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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大選의식 경기부양, ‘펀더멘털’ 무너뜨린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월드컵·大選의식 경기부양, ‘펀더멘털’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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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금이 저점 아니다
  • ● 거시지표에 현혹되지 말라
  • ● ‘미시적 펀더멘털’은 위험수준
  • ● 적자생존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 ● 2002년 세계경제 전망 어둡다
  • ● 일본형 장기침체 우려
  • ● 외환보유고, 만병통치약 아니다
  • ● 경기부양책은 이제 그만
정운찬 : 요즘 무디스, S&P 등의 외국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이제 회복기로 접어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경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경제위기를 맞았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가 비교적 괜찮다고 하는 의미 정도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2001년 3/4분기에 경제성장률이 잠정치로 1.8%의 성장세를 보인 데 대해서도 고무된 분위기인데, 이것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1972년에 낮았고, 1980년과 1998년에 마이너스였던 것을 빼놓고는 어느 해나 5% 이상 성장했어요. 따라서 2001년 3/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8% 성장했다는 것은 1960년대 이래 네번째로 낮은 성장률인데, 그걸 두고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앞으로도 더 좋아질 것이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희박한 얘깁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지난 1년반 동안 줄곧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면서 ‘1/4분기까지만 기다려라’ ‘2/4분기까지만 기다려라’ 하는 식으로 불확실성을 키웠습니다. 이번에 1.8%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 ‘저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음 분기에 성장률이 좋게 나오지 않으면 그때 가서 또 ‘지금이 저점이니 앞으로는 잘될 것’이라고 할 건가요?

김종인 : 1.8%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성장률’이라고 하는데, 나는 누가 그보다 더 나쁘게 예상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정부는 2000년 말부터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만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장률만 놓고 보면 2001년 1/4분기보다 2/4분기가 더 나빴고, 2/4분기보다 3/4분기가 더 나빴어요. 3/4분기의 1.8% 성장률이 2001년 들어 가장 낮은 것이라서 그게 저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의미한 성장률



우리 경제상황을 경기변동론에서 얘기하는 경기 주기에 따라 설명하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들의 희망사항에 따라 좋아진다, 좋아진다고 했다가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져서 아주 낮은 성장률을 보이니까 이걸 저점이라고 하면서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 것인지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경기주기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경기이론으로 경기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여건이라고 봐요. 최근 들어 경기를 진작하겠다는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경기진작이라고 하는 것은 통화팽창정책, 즉 금리를 내리거나 통화량을 늘리거나 또는 재정팽창정책, 즉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 가처분소득을 늘림으로써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이죠.

그런데 봅시다. 우리는 IMF사태 이후 1998년에 -6.7%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999년 10.7% 성장에 이어 2000년 상반기까지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다가 2000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꺾여 2000년 4/4분기에 아주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그런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을 경기순환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00 4/4분기처럼 그 이전까지 10%를 넘던 성장률이 갑자기 반토막이 나서 한자리수로 내려간다는 것은 경기순환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돼요. 왜 그런 현상이 생겨났느냐? 그건 금융의 경색에서 비롯된 겁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한 거죠.

금융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투입한 돈이 정부 발표대로라면 2001년에만도 50조원에 가깝지 않습니까. 50조원을 쏟아부은 결과가 성장률에 반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두 차례에 걸쳐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심지어는 특별소비세까지 인하해서 소비를 진작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경제를 운영한 결과가 성장률 1.8%로 나타난 겁니다. 이런 극단적인 부양책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을 성장률을 가지고 ‘예상보다 좋았다’거나 ‘저점이다’ 할 수 있는 건가요? 만약 4/4분기에 지난 1년간 쓰지 않은 예산을 한꺼번에 집행하는 등 정부 지출을 총동원한 덕분에 성장률이 1.8%보다 높아지면 ‘역시 3/4분기가 최저점이었다’고 할지도 모르죠.

정운찬 : 저점이란, 그 시점을 지난 후 적어도 몇분기에 걸쳐 상당한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저점이다’ ‘바닥이다’고 한다면 또 다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봐요. 김박사께서 최근의 우리 경제상황은 구조적인 문제로 이해해야지, 경기순환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만, 경기순환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예상보다 높아 저점이다’고 할 때의 ‘예상보다’라는 말은 극히 주의해서 써야 합니다. 경제에 대한 예측은 ‘틀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거든요.

어떤 시점을 저점이라고 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과거 30, 40년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생산이나 고용, 출하 같은 지표들이 몇몇 분기 동안 이러저러하게 나쁜 상황에 처해 있으면 그 후로는 좋아지더라 하는 통계가 있어서 그것에 입각해 저점이라고 한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지금은 그런 기준도 없이 즉흥적으로, 좋게 말하자면 국민에게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 잘해보자’고 하는 의도에서 ‘지금이 저점이니 앞으로는 잘될 것이다’고 하는 것 같아요.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이죠.

방향 못잡는 경제정책

김종인 : 정부가 성장률, 고용률, 국제수지, 물가상승률 같은 거시지표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거시지표가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 나라의 경제구조가 안정적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경제의 전반적 구조가 굉장히 불건전해서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정책을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거시지표를 아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죠.

