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행정부도 쌍둥이 적자의 누적이 안고 있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세계 상품의 최종소비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동력이 “소비에서 수출로” “금융 공학에서 생명·소프트웨어·토목공학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달러화는 제로에 가까운 연방기금금리 등의 요인으로 인해 약세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성장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를 대폭 감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 균형을 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출 증대를 위해 달러가치를 절하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의 위험성을 오랫동안 지적해온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포린어페어즈’ 2009년 11/12월호 기고문에서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달러의 패권, 대규모 자본유입이 더 이상 미국의 이해와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달러 패권의 포기와 평가절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달러 평가절하 정책은 정책적 딜레마를 야기한다. 미국은 경기침체로 인해 확장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취해야 하고, 사회보장 지출 등 재정 지출 수요가 증대하고 있어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경상수지 개선을 위한 달러의 지속적인 절하는 미국 국채의 자산 손실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 훼손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국채 발행을 어렵게 한다. 달러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면서 달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달러가치가 급격히 무질서하게 조정되는 위기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는 미국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지에 달려 있다.
폴 크루그먼은 1995년에 발간한 저서 ‘통화와 위기(Currencies and Crises)’에서 “무역적자가 엄청나고, 다른 한편으로 외국투자자들이 달러 약세 덕택에 싼값에 많은 미국 자산을 매수했다…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이 중단되어 미국 경제가 금융경색(financial squeeze)에 빠지는 것은 단순히 가능성이 아니다. 그 과정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쌍둥이 적자가 지금에 비할 바 못 되는 때의 이 언급이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한층 취약해진 현 시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달러 위기론은, 이 같은 상황에서 채권국가들이 달러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외환보유고의 자산구성을 달러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변화한다면 달러가치 하락이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만약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민간투자자들도 손실을 예상하고 미국 경제에서 탈출한다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하나의 극단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달러의 약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투자자들에게 달러자산의 손실을 회피하려는 유인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이 위기를 심화하는가
글로벌의 두 대칭점에 있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급격히 줄인다면, 자신들의 최대 수출대상국인 미국 경제는 즉각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국채가격은 하락하고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민간투자는 위축되고 경제성장은 가로막힐 것이다. 최대 교역국의 위기는 아시아 국가들도 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중국, 일본 등이 ‘황금을 낳는 거위의 목을 비트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달러화가 위기에 직면하면 관련 국가들이 공조해 달러를 구제할 수도 있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중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도 상존한다. 우선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체험은 국가 간 협력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상자기사 참조). 공통 이해관계는 유동적이고 국가 간 협력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황 역시 많은 불안정 요인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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