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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자신의 한계를 알고 환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의사가 명의”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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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주가에 술 전문가로 왕성한 기고·강연 활동
  • ● 술병·종 미니어처, ‘몸짱 교수’, 강남 학원가의 ‘외국어 고수’
  • ● 전문서적 8권 펴낸 심혈관수술 권위자, 최근엔 흉부외과 정맥류 선구자
  • ● 젊은 시절엔 병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 요즘은 환자 내면을 본다
  • ● 60대 여 정맥류 환자, 수술 직후 “이제 치마를 입을 수 있겠죠?”
  • ● 심장수술 후 아이가 죽었는데도 고마움 표시한 부모와 함께 울었다
  • ● “술이 건강에 안 좋다”는 일반론은 잘못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몸짱 교수’로 통하는 김원곤 교수. 뒤편 벽에 걸린 사진은 2009년 5월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고상하면서도 고달픈 직업이다. 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데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지만 인간이라는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의 밑바닥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것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섬광과도 같은 생명의 명멸을 지켜보는 데 따른 고뇌와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의사를 제대로 하려면 의술 못지않게 인내와 평정심이 필요하다. 체력도 좋아야 한다. 고난도의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학과 김원곤(56) 교수는 매우 독특한 교수다. 서울대병원 웹진에 ‘김원곤 교수의 엔돌핀 술 이야기’를 연재하는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술 전문가다. 술 마시기를 즐길 뿐 아니라 술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을 받는다. 술병과 종 미니어처(모형) 모으기가 취미다. 그가 모은 술병 미니어처는 1500여 개에 달한다. 종 미니어처도 300개나 모았다. 누구는 그를 ‘몸짱 교수’라고도 부른다. 몇 달 전 ‘누드사진’을 찍어 의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오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진 그의 몸은 20대 젊은이 못지않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그를 ‘날라리’ 의사로 여기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의 실력을 미심쩍어하는 독자라면 다음 얘기를 듣고 적이 안도할지 모른다. 국내 심혈관(心血管) 분야 권위자인 그는 흉부외과와 심장병, 심장수술에 관한 책을 8권이나 낸 학구파다. 의사가 번역서라면 모를까, 집필저서를 이렇게 많이 낸 것은 유례가 없다고 한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흉부외과와 관련된 역사논문을 수편 썼는데, 한국 최초의 흉부외과 수술환자가 이재명 의사(義士)의 칼에 찔린 이완용이었다는 기록을 처음 발굴하기도 했다(2008년 12월18일 동아일보 기사 참조).

기왕 늘어놓는 김에 이 얘기도 하고 넘어가자. 그는 ‘외국어 귀재’다. 5개 국어를 능통하게 한다. 누구처럼 우리말까지 넣은 숫자가 아니라 진짜 외국어만 말이다. 서울의 강남 학원가에서 ‘정체불명의 외국어 고수’로 통한다. 그는 최근 한 방송사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허경영씨를 비롯해 ‘엉뚱한 사람’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쪽에 어떤 키워드로 다가갔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의료계 기인’으로 보는 것 같아 (출연을) 거절했어요. 내가 독특하긴 하지만 기인은 아니거든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죠.”



“60세에 사진집 낼 계획”

흉부외과는 생명의 원동력이라 할 만한 심장과 폐를 다룬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흉부외과는 정맥류 치료도 한다. 정맥류 치료가 흉부외과의 영역인 혈관 치료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는 정맥클리닉을 운영하는데 그 책임자가 바로 김 교수다.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키가 훤칠한 그가 반갑게 맞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180㎝란다. 수북이 쌓인 책들보다 눈길을 끈 것은 안쪽 벽에 걸린 사진이었다. 문제의 누드사진, 상반신을 벗고 근육을 뽐내는 사진이다. 5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깔끔한 몸매다. 뭣보다도 군살이 전혀 없다. 가슴근육은 균형이 잡혀 있고 복부근육은 매끄러우면서도 탄력적이다. 양팔의 근육도 기운차 보인다. 2009년 5월, 사진이 취미인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스튜디오에서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그는 “주변의 반응이 참 좋다”며 “몇 년 더 몸을 가꿔 60세가 되면 사진집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떤 일을 하고는 싶은데 의지가 약해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 약속을 공개적으로 해서 그 압박감으로 해내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2008년 송년회 때 흉부외과 직원들 앞에서 언제까지 옷을 벗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킨 거죠.”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갖기 힘든 근육”이라는 그의 설명에 공감이 간다. 20대 후반에 나도 해봤기 때문이다. 역기 따위의 도구를 이용한 인공적인 근육은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진다. 또 달리기를 하면 복근이 탄탄해진다는 건 경기 중 윗옷을 걷어 올리는 축구선수만 봐도 알 수 있다.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1975년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이던 김원곤 교수는 자신이 이끄는 의·치대 역도부 회원들과 함께 교내 단과대학 대항 씨름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앞줄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가 김 교수. 김 교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당시 서울대 의대학장 권이혁씨다. 권씨는 뒷날 서울대 총장과 문교부·보사부·환경처 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근육에 관심을 가진 건 학생 시절부터다. 본과 2학년이던 1975년, 그는 서울대 의·치대 역도부를 창설하고 초대 부장을 지냈다. 의과대와 치과대 학생들 중 힘깨나 쓰는 학생들이 역도부로 모였다. 창단부원은 12명.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입회원을 받고 있는 장수 동아리로 매년 가을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현 회원은 30명 안팎인데, OB(Old Boy)회원 모임도 활성화돼 있다.

창단 시절의 일화다.

“처음에 운동기구를 살 돈이 없었어요.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단과대학 대항 씨름대회가 열렸습니다. 대회에서 입상하면 돈 준다고 해서 부원 5명이 출전했습니다. 우승했죠. 상금으로 5000원인가 받았습니다. 초코바 아이스크림이 30원 하던 때였죠. 우승상금에 조금 더 보태서 운동기구를 사들였습니다.”

흉부외과라는 명칭은 흉부 및 심장혈관외과를 축약한 것이다. 가슴과 심장혈관에 있는 모든 병을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곳이 흉부외과다. 하지만 진료과의 이름과 장기의 해부학적 위치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장기와 병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가슴에 있다고 다 흉부외과의 치료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방수술은 일반외과에서 한다. 반면 복부 대동맥 수술은 흉부외과에서 한다. 척추질환을 두고 신경외과와 정형외과가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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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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