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고생을 알고 나니 그들을 격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자 디자이너들도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백 사장을 조금씩 가까이 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도 백사장이 아주 곤혹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시즌이 끝나고 창고에서 갖는 재고상품 품평회가 그것이다.
백 사장은 매주 3∼4회 개최되는 브랜드별 사내 품평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만든 디자인이나 샘플에 대해서는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다. 그는 “경영자가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지 설알면 오히려 모르는 것보다 못 하다”며 디자인에 관한 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만든 옷이 팔리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은 은근히 추궁한다.
“제가 오기 전에는 매출액 등 외형에만 치중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들도 옷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지, 자신이 디자인한 상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들에게도 경영마인드를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외형 위주에서 ‘팔릴 수 있는 옷만 내놓는’ 품질 위주로 경영전략을 바꾼 백 사장은 시즌이 끝난 뒤 디자이너들을 재고품 창고에 소집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창고 안에 진열된 옷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생각해보세요. 안 팔리고 남은 옷을 바라보는 디자이너들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저는 그냥 옷만 보게 했을 뿐 입 한 번 열지 않았습니다. 책임도 묻지 않았구요. 그저 애써 만든 상품이 왜 안 팔리고 이렇게 창고로 돌아와 쌓여 있는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었지요.”
그 재고품평회는 다음 시즌의 매출 증대로 돌아왔다.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알아서’ 팔릴 상품을 만드는 쪽으로 머리를 싸매기 시작한 것이다. 나산의 재고 품평회는 그 후 시즌마다 계속되고 있다.
그는 품질향상을 꾀하되 원가는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찾느라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나산의 5개 브랜드는 싼 편이지만 품질은 ‘별로’라는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그는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부재료를 직접 구입하지 않고 프로모션 등 중간상들을 통해 구입하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수입원단은 다섯 군데의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가격이 필요 이상으로 올라갔다.
소재에 관한 한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백 사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원부재료의 직거래 비중을 크게 늘리자 일부 품목은 구입비가 50% 이상 줄어드는 등 상당한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왔고, 이는 소비자의 즉각적인 호응으로 이어졌다.
고객은 귀신
“고객들이 귀신처럼 압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입원단으로 만든 상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일찌감치 절품됐어요. 그런데 똑같은 수입원단을 같은 시즌에 다시 수입하기가 불가능해서 그것과 흡사한 국내산 원단으로 대체해 상품을 출하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랬더니 그 상품이 안 팔리는 거예요. 소비자들이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낼 만큼 수준이 높아졌어요.”
백 사장은 그런 소비자의 수준을 감안해 하청업체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단추 하나, 바느질 한 땀에 따라 품질이 결정된다며 특히 마무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옷은 정성입니다. 정성에 따라 품질이 결정됩니다. 비싼 원단과 재료를 쓴다고 품질이 높아지는 게 아니에요.”
유통망을 개선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법정관리 후 이탈된 유통망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기적으로 제품 설명회를 여는 등 대리점과 신뢰를 구축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 패션쇼를 개최하고 방송광고를 재개한 것도 대리점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산이 재기한 데는 법정관리에 놓였으나 우리를 버리지 않은 450개 대리점의 공이 큽니다. 나산은 중저가 브랜드이므로 백화점에는 매장이 거의 없고 대부분 로드숍입니다. 이분들이 다른 브랜드로 매장을 바꾸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조이너스’나 ‘꼼빠니아’가 돈을 벌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백 사장이 말단사원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온 말이다. 그는 결과는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믿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판단해서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고 말한다. 나산에 와서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결과가 좋아지겠지’ 하고 계산해서 일한 게 아니라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결과가 좋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산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 것이다.
“효성은 잘 짜인 조직이고 기업문화가 제대로 정착돼 있는 곳이므로 신뢰가 무너지는 위기는 겪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산은 법정관리 회사 아닙니까? 신뢰가 금간 곳이었기에 다시 그 신뢰를 회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느꼈습니다.”
신뢰에 관한 얘기로는 탤런트 이병헌과의 훈훈한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이병헌은 나산에서 만드는 남성복 ‘트루젠’의 모델. 나산이 부도 나면서 나산브랜드의 여러 광고모델들이 모두 떠났지만 이병헌은 “내가 모델을 한 회사인데 부도가 났다고 떠나면 도리가 아니다”며 모델료를 받지 않고 모델을 계속했다.
“그 친구 참 괜찮은 젊은이더군요. 그 사실을 보고받고 놀랐지요. 지난해 마케팅팀에서 ‘이병헌과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얼마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저한테 물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군데, 이제 우리가 먹고 살 만하니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달라는 대로 주라’고 했지요.”
계약서의 모델료란을 비워놓고 이병헌에게 위임했는데, 이것이 ‘백지수표’ 운운하면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백 사장은 “그 친구, 간이 작아서인지 많이 써넣지도 못했더군요” 하며 웃었다.
선배의 등을 보고 배운다
요즘 백 사장은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고백한다. 디자이너들과 얘기하는 것도 즐겁고, 패션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재미있다는 것. 길을 걸으면서 젊은 여자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게 좀 뭣하긴 해도, 몸과 마음이 젊어지고 새로운 활력에 차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한다. 더욱이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 이 상태로 가면 3∼4년 안에 채무 1700억원을 갚고 법정관리에서 조기 졸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큰 기쁨이다.
솔직히 이런 기분은 효성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효성에서 근무할 때는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한 감정이 있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일찍 임원이 되고 계열사 사장이 되다 보니 늘 저보다 7∼10세 많은 분들을 아랫사람으로 데리고 있었어요. 한번은 제 아래에 있던 상무가 전무를 안 시켜준다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기에 제가 ‘언젠가 하면 되지, 뭐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형님, 제가 나이가 있는데 조급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라며 정색을 하고 따지더군요. 알고 보니 그 친구가 저보다 겨우 두 살 아래였어요. 제가 하도 젊은 나이에 사장을 맡았기 때문에 상무면 나이가 아주 어린 것으로 알았던 겁니다.”
그러나 백 사장은 효성에서의 경험이 그가 전문경영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데 밑받침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효성은 견실한 경영으로 이름난 회사. 이른바 ‘미세(微細) 관리’를 잘해 비록 회사가 다소 구식이란 느낌은 들지만 외환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탄탄한 회사였다. 그가 굳이 효성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다.
“일본 속담 하나를 명심하고 있습니다. ‘선배의 등을 보고 배운다’는 겁니다. 저는 효성에서 근무할 때 모시던 상사를 보며 느낀 점들을 노트에 반드시 기록했습니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요. 아마 그것이 리더십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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