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의 도시’ ‘대중교통의 천국’ ‘생태환경 도시의 모델’ - 브라질 중남부의 중소도시 꾸리찌바에 붙여진 찬사다. 선진국의 유명 도시도 아니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천혜의 관광지도 아닌 제3세계의 작은 도시가 이처럼 엄청난 평가를 받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지난 7월 하순,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꾸리찌바 현지를 찾은 기자는 첫눈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 겨울에 비가 내리는 영상 8。의 을씨년스런 날씨, 첨단빌딩과는 거리가 먼 낡고 우중충한 도심의 건물들, 특징없는 거리풍경. 아름답고 매력적인 ‘꿈의 도시’의 면모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보통도시’일 뿐이었다.
3박4일의 취재를 마치고 나서도 꾸리찌바에 대한 최초의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시 어느 구석에도 이방인의 눈길을 끌 만한 명소가 눈에 띄지 않았고, 살기 좋다고 소문이 날 만큼 부유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꾸리찌바에 쏟아진 온갖 찬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해답은 외부인이 아닌 꾸리찌바 사람들, 그것도 서민들의 입장에 서야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꾸리찌바에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해나가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시당국의 갖가지 시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도시가 왜 경탄의 대상이 됐는가를 깨닫게 된다. 크고 작은 도시행정이 세심하게 서민들의 삶을 배려하고 있는 데에 꾸리찌바의 진면목이 있기 때문이다.
‘땅 위의 지하철’, 이중 굴절버스
꾸리찌바가 오늘날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완벽한 대중교통 시스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버스 시스템의 확립에 있다. 이곳의 버스는 한마디로 ‘땅 위의 지하철’이다.
꾸리찌바에는 지하철이 없다. 대신 빨간색의 대형 굴절버스가 각 노선별로 쉴새없이 승객을 실어나른다. 3칸의 차량을 이어서 만든 굴절버스는 시속 30㎞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데, 정원이 270명이다. 또 어떤 노선이든 아무리 길어도 5분 이상 기다리지 않을 정도로 배차간격이 짧다. 러시아워엔 배차간격이 더 짧아진다. 지하철에 해당하는 이 굴절버스는 주요 간선도로를 커버한다. 이 버스가 닿지 않는 곳은 다른 색깔의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뚜보’라고 불리는 이 버스의 정류장이다. 굴절버스를 타려면 지름 3m, 길이 10m 가량의 원통형으로 생긴 뚜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요금 징수원에게 1.25헤알(약 600원)의 버스요금을 낸다.
굴절버스가 뚜보에 도착하면 5개의 문이 열리면서 발판이 튀어나와 뚜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은 편리하게 버스를 탈 수 있다. 버스 출입문이 5개나 돼 승·하차 시간이 매우 짧다.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뚜보를 설치한 결과 △미리 요금을 내고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게 되므로 승·하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고 △비가 내려도 맞지 않는 등 승객보호 기능이 있으며 △밤에도 안전하게 버스를 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뚜보는 꾸리찌바 전역에 237개, 도심지역에만 77개가 있다.
굴절버스가 닿지 않는 곳이나 시 외곽지역을 가려는 승객은 교통 요충지에 있는 터미널에서 다른 일반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모두 20군데에 위치한 터미널은 굴절버스를 비롯해 각종 버스가 집결하는 곳이다. 승객들은 이곳에서 별도의 추가요금 부담없이 원하는 방향의 일반버스를 탈 수 있다. 거꾸로 일반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와서 다시 굴절버스로 갈아탈 수도 있다. 처음 지불한 1.25헤알의 요금만으로 시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셈이다.
이같은 시스템은 평균 승차거리가 짧은 도심지역의 부유층 주민들에게는 불리한 것이지만 주로 시 외곽에 살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서민층들에게는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버스요금 징수제도도 특이하다. 우리처럼 버스회사별로 수입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운영공사(URBS)에서 일괄적으로 요금을 징수, 승객 수가 아닌 주행실적에 따라 배분하므로 난폭운전 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
이처럼 버스가 대중교통의 절대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 꾸리찌바의 도로망은 철저히 버스 위주로 돼 있다. 간선도로의 경우 편도 4차로로 구성돼 1차로는 버스전용, 2차로는 버스정류장으로 활용된다. 나머지 3, 4차로는 승용차 등 일반차량이 사용한다. 도심지역의 도로는 거의가 일방통행이어서 차량의 흐름이 원활한 편이다. 주차정책도 융통성있게 시행되고 있다. 도심지역의 경우 도로 곳곳에 승용차 주차가능 표지가 세워져 있어, 1시간의 유료주차가 허용된다. 반면 차량통행량이 많지 않은 곳의 도로는 시간제한 없이 주차가 허용된다.
