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월
마스크는 표정의 속옷질문을 던지고 재빨리 훔쳐봤지흐려지는 옆얼굴을물그릇에 손을 담그면 반쯤은 젖은 기분반쯤은 말라가는 기분불분명한 미소의 이음새를 따라투명한 점선을 그렸다.감춰진 마음의 각도를 만져보려고흰 장막을 들춰 밤의 안쪽을 …
이혜미2022년 06월 10일비보이
비보이컵밥이 좋아,자판기가 던져주는 하루가가볍게 음미하는 삶에 오우, 소리 질러버튼을 누르면 위이잉 쏟아져 나오는바코드 찍혀 있는 하늘 바다 들판뜨거운 물 부어서2분 30초 기다렸다가 먹는어디까지 날아오를까.동전 하나로 되살아나는 …
김유섭2022년 04월 11일낮을 위한 밤, 밤을 위한 낮
어느 날 이마 위에서두 별이 동시에 떠 있었다하나는 낮이고하나는 밤이었다낮을 위한 밤밤을 위한 낮이었다‘위한’이란 말이바이올린처럼 보였다
임선기2022년 02월 15일황색선을 넘나들며
빨간 벨 위에 모포를 깔고선잠을 청한다가느다란 수화기에숨 가쁜황색선을 넘나들며검붉은 안개 속으로가냘픈 수관(水管)에 호흡을 기댄 채작다란 신음 속으로 몸을 던져축 처진 숯덩이 위에허기진 가슴 속으로새벽의 허허(虛虛)름이 스며들어텅 …
민병문 소방위2022년 01월 13일거울 앞에서[시마당]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하루 종일 만지는 사람이 듣는 누군가의 비밀들거울과 거울의 대화라는 착각이 길어질수록머리카락은 다만 잘려나간다사실 비밀은 없다아니 비밀이 아닌 것이다다만 거울 앞에서 비밀이 되는 것이다들은 자가 거울 속에 갇혀 …
박세미2021년 12월 15일방법의 숲[시마당]
잠시 방향을 잃은 거라고 한다. 조만간 다시 방향을 찾게 된다는 얘기일까. 나는 배낭을 벗어 바닥에 놓아두고. 정류장은 온통 수풀투성이야. 잠시 잃은 거라고 해. 그런 말들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이쪽으로 오라는 말이 들리는 것…
윤은성2021년 11월 06일[시마당]형태를 완성하기
이응을 연습합니다.이응 이응 이응 이응굶지 않고 잠 잘 자고 입추 아침 바람 입안에 넣고이응 다음 넘어가면미음 미음 미음 미음이응에 못을 네 개 이응 안에 박고 멀어져라 멀어져 미음을 만들 겁니다.나의 단단한 못물려받은 뼈를 사용할…
김복희2021년 10월 10일[시마당] 음소거된 사진
이 사진은 음소거되었다밖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지만들리지 않는다두 명의 사제가 천개(天蓋) 아래 담요를 덮고곤히 잠들어 있을 뿐그 옆에 개 한 마리 몸을 말고함께 잠들어 있을 뿐발전기의 소음 들리지 않는다풀벌레 소리도 들…
황유원2021년 09월 05일[시마당] 키 작을 왜, 작을 소
잔잔했던 바다가 돌연 해안선을 덮치고뻐꾸기 소리 다정하던 뒷산이 문득 인가로 무너져 내린다.집요하게 내린 비에 강이 넘치고 마을이 잠긴다.손쓸 수 없이 확산되는 감염병 속에서 사망자가 폭증한다.화재와 홍수, 산사태와 감염병 속에서덮…
이현승2021년 08월 14일[시마당] gleaming tiny area
세상에 분노하는 온도얼굴과 몸가짐이 은퇴한 운동선수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뒤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가고 있었다. 그 사람이 이끈 곳에는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고 줄기로부터 처음 몇 년의 검은 지지대를…
김연덕2021년 06월 08일[시마당] 건강과 직업
몸무게를 앞에 두고 헬스트레이너가 묻는다 하시는 일이 뭡니까? 시를 씁니다 직업이 시인이세요?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불법주차를 한 상태, 뜨거운 문장을 들어올려야 하는데 냄비 손잡이가 다 타버린 상태,…
