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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괴테 ‘파우스트’

“인간은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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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우스트’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대작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노학자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맺고 방황하다가 결국 파멸하고 단죄를 받는다.
  • 신의 자리를 넘보았던 파우스트의 도전과 모험은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간은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독일의 대문호 괴테

‘괴테’라는 이름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거인’이다. 독일의 대문호이자 광물학, 식물학, 색채론 등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낸 정치 관료였으며, 평생 뜨거운 열정과 지적 호기심을 불태웠던 인간. 83년에 걸친, 당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거의 두 사람 몫에 가까울 만큼 길었던 그의 인생은 실로 빈틈없이 촘촘했다. 좀 과장하면 미처 늙을 틈도 없을 만큼 영원토록 생기로운 인간이었다고 할까.

그런 만큼 그를 둘러싸고 많은 연애담이 떠도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칠순을 넘긴 나이에 10대 소녀에게 청혼한 일화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 경우조차 ‘주책’이라는 말보다는 노쇠조차 죽이지 못한 그의 열정과 평온한 자신감, 또 우아한 표현법(청혼!)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말하자면 괴테만이 갖고 있는 아우라, 즉 ‘귀족스러움’이다. 청년기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 혹은 그의 표현법대로 ‘낭만적인 것’(=병적인 것)에도 전혀 훼손되지 않는, 오히려 그것마저 포용하는 엄정함 같은 것(‘고전적인 것’) 말이다.

하지만 제법 역설적인데, 괴테는 뿌리 깊은 귀족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다. 그의 증조부는 하층 시민계급(대장장이) 출신으로 근면과 노력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조부는 재단기술자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고급 부티크와 일류 호텔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괴테의 아버지는 당대의 전형적인 상류 교양 시민 계급의 삶을 영위했으며 교육열과 문화적 열망이 높았던 듯하다. 그 밑에서 괴테는 근면성실, 목표지향적인 생활, 노동과 휴식의 구분 등 시쳇말로 중산층의 생활 윤리를 몸으로 익히며 자랐다. 이런 그에게 문학이 왜 필요했을까.

괴테에게 문학은 상승 욕망, 즉 일종의 야망 내지는 포부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은 괴테 개인의 욕망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뎠던 독일의 민족적 열등감과 맞닿아 있다. 그의 성공은 곧 독일의 성공이다. 괴테 덕분에 독일문학이 비로소 영국문학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존재를 갖게 됐고 서유럽 문화의 중심에 나설 수 있었다.

괴테의 대표작인 ‘파우스트’는 그가 24세 되던 해인 1773년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 완성한 방대한 극작품이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르네상스 이래 근대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된, 인간 중심의 신화(神話) 확립에서 찾을 수 있겠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노학자가 악마와 계약을 맺는 행위의 기저에 깔린 것은 신이 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생존했던 파우스트라는 인물은 반쯤은 신화나 전설처럼 인기를 모았고 그 얘기를 다룬 문학 텍스트도 여러 편이 나왔다. 그중 유독 괴테의 ‘파우스트’만이 문학사의 냉엄한 심판을 거쳐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악마를 보는 까닭

“인간은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15~16세기 파우스트를 다룬 여러 편의 문학 텍스트가 있었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만이 살아남았다.

밤, 아치형 천장으로 둘러싸인 고딕식 방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탄식한다.

“아! 나는 철학도, /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 신학까지도 /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하였다. /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 전보다 똑똑해진 것은 하나도 없구나! ”(괴테, ‘파우스트’ 1권,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10, 29쪽)

연금술까지 익혔으나 새로운 환멸을 안겨줄 뿐이다. 마법의 힘을 빌려 지령을 불러보지만 소용없다. 좌절한 파우스트는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때마침 들려오는 부활절 찬송가 소리에 입에서 잔을 떼긴 하지만 그의 우울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비극: 제 1부’를 여는 이 노학자의 고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 파우스트는 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은유에 가깝다. 지식의 극점이나 미의 극점은,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절대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파우스트의 추구는 본질적으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삶을 조금이라도 더 유예하려고 한다면 역시나 ‘어둠’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리얼리즘의 문법이라면 각종 정신병이나 광기가 나올 테지만(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 카라마조프는 정신분열 상태에서 파우스트처럼 악마-분신을 만난다) ‘파우스트’에서는 악마가 작품 속의 실제 인물로서 등장한다. 더욱이 중세말의 분위기를 십분 반영하듯(‘악마’란 ‘악’에 대한 기독교의 강박적 불안의 산물이다) 악마의 형상은 무척 구체적이고 변신의 방식도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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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소설가 koshka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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