버스 위주의 교통망이 완벽하다 보니 택시는 찬밥 신세다. 1㎞ 주행요금이 1.3헤알로 버스요금보다 약간 비싼 택시는 모두 2200여 대가 운행되고 있지만, 시민들이 외면하고 있어 1972년 이후 단 한 대도 증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꾸리찌바 시내를 다니다 보면 택시정류장마다 10여 대의 빈 택시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기자가 꾸리찌바시에 머물렀던 3박4일 동안 단 한 차례도 교통정체 현상을 경험할 수 없었다. 교통신호 대기중 파란불이 들어왔는데도 통과하지 못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호대기중인 차량이 한 개 차로에 10여 대가 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야말로 물흐르듯 차량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꾸리찌바가 대중교통의 천국이라지만 그렇다고 승용차가 적은 것도 아니다. 자가용 보유율이 2.3명당 1대로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높다. 거의 집집마다 한 대씩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지만, 버스 시스템이 워낙 편리하게 돼 있고 주차비가 비싸다 보니 평일에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고 주말에만 자가용을 이용해 교외로 나간다는 것이다.
꾸리찌바의 교통시스템이 세계적인 주목거리가 된 것은 높은 효율성과 저렴한 경제성 때문으로 요약된다. 2700여대의 각종 버스의 수송분담률은 무려 75%. 문자 그대로 버스가 시민의 발이 된 셈이다. 이에 비해 지하철 역할을 대신하는 굴절버스와 원통형정류장으로 이루어지는 직통버스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비용은 지하철 건설비의 80분의 1 수준.
약간 과장하면 꾸리찌바는 보행자의 천국이다. 이곳에서는 그 흔한 지하도와 육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자동차보다는 사람 위주로 도시계획을 세운 까닭이다. 자연히 걸어다니기에 편리하다. 붉은 신호등이 켜졌어도 아무렇지 않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 차량들도 이를 당연시하고 과속하지 않는다.
서울의 명동쯤에 해당하는 가장 번화한 지역은 아예 차량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약 1㎞에 걸쳐 조성된 ‘꽃의 거리’가 바로 그곳이다. 브라질에서 최초로 조성된 이 보행자 전용공간은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또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20여 년을 변함없이 거리미술제가 열리고 있고, 각종 연주 행사로 거리에는 항상 음악이 흐른다.
지하도·육교가 없는 보행자의 천국
꾸리찌바의 도시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세심한 정책들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주요 간선도로변을 따라 고층아파트를 짓도록 한 주택정책이 좋은 예다. 교통이 편리한 간선도로변에는 15층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외곽으로 벗어날수록 저층의 건물을 짓도록 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도시의 건물이 3각형을 이룬다. 시당국자는 이같은 정책이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교통수요를 구조적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다. 서울의 도심이 밤이면 텅 비고, 도시주변의 신도시로 퇴근하느라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현상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건설회사가 도심지역에서 규정보다 2개층을 더 높이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이로 인한 수익금의 일부를 시주택공사에서 거둬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건설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시 중심지역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한 것과 함께 시 외곽지역의 주민들은 가급적 도심지역으로 진입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행정체제를 갖춘 것도 눈에 띈다. 굴절버스와 일반버스를 무료로 환승할 수 있는 버스터미널 옆에 ‘작은 시청’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 주택 수도 전기 등 각종 업무를 담당하는 이 작은 시청은 도심지를 벗어난 지역의 8군데에 설치돼 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이곳으로 가서 일을 본 뒤 되돌아갈 때는 버스요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즉 한 번만 버스요금을 내면 더 이상의 추가부담없이 일을 보고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간과 경비가 엄청나게 절약된다는 얘기다.
꾸리찌바는 지난 1990년 환경분야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진 유엔환경계획(UNEP)의 ‘우수환경과 재생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꾸리찌바를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라고 평하는 등 환경 측면에서도 모범도시로 찬사를 받고 있다.
이처럼 높이 평가받은 꾸리찌바의 환경도 자연의 혜택이라기보다는 교통문제처럼 시의 환경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인위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꾸리찌바의 1인당 녹지면적은 52㎡로 유엔과 세계보건기구 권고치의 4배가 넘는다. 선진국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다. 27개 공립공원과 나무가 잘 가꿔진 광장·도로변 등 어디든지 푸른 숲과 나무가 가까이 있다.
시당국은 중심지역 바깥에 있는 모든 건물은 간선도로로부터 5m씩 후퇴해 나무를 심도록 했고 대지면적의 50%에만 집을 짓되, 나머지 공간은 토양의 흡수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상태로 남겨 놓도록 하는 등 녹지공간 확보정책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기존의 모든 나무는 등록을 의무화하고, 허가없이 나무를 벨 경우 위치와 나무종류에 따라 30~6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만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토지이용법령에 식생이 양호한 지역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도록 하는 등 입체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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