임지은2021년 05월 09일[시마당] 머무르는 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직 밝고 따뜻하다한낮에도 켜진 가로등이 있다물웅덩이를 밟은 언니의 발이 거기에 들러붙어 있던 물방울들을 꺼낸다벤치에 앉은 여자의 무릎 위에 잠든 아기가 인형을 자꾸 떨어뜨릴 때마다언니는 엉덩이가 바닥에 거의 …
이기리2021년 04월 12일[시마당]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우리는 불행의 서사에 익숙하다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난 후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주인공의 불행은쉽게 바뀌는 상점의 간판들처럼 또 다른 주인공의 불행으로 얼굴만 바뀌는 것국수집이 어느 날 사라지고 국수집 …
김지녀2021년 03월 15일그믐
그믐이면 숨 옆에 숨을 가지런히 두고 강을 하나 만들고 싶었지, 발원은 같지만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갈, 그 물에 단출한 점심과 서운한 오후와 유난히 말수가 많았던 저녁을 띄우고, 단번에 끊긴 것 같았던 날들은 사실 단번에 끊긴 것…
박준2021년 02월 18일404 Not found
오늘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방에 나 혼자. 메밀 소바와 만두를 점심으로 먹었어요. 맛집이라고 줄을 서던데 모르겠어요. 돌아와서는 두 발을 의자에 올리고 조금 잤어요. 잠깐 사이 슬픈 꿈을 꿨는데 모르겠어요. 니체의 생애를…
강혜빈2021년 01월 12일알기 쉬운 그림으로 대류현상을 설명하는 페이지
거센 바닷바람 맞으며 절벽에 사람이 서 있군요.너무 낮게 그려진 태양에 어깨가 닿을 것 같은,알아보기 쉬우라고 삽화가가 부러 크게 그린 남자로군요.아슬아슬한 절벽에 서서 그가 페이지 바깥을 쳐다보는데(한여름 바닷가에 부는 바람은 우…
김상혁2020년 12월 07일때때로 어떤 벽은 새벽 같습니다
바위 너머로 누군가 오는데바다 너머로는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내게 오는 길 잊었는지 파도도 오지 않습니다사실 내게 오는 길이란 없습니다그저 바다의 많은 부분을 걸러내고 도려내면작은 부분이 남게 되는데그 공간이 나일 뿐이지애초에 내게 …
이원하2020년 11월 09일계피와 붉음
가을은 시작이니,이제 끝내는 걸로 하십시다새들이 빠져나가는 소리와그 틈에 바람이 흥흥대는 장면 앞에가을이 왔으니,이제는 모르는 게 낫지 싶습니다오 님이시여,님뿐인가 합니다만,얼룩덜룩한 손이 건네주는모서리 깨진 버터 쿠키와봉지째 휘휘…
심민아2020년 10월 05일재활
강은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흐르고 있다. 끝없이 꽃으로 뒤덮인 들판을 걸으며. 너는 이곳이 천국 길이라고 말했지. 강물의 속도로 우리라는 인간이 떠내려간다. 가라앉는 꽃잎은 젖은 소매와 얼마나 닮았을까. 그렇다고 영혼을 비웃은 건 …
양안다2020년 09월 10일거울에게 전하는 말
너는 바보 아니었을까 함부로 영혼에 걸었으니까 누가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비스킷을 먹으면 꼭 소파에 비스킷 가루를 흘려놓는 칠칠치 못한 사냥꾼처럼여기는 어디일까 너는 껍질을 뒤집어쓴 만큼만 존재했음에도 생물 사물이 허락하는 만큼만 …
유계영2020년 08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