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슬까슬한 영혼을 가지고 싶다
반죽처럼 조금만 떼어 너의 등에 몰래 붙이고 싶다
잘 익은 영혼이 물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겠네
그런데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면?
모르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아가씨, 내가 등 좀 밀어줘도 될까?”
목욕탕에서는 사람들이 유난히
희끄무레해 보이지만
나도 그 습기를 좋아해
너는 양말을 벗으면서 양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정이 산다고 믿어지는 곳으로
구멍은 요정이 떠날 때 남기는 흔적이다”
너의 요정은 한 번 떠난 게 아닌가 보네 여러 번 드나들었나 보네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목욕탕에서는 별걸 다 알게 된다
떠날 때는 새로운 비밀과 함께지 한두 번이 아니라서
구멍이 계속 커지네
음료수에 꽂은 빨대 속으로 숨을 불어넣다가
십여 년 전 목욕탕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친 적 있어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차마,”
심정을 심장으로 잘못 알아들은 네가 말했다
“틀림없이 쪼그라들었을 테지”
그것참
의미심장하군
그런데 로커 앞에서 아 추워 추워 중얼거리며
로션을 바르다가 정말로 깨닫는 것은
안개가 짙은 겨울 아침에는 뽀얀 국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
나의 스웨터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요정이 드나든 흔적은 아니고
영혼이 까슬까슬해서 생긴 것이다
[Gettyimage]
● 1997년 경기 안양 출생
● 한양여자대 문예창작과 졸업
●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2023년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