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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미국의 언론전쟁

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미국의 언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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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 대참사로 시작되어 지금도 치르고 있는 미국의 미디어 전쟁은 미국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보수와 진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보도통제를 둘러싼 언론과 행정부의 마찰음, 독점 보도를 위한 언론 내부의 경쟁 등 미디어를 둘러싼 전쟁은 입체전이다. 하지만 이념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이데올로기 전선이야말로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과녁 맞추기 전쟁(Bull’s Eye War)’ ‘성(聖)과 속(俗)의 제3차 세계대전’ 등 21세기의 신조어를 탄생시키고 있는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이름 붙인 ‘대 테러 전쟁’이라는 말 역시 9월11일 테러참사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펜타곤에 불기둥이 솟구치는 순간 세계 최대,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만이 가질 수 있는 화려한 빛의 정체와 그 이면의 짙디짙은 그림자의 세계를 한꺼번에 드러내 보였다. 미 언론이 치르고 있는 이른바 ‘미디어 전쟁’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양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논객들이 앞장서 치르는 ‘미디어 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한 실제 전쟁 못지않게 치밀하게 계획되고 기동력이 있어야 하며, 총공세의 과감성과 작전에 따른 후퇴의 생존법을 익힌 프로들이 치르는 전쟁이다. 교전 상대방이 같은 언론이든, 독자나 시청자든, 또는 정부든 간에 상대방의 전력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기본적인 ‘교전 규칙’도 없이 뛰어들거나, 이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덤벼들었다가는 백전백패 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는 미국이다. 미국은 언론의 왕국이기도 하지만, 철두철미한 훈련 없이 뛰어들었다가는 뛰어드는 즉시 그 자리에서 매장되고 마는, 얼치기 언론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무덤터이기도 하다.

9월11일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개시될 때까지가 미디어 전쟁의 1회전이라면,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현재까지가 2회전이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미국의 미디어 전쟁도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미 언론의 대 테러 선전포고다. 부시 행정부가 동지인 연합군이고 테러리스트들이 적이다. 언론을 정부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든 것은 대 테러 참사에 대한 반동, 미 애국주의였다.

9월11일의 대참사 사건을 처음 겪기는 미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건발생 전까지 미언론은 워싱턴 인턴 산드라 리비 실종사건과 해변의 상어 습격사건으로 지면을 메우고 화면을 채워나가던 중이었다. 워싱턴의 ‘언론 및 홍보 센터(CMPA)’ 분석자료에 따르면, 미 3대 텔레비전 네트워크 방송사인 NBC, CBS, ABC가 2001년 1월1일부터 9월10일까지 산드라 리비와 상어 사건을 방영한 총 시간은 각각 2시간59분과 1시간30분이었다. 이에 비해 오사마 빈 라덴 관련 보도는 58분에 불과했다. 빈 라덴에 비해 산드라 리비 관련 방영시간이 3배, 상어사건 방영시간이 2배가 많았던 셈이다.



이런 보도형태는 9월11일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한 기준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시청률과 발행부수 높이기에 치중하는 상업언론이 외교나 국제정세 보도를 등한시함으로써 바깥으로는 눈길을 많이 주지 않은 것도 9월11일 사건의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류 언론의 대 테러전

그렇지 않아도 주요 언론사들이 해외 특파원 수를 대폭 감소시키고, 할리우드, 스캔들, 스포츠, 유명인 보도에만 치중하는 태도가 지적되는 등 미 언론의 상업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주요 언론사의 해외 관련 보도는 지면 할애 및 시간 투자 면에서 지난 15~20년 사이에 70~80%까지 줄어들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미 기자로서는 처음 이라크에 들어가 취재를 했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니나 벌레이는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미국을 잘 알고 있다. 국제정세에 대한 이런 무관심 때문에 결국 외국인들이 미국을 혐오하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우리만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제담당 고참 언론인들도 벌레이의 의견에 동감하고 있다.

