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초봄. 아는 사람을 통해 이력서를 내놓은 지 두 달 만에 연락이 왔다. 30여 년 전, 1968년 총무처 시행 5급 을류 국가공무원 시험 합격통지서를 받을 때보다도 더한 감흥이 전신을 휘감았다.
바로 참사랑아파트 관리사무실로 나갔다. 돈 때문에 나가는 거니까 봉급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IMF 전에는 80만원쯤 되었는데 요즘은 내려서 보너스 없이 월 60만원에서 70만원 사이가 될 거라는, 주선해준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1995년 명예퇴직으로 그만둔 회사에서의 연봉이 4000만원 선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니 만감이 엉켰다. 마른명태라는 별명을 달아주면 좋을 듯한 관리소장이 임명장과 경비원 관리수칙과 자판기에서 손수 빼온 커피를 내 앞에다 놓고 말했다.
“전임자가 왜 나갔는지는 이미 들어서 잘 알 줄 압니다. 경비원 임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도난방지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입주민의 사생활 보호가 그겁니다. 입이 무거워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이 예순둘입니다. 쉰일곱에서 예순여섯 된 분까지 있는데 우리 강춘달씨는, 말씀 드리기가 뭣합니다만 어쨌거나 젊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더라도 가정에서는 모두 어른 대접을 받을 분들 아닙니까. 여기에 근무하다보면 어른 대접 못 받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안 할 말로 주민들 가운데는 몸종 부리듯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참는 데까지는 참고 견뎌야지요. 불만을 가져봐야 절이 미우면 중이 나가야지 절간을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주민들 주머니에서 우리 월급이 나오는 거니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습니다만 여기서 다 할 수는 없는 거고 근무해가면서 터득해 나가도록 하고 이만 끝내겠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우리하고 같이 근무하게 된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말을 마친 관리소장은 또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나는 관리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강 훑어본 관리수칙을 다시 읽어보았다. 눈은 관리수칙에 박혀 있으나 머리는 어제 통보를 해준 사람이 들려준, 전임자가 그만두게 된 경위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불륜 현장 급습
어떤 중년남자가 부인 몰래 여자를 두어 이곳에다 아파트를 얻어주고 은밀히 드나들었다. 경비원이 그 사정을 모를 턱이 없다. 남자가 그곳을 찾을 때는 가끔 경비원한테 담뱃값을 쥐어주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하루는 부인이 경비실을 찾아왔다. 부인은 또 부인대로 경비원한테 봉투를 하나 건네주며 자기 남편이 이곳에 나타나면 연락해 달라고는 연락처까지 적어주고 갔다. 불륜의 현장을 급습해서 일을 처리하겠다는 부인 쪽의 전략이었다.
며칠 뒤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사실을 전했고, 이내 부인이 자기 패거리를 데리고 등장했다. 아파트 광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구경하기 힘든 큰 굿판이 벌어지고 말았다. 경비원은 그것으로 모두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그에게 날아온 건 직권면직이었다.
그 양반이 나가면서 남겼다는 말이 들을 만했다.
“그럼, 한 가정이 박살이 나고 있는데도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옳다 그 말이로구먼. 나가라니까 나가긴 한다마는 나는 내가 잘못해서 나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들만 아시우.”
아마 이 말이 아파트 경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유명인사한테서 나온 말이라면 명언록에 오를지도 모르리라. 명색 입사절차를 마치고 나오는 내 어깨 위에다 소장이 짐 한 덩이를 더 얹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가지 마시고 강씨가 근무하게 될 103동 1문으로 가 보세요. 같이 짝꿍이 될 양반이 구씨인데 지금 그분이 근무하고 있으니까 같이 수인사도 나누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십쇼. 그러면 일 하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나는 신고 겸 한나절을 구씨와 같이 보냈다. 당장 내일부터 24시간 맞교대로 근무에 들어가야 하니까 아는 데까지 알아두어야 근무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구씨는 들은 말도 있지만, 얼굴에도 사람 좋다는 말이 쓰여있을 정도로 편안한 인상을 주는 형님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아파트단지의 구조와 종사자들의 체계부터 설명했다.
