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조국, 국민의힘의 ‘찬스 메이커’ 될까

[이동수의 투시경] 사면 즉시 존재감 발휘

  •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입력2025-09-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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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 특사 후 뉴스의 중심…2030男 극우 논쟁에 불붙여

    • 자의적 ‘극우 기준’ 제시…진보진영 유불리 따라 이용

    • 내 아들·딸 돕고, 사다리 걷어차는 ‘강남좌파’에 청년층 냉소

    • 대표적 강남좌파 조국, 李 대통령과 결 달라…변수는 野 능력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정부 첫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올랐다. 조 위원장이 8월 15일 새벽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정부 첫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올랐다. 조 위원장이 8월 15일 새벽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역시 조국은 조국이다. 존재감이 대단하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자마자 뉴스를 쏟아낸다. 서울서부지법 사태는 물론 지난 대선 당시 반짝했다가 잠잠해진 ‘2030 남성 극우’ 논쟁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8월 2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2030 남성이 극우 성향을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틀 뒤 부산민주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누구는 2030이 극우화가 안 됐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남성 일부는 극우화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논란이 커졌음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기사를 공유했다. 이후로도 ‘20대 남성 3명 중 1명은 ‘극우’…20대 여성보다 1.5배 높아’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조국 위원장은 왜 2030 남성을 ‘저격’하는 기사를 연달아 게시했을까. 사실 여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는 하루에 몇 번이고 SNS에 글을 올리기 때문이다. 2030 남성 3명 중 1명이 극우라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한 8월 29일, 그는 페이스북에만 무려 7개의 게시물을 올렸다. 다음 날에도 5개의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공유했다. 소싯적 트위터(현 X)에 수많은 글을 올려 이른바 ‘조만대장경(조국+팔만대장경)’을 완성했다는 조롱을 받던 그였다. 쉴 새 없이 많은 메시지를 쏟아내는 만큼, 조 위원장 스스로는 개별 게시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의적 ‘극우 기준’ 제시…진보진영 유불리 따라 이용

    누구 말마따나 그에게 ‘내재적 접근’을 해보자. 2030 남성은 평소 자신에게 비판적인 집단이다. 이들이 아니꼽던 차에 “2030 남성은 극우”라는 주장이 담긴 인터뷰가 논란이 됐다. 때마침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공유한 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 아니었을까. 실제로 조 위원장은 해당 기사를 공유하면서 어떠한 코멘트도 덧붙이지 않았다. 9월 2일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기의 주장이 아니니) 저를 비판하려면 (조사를 진행한) 연세대와 리서치 회사를 비난하라”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030 남성이 극우화했다”는 주장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칼럼이 다뤄왔다. 일단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다. 그가 공유한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라는 기사는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을 바탕으로 18~29세 남성의 15.7%, 30대 남성의 16.0%를 극우로 추정한다. 동 세대 여성은 각각 2.1%, 4.1%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극우의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내세웠다. 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해결, 상대 진영 법안 저지, 페미니즘 저지, 불평등 완화를 위해 폭력이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하나라도 동의하거나, 강력한 정치지도자는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때때로 규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다는 데 동의 ② 정부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생계(복지)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응답 ③ 이민자 유입이나 난민 수용 확대 중 하나라도 반대 ④ 대북제재를 중심으로 한 압박 정책을 우선 ⑤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 다섯 항목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 극우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대북제재에 동의하며,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것을 극우의 기준으로 놓을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많은 조사가 반(反)페미니즘을 극우의 척도로 삼는다. 여성이라는 약자를 차별하고 배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미 청년층에서 성별 갈등 구도가 굳게 자리 잡은 상황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으면 남성의 답변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극우의 기준으로 삼는 건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극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030 남성이 ‘내란 정당’ 국민의힘을 지지해서 극우라고 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지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극우라고 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국민의힘에 대한 2030 남성의 지지는 높지 않다. 한국갤럽이 만 18세 이상 남녀 3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8월 통합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18~29세, 3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21%, 23%다. 4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16%)보다 높지만 크게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대한 지지율이다. 40·50대 남성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지지율의 합은 각각 55%, 62%에 육박한다. 반면 18~29세 남성은 22%, 30대 남성은 33%에 그친다.

    2030 남성층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무당층이다. 이들은 평소 무당층에 머물러 있다가 선거 때가 되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투표하는 경향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지난 대선에서는 2030 남성 상당수가 국민의힘·개혁신당 등 보수진영에 표를 준 것이 화제가 됐다. 이 사실이 ‘2030 남성 극우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총선에선 이런 유의 비난이 등장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적잖은 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과 30대 남성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얻은 표의 합산은 각 44.5%, 52.4%였다. 국민의힘은 31.5%, 29.3%씩을 얻었다. 20대 이하 남성에서는 개혁신당 득표율(16.7%)과 조국혁신당 득표율(17.9%)이 엇비슷했는데, 30대 남성에선 조국혁신당(23.6%)이 개혁신당(9.5%)보다 두 배 넘는 표를 가져갔다. ‘2030 남성 극우론’은 진보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부상했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이슈인 셈이다.

