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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장쩌민시대 4대 시나리오

포스트 장쩌민시대 4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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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결합된 중국 특유의 혼합체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감한 경제개혁, 조심스러운 정치개혁’이라는 아슬아슬한 원칙은 언제까지 지켜질 것인가. ‘포스트 장쩌민’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중국은 ‘급작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나라(a country of sudden decision)’로 불린다. 예측하기 어렵고 진단하기 곤란한 중국의 실상을 더없이 간명하고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중국은 겨우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그리고 장쩌민(江澤民)이라는 세 명의 ‘링쇼우(領袖·지도자)’만을 허락했다. 마오쩌둥이 평등과 해방이라는 제1차 혁명을 성공시켰다면 덩샤오핑은 1979년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이라는 제2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장쩌민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혼합체제를 계승하는 덩의 후계자 지위에서 탈피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함으로써 전임자들과 같은 반열에서 평가받는 지도자로 남고 싶어한다.

국익과 체면 함께 추구

마오쩌둥 사후 25년, 등소평 사후 4년 반이 지난 지금의 중국은 경이적인 경제발전, 안정된 내치, 미엔즈(面子·체면)와 국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세적이고도 실리적인 외교수완, 올 가을로 예정된 WTO 가입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와 같은 국제적인 위상강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성장을 지속할 중국의 대외정책과 안보정책이 한층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이른바 현실주의적 중국관은 급기야 ‘중국위협론’과 ‘황화론(黃禍論)’ 논쟁에 불을 붙였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어떻게 움직이는 체제인가. 중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신중국’ 탄생 이후 52년 동안 중국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또한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마오쩌둥의 중국과 덩샤오핑의 중국, 그리고 장쩌민의 중국은 과연 무엇을 추구했고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중국의 권력구도와 체제의 향방을 예측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가난한 大國’이 될 순 없다

1976년 9월9일. 83세의 마오쩌둥이 사망했다. 대장정 와중인 1935년 1월 구이저우(貴州)성의 작은 도시 준이(逡義)에서 열린 비상확대회의에서 중국공산당과 홍군(紅軍)의 지도자로 선출되어 중국의 정치와 이데올로기, 교육, 사상,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해온 지 41년 만이었다. ‘정치우선’ ‘계급투쟁’ ‘대중동원’ ‘폭력혁명’ ‘이데올로기와 사상 제일주의’라는 이른바 ‘홍(紅)’의 시대가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마오는 사망 직전 화궈펑(華國鋒)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물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평생 동안 노선투쟁과 권력투쟁의 폐해를 직접 체험했던 그로서는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화를 불러 유명한 후계자 지명 유언을 남겼다. “자네가 맡아줘야 내가 안심이 되겠네(辦事 我放心)”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사후에도 위대한 지도자로서 업적과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왔다.

그러나 마오의 기대와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덩샤오핑이라는 작은 거인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그의 탁월한 전략과 영도력을 미처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오의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장칭(江靑)·왕훙원(王洪文)·장춘차오(張春橋)·야오원위안(姚文元), 이른바 4인방의 체포와 함께 덩은 국무원 부총리와 당 부주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자리에 올라 중국의 당·정·군에서 실질적인 파워맨으로 전면에 부상했다.

덩샤오핑의 중국은 그의 전임자였던 마오의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마오의 시대가 정치우선주의, 사상개조, 이데올로기 중시, 혁명건설, 대중노선 등과 같은 ‘홍(紅)’을 강조한 시대였다면 덩의 중국은 경제우선주의, 전문성과 효율성, 경쟁, 자율성, 제한적인 자유의 보장과 같은 ‘전(專)’을 강조했다. 마오가 철저한 자급자족과 고립경제를 고수했다면 덩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접목이라는 실용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했다.

덩의 개혁·개방정책은 그의 실사구시적 세계관과 인식론에서 출발한다. 그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가난한 대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실리적 인식에 기인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중국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탈피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전임자였던 마오를 비난하는 새로운 세력들을 내놓고 지지할 수도 없었다.

결국 덩은 ‘칠분론(七分論)’이라는 기막힌 논리로 마오를 평가한다. “마오쩌둥의 업적 가운데 70%는 옳고 30%는 잘못된 것”이라며 사회주의의 적으로 여기던 자본주의와 모순의 원흉으로 여기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데 대한 논리적 반발을 무마했던 것이다.

그는 또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후야오방(胡耀邦)을 당 총서기에, 그리고 자오쯔양(趙紫陽)을 국무원 총리로 임명, 이른바 ‘덩-후-자오 삼두체제’를 출범시켰다.

그의 개혁·개방 노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과감한 경제개혁, 조심스러운 정치개혁’이라는 그의 개혁·개방 원칙은 당 안팎에서 심각한 도전과 반발에 직면했고, 1997년 2월19일 그가 사망하는 날까지도 그는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장경제·계획경제의 이중구조

1978년 11월 제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은 “사상해방, 실사구시, 일치단결로 미래를 바라보자”는 개혁·개방의 대원칙을 천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노선, 공산당지배, 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쩌둥사상, 무산계급독재의 견지”라는 ‘4항 기본원칙’을 강조했다. 중국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경제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겠지만 체제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정치개혁은 제도의 정비와 기구개편과 같은 제한적인 개혁에 국한하겠다는 의미였다.

덩은 개혁을 위해 당내 원로들을 대거 퇴진시켰다. 중국정치의 특성이었던 ‘노인정치(gerontocracy)’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이른바 ‘4화(化)’, 즉 연경화(年輕化)·지식화·혁명화·전업화(專業化)를 추진했다. 이데올로기적 인간형보다는 사회주의를 견지할 수 있는 전문관료집단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마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카리스마가 취약했던 덩은 개인적 영향력에 의존한 마오와는 달리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지배와 통치 형태도 마오의 1인 지배체제가 아닌 집단지도체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덩의 지위는 ‘동배 중의 맏형(primus inter pares)’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개혁·개방의 노정에서 당내 정적과 반대세력들로부터 무수한 도전과 비판을 받았고 결국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실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초 덩-후-자오 삼두체제가 정권을 장악하고 추진한 것은 당과 국가의 기본노선과 정책의 변화에 걸맞은 체제개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공산당 당장(黨章)과 신헌법 제정이 필요했다.

이들은 우선 개인숭배와 1인 독재체제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당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제를 부활시켰다. 또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지방정부와 지방인민대표대회를 다시 살렸다. 인민공사의 폐지와 함께 향(鄕)이 최하 행정단위로 되살아났고, 각급 지방정부는 성장·시장·현장 등의 책임제로 운영하게 했다.

경제개혁 측면의 변화도 혁명적이었다. 1979년부터 시작된 제1단계 경제개혁은 우선 농촌에서의 책임제 실시로 급속히 확대됐다. 과거에는 작물 선택, 노동력 투입, 농기구 사용, 판매 등에 있어 농민들은 단지 국가의 계획과 명령,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센티브라는 물질적 이익을 보장하는 새로운 조치는 농민이 스스로 원하는 작물을 선택하거나 계약에 따라 생산, 잉여생산물은 자유시장에서 임의로 처분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농업혁명이었다.

농업뿐 아니라 자전거 수리점, 사진인화점, 미장원, 식당 등의 자영업도 빠르게 생겨나 시장경제화의 초기 단계인 자유경쟁과 자유가격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울러 개인의 이익추구나 사유지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중국의 경제체제에는 시장과 계획이라는 이중구조가 자리잡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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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연 <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중국정치) > hykeu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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