참사랑아파트는 모두 5동 840세대로 26평에서 56평까지 다양하게 있다. 부속 청사로는 노인정과 유아원이 같이 들어있는 관리사무실이 있고, 3층짜리 상가가 별동으로 있는데 1, 2층은 상가이고 3층엔 독서실과 탁구장이 들어있다. 차량보급이 적을 때 지은 건물이라 주차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보유차량의 반밖에 수용하지 못하는데, 이 아파트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관리실 소속 인원은 모두 62명으로 사무실에 일근으로 상주하는 관리소장과 여자 사무원이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경비원인데 갑, 을 반으로 나눠 24시간 근무하고 있으며, 관리소장은 아파트 운영위원회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뽑는다고 했다.
경비원 가운데 각 반 한 사람씩 반장이 있고, 반장은 정문 경비를 봄과 동시에 소속 반원들이 탈없이 정상으로 근무하고 있는가를 수시로 순찰, 점검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각 반별로 전기기술자와 청소담당 아주머니가 한 사람씩 들어있는데 이들도 같은 경비원 직렬로 대우하고 있다고 한다.
관리소장 위로는 운영위원장이 있다. 골목(이곳에서는 계단을 골목이라 부른다. 같은 계단을 쓰는 19층의 양쪽 38세대가 한 골목 사람들이다) 단위로 구성된 반상회에서 골목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호선해서 운영위원장을 선출하는데, 임기는 골목대표와 같이 2년씩이고, 위원장 한 사람한테만 약간의 판공비가 나갈 뿐 나머지는 모두 무보수 명예직이라 한다.
근무요령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옆문 사람한테 물어서 대처하면 된다고 했으며, 자기는 딱 두 가지만 말하겠다며 각 호실 사람들을 빨리 아는 것과 어른들보다는 아이들한테 배로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야기 끝에 구씨는 이런 말을 하나 더 보탰다.
“여기에 근무하는 분들이 모두 자기가 경비원으로 있다는 걸 주변에서 알까봐 쉬쉬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게 극복하기가 힘드나 봅니다. 요즘 근무 교대시간이 오전 6시인데, 이게 여름이면 괜찮지만 겨울철엔 캄캄할 때란 말예요, 그래서 내가 너무 이르지 않냐며 좀 늦추자고 한번 제의했더니 모두 펄쩍 뛰는 겁니다.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뭣할 판에 경비복 입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남한테 보여주어 좋을 게 뭐가 있냐는 게 그 이유더구만요. 참고하세요.”
첫날부터 구씨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새로 인생공부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5시가 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왔다. 날이 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6시라면 여전히 이른 시각이다. 시내버스로 일곱 정거장을 지나 내려 10분을 더 걸어 왔는데도 어둠이 다 빠지지 않았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구씨는 옷을 갈아입고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주사요.”
재탕으로 나오는 연속극을 볼륨을 죽여놓은 채 그림만 보고있는데 골목대표 박사장이 노크도 없이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반사적으로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나를 감시·감독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느 틈에 몸에 밴 예의의 표현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박사장이 무슨 사장인지 잘 모른다. 남이 사장이라고 부르니까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다.
“경비 무서워 살겠나”
우리가 주민을 부르는 호칭은 나이와 관계없이 남자는 ‘사장님’ 아니면 ‘선생님’이고, 여자는 대개 ‘사모님’이다.
눈으로 무슨 일이냔 듯 물으며 뒷말을 기다렸다. 박사장은 휴대전화 든 손으로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앞의 주차장을 가리켰다. 다른 말이 없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 거기 벌어져 있었다.
“차선위반도 주차위반입니다. 저렇게 차를 차선 한가운데다 박아놓으면 두 대 댈 걸 한 대밖에 못 대잖아요.”
“예.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나는 옹색한 웃음을 보이며 굽실거렸다. 박사장은 종종 그렇게, 조용할 때는 한번쯤 그냥 덮어두어도 괜찮을 일을 찍어서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보기엔 기강을 확립하겠다기보다 자기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듯한 인상을 많이 주었다.
