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의학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차례다. 먼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중의학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또 우리 한의학과의 상관관계도 궁금하다.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분야여서 그 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의학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왔는지 간단히 짚어봤으면 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전국(戰國)시대와 한(漢)나라 때 중의학이 처음 등장합니다. 중의학의 이론체계가 성립된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잦은 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죠.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때 의학이 발달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명의 편작(扁鵲)이 바로 전국시대 사람인데, 망진(望診)이니 맥진(脈診)이니 하는 사진(四診)진단법을 만들었지요. 또 이때 중국 최고의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이 나오게 됩니다.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 장중경(張仲景)의 대표적 저작인 난경(難經)이라든가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 나오고, 그 다음에 신농본초(神農本草)와 같은 중의학의 경전에 해당할 만한 책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후 진(晋)나라 때는 왕숙화(王淑和)가 지은 의서 맥경(脈經)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가지 맥의 시스템을 체계화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이외에 당(唐)나라 때는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천금방(千金方) 2편이 나오고, 금원(金元)시대에는 유완소(劉完素) 장종정(張從正) 주진형(朱震亨) 같은 유명한 의사들이 배출됐는데요, 이들을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라고 이릅니다. 명청(明淸)시대에 이르러 중의학은 이론과 경험을 정리하는 전성기를 이룹니다. 아편전쟁 이후 근대에 들어서는 중의학이 서양문명을 흡수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치료제로 서양의 아스피린과 석고탕(石膏湯)이라는 전통 처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한 ‘아스피린 석고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합친 최초의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중의학과 한의학
-그렇다면 중의학의 골격은 어느 시기에 확립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의학은 황제내경이라든가 상한잡병론 금궤요약(金풤要略) 같은 고서가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골격이 확립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용되는 중의학은 기존의 이론체계에 문화혁명 이후의 유물론적 사관이 결합되면서 독특하게 발전한 것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제패하면서 도량형을 통일시킨 것처럼,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의학에 일정한 계통을 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각자가 비장하고 있던 경험방(經驗方)이라든가 비방(秘方)을 모두 문서화하도록 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중의학 고유의 신비스러운 부분이 거의 사라지고 유물사관에 입각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 많이 가미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한나라 때 골격이 잡혔던 중의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의학과 우리나라의 한의학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또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한(韓)의학을 동의학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의보감이나 사상체질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 예컨대 황제내경이나 상한론 등등의 전통의학서들은 모두 중국 것이죠. 이 점으로 미루어 한의학은 중국 전통의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내몽골 쪽의 전통의학은 몽의(蒙醫)라고 부르고 티베트 쪽의 전통의학은 장의(藏醫)라고 부릅니다. 또 남쪽의 소수민족들도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서 무슨무슨 의학이라고 하는데 역시 한족의 중의학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변용한 것입니다. 우리 경우도 중의학을 아주 독특하게 발전시켰는데,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발전시킨 영역이 있을 정도입니다.
거꾸로 한의학이 중의학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동의보감의 경우는 중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제가 1992년에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어로 된 동의보감을 샀을 정도니까요.”
-오늘날의 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해보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납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화혁명 이후 중의학은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의학교과서에도 유물사관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의학은 원래 고대부터 유심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완전히 빼지는 못하고 일부 소개하고 있는 정도예요. 아무튼 이렇게 전통의학을 유물사관으로 새롭게 정립하다 보니까 중의학에서 신비로운 부분은 대부분 삭제돼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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