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직야구장에서 배운 사랑의 방식

  • 양정윤 롯데자이언츠 팬

    입력2026-05-16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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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기 위해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직야구장을 찾은 시민들. 뉴스1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기 위해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직야구장을 찾은 시민들. 뉴스1

    부산에서 태어났다는 건, 내게는 ‘롯데를 사랑하게 됐다’는 의미다. 기쁨보다 기다림이 먼저 익었고, 환호보다 한숨이 더 자주 남았지만 마음만은 끝내 거두지 못했다. 어쩌면 희망은, 무너진 뒤에도 손에 남는 작은 온기인지 모른다.

    나는 바다를 가까이 두고 자랐다. 짭조름한 바람이 골목을 돌았고, 사람들의 말끝에는 늘 강한 억양과 열기가 묻어 있다. 부산 사람들은 사랑을 조용히 품기보다는 크게 걱정하고 크게 타박하는 방식에 더 익숙하다. 나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며 20대 후반의 나이가 됐고,  도시가 오래 품어온 사랑 하나를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를 물려받다

    ‘롯데자이언츠!’

    내게 그 이름은 야구팀이기 이전에 집 안 분위기였다. 저녁 식탁에는 반찬보다 앞서 야구 중계방송 소리가 올랐고, TV 화면 속 경기 흐름에 따라 가족들의 표정도 함께 바뀌었다. 이기면 집 안이 조금 환해졌고, 지면 말수가 줄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승패가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 수 있는지 배웠다. 나중에야 사랑은 종종 웃는 얼굴보다 먼저 버티는 얼굴로 온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사랑은 사람을 웃게 하기보다는 오래 기다리게 하고, 들뜨게 하기보다는 먼저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갔다.

    내가 가진 오래된 기억 중 하나도 사직야구장에 남아 있다. 어떤 경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부모님 손을 번갈아 잡고 경기장 바닥을 걸었고, 어른들 사이에서 겨우 고개를 내밀어 경기를 봤다. 함성과 박수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는 짐짓 놀랐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함께 탄식했다.



    그때의 나는 야구를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직구장이 특별한 곳이라는 것만큼은 어렴풋이 느꼈다. 그곳은 어린 내게 너무 크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뜨겁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듯 응원했고, 화를 낼 때조차 온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마 그곳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은 혼자 품을 수 있지만, 응원하는 마음은 수천 명이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롯데의 시작은 기록이 아니라 그날의 온도였다. 사직구장의 계단, 저녁마다 울리던 응원가, 주황빛 관중석, 부모님의 손, 그리고 부산의 밤. 롯데는 그렇게 설명보다 먼저 기억이 됐고, 선택보다 먼저 습관이 됐다.

    조금 더 자라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사랑하게 된 이 팀이 단지 부산의 야구팀이 아니라, 이 도시가 오랫동안 품어온 자존심이자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분명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내게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부모님 세대에는 또렷한 추억이지만, 내게는 오래된 사진처럼 빛나는 장면이었다.

    내게 롯데는 영광보다 기다림의 이름이었다

    나는 우승한 롯데를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롯데를 응원할 때마다 늘 지금 눈앞의 경기만 응원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온 시간과 부모님의 젊은 날,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가 오래도록 놓지 못한 염원이 함께 섞여 있다.

    생각해 보면 응원이라는 건 참 이상하게 전해진다. 집문서처럼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통장처럼 숫자로 남는 것도 아닌데도 어느새 세대를 건너 이어졌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실려 오고, 식탁의 분위기 속에 스며들고, 사소한 생활의 리듬이 되어 자식에게 옮겨간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야구를 배웠다기보다, 롯데를 사랑하는 방식을 물려받은 것 같다. 잘할 때만 환호하는 법이 아니라, 잘하지 못할 때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는 법을 배운 셈이다.

    부산 사람들의 사랑은 조용하지 않다. 좋아하면 바로 드러나고, 답답하면 바로 새어 나온다. 좋아하면 대놓고 좋아하고, 답답하면 또 대놓고 답답해한다. 그래서 롯데를 향한 마음도 늘 단순하지 않았다. 칭찬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타박까지 끌어안고, 믿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서운함과 체념까지 함께 견디며 이어져 왔다.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아쉬움도 커진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그 모든 말의 밑바닥에는 결국 같은 마음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제발 잘해 줬으면 좋겠고, 이번에는 조금 다르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이 긴 기다림이 환호로 바뀌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 마음은 때로 우스워 보일 만큼 질기다. 해마다 실망해도, 계절이 오면 마음은 늘 먼저 움직인다.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오래된 사랑은 원래 조금 어리석어 보이기 마련이고, 쉽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일수록 더 그렇다는 사실을.

    롯데 팬의 마음은 늘 복잡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롯데는 1984년과 1992년 두 번 우승했다. 그래서 기대와 체념이 한데 섞여 있고, 애정과 한숨이 같은 입에서 나온다. 우리는 자주 말한다. 또 속는 셈 치고 응원한다고.

