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
저는 그래서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누워 있었다. 자기 옷을 덮고서 자기 가방을 베고서. 번호표를 꼭 쥐고 있었다. 내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속에 머리를 넣…
시인 임솔아2019년 03월 10일소동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어제는 우산을 가방에 숨긴 채 비를 맞았지빗속에서도 뭉개지거나 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퉁퉁 부은 발이 장화 밖으로 흘러넘쳐도내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비밀…
시인 안희연2019년 02월 11일홈
얼음의 살갗을 가진 얼굴도 있다 녹아 흐르면서 시작되는 삶도 있다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도망치듯 사라져야 하는 사람도 있다나무 탁자에 생긴아주 작은 홈이상한 기분을 가진 적 있다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가게는 멀리 있고심부름을 다…
시인 안미옥2019년 01월 13일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없다고 말하는 순간푸른 길이 열려서 잔잔한 호수가 빛으로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라진다고 말하는 순간나의 눈동자의 폭풍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거대한 나무가시원한 바람이 되었다.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젊고 싱싱하…
서상훈 시인2018년 12월 16일60초의 전생
닫은 문을 도로 열고 우산을 가지러 들어가기 전문 밖을 나섰던 맨 처음의 나1분 후의 내가 1분 전의 나를 지우고1분 후의 내가 1분 전의 나를 거푸 밀고 지나가는 문간의 착시내 손에 들린 우산 하나가1분 전의 나와 후의 나를 갈라…
시인 이선영2018년 11월 11일노을처럼 살다가
친구여저녁이 오면해가 지는 들판에 나가하얀 구름으로 공을 만들어노을이 그물 쳐진 하늘에발로 뻥 차며 별을 부르자친구여가을이 오면노란 햇볕 머리에 이고코스모스 꽃잎으로 수를 놓아바람이 놀다 가는 언덕에살짝이 깔아 놓고 노랠 부르자누군…
시인 강원석2018년 10월 14일있다
기러기가 기러기처럼 모여서날아가고 있다 시커먼 물웅덩이에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러기들 속에거위가 다가와 주둥이를 대고 있다빗방울이 만든 웅덩이에 빗방울이 모이고 있다 하나가 수면에 닿을 때마다동심원이 점점 더 커다래지고 있다 완벽한 세…
시인 김소연2018년 09월 12일어울린다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
시인 진은영2018년 08월 08일소금시
로마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나는 소금 병정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월급을 받는다소금 방패를 들고거친 소금밭에서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한…
시인 윤성학2018년 07월 15일시냇가 시냇물에 넣어줘야 해
어째! 저렇게 매혹적인 결혼식도 있네!신부 치엔 진 낭자와 신랑 서 한1) 도령의 이미지를 하객의 자격으로무한정 먹고 마실 수 있는 이 떨림저런 눈빛과 미소는 저런 걸음걸이와 인사는 분명 나와는 초면이라서 더 이상은 먹고 마실 수…
박라연2018년 06월 13일고등학교 동창들을 서울에서 만나면
아마도 집이나 직장에서는 그러하지 않겠지만우리는 강남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사투리를 썼지조금은 불편해지려고 했다 너희가 사투리로 자의식을 확인하는 자들이여 절대로 잊지 못하는사투리여 왕따의 기억처럼 죽이고 죽여도되살아나는 빌어먹을 사…
서효인2018년 05월 09일다시 봄
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메말랐던 자리마다 消息들 닿아, 푸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유희경2018년 04월 08일느림보의 등짝
A와 B는 함께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A는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B는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 기분이 울적해진다A는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계속 보려고 걸음을 늦춘다B는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얼른 지나치…
심보선2018년 03월 11일역사와 전쟁
지구는 우주를 믿을 수 없었다우주를 보려면 우주보다 커지거나우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화장실에서 X가 본 낙서는 다음과 같다<당신은 왜 한 달에 한 번씩 엘리베이터에 갇히죠? 갇히는 사람이 왜 …
문보영2018년 02월 04일이것은 희망의 노래
검은색으로부터 그것은 떠오른다. 그것은 오로지 검은색이다. 그것은 오로지 검은색이었다가 검은색이고 검은색이 될 것이다. 검은색 속에서 검은색이 떠오른다. 검은색 속에서 검은 바람이 일어난다.그것은 검은색.불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휩…
이원2018년 01월 14일겨울이 오는 소리
꽃피는 속도로 사랑이 지나가면 남자는 나무처럼 늙어간다 달마다 생리도 없이 울컥 미련만 한 움큼씩 토해놓고 새벽잠에서 깨어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서성댄다 달이 없다 신화가 사라진 하늘에 어둠 속에서 자꾸만 흐려지는 하루 추위를 피해…
오석균2017년 11월 12일착불(着拂)
이 세상에 나는 착불로 왔다누가 지불해주어야 하는데아무도 없어서내가 나를 지불해야 한다삶은 매양 가벼운 순간이 없어서당나귀 등짐을 지고번지 없는 주소를 찾아야 했다저녁이면 느닷없이 배달 오는 적막들골목에 잠복한 불안우체국 도장 날인…
201710012017년 10월 15일오늘의 야구
언제나 훈계조인 너의 키스나는 입술로 듣고 혀로 이해할 뿐당신은 후회가 너무 많군요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늙어가는 눈동자 너머에 사는늙지 않는 선수 탓이다도무지 포수를 믿지 않는 투수처럼너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너와 나 사이에…
201709012017년 09월 10일애월(涯月)에서
애월(涯月)에서당신의 발길이 끊어지고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201708012017년 08월 06일당신이라는 모든 매미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새벽 서너시까지 울어대는 매미삼베 이불이 헐렁해지도록 긁어대는 소리어쩌라고 우리 어쩌라고과유불급,나도 그렇게 집착한 적 있다노래라고 보낸 게 울음이라 되돌아왔을 때비참의 소리는 밤이 없었을 것이다불협도 화음이라지…
201707012017년 0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