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가을의 전설’
영화의 시대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전부터 미국의 금주법 시대를 거쳐 1930년대까지를 주로 아우른다. 미국 몬태나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감미로운 음악을 바탕으로 장면 하나 하나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는 ‘원스탭(One Stab·고든 투투시스 분, 우리말로는 ‘단칼’이라고 그럴듯하게 번역됐다)’이라는 인디언이, 그가 평생에 걸쳐 하인으로 봉사했던 윌리엄 러드로 대령 일가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의 인디언 학살 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던 러드로 대령(앤서니 홉킨스 분)은 전역을 결심한다. 그는 몬태나주의 외딴곳에 목장을 짓고 정착해 세 아들, 알프레드(에이단 퀸 분)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분) 사무엘(헨리 토마스 분)을 키우며 살아간다. 아내 이사벨(크리스티나 피클스 분)은 미국 서부 산악 지대인 몬태나주의 혹독한 겨울 추위와 척박한 생활환경에 지친 나머지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삼형제 중 장남인 알프레드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이고 성격이 현실적이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9월에 태어난 둘째 트리스탄은 강한 기질과 반항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영화 제목 ‘가을의 전설’은 가을에 태어난 이 둘째아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사무엘은 막내답게 형들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수잔나의 등장과 참전
그러던 중 어느 해 여름, 성장해 동부로 유학을 갔던 막내 사무엘이 약혼녀 수잔나(줄리아 올몬드 분)를 데리고 고향 집에 나타난다. 뛰어난 미모에 청순함까지 겸비한 그녀의 등장은 형제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어쩌면 일상의 평범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는 이들의 조우는 사무엘이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1차 세계대전(1914~18)에 자원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러드로 대령은 당연히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지만, 큰아들 알프레드마저 참전 의사를 밝히자 어쩔 수 없이 승낙하고 만다. 그러고는 둘째 트리스탄에게 형제들과 함께 가서 막내 사무엘을 잘 돌보라고 부탁한다.
이들이 떠나기 전, 수잔나는 트리스탄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자기를 버리고 머나먼 유럽으로 가 참전하겠다는 사무엘의 무모한 행동을 제발 말려달라며 흐느껴 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기고 만다. 사실 수잔나는 이미 샌님 같은 사무엘과는 전혀 다른 트리스탄의 야성미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 있었다. 이들의 포옹 현장을 장남 알프레드가 우연히 목격하지만, 삼형제 모두 바로 캐나다를 거쳐 유럽으로 떠나면서 이 일은 일단 묻히고 만다.
전쟁은 사무엘의 생각과 달리 참혹했다. 결국 사무엘은 작은형 트리스탄의 열성적인 보호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 트리스탄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그는 고향에 있을 때 인디언인 원스탭이 일러준 대로 죽은 동생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그의 심장을 꺼내면서 미친 듯이 괴로워한다. 그러고는 동생을 대신해 독일군에 철저한 복수를 한다.
트리스탄은 제대 후에도 동생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한다. 한편 전쟁 중에 다리를 다친 알프레드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에게서 사무엘의 사망 소식을 들은 수잔나는 절망한 나머지 바로 몬태나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마침 내린 폭설로 도로가 막히자 러드로 대령의 권유대로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기로 한다. 그때만 해도 이것이 참담한 비극의 시작일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