1997년 IMF사태 직전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 정책당국과 경제연구기관, 내로라하는 ‘경제 대가’들이 다들 뭐라고 했습니까? IMF 사태 1∼2주 전까지만 해도 ‘한국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해서 절대로 외환위기를 겪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때 얘기한 ‘펀더멘털’이라는 게 뭡니까. 거시지표 갖고 얘기한 거예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적정하고, 고용이 정상적이고, 국제수지에 큰 문제가 없으니까 거시지표, 다시 말해 펀더멘털에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령 기업들이 계속해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거시지표로 본 펀더멘털은 좋아져요. 기업인들이야 늘 투자의욕이 왕성하고 남보다 앞서가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수익과 관계없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1980년대에 그런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죠. 기업들은 수익이 있냐 없냐를 따지지 않고 단지 세(勢)를 불리는 식으로 시설투자를 늘려갔고, 금융기관은 계속 돈을 공급해줬습니다. 그렇게 투자를 계속하니까 지표상으로는 성장률도 높아지고 고용률도 높아졌던 겁니다. 수출도 마찬가지예요.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밀어내기 식으로 수출하면 수출고야 당장 좋아지죠. 그렇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결국 그 차액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메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순환이 거듭된 끝에 IMF사태를 맞게 된 것 아닙니까.

기본적인 구조가 건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위 돈의 흐름에 의해 나타나는 성장률이나 고용률 같은 것은 까딱 잘못하면 경제를 또 한번 어려운 국면으로 끌고갈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어요. IMF사태를 유발한 근본적인 요인을 제거하는 작업이 과연 완료됐을까요? 구조상으로 나타난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고 건전한 바탕 위에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할 각오를 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너무 부드러운 해결책만 강구하다 보면 미래의 코스트가 커집니다.

IMF사태 이후의 경제정책을 보면 그 기본 방향이 너무 단기간에 변했어요. IMF사태 직후에는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다’고 하더니 불과 6∼7개월 후에는 ‘구조조정을 완료했다’고 했어요. ‘구조조정을 마쳤으니 경기부양으로 가면 모든 게 끝난다’고. 그러다 경기가 좀 좋아 보이니까 ‘이젠 경기의 연착륙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그러다 또 문제가 생기니까 제2차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2차 구조조정이 ‘4대 개혁’으로 둔갑해서 2001년 2월 말까지 4대 개혁을 완료하고 그 후로는 경제가 정상화된다고 했습니다.

2월 말에 와서 4대 개혁이 완료됐냐고 물으니 ‘완료는 안됐지만 4대 개혁의 기본틀은 잡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도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2001년 3월부터 지금까지 4대 개혁이 얼마나 제대로 추진됐을까요?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경기가 저점이냐 아니냐, 성장률이 1% 더 높으냐 낮으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무엇이 ‘펀더멘털’인가?

정운찬 : 경제를 평가할 때는 원론적으로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이 있습니다. 거시적 시각은 경제라는 큰 숲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미시적 시각은 그 숲을 구성하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시적 시각은 거시경제지표, 즉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국제수지 같은 것들을 보는 것이고, 미시적 시각은 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수익률이나 부채비율, 국제경쟁력, 기업활동의 투명도 등을 보는 것입니다.

과거 40년 동안 한국의 거시경제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해마다 성장률이 거의 10%에 가까웠고, 물가상승률도 1960∼70년대에는 20∼30%씩 됐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비교적 괜찮았습니다. 국제수지는 상당 기간 적자였지만, 1980년대 후반 몇 년,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은 흑자를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거시경제지표만 보면 한국경제는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미시경제적으로 보면 기업의 수익률, 예를 들어 총자산수익률(ROA) 같은 게 외국에 비해 아주 낮고 반면에 부채비율은 높아요. 기업활동의 투명도도 낮은 수준입니다. 이렇게 미시적으로 보면 형편없는데 어떻게 거시경제지표는 그렇게 좋을 수 있냐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한국경제의 수수께끼(Korean Economic Puzzle)’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 즉 미시적으로는 체질이 허약한데 거시적으로 좋은 상황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기 때문에 미시적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오래 전부터 했어야 합니다. 그걸 못해서 결국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지경에까지 도달한 겁니다.

시장기구가 상당 수준 정착되고 자본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거시경제지표만 보고도 잘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런 나라에서도 거시경제지표가 단기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미시적인 부문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미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펀더멘털은 우리에게는 펀더멘털이라고 할 수 없어요. 시장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미시적인 것이 펀더멘털이기 때문이죠. 구미 경제학자들이 쓰는 말을 그냥 빌려와서 ‘펀더멘털이 좋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경제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밖에요.

거시경제지표는 나빠야 좋은 것이니 나쁘게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거시경제지표와 구조조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면, 거시경제지표가 좀 나빠진다 해도 구조조정이 잘만 이뤄진다면 그게 더 바람직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기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둘 다 좋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미시적 구조조정을 택해야 된다는 겁니다. 펀더멘털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이슈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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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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