조금 전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이미 나는 그것을 보았었다. 502호의 교수부인 소행이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이 단지 안에서 그 집 하나뿐이다. 남편은 지방의 어느 전문대학에 나가고 있다는데 일주일에 한번쯤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운전솜씨가 서툴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교수부인은 그런 짓을 잊을 만하면 한번씩 하곤 했다. 며칠 전에도 부인은 내가 앞에서 딱 보고 있는데도 차선 한가운데 차를 세우려 해서, 차에서 내리려는 사람을 막고는 주차선 따라 바로 주차해주면 좋겠다고, 좋은 말로 주의를 환기시킨 일이 있다. 그만 여자가 발끈했는데 뜻밖의 반응이었다.
“아저씨도 참 이상하시네. 차가 꽉 차서 복잡할 때 말이지 텅텅 비어있는데 아무렇게 좀 세워놓으면 어때서 그래요.”
당연하다는 듯 적반하장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다 바로 세워놓았는데 아주머님 차 한 대만 저래 세워놓으면 보기가 싫지 않습니까.”
“나 원 참. 또 별소리를 다 듣겠다. 남한테 불편 안 주면 되는 거지 보기 좋은 거 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차를 그대로 두고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 획 바람까지 일으키며 들어가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되불러 호되게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제반 여건상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쯤 해두었으면 다음부터는 시정하겠지 싶었는데 오늘 또 그 모양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교수부인이라면 충분히 내 말귀를 알아들을 만도 한데 왜 저렇지. 나는 한 번 더 참아볼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인터폰으로 여자를 찾았다. 박사장한테 한 번 더 당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수월할 것 같아서다.
“아주머니, 차를 또 중간에 세워놨네요. 좀 바로 세워줘야 하겠습니다.”
사모님을 일부러 아주머니로 바꿔 불렀다.
“아저씨, 정말 이상하시다. 나한테 무슨 감정 있어요? 왜 자꾸 그런 일로 트집을 잡으세요.”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 왔다.
“트집잡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아주머니한테 트집을 잡겠습니까. 저래 세워놓으면 우리가 야단을 맞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야단치는 사람이 누굽니까? 내가 바로 그 사람들한테 말할게요. 제 집 앞에 제 차 대는데 누가 시비예요? 이치가 그렇잖아요.”
벌써 시작하는 가락이 심상찮다. 그렇더라도 골목대표를 끌어다 댈 수는 없는 일이다. 말이 잘못되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에 말이다.
“아, 그래, 그 사람이 누구냐니까요. 모두 먹고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그런 일 갖고 참견을 하게.”
“…”
“나도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대학 나왔어요.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들 하는구만. 내가 곧 다시 나갈거라 서둘러 대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 그걸 그렇게 씹어대 가지고 이거 어디 경비 무서워 주민들이 맘 놓고 살겠나요.”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튈 조짐마저 보였다. 완전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놓은 꼴이다.
“아주머니, 그럼 됐습니다.”
도리가 없었다. 내가 거기서 얼른 수습책을 내놓았다.
“되기는 뭐가 됐어요. 멀쩡한 사람 바보 다 만들어놓고는.”
“잘 좀 부탁합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나는 엉거주춤 수화기를 놓았다.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 참자. 세월이 그런 세월이다. 내 위치가 그런 위치다. 이겨서 지는 것보다 져서 이기자. 맞고 자면 다리를 펴고 잘 수 있다. 휴우.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열을 길게, 바닥까지 긁어 밖으로 품어냈다. 그 열이 쌓여 병이 되지 않도록.
걸핏하면 인터폰 눌러 항의
깜박 졸음에 빠졌던 모양이다. TV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정 전에는 안 졸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지만 그게 잘 안된다. 쉰일곱의 나이에 체력의 한계가 온 것일까, 몸이 마음을 못 따를 때가 많다.
