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 김원곤|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입력2011-01-21 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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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맨 Ⅲ에 등장하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
    •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표현한 것으로 묘사되는 이 술에는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다.
    •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진, 체리브랜디, 베네딕틴에 그레나딘 시럽 소량과 가당 레몬주스 소량 5가지를 섞는 것이다.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슈퍼맨 Ⅲ(Superman Ⅲ)’는 유명한 DC 코믹스의 슈퍼영웅 캐릭터인 슈퍼맨을 주인공으로 한 세 번째 영화다. 1978년 ‘슈퍼맨’, 1980년 ‘슈퍼맨 II’에 이어 1983년에 출시된 이 작품은 두 전편에 비해 흥행 성적으로나 비평으로나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유명한 제작자인 알렉산드 살킨드와 일랴 살킨드 부자의 마지막 슈퍼맨 제작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리처드 레스트가 맡았다.

    슈퍼맨 역의 크리스토퍼 리브(1952~2004)는 이 영화 뒤에 그의 마지막 슈퍼맨 작품인 ‘슈퍼맨 IV’(1987)를 찍고 나서 1995년 승마 도중 낙마해 사지마비 환자가 되는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겪게 된다. 그는 2004년 사망할 때까지 평생 휠체어와 인공호흡장치에 의존해 살았다.

    영화는 대책 없이 한심한 나날을 보내는 실직자 거스 골맨(리처드 프라이어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불성실한 태도 탓에 더 이상 메트로폴리스시(市)로부터 직업을 소개받지 못하게 된 거스는 우연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 광고를 보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 자신에게 컴퓨터에 대한 천재적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윽고 거대 기업 웹스코 사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그는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상당한 금액의 회사 돈을 감쪽같이 횡령한다.

    그러나 거스의 횡령은 결국 회사 총수 로스 웹스터(로버트 본 분)에게 발각된다. 그런데 사악한 성격의 로스와 그의 여동생 베라(애니 로스 분)는 거스를 벌주기보다는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한 그들의 음모에 그를 이용하고자 한다. 그들의 계획은 우주궤도에 떠 있는 기상위성 벌칸을 조작해 콜롬비아에 강풍과 홍수를 일으켜 커피 경작지를 망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기들의 사업에 협조하지 않는 콜롬비아를 혼내는 동시에 세계 커피 가격을 마음대로 조종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슈퍼맨을 해치울 물질을 찾아라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슈퍼맨Ⅲ’

    한편 신문사에서 일하는 클라크 켄트(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분)는 고향 스몰빌에서 15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 연락을 받고 좋은 기삿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도시에서 벗어난 한 작은 마을의 정취를 기사에 담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편집장을 설득해 허락을 받아낸다. 그런데 사진기자 지미와 함께 버스로 고향 마을로 가는 도중에 한 화학공장의 대규모 화재현장을 만난다. 큰 위험을 감지한 클라크는 슈퍼맨으로 변신해 대참사를 방지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마침내 고향 스몰빌의 동창회장에 도착한 클라크는 그곳에서 고교시절 댄스여왕이었던 라나 랭(아네트 오툴 분)을 만난다. 그녀는 어린 아들 리키와 단둘이 살고 있는 이혼녀로 클라크와 만나는 순간 서로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또 다른 동창 브래드 윌슨(가번 오헐리히 분) 역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학창 시절 힘깨나 썼던 인물로 지금은 스몰빌에 있는 웹스코 지사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심한 술주정뱅이이기도 했다. 클라크는 본의 아니게 라나를 사이에 두고 브래드와 삼각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거스는 로스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작전에 들어간다. 먼저 컴퓨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스몰빌의 웹스코 지사로 잠입한다. 그리고 그곳 컴퓨터 통제실에서 기상 위성 벌칸을 조작해 콜롬비아 커피 농장 일대에 큰 회오리바람과 집중 호우를 일으킨다. 그런데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려는 순간 슈퍼맨이 나타나 그들의 일을 망치고 만다. 분노한 로스는 그의 애인이자 영양사인 로렐라이(파멜라 스티픈슨 분)의 정보에 따라 슈퍼맨을 해치울 광물질 크립토나이트를 찾을 것을 거스에게 명령한다. 거스는 벌칸 위성과 컴퓨터를 이용해 과거 우주에서 크립톤 행성의 폭발 장소를 알아내어 크립토나이트 성분을 분석한다. 그러나 크립토나이트의 모든 성분 중 한 가지는 분석되지 않는다. 거스는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을 마침 가지고 있던 담뱃갑에서 힌트를 얻어 타르로 대체해 크립토나이트를 만든다.

