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난 조지 테닛 전 CIA 국장과 새 CIA 국장으로 지명된 포터 고스(왼쪽).
그러나 그 같은 변명은 CIA를 비롯한 미 정보기관들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이유를 밝혀주지는 못한다. 2002년 10월1일 CIA가 발표한 ‘이라크 무기 프로그램 백서’엔 “이라크는 화학 및 생물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겨자, 사린, 사이클로사린 및 VX 등 화학전 물질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쓰여 있다. 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을 비롯한 미 민주당 소속 의원 상당수는 이 보고서를 믿고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침공 권한을 안겨주었다.
“CIA 정보를 믿고 의회에서 (부시의 이라크 침공정책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정보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면 앞으로 북핵 및 이란 문제에 있어 어느 누가 (CIA 정보를) 믿을 수 있겠는가?”(제인 하먼 민주당 상원의원) 하는 볼멘소리에 CIA는 아무 할말이 없다.
해체론까지 거론되는 CIA
결국 테닛은 국장 재임 7년을 맞은 지난 7월초 물러났고, CIA는 거센 변화의 풍랑 속에 휘말렸다. 그 과정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개혁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큰그림으로 볼 때 그 방향은 민주·공화 양당 의원으로 구성된 9·11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에 낸 권고안대로 ‘국가정보국장(National Intelli- gence Director, NID)’이란 새 자리를 만들어 정보기관간 정보 수집의 흐름을 조율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 정보기관들 사이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고 따로따로 움직이는 바람에 알 카에다의 공격을 미리 막지 못하고 9·11 참사를 불러왔다는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9·11조사위원회는 567쪽 분량의 두꺼운 보고서(‘The 9/11 Commission Report’)에서 그 점을 지적하면서, 15개 미 정보기관을 통합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직 신설을 강력히 제안했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워싱턴 정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CIA를 해체하고 재조직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더구나 그런 목소리가 집권 여당인 미 공화당 상원의원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 터라 CIA 간부들은 위기위식마저 느끼고 있다.
그 중심인물은 팻 로버츠 상원 정보위원장이다. 그는 8월말 미 CBS 방송 일요 토크쇼인 ‘국민과의 만남’ 프로그램에서 미 정보기관 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최대 정보기관인 CIA를 사실상 해체토록 하는 정보기구 개혁안을 제시해 화제를 모았다.
로버츠 위원장을 중심으로 미 상원 정보위 소속 공화당 위원들이 추진하고 있는 정보기관 개편안은 15개 정보기관을 통제 감독하는 국가정보국장직 신설을 제의한 9·11조사위원회 권고안보다 훨씬 혁신적인 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버츠 위원장이 추진하는 개편안의 이름은 ‘9·11 국가안보보호법안’. 이에 따르면 CIA는 세 부문으로 분리돼 ▲기존 스파이 작전을 관할하는 국가첩보국 ▲정보를 분석하는 정보평가사무국 ▲연구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학기술국으로 개편된다. 이들 세 기관은 미 9·11조사위원회가 신설을 건의한 국가정보국장에게 업무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를 두고 CIA 내부에선 “사실상 CIA를 해체하자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존 맥롤린 CIA 국장대리는 “이 개편안은 개악(a change for the worse)이다. 나는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밝힌다”는 성명을 냈다. 사임한 조지 테닛 전 CIA 국장도 성명을 내 “이는 뭔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조직을 뒤흔들어놓는 잘못된 계획이다. 그 같은 개편안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손상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로버츠 위원장은 “CIA를 없애는 것이 아니며, 다만 3개 주요 부문으로 나눠 새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개혁안이 원안대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