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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개발에 푹 빠진 386 벤처기업가

프로그램 개발에 푹 빠진 386 벤처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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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년 200만원을 쥐고 시작한 사업. 아직은 성공했다 할 수 없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인이라고 자부한다.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성공의 계단을 차분차분 오르고 있는 젊은 사장의 인생과 도전. 》
90년대 중반 한 대학교수는 신문마다 매일같이 인터넷 기사가 큰 지면을 차지하는 걸 보고, ‘도대체 인터넷이 뭐기에 이렇게 많은 지면을 차지하느냐’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직접 인터넷을 배워 이용하면서 ‘신문의 모든 지면을 인터넷 기사로 채워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터넷의 편리성과 위력에 폭 빠졌다고 했다. 알면 안 만큼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역의 자리에서 당당히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보인기술의 류호찬(37세) 사장.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전 아직 성공한 사람이 아닌데요”라며 멋쩍어했다. 이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 찾아왔다”고 하자 “그건 맞는 말”이라며 활짝 웃었다. 류 사장은 현재 30명의 직원과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서초동 주택가에 자리한 회사는 1층과 4층 2개의 사무실을 빌려 1층에선 관리팀과 마케팅팀이, 4층에선 디자인팀과 개발팀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집중을 요하는 업무들이다 보니 사장실이 있는 4층 사무실은 사람이 많은데도 간간이 들리는 전화벨 소리 외엔 조용했다. 보인기술은 그동안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D-ROM 타이틀 제작과 인터넷 서비스 기술을 개발해왔다. CD-ROM 타이틀 제작으로는 ‘두산 세계대백과’ ‘멀티미디어 북한백과’ 등 주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것들을 제작해 필요한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류사장은 두산 세계대백과를 제작할 때는 두 달간 거의 하루 걸러 밤을 새우며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타이틀 제작은 단순히 타이틀 제작만이 아닌, 데이터를 배열하고, 검색까지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데, 이용자들이 간편하게 느낄수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일이 많은 것이다. 이와 함께 자체상품으로 7개에 달하는 CD-ROM도 제작해 판매를 해왔다. 그 대표적인 상품이 ‘대한민국현행법령 CD-ROM’ ‘대한민국 판례집 CD-ROM’ ‘민원사무서식 CD-ROM’ ‘의학논문 정보 CD-ROM’ 등이다.

‘대한민국현행법령 CD-ROM’의 경우 5만2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한민국 전체 법령을 한 장의 CD-ROM에 담고 하이퍼텍스트를 자동생성시키는 로직을 개발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98년 정보통신부로부터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멀티콘텐츠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터넷 쪽으로는 95년 데이콤, 롯데와 함께 Cyber Shopping Mall 서비스를 개발해 큰 호응을 얻었는가 하면, 앞선 기술로 각종 기업체의 시스템 통합서비스를 구축해 그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류사장이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은 95년, 이 사업을 하기 전에 그는 선배가 운영하는 ㈜큐빅테크라는 캐디캠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그려 공장에 있는 기계를 이용, 가공케 하는 프로그램) 소프트 개발 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다.

당시 이 회사는 20여명의 직원을 둔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그는 개발부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그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터라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일 배우기에 매달렸다. 그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개발을 하면서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세상의 새로운 변화의 추동력이 여기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일도 나와 잘 맞았고, 전산 처리가 갖는 파워가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곳에 내 인생의 방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돼 몸을 혹사하면서 일을 했다.”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

이때 그가 개발한 것은 DNC((Distribute Numerical Control-가공데이터를 이용, 공작기계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 가공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그는 혼자서 6개월 동안 매달려 개발했다. 프로그램 개발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통신 프로그램의 경우 프로그램만 짜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off-line)상에서 적용시켰을 때 되는 곳이 있고, 되지 않는 곳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다. 통신 프로그램 개발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이때 그는 개발한 프로그램을 다양한 통신기기에 적용시켜 보기 위해 한 공업고등학교의 넓은 공작실에서 혼자 밤늦게까지 작업하는데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고 처량하게 느껴질 수가 없더란다. 그러나 당시 이 제품이 일부에선 이미 납품이 되고, 영업부 쪽으로부터 개발을 독촉하는 압박이 심했기 때문에 이런 감상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6개월 만에 프로그램 개발을 마쳤을 때 그는 보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답답함도 느꼈다.

“그 당시 지방에 프로그램을 깔아주러 가면 대부분의 기업주들이 이 소프트웨어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것으로 알고 ‘일단 몇 명 자를 수 있다’는 인원절감부터 생각하고 시스템을 도입하자마자 숙련된 기술자들을 무조건 내보냈다. 원래 전산화의 목적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작업을 단순화하는 것인데 인원절감만 생각하고 숙련공들을 내보내니 기술 발전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전산을 통해서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기업의 전체적인 활력을 높여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안 돼 답답했다.”

