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조(門?)’라 부르는 후이저우 스타일의 대문
여학생은 내가 훙춘에 가려 한다고 하자 “역 앞에서 이셴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고 이셴으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훙춘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줬다. 그리고는 시디 구경을 끝내고 툰시에 다시 오게 되면 식당도 하고 민박도 하는 자기네 집을 한번 찾아달라고 했다. 나는 이미 밤차로 난창에 갈 요량으로 표를 끊어뒀기에 그녀의 호의에 답하고 싶었다.
“이셴으로 떠나기 전에 점심부터 해결하고 싶으니 지금 학생 집으로 가지.”
그녀의 식당은 거기서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장 겸 종업원인 작은 식당에서 5위안짜리 중국식 자장면을 시켜먹고는 “툰시에 다시 오면 또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붕붕거렸으나 좀체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손님을 더 태울 생각인지 30여 분을 더 그렇게 서 있었다. 그들에겐 그것이 ‘일상’인지 몰라도 나로서는 인내심을 테스트 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중국에선 중국식에 따라야지.
버스는 출발한 뒤에도 자주 멈췄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서든 차를 세웠다. 탕커우에서 툰시로 나올 때보다는 평지가 넓어 보였고 제법 큰 내(川)도 흘렀다. 뒤에야 알았지만 그것이 이 지역의 젖줄인 신안(新安)강이었다.
이셴에 거의 다 다다랐다 싶었을 무렵 오른쪽으로 ‘시디, 세계문화유산 3공리(公里)’란 팻말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3km만 가면 시디가 나온다는 것이다. 드디어 이셴에 닿았다.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차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셴은 제법 큰 도시인 듯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곳 사람들에게 공안국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그때 도시락을 먹던 젊은 친구가 “공안국?” 하며 일어섰다. “차비는 5위안”이라며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공안국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공안국 입구에서 “외사과에 볼 일이 있다”고 하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는데, 곧 잘생긴 순경 하나가 날 데리러 왔다. 사무실은 2층에 있었고, 내부는 밖에서의 느낌과는 달리 꽤 잘 정돈돼 있었다. 그는 신청서를 건네주며 쓰라고 하고는 수수료로 55위안을 받았다. 그러자 여권만한 크기의 ‘외국인 여행증’을 내줬다.
그것으로 볼일이 끝났는지, 그는 훙춘 가는 차를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았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 작은 화물차를 개조한 미니카가 서 있는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요금은 거리에 관계없이 2위안이었다. 5인승으로 개조한 미니카라 10위안을 내면 전세를 얻을 수도 있었다. 내가 타고 나서 마지막으로 아주머니와 소녀가 차에 오르자 미니카는 출발했다.
신안강은 이번에도 나와 동행했다. 물론 그 지류였지만. ‘신안’은 강 이름이면서, 훙춘의 옛 명칭이기도 하다. 황산 일대의 안후이(安徽)성 남부는 예로부터 환난(?南)이라고도 불렸다. 안후이성의 자동차 번호판에 ‘환(?)’이란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니카가 선 곳은 수백 살의 나이를 먹어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 아래였다. 그게 훙춘의 입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매표소도 있었다. 외지인이라면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또 머무는 날 수에 관계없이 55위안씩 하는 입장권을 떠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