    이 말은 농담 같지만 오래된 다짐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믿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을 겪고도 다시 믿는다는 뜻이다. 결과를 알 만큼 알면서도 또 마음을 걸고,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끝내 기대를 거두지 않는 일. 나는 그 마음이야말로 롯데 팬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4월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홈경기에서 5-4로 승리한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웹사이트

    4월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홈경기에서 5-4로 승리한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웹사이트

    또 속는 셈 치고, 그래도 다시 마음을 건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왜 나는 하필 롯데를 응원해서 이런 기분까지 겪어야 할까. 왜 매번 기대하고, 매번 실망하면서도 또 마음을 주게 될까. 우스운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질문은 오래 좋아해 본 사람만 할 수 있다.

    롯데를 좋아하다 보면 내가 응원하는 건지, 견디는 법을 배우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기대했던 순간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음을 덜 주자고 다짐해도 결정적인 장면 앞에서는 다시 숨을 죽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왜 또 믿었는지, 왜 또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런데도 마음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자주 무너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질긴 애정이 남는다. 내가 응원하는 것은 승패의 숫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롯데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풍경, 부모님의 목소리, 사직으로 향하던 저녁의 냄새가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이 팀을 포기하는 일은 내 삶의 한 부분을 덜어내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직구장을 떠올리면 나는 늘 조금 울컥한다. 그곳에는 단지 시끄럽고 흥겨운 열기가 아니라, 오래 기다린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간절함이 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같은 장면에서 탄식하고, 같은 찬스에 숨을 죽이고, 같은 이름을 부르며 목이 쉬도록 응원한다.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혀를 차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은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 얼굴들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보인다. 모두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늘 절망을 통과해 온다

    사람들은 희망을 대개 밝고 가벼운 감정으로 생각한다. 잘될 것 같으니 웃고, 가능성이 보이니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희망은 조금 다르다. 롯데 팬에게 희망은 낙관이라기보다 끝까지 버텨보려는 마음이다.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조금은 믿어보고, 몇 번이나 무너진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불씨를 남겨두는 일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늘 조금 조심스럽고, 그만큼 더 진실하다.

    나는 롯데를 응원하며 그런 희망을 알게 됐다. 그것은 아무 근거 없이 웃는 마음이 아니라,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마음을 내는 태도였다. 쉽게 실망하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고, 상처를 알면서도 끝내 마음을 닫지 않는 일이었다. 여러 번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느리지만 가장 질긴 희망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게 팀 하나만 물려준 것이 아니었다. 쉽게 실망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두 사람에게서, 사직에서,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내게로 왔다. 그 마음은 말로 배운 것이 아니라, 함께 한숨 쉬고도 다시 TV 앞에 앉던 밤들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래서 롯데는 내게 한 번도 가벼운 취미였던 적이 없다. 잘하면 가까이 가고 못하면 멀어지는 대상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잘하지 못할수록 더 마음이 쓰였고, 실망스러울수록 더 쉽게 외면하지 못했다. 훌륭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하게 돼버렸기 때문에 끝내 놓지 못하는 마음이 내게는 롯데를 향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롯데의 가을야구를 바란다. 누군가는 또 속는 거라고 말할지 모른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팬이라는 사람은 다칠 걸 알면서도 마음을 주고, 실망할 걸 알면서도 다시 기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계절을 오래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기다림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더 간절해진 것이 있고, 쉽게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에 더 소중해진 것도 있다. 언젠가 정말 그날이 온다면, 나는 가장 먼저 거실 불빛 아래에서 중계를 보던 부모님의 옆얼굴을 떠올릴 것 같다. 그 얼굴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세월이 묻어 있을 것이다. 오래 한숨 쉬면서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 됐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다시 중계 방송을 켜고 다시 기대를 걸던 사람들 말이다. 내가 바라는 건 결과 하나보다, 오래 참은 시간이 한 번쯤 환하게 돌아오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사직구장에서 울리던 함성과 함께 오래 참아온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 믿음은 늘 조용히 온다. 올해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생각으로,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 희망은 그렇게 오래 남아 있을 때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롯데를 응원한다. 잘해서가 아니라 오래 사랑해 왔기 때문이다. 자주 실망했지만 끝내 마음을 접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이 팀을 좋아하는 일은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일이 됐다. 롯데와 함께하면서 불씨는 늘 밝은 자리에서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때로는 가장 깊은 절망 한가운데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그러니 올해도 나는 믿어보기로 한다. ‘속는 셈 치고’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보기로 한다. 여러 번 무너져 봤기에, 나는 절망을 지나온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나는 그 희망을 안고 오늘도 사직을 떠올리고, 오늘도 롯데를 부른다.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롯데를 사랑해 온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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