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동의 고급 식당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면 딱 맞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뭐가 챙긴다는 말도 정답이다. 왜일까. 바로 가겟세 때문이다. 내가 일하던 한 식당은 월 매출이 1억원 정도 하는 작은(?) 업장이었다. 재료비로 30% 정도 나갔고 인건비는 20%를 차지했다. 인건비가 더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부족한 인원으로 쥐어짜야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다.
또 전기나 가스요금, 보험료 같은 경상운영비가 10%는 너끈히 나왔다. 고급 와인이 많은 업장이라 보안설비를 필수로 이용해야 했다. 그러면 대충 따져도 총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대부분 신용카드 매출이라 부가세를 10% 가까이 내야 하니까 남는 건 30%선. 신규 투자가 약간 있고, 예비비도 조금 잡으면 매출의 80%가 비용으로 계산된다. 감가상각 같은 건 아예 넣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결정적인 건 가겟세다. 겨우 40석이 채 안 되는 작은 업장인데 월세가 무려 2000만원. 그것도 지출 처리를 하려니 부가세를 별도로 내야 했다. 문제는 이게 별로 비싼 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40~50석 규모에 3000만원을 내는 업장도 많다. 그러니 그야말로 재주만 넘고 세월은 가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빌딩을 가지고 있는 사람 처지에서야 투자비가 있고, 건물을 짓거나 사느라 빌린 돈을 갚아야 하니 비싼 세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겟세 비싸기로 소문난 도쿄의 롯폰기나 에비스, 유럽 주요 도시의 도심에 비해서도 한국의 가겟세는 더 센 편이다. 그러니 이런 외국에서 더 솜씨 좋은 식당을 다녀본 손님들은 애꿎은 우리 식당들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이보쇼, 우리보다 물가가 더 비싼 도쿄나 뉴욕에서도 이 가격에 더 나은 음식이 나옵디다. 너무 한 거 아니요?’ 라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할 말은 있다. ‘글쎄요, 우리도 재주만 넘고 있답니다, 손님.’
유학 3년 만에 현지 주방장?
그러면 남지도 않는 장사는 왜 하느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게 울며 겨자 먹기다. 한마디로 ‘누가 이럴 줄 알았나’다. 지금도 청담동에 진입하려는 예비 식당업주들이 줄을 섰다. 청담동은 매년 열 개의 식당이 생기면 아홉 개는 망한다. 그렇다고 한 개의 식당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냥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범위를 넓혀 스무 군데는 되어야 한 집이 그나마 벌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언제 고객의 마음이 바뀌어 테이블에 먼지가 앉을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청담동의 고객들은 유별나게 싫증을 잘 낸다. 새로운 식당이 생기면 메뚜기 떼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이내 그 식당을 떠나 새로운 식당으로 간다. 그것뿐이다. 10년이 넘게 선전하고 있는 식당은 열 곳이 안 된다. 그 넓은 청담동 바닥에서 겨우 열 곳이라니. 그런데도 지금도 업주들이 꾸역꾸역 청담동을 항해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식당 비즈니스의 댄 메이어(뉴욕 최고의 식당 사업가. 여는 족족 대히트를 하며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한국에도 ‘세팅 더 테이블’이란 책이 번역 소개되었다)를 꿈꾸면서 말이다. 쪽박과 대박의 차이가 습자지 한 장보다 더 얇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청담동은 그렇게 오늘도 저녁 장사 시작을 알리는 불을 켤 뿐이다.
사실 나도 큰 덕을 본 경우다. 무슨 얘기냐고? 바로 유학파 셰프(주방장)들이다. 나 역시 유학파다.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에 건너갔으니 꽤 이른 축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