    내 아들·딸 돕고, 사다리 걷어차는 ‘강남좌파’에 청년층 냉소

    조국 위원장에 대한 대중의 감정은 세대별로 판이하다. 4050세대에게 조 위원장은 존경받는 멘토였던 동시에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 된 개혁 투사다. 30대 젊은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학력이 좋은 건 물론 돈도 많다. 잘생겼고, 키도 크다. 진보진영 인사가 가지지 못한 자산을 두루 갖춘 그는, 2010년 인터뷰집 ‘진보집권플랜’을 낸 뒤 진보진영의 아이콘이자 ‘강남좌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2011년 출간한 책 ‘강남좌파’에서 이들의 명암을 함께 다루었다. 긍정적 측면은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계층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부정적 측면은 이것이 위선이요, 더 많은 권력과 금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강 교수의 주장처럼 이때만 해도 강남좌파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가적이었다. 엘리트 계층에 있음에도 자신의 기득권에 반하는 메시지를 주저하지 않는, 일종의 ‘깨어 있는 시민’ 이미지도 있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한 진보진영 학자·정치인들이 당시 청년들의 멘토로 큰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인식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아니다. 강남좌파를 비롯한 86운동권 세대는 2010년 전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주류 위치에 있지 않았다. 좋은 학벌을 갖긴 했지만,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자본을 갖췄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이 주장하는 정의나 공정, 연대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강남좌파의 사회적 지위는 높아졌다. 때마침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우파가 궤멸하면서 좌파는 명실공히 기득권층이 됐다. 그러나 메시지와 감성은 ‘언더도그’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며 약자 배려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주려 하고, 도덕과 정의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자기 진영 내부의 불의에는 철저히 침묵하는 일이 거듭 일어났다. 

    조국혁신당 성 비위 논란의 전개도 그 전형적 양상을 따른다. 탈당을 통해 이 사건을 재차 공론화한 강미정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9월 4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길 위에서 제가 마주한 것은 동지라고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그리고 괴롭힘”이라고 밝혔다. “조국을 감옥에 넣어놓고 ‘사소한 문제’로 치고받고 싸운다”라며 성 비위를 비판한 이들을 “개돼지”라고 비난한 최강욱 전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의 발언은 그들의 단단한 진영 논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군다나 강 전 대변인은 조국 위원장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출소 이후 그가 사태를 해결해 주길 바랐으나 외면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건을 수습할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어차피 될 당대표였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앞당겼으니, 영전이라면 영전이다. 오늘날 청년들의 눈에 그를 비롯한 강남좌파들이 위선자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2018년 발표한 논문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에서 대중이 소외된 현실 정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저학력·저소득층은 좌파를 지지하고, 고학력·고소득층은 우파를 지지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교육수준은 높으나 재산은 많지 않은 지식인층이 좌파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피케티는 이들을 ‘브라만 좌파’라고 명명했다. 브라만은 인도 카스트제도 최상위 사제 계층이다.

    고학력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와 자산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파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노동자·서민 등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세력이 실종됐다. 이 경향은 201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는 기조가 확산하며 더욱 심화했다. 세계 각지에서 터져 나온 중산층 이하 계층의 분노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우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수년째 검찰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 시절 반(反)국가 세력이라는 “달 그림자”를 쫓기 바빴다. 잠재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자영업 폐업이 속출한다는데 정치권이 그런 이슈로 싸울 수 있었던 건 양 진영 정치인들이나 그 지지자들 모두 먹고사는 데 별문제 없는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나 자산시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청년이 이들에게 냉소를 보내는 건 당연한 이치다.

    2024년 8월 2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포럼에 참석했다. 뉴스1

    2024년 8월 2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포럼에 참석했다. 뉴스1

    대표적 강남좌파 조국, 李 대통령과 결 달라…변수는 野 능력

    조국 위원장은 대표적인 강남좌파다. 그의 지지층도 성격이 비슷하다. 한국형 브라만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검찰개혁, 내란 세력 척결 등 정치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 위원장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출소 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수많은 메시지를 쏟아냈는데, 그중 경제·민생 관련한 것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국민의힘을 해산하고, 검찰을 해체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해 온 이재명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의 관심이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민생 이슈에서 정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조 위원장을 사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조 위원장의 사면이 자신의 지지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테다. 진영 내 압박도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확실한 건 실용을 중시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당신이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고 나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되겠다”라고 말하길 마다하지 않는 이재명과,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되든 역사적 명분을 앞세워 죽창가를 부르는 조국은 다른 성격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조 위원장의 사면·복권은 대선 이후 사그라들던 선명성 경쟁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진보진영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대변하면서 이들을 결집하고 있는 그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장 조 위원장의 출소 후 이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발언마다 논란이 이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가 보폭을 늘릴수록 진보진영 지지층은 결집하겠지만 청년을 비롯한 중도층은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그는 과연 국민의힘의 ‘찬스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조 위원장이 건네주는 패스를 국민의힘이 골로 잘 연결 지을 능력이 있느냐는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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