시계를 보았다. 밤 12시10분. 반장이 점검 다녀가고, 어느 방송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뉴스를 들은 기억도 나는데, 그 뒤 일은 기억에 없다. 20여 분 이상 졸았음이 분명했다. 반장이 다녀갔다는 안도감이 잠시나마 정신적 해이를 불러들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번 단지 내 부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나는 이미 회람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아직 가결된 것은 아니지만 경비실에 TV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TV를 켜놓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주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앞으로 TV를 보고 못보는 건 경비원 여러분의 처신 여하에 달려있다는 경고였다.
나는 얼른 TV부터 껐다. 경비실 밖으로 나왔다. 계단 밑에 내려와서는 으악, 소리까지 내어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온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졸음을 떨어낸다. 관절 곳곳에서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났다.
경칩 절후가 지났다지만 아직 밤 공기는 찼다. 잠을 쫓으려 한참 나와 있었더니 이내 온몸이 오스스 떨렸다. 사방으로 19층의 콘크리트 성벽이 시야를 꽉 막고 있다. 시야만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답답하게 막고 있다.
나는 뭐 좀 꿈적거릴 일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계단 모퉁이에 박혀 있는 동백화분을 찾아냈다. 작년 가을에 누가 버리려고 들고 나온 것을 아까워 경비실 안에 가져다가 길러오다가, 며칠 전부터 날이 풀리는 것을 보고 밖에 내놓았다. 곳곳에 도톰한 꽃봉오리가 제법이다.
화분을 들고 3문 모퉁이에 있는 수도에 가서 물을 주어 제자리에 갖다놓는데 3문의 이씨가 내다보곤 빈정거렸다.
“게으른 이가 정월 초하룻날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간다더니 이 밤중에 웬 일이여.”
“게을러도 불은 지펴야 될 거 아냐.”
말장난임을 알고 건성 받았다. 또 뭐 좀 할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아직 불 켜놓은 집이 몇 집이나 있나 해서 우리 동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완전히 꺾어야 끝이 보일 만큼 높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대부분 창은 불이 꺼져있고 두세 집에만 불빛이 붙어있다. 하나는 얼마 전에 전세로 들어와 사는 집인데 뇌성마비로 인한 지체부자유 아이가 있는 집이다.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가 아이를 업어서는 통근차에 승하차시키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했다. 그들이 이쪽으로 집을 옮겨 사는 것도 특수학교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701호를 생각하면 그 아래층인 601호에 사는 노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인은 걸핏하면 인터폰으로 사람을 불러 못 견디게 했다.
“야, 이 사람들아. 우리 위층에 한번 올라가 봐라. 돼지새끼를 키우는 건지 왜 이렇게 천장이 우당탕거리노 말이다. 응이.”
처음엔 노인의 뜻을 그대로 위층에 전했다. 아파트 생활에서 그런 일은 흔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이제 곧 괜찮을 겁니다.”
그런데 5분도 안돼 또 연락이 왔다.
“지금 시간이 몇 시구. 나도 잠 좀 자자. 사람 새끼들이라면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다냐. 응.”
말까지 반말 쪼다. 나이야 저쪽이 좀 많다고 하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듣기가 거북했다. 그러나 나는 좋게 받아들였다.
“떠들지 않기로 했는데요.”
“안 떠들기는 뭐가 안 떠들어. 지금도 연방 쾅쾅 하는데. 그 집에 무슨 야간공장 차린 거 아녀. 이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큰일이구만. 신경을 건드려서 사람이 말라 죽겠다니까.”
도리 없이 내가 한번 올라가 보았다. 아이들 일이라면 타일러줄 셈에서다.그런데 막상 올라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장애아이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목발로 홀로서기 걸음마를 배우고 있었다. 목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쿵하고 아래층을 울린 것이다. 그냥 돌아서야 했다.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래층에다 양해를 구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 위층의 처지를 설명하고는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로 나중에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퍼부었다.
두 집 사이의 문제는 현안으로 아직 그냥 남아있다.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발작할지 모른다. 가운데서 죄 없는 경비원들이 죽을 노릇이다. 목덜미 쪽과 소매 끝에 휘감기는 공기가 묵은 날이 가고 새 날이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냄비를 씻어 들어오는데 1001호 아주머니가 경비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인사성이 유별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심드렁해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 아이한테 왜 야단을 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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