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9시에 시작한 이날 회의는 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시 반경 끝났다. 통상 동향보고회의가 오후 12시 반경 끝나는 것과 비교하면 한 시간가량 긴 격론이 오간 것. 이 자리에서는 금통위원들과 한은 집행부 간에 경제 현황과 금리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드러나는 만큼 다수결로 결정되는 기준금리의 방향은 금통위 정례회의가 아닌 동향보고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 역사상 요즘만큼 금리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없다”며 “지난달보다 논쟁의 강도가 더 높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5월 9일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0.25%p 인하했다. 이는 7개월 만에 단행된 인하로 기준금리는 2010년 11월(2.50%)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했던 당(黨)·정(政)·청(靑)의 압박에 맞서 연일 저금리의 부작용을 언급하며 금리동결 필요성을 강조했던 김 총재와 한은의 반란이 불과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어차피 내릴 거면 진작에…”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색했지만 금리동결을 점쳤던 금융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불과 일주일 전인 3일 “우리가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금리를 어디까지 내리란 것이냐”며 박근혜 정부 경제팀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김 총재의 변심이 한은에 대한 시장의 불신만 키웠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도 “어차피 내릴 금리였다면 진작 내렸어야 했다”는 냉소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한은 안팎에서는 새 정부 출범 후 한 달여 동안 지속된 기준금리 갈등의 배경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김 총재 간의 편치 않은 관계부터 섣불리 한은을 자극한 정부의 실책까지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 총재는 9일 금통위 정례회의 직후 이례적으로 금통위원들의 표결 결과를 공개했다. 한은은 금통위 회의 2주 후 회의록을 공개할 때까지 표결 결과를 비밀에 부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김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참여한 이날 표결 결과는 5대 1. 금리동결을 주장한 금통위원은 1명에 불과했다.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3대 3으로 갈릴 때 마지막으로 ‘캐스팅 보트’를 던지는 한은 총재가 표결에 참여할 여지도 없이 일찌감치 금리인하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김 총재의 표결 결과 공개가 이번 금리결정이 총재와 한은의 뜻이었음을 내비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한다.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은 한은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은행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4대 3의 대결구도로 금리동결이 결정됐던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김 총재를 비롯해 박원식 부총재, 문우식(한은 추천), 임승태(은행연합회 추천) 위원이 금리동결을 주장했다. 총재와 부총재, 한은 추천 금통위원은 금리방향과 관련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금통위 회의록이 공개되면 누가 금리동결에 표결했는지 윤곽이 드러나는 만큼 한은 측의 의견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라며 “동향보고회의 등을 통해 금리방향의 대세는 이미 파악되기 때문에 한은이 소수 의견에 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한은이 금리인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이번 금통위에서 5(금리인하)대 1(금리동결)의 표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책 엇박자’를 무릅쓰고 4월에 금리동결을 택했던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가 한 달 사이에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총재는 “금리를 동결해야 하는 이유가 5가지라면 인하해야 하는 이유도 그만큼은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난달에는 많은 논의 끝에 그중 하나를 선택했고 이번에는 또 지난달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총재는 주요국들이 최근 금리인하에 나섰다는 것 외에는 지난 한 달 동안 금리동결 방침이 바뀌게 된 경제적 이유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기개선 흐름에 대한 전망과 하반기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국내 경기 전망은 4월과 5월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
MB맨의 자존심?
금리인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결국 정부와 갈등을 지속하는 데 따른 한은의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과 부동산 종합대책,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가 잇따라 경기부양을 위한 승부수를 띄우는 가운데 하반기 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면 자칫 금리동결 방침을 고수한 한은이 모든 책임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4월 금리동결이나 5월 금리인하 모두 정부와의 관계와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김 총재 스스로 금리인하의 첫 번째 이유로 ‘정부 및 국회와의 정책공조’를 꼽은 것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정부와 금융시장에서는 애초에 김 총재가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정부와 갈등구도를 형성했던 것부터 예상외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연구원 등 국책연구원의 원장을 역임한 김 총재는 한은 총재로 내정된 직후 “한은도 정부”라고 밝힐 정도로 물가안정이라는 한은의 고유 목표보다는 성장 중심의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평가돼왔다. 특히 그는 한은법 개정을 놓고 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7년 재정경제원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을 지낸 경험 때문에 ‘정부로부터의 통화정책 독립’을 주장하는 한은의 논리에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다. 현 부총리는 김 총재의 경기고, 서울대 후배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같은 시기에 유학할 때부터 친분을 유지해왔다. 현 부총리는 4월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은 총재와는 평소에도 자주 보고 친하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한은 총재와) 협업이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