미 언론의 참사 관련 보도는 10월7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첫 공습이 개시되기 전까지 거의 한 달간 계속되었다. 3대 케이블 방송인 CNN, 폭스뉴스 채널, MSNBC는 물론 ABC 등 3대 네트워크의 모든 텔레비전 화면 왼쪽 아래에는 빠짐없이 성조기 로고가 새겨졌고, 화면에 등장하는 리포터들의 가슴에도 성조기 배지가 달려 있었다.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 등 간판급 고참 앵커들은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 객관적인 자세를 지키려고 애쓰며 징그러울 만큼 차분하게 진행했다. 정확한 사상자 숫자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어느 언론사도 피해자 숫자를 함부로 보도하지 않는 철저한 확인보도 태도를 지켰다. TV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 대한 심리 충격을 감안해 참사 장면 방영을 조기 중단하는 등 세련된 언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미언론은 순식간에 미국 전체를 휘감은 애국주의의 거센 사회 분위기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때만 해도 언론의 교전 상대방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ABC의 앵커 피터 제닝스가 구설수에 오른 것도 이런 미국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된 탓이다. 피터 제닝스는 9월11일 사건 당일, 부시 대통령이 사태 직후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보이질 않았다. 아홉 시간 만에야 백악관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단순히 대통령의 늑장 귀환을 알린 것인지,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한 것인지는 듣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바로 피터 제닝스를 공격해댔다. 비상시국에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폄하하고 비판하면 어쩌자는 거냐는 애국주의의 몰매였다. 앵커로서 뉴욕 보도국을 지키고 있던 그가 11월 하순, 국내 여론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뉴욕을 벗어나 다른 주를 방문하면서 시민들을 만나는 중에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피터 제닝스가 시청자들의 눈에는 비애국적으로 비친 것이다.

9월11일 사태 직후 언론의 초점은 오로지 ‘보복’ 하나에 맞추어졌다. 안보 전문가든 외교전문가든 논객이든 언론에 이름을 내미는 사람들은 거의 한 목소리였다. 군사력을 동원한 보복공격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조건이었고, 심지어는 핵 보복론에서 이슬람 교도들의 기독교 개종화에 이르기까지 거친 목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막에 있는 빈 라덴 캠프를 전략 핵무기로 공격해야 한다” (전 미 국방정보국의 토마스 우드로우가 ‘핵 무기를 써야 할 때’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워싱턴 타임스’ 9월14일 자 글).

보수 논객인 앤 쿨터(Ann Coulter)가 테러사건 이틀 후인 9월13일 ‘내셔널 리뷰 온라인’에 기고한 다음 글은 결국 보수지인 ‘내셔널 리뷰’에서조차도 이 여성 논객을 해고하게 만들었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무모한 대공세가 결국 패배로 이어진 경우다.

“테러 공격에 관련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관련된 나라로 쳐들어가 지도자들을 죽이고 모두 기독교도로 개종시켜야 한다.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을 징벌할 때 우리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독일에 융단 폭격을 가했고, 민간인들도 죽였다. 그게 전쟁이다. 이것도 전쟁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수 논객인 찰스 크라웃해머(Charles Krauthammer)는 9월12일자 칼럼에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에 죽음의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테러리스트들이 저 바깥에 저토록 많이 널려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저들이 과거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을 때 우리는(사막의 빈 텐트에 쓰잘 데 없는 크루즈미사일 몇 방을 날린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소환장을 발부하곤 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을 인도받아 국제법에 따른 재판에 회부하는 등의 다른 대안은 전혀 설 자리가 없었다. 오로지 즉각적인 군사보복만이 유일한 선택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거대 매체들의 한 목소리, 보수주의

미 언론보도를 감시하는 민간기구 FAIR(Fairness & Accuracy in Reporting)가 2001년 9월11일부터 10월2일 사이의 3주 동안에 미국의 양대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의 논단(Op-ed)에 실린 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군사보복의 대안으로 외교적 해법이나 국제법에 의한 접근법을 제시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초기 3주 동안 ‘워싱턴 포스트’ 논단은 105개, ‘뉴욕 타임스’ 논단은 모두 79개의 칼럼을 실었고, 대부분이 9월11일 사태와 대응책, 경제, 복구 및 재건에 관련된 글이었다. 이 가운데 44개의 칼럼이 분명한 군사보복을 주장하고 있고, 2개 칼럼만이 비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군사 행동을 주장한 칼럼이 ‘뉴욕 타임스’에는 12개가 게재된 반면, ‘워싱턴 포스트’에는 모두 32개의 글이 실려 ‘워싱턴 포스트’가 화약내를 좀더 짙게 풍겼다. 그러나 비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2개 칼럼이 모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것이었고, ‘뉴욕 타임스’에는 그런 대안을 제시한 글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나마 이런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객원 칼럼니스트들이었다. ‘뉴욕 타임스’ 칼럼 수의 3분의 2, ‘워싱턴 포스트’ 칼럼 수의 절반 이상이 전쟁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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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환·미 KISO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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