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박용인
중부전선인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 위치한 한국군 제27사단 2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 벙커 안이다. 2연대는 DMZ 경비를 맡은 최전선 부대여서 개전 이후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봐, 어디 가는 거냐?”
본부 선임병 이연구 하사가 물었으므로 김대균 일병이 벙커 통로 앞에서 몸을 돌렸다.
“예, 담배 한 대….”
“빨랑 돌아와, 인마.”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터라 이연구가 내쏘듯 말했고 김대균은 밖으로 나왔다. 골짜기에 어둠이 덮여 있다. 이쪽 벙커는 7부 능선쯤이어서 앞쪽 DMZ 건너편의 북한령 산줄기가 가로막듯 펼쳐져 있다. 교통호를 따라 벙커에서 20m쯤 멀어진 김대균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주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능선 위로 이어진 벙커는 모두 비상상태다. 저쪽에서 한 발이라도 사격을 해온다면 바로 전쟁이다. 발사지점이 초토화될 때까지 직사포와 미사일 공격을 할 것이다. 전원이 켜졌으므로 김대균은 곧장 단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바로 통화 연결이 되었다.
“대균이냐?”
아버지 김용배다. 김용배의 목소리를 들은 김대균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묻는다.
“아빠, 진짜 전쟁 나는 거야?”
“너, 어디냐?”
김용배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서로 묻는 바람에 이야기가 엇갈렸지만 김용배가 더 빠르다.
“거긴 괜찮냐?”
“응, 아직.”
김대균은 목이 메어서 한 박자 늦었다.
“아빠, 어떻게 되는 거야?”
“전면전은 안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아빠, 나, 빼줄 수 없어?”
“그, 그것이.”
“시발, 겁나 죽겠단 말야.”
“너, 지금도 벙커에 있어?”
“그렇다니까? 행정병도 다 벙커에 몰아넣었단 말야.”
쏟아지듯 김대균의 말이 이어졌다.
“이러다 죽으면 나만 손해 아냐? 아빠 친구들 높은 사람 많잖아? 나 좀 빼줘… 응?”
“대균아, 쫌만 기다려, 아빠가….”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났으므로 김대균은 서둘러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