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문명의 완벽한 조화…. 오클랜드는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지상낙원’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쾌적한 도시다. 두 개의 항구와 해안이 둘러싸고 있으며, 도시 어디에서든 바다와 숲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저력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당국의 정책과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2001년 1월 컨설턴트 업체인 윌리엄 M 머서사는 전세계 218개 도시를 대상으로 ‘삶의 질’을 평가했다. 그 결과 오클랜드는 공동 5위를 차지했는데, 1위와는 불과 0.5점 차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오클랜드는 환경, 교육, 치안, 사회복지, 여가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모두가 한국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항목이다. 최근 뉴질랜드 이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굴뚝이 없는 나라
뉴질랜드의 관문 오클랜드 공항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외부 음식물의 반입이다. 누구든 식품을 갖고 들어가려면 사전에 신고하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오클랜드 공항은 승객들에 대한 검역이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하나같이 ‘무공해 청정국가’를 지향하는 뉴질랜드 당국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절차들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초원에서 양떼가 풀을 뜯고 그 사이로 듬성듬성 전원주택이 보인다. 눈 씻고 찾아봐도 공장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2차 산업을 육성하지 않는다‘ 는 국가정책때문이다. ‘공산품은 비싸도 수입에 의존한다‘ 는 것이 뉴질랜드 정부의 원칙이다.
오클랜드시가 추진하는 환경정책의 핵심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가축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시 당국은 목장마다 빗물로 정화할 수 있을 만큼의 가축만 기르도록 수를 제한한다. 연중 내리는 빗물이 가축의 분비물을 분해하고, 그것이 다시 풀을 기르는 거름으로 쓰이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초원에서는 양 5000만 마리, 돼지 1600만 마리, 사슴 600만 마리가 자라고 있다. 한가지 특징은 어느 곳에서도 축사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가축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밤이 되면 풀밭에 쓰러져 잔다. 유일하게 축사에서 자라는 가축이 닭인데, 닭똥은 화훼농가에서 거름으로 쓴다.
오클랜드시는 공기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는 쓰레기 소각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침전물 정화시설을 갖춘 진흙암반층에 오물을 묻고 있다.
오클랜드 시민들에게 도시 환경에 관해 물으면 비슷한 대답이 나온다. 그들은 “우리가 물려받은 땅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은 처음부터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낚시를 하는 사람이 한번에 물고기 9마리 이상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나, 쿼터제를 위반하는 원양어선에 엄격하게 페널티를 적용하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오클랜드 사람들에게서는 여유가 물씬 풍긴다. 일찍부터 목재와 육류를 수출해서 국부를 늘렸고, 최근엔 막대한 관광수입까지 올리고 있다. “월급을 2.5배로 줘도 야근을 시키기 힘들다”는 어느 식당 주인의 말처럼 오클랜드 사람들은 휴식을 확실하게 챙긴다. 금요일 저녁을 빼면 거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클랜드 사람들에게 “돈을 벌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다섯 명 중 2명이 “좋은 요트를 갖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요트는 오클랜드에서 인기있는 레포츠다. 지난해 열린 아메리카컵요트대회에서 뉴질랜드가 세계 최강 미국을 누르고 2연패를 달성한 이후 요트의 인기는 폭발하고 있다. ‘10m 앞의 파도를 예상하면서 인공위성과 교신할 수 있는 수백억짜리 요트’ 그것은 성공한 오클랜드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보물’일 것이다.
뉴질랜드는 안정된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뉴질랜드 전역에서 1년에 평균 2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오클랜드에서는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다. 때문에 어쩌다 사건이라도 터지면 매스컴이 며칠씩 흥분한다. 인구 100만이 넘는 다민족 도시에 마약이나 총기, 성폭력 관련 사건이 없는 것도 오클랜드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통계일 것이다.
뉴질랜드의 교육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단 영주권을 취득하면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 태어난 지 3년 6개월 안팎이면 유아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없이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노는 방법을 가르친다.
초·중·고 교과과정도 한국의 입시교육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오클랜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은 “경쟁하지 않으니까 스트레스가 없고, 재미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교사들도 획일적인 교과과정 대신 학생들의 소질 개발에 중점을 둔다.
학비도 저렴한 편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4학기제로 운영되는데 학기당 5만~6만원이 든다. 한편 대학생의 연간 수업료는 180만원 수준. 유학생은 580만원 정도로 약간 비싸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교하면 훨씬 싸다.
한국 교민들이 오클랜드 교육기관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학교폭력이 없다는 점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 용경중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어려서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자세를 배웁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튀는’ 놈이 하나 들어와서 훼방을 놓아도 중심에 있는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거든요. 예전엔 싸움을 하다가 퇴학당한 한국 아이도 있었는데,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뉴질랜드 식으로 동화되는 거죠.”
최근 오클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한국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학비가 싸고 도시 분위기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다른 민족에 관대한 오클랜드 특유의 사회 분위기를 들 수 있다. 단기 영어연수 프로그램을 준비중인 ‘고추투어’ 김경구 대표는 “교육을 위한 기본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만 보내도 안심할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호주투어’ 한재관 대표는 뉴질랜드에 이민온 지 10년째다. 그에 따르면 오클랜드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도시”라고 한다. 한대표는 그동안 교통경찰에게 면허증을 딱 2번 보여주었다고 한다. 철저한 단속이 없어도 시민들이 알아서 질서를 지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오클랜드 시민들은 당국의 적극적인 정책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꼽았다. 실례를 들어보자.
오클랜드 시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는 대단히 높다. 오클랜드에서는 행정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우편과 전화로 해결한다. 그런데도 민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오클랜드에 왔다가 불법주차 딱지를 떼였다. 당시 주차관리원 로버트 트와이언은 “중요한 건 불법주차지, 누구 차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클라크 총리 역시 60달러(뉴질랜드화·약 3만4800원)를 지불했다는 후문이다. 오클랜드시엔 인적이 드문 변두리 골목길까지 주차권 자동판매기가 설치돼 있다. 경찰 단속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모든 차량이 정확하게 요금을 치르고 있다.
뉴질랜드의 세법은 누진제가 철저하다. 연평균 소득 3만3000 달러(뉴질랜드 달러 기준·약 1900만 원)를 기준으로 세율이 20%에서 30%로 올라간다. 하지만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려서부터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는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제도다. 국민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되지만, 60세에 퇴직할 경우 별도의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다. 저소득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복지혜택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 예로 주택을 구입할 경우 80~90%를 조건없이 대출해주며 25년까지 장기 상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뉴질랜드의 주택보급률은 70%를 상회한다.
뉴질랜드는 전통적으로 여권이 강한 나라다.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도입한 나라답게 현재 총리를 비롯해 야당 당수, 대법원장, 총독, 오클랜드 시장이 모두 여성이다. 여성에 대한 복지정책도 세계 최고다. 한 예로 여성이 임신하면, 출산 때까지 병원비를 제공한다. 또한 부부가 3년 이상 살다가 이혼할 경우 전재산은 여성의 소유가 된다.
오클랜드에는 대형 쇼핑몰과 구멍가게가 골고루 발달해 있다. 구역별로 대형 마트가 활성화돼 있는가 하면, 소규모 주택단지엔 작은 상점들이 성업중이다. 이것은 시 당국이 적극적으로 상권 분산정책을 쓴 탓이다. 거주지 인구에 맞게 가게를 배치하고 동종업체가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 과정에 분쟁이 생기면 시 관계자가 개입한다. 이런 까닭에 오클랜드의 점포들은 호황이 따로 없이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