    한편 동창회에서 라나와 만나 이후 스몰빌에서 라나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클라크는 다시 메트로폴리스로 돌아와 관련 기사를 쓴다. 그런데 어느 날 라나가 전화 통화에서 아들 리키의 생일 부탁이니 슈퍼맨의 사인을 받아줄 수 없느냐고 한다. 클라크는 라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사인뿐 아니라 슈퍼맨이 직접 리키를 만나러 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스몰빌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화학공장 화재를 막아 마을을 구해준 슈퍼맨을 위해 조촐하지만 뜨거운 환영식을 마련한다. 그런데 이때 미 국방성 장군으로 위장한 거스가 베라와 함께 나타나 슈퍼맨에게 공적에 대한 보답이라며 크립토나이트를 선물한다.

    선한 슈퍼맨과 악한 슈퍼맨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슈퍼맨은 별 의심 없이 크립토나이트를 받아 드나 성분이 하나 바뀐 탓인지 슈퍼맨은 죽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거스와 베라는 실망하고 로스는 거스의 무능함에 분노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슈퍼맨은 제작된 크립토나이트의 한 가지 성분 변화 때문에 죽지는 않는 대신 악한 슈퍼맨으로 변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나쁜 짓만 하게 된다. 올림픽 성화 점화를 방해하는가 하면 심지어 피사의 사탑을 바로 세워놓는 심술궂은 일도 일삼는다. 이틈을 이용해 로스 일당은 다시 한 번 거스의 컴퓨터 조작으로 세계 기름 공급을 교란시켜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 한다. 거스는 처음에는 이 제의를 거절하나 비밀장소에 자신을 위한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설치해주는 대가로 이에 응한다. 이미 변해버린 슈퍼맨은 이런 그들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로렐라이의 유혹에 넘어가 로스의 음모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슈퍼맨은 선과 악이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어쩔 수 없어 한다. 마침내 고물처리장에서 슈퍼맨의 착한 분신인 클라크와 악한 슈퍼맨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그 결과 슈퍼맨은 다시 옛날의 선한 슈퍼맨으로 돌아온다. 슈퍼맨은 모든 일을 바로잡기 위해 로스의 사무실로 그를 찾아가지만 이미 로스 일당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비디오 화면에 나타난 베라가 자기들을 찾으려면 슈퍼컴퓨터가 있는 계곡으로 오라고 말한다.

    슈퍼맨은 즉시 그 장소로 날아간다. 로스의 무수한 미사일 공격을 뚫고 슈퍼컴퓨터가 있는 지하동굴까지 들어간 슈퍼맨은 슈퍼컴퓨터가 쏜 크립토나이트 광선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슈퍼맨을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거스는 그를 구해준다. 베라는 컴퓨터에 빨려들어가면서 컴퓨터가 조종하는 사이보그로 변한다.

    마침내 슈퍼맨과 슈퍼컴퓨터 간의 대결이 펼쳐지고 화학약품을 이용한 슈퍼맨의 기지에 슈퍼컴퓨터는 전파(全破)된다. 베라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나 오빠 로스와 로렐라이와 함께 경찰서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슈퍼맨은 그러나 자기를 구해준 거스만은 따로 빼돌린다.

    슈퍼맨은 다시 메트로폴리스로 돌아와 클라크로 변신한다. 그리고 마침 리키와 함께 메트로폴리스에 와 있는 라나를 찾아간다. 라나는 신문사 편집국장의 새 비서로 취직이 되고 슈퍼맨은 지난 번 바로 세워놓았던 피사의 사탑을 원래대로 기울여 놓으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싱가포르 래플즈호텔에서 처음 등장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영화에서 거스가 기상 조작을 통해 콜롬비아 커피 경작지를 망가뜨리려는 로스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스몰빌의 웹스코 지사에 들어가려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건물 경비를 서고 있던 사람은 바로 라나를 쫓아 다니는 클라크 옛 동창 브래드였다. 거스는 알코올 중독자인 그를 속여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술이 가득 찬 가방을 보여준다. 일시에 경계심이 무너진 브래드는 거스를 안으로 들이고 곧 술자리가 벌어진다.

