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와 아카몬카이 유학생들이 만든 추모 홈페이지에는 이씨를 기리는 글이 20여만건 이상 쇄도하고 있다.
“한국의 4000만명, 일본의 1억2000만명,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당신은 해냈다.”
“명복을 빕니다. 편안히 쉬세요.”
“당신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아름다운, 닮고 싶은 청년입니다.”
감사의 물결은 추도식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기관에는 이씨와 세키네씨의 유족에게 보내는 조위금이 밀려들고 있다.
아사히신문사에는 지난달 30일부터 조위금 접수를 시작한지 이틀만에 877건, 868만엔이 전해졌으며 수백건의 문의와 격려 메시지가 전화와 팩스로 들어왔다. 접수 첫날에는 60세 전후의 한 남성이 200만엔의 거금을 유족에게 전해달라며 맡기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사에도 이틀간 1390건, 1118만엔이 접수됐으며 마이니치신문사에도 680건, 400여만엔의 조위금이 접수됐다. 이들 신문사에는 그 후로도 조위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신문사 뿐 아니라 일본 곳곳서 온정의 손길이 몰려들고 있다. 이씨가 유학하던 아카몬카이는 이씨 유족에 보내는 조위금이 1000만엔 이상 몰리자 ‘이수현군의 용기를 기리는 기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카몬카이는 이 기금의 사업내용에 대해서는 이씨 부모와 긴밀히 상의해 결정할 계획이다.
도치키(木)현 오타와라(大田原)시에서는 시청 간부들이 “남의 일에 무관심한 시대에 남을 위해 스스로 몸을 던졌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일을 했다”라며 말을 꺼내자 아예 시직원 상조회(회원 501명)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또 오사카(大阪)부 국제교류재단은 “이씨 부친이 오사카에서 태어난 인연이 있다”며 “유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추광호(秋光浩·46·JMI저팬 사장)씨는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자신과 부인 명의로 된 대지 546평(싯가 17억원 상당)을 기증, 한일유학생회관을 짓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한일 프로야구 챔피언팀들이 다음달 11일 이씨를 추모하는 친선경기를 갖고, 재일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씨도 추모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와 일본 시리즈 챔피언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추모전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야구팬들의 성금을 모아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기적인 일본 젊은이 vs 이수현
이씨의 죽음에 대해 일본인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던진 것만으로 보면 이씨와 함께 사고현장에 뛰어들었던 세키네씨도 똑같이 훌륭하다. 그렇지만 이씨에 대한 반응은 세키네씨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뜨겁다. 한 일본 신문사 기자는 “만일 세키네씨 혼자서 취객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면 일본 언론이 이처럼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일본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용기와 희생정신이 한국 젊은이에게 충만하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희생은 물론, 자신에 대한 꿈과 희망마저 잃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해부터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17세 소년’들의 엽기적이고도 반인륜적인 살인사건은 일본 청소년들의 정신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또 지난달 초 고치(高知)현 고치시 성인식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떠올리며 젊은이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성인식은 만 스무살의 성인이 된 젊은이들에게 지방자치단체가 베풀어주는 행사. 젊은이들의 장도를 축하하기 위해 고치현 지사가 축사를 읽던 중 행사장 2층에 앉아있던 청년들이 “너무 길다”, “그만 돌아가라”는 말로 야유를 퍼부었다.
화가 난 지사가 축사를 읽다말고 젊은이들에게 “조용히 해.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지르자 젊은이들도 질세라 “당신이 나가”라며 맞받아치는 바람에 장내는 엉망이 됐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성인식 사정도 거의 마찬가지. 성인식 직후 각 언론에서는 철없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는 한편 젊은이들을 애지중지 키워왔던 전후 교육에 대한 반성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젊은이 언어를 과학한다’는 책의 저자인 우메하나여자대학의 요네가와 아키히코(米川明彦)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성인식에서 버릇없는 소동을 벌인 일본 젊은이가 이씨처럼 남을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70년대 이후 일본사회는 철저히 오락사회가 됐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젊은이들이 귀찮은 일이나 싫어하는 일을 하려고 하겠느냐? 즐겁거나 편안한 일이 아니면 모두 거부한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은 이미 사어(死語)가 됐고 ‘희생’이란 말은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자기중심주의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의연한 태도로 더해진 감동
이씨의 죽음을 계기로 일본 젊은이에 비해 희생정신이 강하고 양보심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높이 평가하게 됐다는 얘기다. 일본 신문에 실린 한 60대 독자의 투고 내용을 보면 한국 젊은이에 대한 부러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문에 난 두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 이수현씨는 일본어학교에서 공부하는 26세의 청년이다. 오늘날 여러 잔혹한 사건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인간은 역시 선한 동물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건이었다. 한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서울을 방문해 지하철을 탔더니 좌석에 앉아 있던 청년이 즉시 일어나 노인인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광경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올 여름 한국 여행을 예약했다. 내게는 첫 한국여행이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한글공부도 더 열심히 할 계획이다. 이씨와 이씨의 모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
이번 사건에서 이씨의 부친인 이성대(李盛大·61·회계사무소 경영)씨와 모친인 신윤찬(辛閏贊·50)씨가 보여준 의연한 태도도 일본인에게 감동을 더해줬다.
보통 자식의 죽음을 맞은 부모라면 자식의 유해를 보자마자 울부짖으며 안타까워하기 마련. 그러나 이씨의 부모는 27일 밤 일본에 도착한 후 30일 떠날 때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조문객들을 맞이했고 이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하루 100여명씩 들이닥친 취재진에게 한번도 낯빛을 붉히거나 찡그리는 일 없이 “고맙다”, “수고하신다”고 말하며 자신의 심정을 또렷하고도 담담하게 밝혔다.
부친 이씨는 자식을 앞세운 슬픔을 감춘 채 “내 자식이 살아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한들 이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조부가 일본에서 숨지고 부친은 징용으로 끌려와 일본 탄광에서 노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마저 일본에서 잃게 돼 4대째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된 셈”이라고 밝힌 뒤 “부족한 자식의 장례에 일본인 여러분이 성심성의껏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린다”며 오히려 주변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모친 신씨도 아들의 유골을 들고 귀국하기 직전 일본 기자들이 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자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아이였는데 뜻을 못 이루고 갔다. 그러나 아들아, 일찍 간다고 너무 애통해 하지 말아라. 너는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 여러 사람 마음 속에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도쿄 네리마(練馬)구의 한 노인(74)은 이씨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나처럼 태평양전쟁 후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상당히 고생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래를 촉망받던 사랑하는 아들을 갑자기 여의게 된 심정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한 시민으로서 한일간의 우호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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