이런 구조가 되지 않다 보니 현장에 시스템을 세팅하러 간 류사장은 해고의 압박을 받는 기술자들로부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고, 도움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류호찬 사장은 소프트 개발에 대한 전문지식을 체득해 95년 인포페이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서 잠깐 류호찬 사장의 전력을 짚어보면 그는 63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교직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상경,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그의 아버지(서울 중앙여중 교장 재직중 91년 타계)는 자신이 못 이룬 학문의 길을 아들이 걸어주길 바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이걸 보고 아버지는 좋아하시면서 실험 기구도 많이 사다주셨는데, 뒤에 가서 매일 청계천 전자상가들을 쫓아다니며 라디오 부품들을 사다 조립이나 하고 공부는 하지 않자, 하루는 관련 서적들을 모두 압수하고 더 이상 못하게 했어요.”

무엇에든 한번 빠지면 깊이 빠지는 성격인 그는 당시 공부도 한번 하면 몰두했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내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200만원으로 사업 시작한 운동권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그는 서울대 수학과를 진학했다. 물리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원에서 이론물리 쪽으로 공부할 계획을 세웠으나 뒤에 운동권에 가입하고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 꿈은 멀어졌다. 대학 4학년 때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운동의 전면에 나선 그는 85년 5월 삼민투위(민중, 민족, 민주) 사건으로 구속되어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도 이때 함께 구속되었다고 한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87년 6·29선언을 며칠 앞둔 6월23일 그는 만기 출소해 잠깐 한겨레사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가, 민청련으로 자리를 옮겨 이곳에서 정책위원으로 3년간 일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활동으론 생활이 되지 않아 취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때 취직하는 것에 대해 선배들이 느껴야 했던 가책이라든가 갈등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들어간 곳이 바로 선배가 운영하던 (주)큐빅테크였고, 여기서 3년간 일을 배우고 있을 때 멀티미디어 쪽에서 일하던 후배로부터 함께 CD-ROM 타이틀 제작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와 95년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회사를 차리려고 보니까 수중에 자금이라곤 200만원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장인으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아 강남역 근처에 8평 규모의 사무실을 얻고 직원 3명을 데리고 인포페이스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업무를 프로그램 부문과 데이터 가공, 디자인 부문으로 나누어 프로그램 부문은 류사장이 맡았지만 문제는 영업이었다.

“CD-ROM 제작에 있어 기술력은 뒷받침이 되는데, 내 자신이 개발자 출신이다 보니 영업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기술력을 보여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샘플을 만들어 시연했다.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이렇게 먼저 이름을 알리고 나니 하나둘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글과 컴퓨터’ ‘정보시대’ ‘상식백과’ 등 주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타이틀을 제작했다. 이때 류사장은 CD 타이틀을 멀티미디어적 요소를 많이 가미해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데이터 속에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빠른 검색 처리를 주요 장점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용역도 늘어났다.

아무튼 이렇게 사업이 한창 번창해갈 때 인터넷을 사업화해보겠다는 친구가 찾아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힘을 합하면 좀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96년 친구가 운영하는 보아테크사와 류사장의 인포페이스를 합쳐, 보인인터랙티브사를 법인으로 등록했다(98년 ㈜보인기술로 회사명 변경).

그러나 이 친구와는 사업 방향이 달라 1년간 함께 일하고 헤어졌다. 회사를 합하고 나니 직원은 모두 2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멀티미디어 쪽으로는 계속 대용량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CD-ROM 타이틀 제작을 하며, 인터넷 쪽으로는 컬처 코리아 웹사이트를 만들어 문화 게시판, 갤러리, 한국의 전통문화, 세계 영화기행 등을 비롯해 지하철 문화정보와 문화 뉴스를 함께 올렸다.

한국의 전통문화 메뉴에는 전통음악의 세계와 무예의 세계를 각각 만들어 국악과 택견에 대한 자료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네티즌들의 호응이 좋았던 지하철 문화 정보에서는 지하철 역세권 문화지도를 만들어 지도상에서 지하철역을 클릭하면 역 주변 지도가 나오게 하고 다시 원하는 장소를 클릭하면 해당 장소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게 했다.

류호찬 사장은 합병을 한 96년에 매우 의욕적으로 일했다. 정보통신부 주관으로 한 정보화촉진기금 사업자로 선정돼 8억원의 국가 지원금을 받아 ‘CATV망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 기술개발’과 ‘멀티미디어 콘텐츠 자동생성기의 개발과 이와 연동된 관리/검색 시스템의 개발’ 등을 해냈다. 그런가 하면 이때 용역만 받아서는 회사 운영도 어려우니 탄탄한 기업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자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생각하고 상품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한민국 현행법령 CD-ROM’이다.

96년에 개발에 들어가 97년 2월 출시까지 꼬박 1년이 걸린 이 CD-ROM은 당시 경쟁 상품이 있었지만 검색속도가 월등히 빠른 데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법도 간편하게 만들어 이용자들의 반응이 타제품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리고 법조문 안에서 참조하는 관련법령과 별표서식을 10만 여건의 하이퍼링크(밑줄 그어진 곳에 마우스를 누르면 관련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로 연결해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고, 법조문과 별표서식을 보조 창을 이용해 한 화면에서 동시에 비교해가며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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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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