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ESG는 지속 가능한 이윤 추구 위한 리스크관리”

[ESG 아는 체 하기] ‘태풍 손실’ 포스코, ‘존경’ 유한양행, ‘착한’ 매일유업…

  •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입력2025-10-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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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록’ CEO 래리 핑크가 보낸 연례 서한

    • 태풍으로 1조 손실 포스코,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

    • ‘장기적 큰 이익’ 브랜드 이미지와 ESG의 함수

    • 불필요한 규제만 증가? ESG가 부정적인 이유

    •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아닌 이윤 추구에 방점

    • 공시 기준 미비, 갈피 못 잡는 기업…정부 대응 필요한 시점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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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년 전만 해도 주변에 ESG 관련 일을 한다고 말하면 “ESG가 뭐예요?”라는 반응이 많았다. 나는 이 질문에 “E는 환경(Evironment), S는 사회(Social), G는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이고, 기업이 경영을 할 때 환경, 사회, 지배구조 분야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근래에는 “우리 회사도 ESG 하던데, 그거 왜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도 많아졌다. 몇 년 사이 ESG가 사회 저변에 확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말에는 약간의 의심과 짜증이 담겨 있다. 그런 ‘쓸데없는 일은 왜 하느냐’는 느낌적 느낌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눈치 보기는 시작된다. ‘과연 이 사람이 ESG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면 그냥 예의상 하는 질문일까? 지금 이 모임이 내가 ESG를 왜 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해도 되는 분위기인가?’ 등등. 불과 몇 초 만에 상황 파악을 끝내야 한다. 열에 아홉은 내게 불리한 상황이다. 결국 나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한다. “국제적으로 기업 ESG경영과 공시를 의무화하는 추세고, 국내 기업들도 준비 중이에요.”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는 질문하지 않는다. 대신 ‘회사가 까라면 까야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하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부터 나는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이런 불성실한(?) 설명은 그러지 않아도 왜곡된 ESG에 대한 시각을 더 고착화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곡된 시각은 “기업들이 돈도 많이 버는데 좋은 일을 좀 해야지”라는 도덕적 의무의 관점으로 ESG를 보는 것이다. 마치 ESG경영이 이윤 추구보다 지역사회 발전, 사회서비스 공급을 위한 사회적 가치 추구처럼 여긴다. 겉에서 봤을 때 ESG경영은 사회적 기업의 경영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ESG경영은 철저히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세계적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 회장이 1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연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적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 회장이 1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연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ESG에 대한 왜곡된 시선 vs 기업 생존 위한 관리

    ESG경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등장과 유행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SG란 개념은 2004년 유엔 글로벌콤팩트에서 처음 공식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개념이 확산한 것은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비롯됐다. 당시 블랙록 회장이자 최고경영자인 래리 핑크는 투자 대상인 기업 대표(CEO)에 연례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세 가지 소제목이 있는데, 첫 번째는 “기후 위기는 투자 위기(Climate Risk Is Investment Risk)”이다. 이는 기후 위기에 따른 홍수나 가뭄 등 물리적 위험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제들로 기업이 변화하는 데 필요한 자본 소요 등 전환 위험이 결국 투자에 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주주에게 더 나은 정보 공시 제공(Improved Disclosure for Shareholders)”이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결국 지속 가능하지 못하고 주주, 즉 투자자가 손실을 입게 된다. 기존의 재무 공시로는 이러한 리스크를 파악할 수 없으니 기업이 이와 관련한 리스크관리 방식이나 전략 등 비재무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책임감 있고 투명한 자본주의(Accountable and Transparent Capitalism)”이다. 기후 위기로 비롯되는 세계적 변화 및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을 가하는 리스크에 책임감 있게 대응하고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이 더 발전된 자본주의로 향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많은 이가 이 세 가지 소제목에서 ‘기후 위기’ ‘정보 공시’ ‘책임감과 투명성’이란 키워드를 꼽는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투자 위기’ ‘주주’ ‘자본주의’가 핵심 키워드라 생각한다. 결국 이 서한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ESG 관련 경영 리스크로 인해 투자자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기업의 리스크관리 전략을 책임감 있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착하게’ 기업 경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제1 가치를 엄격히 추구하며 기업이 지속 가능하게끔 하는 전략인 것이다.

