 조사를 하는 모습. 계약과 다른 내용으로 공사가 완료됐다면 부동산 매매계약 취소가 가능하다. 동아DB

    ‘착오’ ‘기망행위’로 인한 계약은 취소 가능

    중도금 내지 잔금이 지급됐다면 무조건적으로 계약을 해제 또는 취소할 수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계약의 해제 또는 취소할 수 있다. ‘착오가 없었다면 저런 계약은 절대 못 한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 봐도 명백한 ‘착오’가 인정된다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또한 ‘기망행위’에 속아 계약을 체결한 경우, 역시 사기(詐欺)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여기서의 기망행위는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관해 구체적 사실을 신의성실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소 과장 허위가 수반돼 그것이 일반 상거래 관행과 신의칙에 비춰 시인될 수 있는 정도라면 기망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착오 내지 기망에 의한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예외적 사정이 있다면 계약은 취소할 수 있지만 실제 계약 취소에 이르기까지 그 요건은 대단히 까다롭고 이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상가나 건물 분양을 받을 때 이런 소송 문의가 잇따른다. 상가나 건물을 분양받았는데 시행사 측에서 설명한 대로 시공돼 있지 않거나, 시행사 측에서 광고를 통해 약속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 수분양자가 시행사를 상대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러한 문제로 소송을 하다 보면 관건은 시행사 측에서 설명한 대로 시공이 이뤄질 거라는 ‘착오’에 빠지지 않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거나, 시행사 설명이 다소 과장을 넘어 중요한 사항에 관해 구체적 사실을 신의성실 의무에 비춰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에 해당함을 입증한다면, 당연히 계약을 취소하고 그 동안 시행사에 지급한 대금 전부를 반환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구체적인 권리구제를 위해 계약자는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법률 지식은 필수적으로 숙지해야 한다. 이 글이 독자에게 부동산 계약의 총론에 대해 가볍게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다음 호에 계속). 

    허준수
    ● 1978년 출생
    ●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 국세심사위원회 전문위원
    ● 국토교통부·한국토지주택공사·건설공제조합 법률자문
    ● 現 HS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