    거스는 술에 취한 척하며 브래드에게 술을 계속 권하고 브래드는 실제로 거나하게 취한다. 여러 가지 술을 마시던 브래드는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면서 무언가 못마땅해 한다. 이미 술이 취한 그가 이 칵테일을 싱가포르 윙이라고 발음하자 거스는 싱가포르 슬링이라고 정정해주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 그러자 브래드는 아무래도 칵테일에 보드카가 들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아도 술을 더 취하게 해야 할 거스로서는 얼씨구나 하고 칵테일 잔에 보드카를 잔뜩 따라주고 이를 마신 브래드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만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술은 진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칵테일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거스와 브래드가 진이 아닌 보드카를 싱가포르 슬링에 첨가하고 이를 마시는 모습은 사실 관계와 전혀 맞지 않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영화제작팀이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이라는 칵테일의 레시피를 착각했을 경우이고 둘째는 브래드가 그만큼 취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은 의도적인 장면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브래드를 취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거스로서는 진이든 보드카든 관계없이 브래드가 원하는 술을 따라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정황상 둘째 경우라고 생각하고 싶다.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은 1990년대 초 싱가포르의 래플즈호텔(Raffles Hotel)의 롱 바(Long Bar)에 근무하던 전설적인 바텐더 은지암 통 분(Ngiam Tong Boon, 嚴崇文)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래플즈호텔은 1887년에 문을 연 곳으로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세계적 명소 중 하나다. 래플즈라는 호텔명은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처음 만든 영국의 정치인 스탐포드 래플즈 경(Sir Stamford Raffles. 1781~1826)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호텔은 엘리자베스 여왕, 부시 대통령,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묵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롱 바는 지금도 이 호텔 2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싱가포르 슬링을 기억하는 많은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때문에 롱 바에서는 현재 고객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반자동 제조 시스템을 동원해 싱가포르 슬링을 제공하고 있다. 칵테일 장식은 파인애플과 체리로 한다.

    다양한 레시피

    흔히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표현한 것으로 묘사되는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에는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다. 래플즈호텔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진(Gin), 체리 헤링 리큐어(Cherry Heering Liqueur), 베네딕틴(Benedictine)에 갓 짠 파인애플 주스를 섞은 것이었다. 체리 헤링은 체리브랜디의 일종으로 루비색이며 덴마크 산이다. 파인애플은 원칙적으로 말레이시아 사라왁(Sarawak) 지방의 것으로 싱가포르 슬링 특유의 거품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레시피 중 하나는 진, 일반 체리브랜디, 베네딕틴에 그레나딘 시럽 소량(dash)과 가당 레몬주스 소량 5가지를 섞는 것이다. 그레나딘 시럽은 색깔이 없는 일반 체리브랜디를 보완해 색깔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들 재료들을 잘 흔들어 긴 잔(tall glass)에 따른 다음 마지막으로 소다수를 추가해 싱가포르 슬링의 거품 효과를 만든다. 하지만 국제바텐더협회(IBA)의 공식 레시피에 의하면 진, 체리브랜디, 베네딕틴, 그레나딘 시럽까지는 같으나 갓 짠 레몬주스를 사용하고 여기에다 파인애플 주스, 코인트로(Cointreau)와 앙고스투라 비터스까지 추가한다. 대신 소다수는 쓰지 않는다.

    앞서의 레시피에서 비터스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슬링이라는 용어의 어원을 거론하며 재미있는 모순점을 거론하는 견해도 있다. 원래 슬링이라는 말은 알코올에다 감귤류(citrus)를 중심으로 한 과일 향, 설탕, 물 등을 혼합한 가벼운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일종의 과일 음료로 청량감이 뛰어나 열대지방에서 주로 음용되었다. 이런 슬링 종류는 그간 여러 가지가 개발되었으나 그중 싱가포르 슬링만이 독보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에 칵테일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칵테일은 비터스(bitters)를 포함한 알코올음료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슬링은 당연히 칵테일로 간주되지 못했다. 이때의 기준에 의하면 칵테일을 ‘bittered s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오늘날 싱가포르 슬링에 비터스를 첨가하는 것은 슬링의 어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오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영화 장면의 보드카에서부터 마지막 비터스에 이르기까지 오류에 관련된 이야기로 앞뒤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오류들은 싱가포르 슬링 한 잔이면 저녁노을에 뉘엿뉘엿 사라지는 해와 같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머리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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