    ESG 문제로 인한 기업가치의 하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로 인해 새로운 위기만이 더해졌을 뿐이다.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휩쓸 당시 포스코에서 발생한 49년 만의 고로 중단 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포스코에는 1조 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포스코를 덮친 지방하천인 냉천은 80년 빈도의 홍수에 맞춰 정비돼 있지만 최근에는 200년 빈도 홍수 이상의 폭우도 빈번하다. 이상기후로 모든 기업이 전례 없는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 손실’ 포스코, ‘존경’ 유한양행, ‘착한’ 매일유업

    ESG 중 사회 분야의 안전 리스크 역시 기업에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준다. 수년 전 건설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져 인명 사고가 발생한 기업은 영업 정지를 비롯해 주가가 반토막이 났다. 최근 정부의 규제가 한층 더 강화돼 면허 취소까지 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 위반과 개인정보 보호 역시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대리점에 물건 강매를 일삼던 한 대기업은 욕설과 갑질이 공론화하자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발생한 국내 최대 통신사는 해킹으로1300억 원대의 과징금과 시장점유율 및 브랜드 가치 하락 등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 실패로 기업이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규모 횡령과 분식회계로 인해 기업 대표가 사임하고 주식 거래 정리를 넘어 상장폐지에 이르게 된 사례는 유명하다.

    반면,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은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며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 유한양행은 22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2025년 기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에 이어 4위에 랭크됐다. 기업 규모나 매출은 차이가 있지만, 국내 최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과 ESG경영 실천에 있다. 매일유업은 적자임에도 희귀질환 유아를 위한 특수 제품을 생산해 왔다. 이러한 ‘선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이며 단기적 손해가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건·사고에 휘말렸을 때에도 그동안 쌓아온 국민적 인식이 관대하면 큰 무리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금전적으로 평가하면 매우 큰 이익이다.

    ESG경영 실패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 복구 비용과 과징금 같은 금전적 손실부터 기업 이미지 실추나 고객 이탈 등 비금전적 손실까지 이어진다. 주가 역시 단기적으로 폭락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는 투자자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는 기업이 공시하는 재무 정보를 중심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ESG 리스크’는 재무 정보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블랙록과 같은 투자사가 기업이 어떻게 ESG 리스크를 관리하는지에 대한 비재무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ESG 리스크 관리를 잘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투자 손실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업 처지에서도 사고 위험을 낮춰 손실을 줄이고 투자 역시 많이 받을 수 있기에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불필요한 규제만 증가? ESG에 부정적인 이유

    투자자도 좋고, 기업도 좋은 ESG경영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ESG경영은 기존 데이터만 정리해서 공시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사적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기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모든 전략이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SG 전문가는 C-레벨급(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최고위 임원급) 이상의 경영 전문가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업무 부담은 기업 임직원으로서는 썩 달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ESG경영은 단기적으로 비용에 해당한다. 성과는 장기에 걸쳐 나타나기에 투자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끔은 한 회사의 ESG경영 컨설팅을 한두 달 내에 마쳤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해외의 한 유명 컨설팅사의 경우 한 기업의 ESG 컨설팅에 최소 2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참 대단하다. 보여주기식 ESG 역시 ESG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둘째는 ESG 공시나 평가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는 크게 관련 없는 사항이 추가되거나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기업의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있어야 이사회 견제 기능이 잘 작동된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업은 불가피하게 중요하지 않은 안건을 첨부해 인위적으로 반대표를 만드는 ‘게이밍(gaming)’을 하게 된다.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이 ‘ESG는 불필요한 규제를 증가시킨다’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셋째는 ESG경영이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요소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기업의 특수성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성별이나 사회적 위치, 지역 등에 입각한 고용 요구라든지, 기업과 시장 자율성에 맡겨야 할 사항을 규제하는 등의 상황이 존재한다. 블랙록 CEO 래리핑크가 최근 ESG란 용어가 정치적 무기화(weaponized)됐다며 더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SG가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진통이라 생각한다. 

    공시 기준 미비, 갈피 못 잡는 기업…정부 대응 필요한 시점

    ESG경영은 단순히 기업의 도덕적 의무나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이윤 추구를 위한 리스크관리 전략이다. 특히 기후 위기와 관련한 위험은 전례 없이 기업에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준다. 갈수록 그 피해도 커지고 있다. ESG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ESG를 너무 불필요한 규제나 정치 이슈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SG의 본질은 시장경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고 방향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아직 공식 기준과 제도가 미비해 민간 영역의 기준이 난립하고 있고, 기업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우
    ● 1983년 출생
    ●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 수료
    ●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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